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불어 훌쩍 가을이다. 쌀알 차올라 고개 숙이고 사과·배가 태양 빛 아래 익어 간다. 잠자리 짝지어 날고, 메뚜기가 팔짝 뛴다. 활짝 핀 코스모스 흔들리고 갖은 모양 흰 구름이 흐른다. 할 말 없어 그 말도 많은 추석을 애써 견딘 청년들이 푸를 청, 청명한 가을 하늘 아래 땀 흘린다. 팔뚝이며 목덜미가 사과처럼 붉게 익어 간다. 커다란 천과 기다란 쇠기둥이 곧 우뚝 서 큰 장이 선다. 말끔히 차려입은 청년들로 취업박람회는 붐빈다. 정부청사 외벽에도, 어느 지방정부 담벼락에도, 또 국정감사 앞둔 국회 본관에도 청년이 붙었다. 힘이 되겠다는 약속을 거기 새겼다. 청년이 답이라고, 미래라고도 적었다. 그건 지난해 풍경과 하나 다를 바 없어 재탕에 삼탕이다. 멀건 국물에 영양가라곤 쥐뿔만큼이다. 밝은 표정의 청년들이 잔디밭을 펄쩍 뛰어오르는 건 여기저기 걸린 현수막 속 일이다. 하늘 높아 훌쩍 결실의 계절 가을인데, 취업 문턱 또 훌쩍 높아 청년들 힘찬 도약은커녕 숨찬 뜀박질에 내몰린다. 홀쭉 말라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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