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제일은행이 신종 먹튀 논란에 휩싸였다. 당장 은행이 연수원과 영업점 등 부동산을 매각하고 생긴 대금 3천억원의 용처도 불분명하다. 이에 따라 은행과 스탠다드차타드(SCB) 간 MR(Management Reallocation) 계정을 통해 국부가 유출됐다는 의혹까지 불거지고 있다.

SC제일은행의 전신인 옛 제일은행이 매각된 지 올해로 10년째다. 제일은행은 10년 전 뉴브리지캐피탈이란 사모펀드에 매각됐고, 2005년에는 영국계 금융자본인 SCB에 재매각됐다. 뉴브리지캐피탈은 매각 과정에서 1조1천800억원의 차익을 챙겼다. 선진금융기법을 도입한다던 SCB가 은행을 인수한 뒤 지난 5년간 경영 과정에서도 각종 의혹이 계속되고 있다. 금융노조 SC제일은행지부는 “SCB는 인수 후 지금까지 직원비하·회계의혹·자산매각 등 논란을 불러일으켰다”고 지적했다.
 
부동산 매각대금, 3천억원은 어디로
 
국회 정무위원회 유원일 창조한국당 의원이 SC제일은행으로부터 제출받은 국정감사 자료인 ‘SC제일은행 보유부동산 매각현황’에 따르면 은행은 2005년부터 2010년 8월까지 6년 동안 총 35건의 보유부동산을 3천3억5천900만원에 매각했다.

보유부동산 세부 매각내역을 보면, 은행은 2005년에 포항합숙소(아파트) 2건과 제주합숙소(토지와 건물) 1건 등 총 3건의 부동산을 3억원에 매각했다. 2006년에는 충남 홍성사택(아파트)과 천안사택(아파트) 등 2건을 1억2천700만원에 팔았다. 2007년에는 서울 중구 중앙지점(토지와 건물) 1건을 310억원에, 2008년에는 우이동연수원지점(토지와 건물) 1건을 175억원에 매각했다. 지난해부터는 영업점을 팔기 시작했다. 은행은 서울대역지점 등 24개 지점의 토지와 건물을 2천264억8천200만원에, 올해는 미아동지점을 비롯한 4개 지점과 영업소의 토지와 건물을 249억5천만원에 각각 매각했다.

전체 매각대금은 3천억원을 넘는다. 문제는 3천억원이 넘는 부동산 매각대금의 행방이 불분명하다는 점이다. 은행은 ‘보유부동산 매각 현황’을 통해 지난 6년 동안 25개 지점의 토지와 건물을 ‘매각 후 재임차’했고, ‘영업소는 통폐합’을 했다고 밝혔다. 포항합숙소·우이동연수원 등 6건은 이전했다고 밝혔다.

은행은 2005~2010년 부동산 매각건수와 같은 35건의 점포에 3천억원을 재투자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이 자료에는 재투자에 관한 세부내역이 없고, 신규 부동산 구입 여부도 명시돼 있지 않았다. 게다가 점포수 현황자료와 숫자도 실제와 달랐다.
유원일 의원은 “SC제일은행의 점포수는 2005년 406개에서 2010년 404개로 점포수가 오히려 2개 줄었다”며 “은행은 신설된 73개 점포내역과 6년간 점포수가 2개 줄어든 이유를 해명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미심쩍은 은행 부동산 매각과정
 
은행측은 6년간 점포 73개를 신설했다고 밝혔지만 2005~2010년 75개 점포가 폐쇄됐다. 75개 점포가 문을 닫았다면 매각대금이나 임차보증금 회수, 비용절감 등으로 막대한 자금이 확보된다. 하지만 은행측은 몇 개의 점포를 폐쇄했는지, 점포 폐쇄로 확보된 자금은 얼마인지, 자금의 용처를 명확하게 밝히지 않았다. 일부 부동산 매각과정에서도 미심쩍은 부분이 발견된다. 은행은 ‘보유부동산 매각 현황’에서 개포동지점을 93억원에 감정평가해 95억원에 매각했다고 밝혔다. 그런데 매수자는 이를 담보로 SC제일은행 무역센터지점으로부터 70억원을 대출받았다. 담보가의 74%에 달하는 금액이다.

개포동지점을 인수했던 매수자는 지난해 12월 등촌동지점도 매수했다. 등촌동지점 매수자금은 다른 시중은행에서 대출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등촌동지점은 시세로 110억원을 호가한다. 그런데 은행은 감정가 66억3천200만원에 매각가액 68억원만 받고 팔았다.
이런 경우는 또 있다. 은행이 영업점을 매각한 다음 매수인과 바로 임대차계약을 맺은 사례가 25개 지점에 달했다. 개포동지점과 등촌동지점의 경우 동일한 매수자와 ‘헐값 매각 후 임대계약’을 반복했다.

김재율 금융노조 SC제일은행지부 위원장은 “은행이 자기 부동산을 팔면 매수자가 해당 부동산을 담보로 대출을 받는데, 은행은 대출에 따른 이자를 챙기고 매수자는 임차료로 이자를 대는 이유를 해명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은행의 이해할 수 없는 보유부동산 매각방식을 금융투기자본의 새로운 은행이익 빼내기로 의심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증폭되는 MR계정을 향한 의혹 
 
부동산 매각대금의 용처가 불분명하자 영국 SCB 본사와 한국 SC제일은행 간 계정인 MR계정을 통한 국부유출 의혹이 증폭되고 있다. MR계정은 은행의 수익이 100원이 생겼을 경우 수익의 기여도가 본사가 많은지 지사가 많은지에 따라 수익을 배분하는 계정을 말한다. 그런데 유원일 의원은 “SC제일은행의 부동산 매각대금이 MR계정을 통해 본국으로 유출됐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은행의 2008년 내부 회계자료를 보면 순이익은 4천478억원이었다. 그런데 이 중 81%에 해당하는 3천600여억원이 MR계정으로 차감됐다. 실제 SC제일은행의 순이익은 838억원으로 기록됐다. 문제는 MR계정으로 책정된 3천639억원이 어디로 이동했는지 확인할 길이 없다는 점이다. 참고로 금융감독원이 공시한 은행의 순이익은 4천100억원으로, 내부 회계자료보다 378억원이 적다.

이에 따라 MR계정을 통한 국부유출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금융당국도 은행 내부경영에 과도한 개입을 한다는 은행측의 주장에 부딪혀 제대로 된 감독을 하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금융당국, 국부유출 여부 조사해야”
 
SC제일은행의 부동산 매각대금이 MR계정을 통해 본국으로 유출됐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점에서 금융감독원의 철저한 규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게다가 제일은행은 97년 외환위기 이후 국민혈세, 즉 공적자금이 17조원나 투입돼 회생한 은행이다.
김명록 금융경제연구소 상임연구위원은 “우리나라 안에서 영업을 하는 기업인데 여기서 발생한 이익금의 상당 부분을 국내에 재투자하지 않고 영국 SCB로 가져간 것이라면 문제가 적지 않다”며 “금융감독 당국이 제대로 감독할 권한이 없다는 점도 해결해야 할 과제”라고 말했다.
 
“지난해 SC제일은행의 순이익 4천300억원에서 결산배당금은 2천500억원이었습니다. 올해도 상반기에 중간배당을 했어요. 6월 말까지 순이익이 2천억원인데, 절반인 1천억원을 중간배당을 했습니다.”
김재율 (49·사진) 금융노조 SC제일은행지부 위원장은 “배당 자체를 문제 삼는 게 아니라 국내에서 번 이익금의 절반을 중간배당까지 하면서 서둘러 가져간다는 데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SC제일은행의 모회사인 SC금융지주회사는 은행 지분 100%를 보유하고 있다. 스탠다드차타드(SCB)는 SC금융지주의 지분 100%를 보유하고 있다. 따라서 배당금은 모두 런던 SCB 본사로 간다.
국부유출 의혹을 받는 MR계정은 사실 합법적인 계정이다. 본사와 지사 간 비용을 분담하고, 본점과 지점 간 자금의 원활한 이체를 위해 필요한 계정이다. 김 위원장은 “MR계정 운용이 불투명해 국부유출의 수단으로 악용하고 있다는 의혹을 지울 수 없다”고 주장했다.
SC제일은행은 국내 은행법에 따라 설립된 현지법인이다. 은행의 모회사인 SC금융지주도 국내 금융지주회사법에 따라 설립됐다. 런던의 SCB는 지주회사의 지분을 갖고 있는 것이지 은행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다.
“은행의 수익을 주주인 지주회사에 배분하고 그 수익을 SCB가 가져갈 수는 있어요. 하지만 MR계정은 은행과 SCB 간 계정이에요. 무슨 기준과 근거로 MR계정이 책정되는지 공개해야 합니다.” 
김 위원장은 “지금이라도 국세청이 MR계정에 대한 세무조사를 하면 실체가 드러날 것”이라고 강조했다. 국내 거주 6개월 이상이면 당연히 여기서 세금을 내야 한다는 원칙만 이야기할 게 아니라는 것이다.  오재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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