사람들 흰 국화 들고 줄줄이 섰다. 얼굴 없는 영정 앞에 향을 피웠고, 고개 숙였다. 안전화와 안전모와 안전띠가 그 앞자리에 가지런했다. 망자의 것은 아니었다. 2013 대한민국 안전대상 소방방재청상 수상 기념 동판이 박힌 어느 통신 대기업의 높다란 빌딩 앞이었다. 일터는 높았고, 비가 줄줄 내렸다. “일이 많이 밀려 있다. 다 처리하라”는 회사의 지시가 떨어졌다. 전봇대에 올랐다. 툭 떨어지던 몸을 잡아 줄 안전줄이 없었다. 머리를 지켜 줄 안전모가 거기 없었다. 감전의 흔적이 손에 남았다. 밥 벌어먹기를 바랐던 그는 누워 젯밥을 받았다. 서른 다섯 해, 꽃 피워 보지도 못한 그 이름 앞에 활짝 핀 국화가 쌓였다. 안전은 저기 원청의 경영 지침에 그쳤다. 외주화 목록에 담겼다. 끝내 위험을 품었다. 다단계 하도급 고질병이 뿌리 깊다. 모두의 상식으로 그 죽음은 외인사였으나, 끝내 병사로 남는다. 떨어지는 것에는 날개가 없다. 비처럼 떨어지던 비정규노동자 혹은 근로자영자의 작업복 가슴팍에, 또 영정 놓인 높다란 빌딩 앞에 주황색 ‘행복날개’가 있다. 헛된 것이어서 오늘 또 국화가 팔린다. 여기 뿐이던가. 줄초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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