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광주 조선대 시간강사 서아무개(45)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는 유서에서 “교수 채용대가로 전남의 한 사립대에서 6천만원, 경기도의 한 사립대에서 1억원을 요구받았다”고 폭로했다. 서씨의 죽음은 이른바 ‘고학력 워킹푸어’로 불리는 대학 시간강사의 현주소를 대변했다.

서씨의 죽음을 계기로 열악한 처우에 놓인 전문직 종사자들의 노동조건이 재조명되고 있다. 대학 시간강사·연구기관의 연구원·체육지도사·군사전문가 등은 ‘2년 고용 뒤 정규직 전환’을 보장한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기간제법)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 현행 기간제법은 전문적 지식·기술의 활용이 필요한 경우와 정부의 복지정책·실업대책 등에 따라 일자리를 제공하는 경우 등 대통령령으로 정한 직종을 기간제한 적용 제외 대상으로 분류하고 있다. <매일노동뉴스>가 비정규직법의 사각지대에 놓인 전문직 근로빈곤층의 실태를 살펴봤다.
 
대학 시간강사 박아무개(45)씨. 그는 스스로를 ‘보따리 장사’라고 부른다. 엄밀히 말해 ‘백수’다. 이 대학 저 대학을 옮겨 다니다 요즘은 박사학위 논문을 준비 중이다. 박씨는 자살한 조선대 강사 서씨에 대해 입을 열었다.
“전임교수 자리를 돈 주고 사지 않으면 현재의 상황에서 벗어날 길이 없어요. 지난 10년 사이 알려진 것만 8~9명의 대학강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책보따리 장사’ 박 교수 이야기
 
비정규직교수노조에 따르면 4년제 대학 기준으로 시간강사는 7만여명이다. 복수의 대학에서 강의하는 중복인원을 제외하면 5만5천명 정도다. 이 가운데 부업 없이 시간강사만 하는 인원은 3만여명으로 추산된다. 이들의 평균연봉은 약 1천만원 내외로 파악되고 있다. 고용시장 안에서 가장 열악한 직종으로 꼽히는 청소용역직 노동자들과 비슷한 수준이다.

“1년에 세금 떼고 1천만원 법니다. 처우에 대해 굳이 말해 뭐하겠어요. 학교마다 차이가 납니다. 괜찮은 곳은 시간당 5만~6만원이지만, 2년제 대학의 경우 2만원 안팎의 강의료를 주는 곳도 있어요.”

대학강사들이 책보따리를 싸들고 나니는 이유다. 시간강사는 한 학교에서 일주일에 9시간까지 강의할 수 있다. 한 학교에서만 강의할 경우 기본적인 생활을 하기 힘들다. 강의료가 나오지 않는 방학에 대비하려면 다른 대학 강의를 따내 강의시수를 늘리거나 부업에 손을 대야 한다. 이도 아니면 가족들에게 손을 벌리는 수밖에 없다.

원한다고 해서 강의시간이 마냥 늘어나는 것도 아니다. 강의 준비시간과 학교 간 이동거리를 감안해야 한다. 무엇보다 시간강사가 너무 많아 강의를 배정받기가 쉽지 않다. 낮은 임금과 강의시수는 생활고로 이어진다. 지난해 부산의 한 대학 시간강사 4명이 “학교측이 2000년부터 2007년 1학기까지 기말고사 기간의 강의료를 제대로 지급하지 않았다”며 부산지방노동청에 해당 학교를 근로기준법 위반 혐의로 고소한 일이 있었다. ‘벼룩의 간을 내먹냐’는 비판이 대학사회에서도 통용되는 셈이다.

“가르치고 연구한다는 사명감만으로 버티기는 힘들어요. 저처럼 마흔에 접어든 시간강사가 수두룩합니다. 잠시 거쳐 가는 과정인줄 알았는데…. 이 일이 평생직장이 돼 버렸어요.”

그럼에도 노동부는 지난 1월 기간제법 시행령을 개정, 박사학위 소지자 외에 석사학위 소지자까지 기간제법 적용 제외 대상에 포함시켰다. 주로 대학강사와 연구기관의 연구원이 여기에 해당한다. 노동부는 시행령을 개정하면서 “시간강사와 연구원은 2년이 되면 정규직으로 전환되기보다는 다수가 실직되는 것으로 나타나 기간제한 적용대상에서 제외했다”고 밝혔다.

노동부는 시행령 개정으로 시간강사와 연구원의 고용안정을 도모하고, 대학 강의나 연구과제의 안정적 수행이 가능해질 것으로 기대했다. 이에 대해 박씨는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강사에 대한 교원지위가 인정되지 않고 있는 마당에 고용기간 2년이 지난 시간강사를 정규직으로 전환시켜 줄 대학은 사실상 없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노동부가 비정규직법의 도입 취지에도 맞지 않는 방식으로 법의 적용대상을 축소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아요. 법을 적용하는 데 있어 현실적인 어려움이 발생한다면, 그걸 해결하는 게 정부의 역할 아닌가요.”
 
초등학교 육상코치 김씨 이야기
 
올해로 코치 경력 8년차 김아무개(44)씨. 지방의 한 초등학교에서 육상을 가르치고 있다. 김씨는 4년제 대학을 나왔고, 코치가 되기 전에는 20년간 도 대표 육상선수와 실업팀 선수로 활동했다. 선수 생활을 접고 카센터를 운영했지만 일이 녹록지 않았고, 2002년 동료의 소개로 체육지도사 일을 시작했다. 

프로스포츠의 인기가 높아지고 올림픽 금메달리스트가 국민영웅으로 대접받는 시대이지만 정작 이들을 키워 낸 체육지도자들의 열악한 처우에 관심을 기울이는 이들은 거의 없다.

체육지도자는 육상·수영·체조 같은 기초체육을 지도하는 전임코치와 축구·야구 같은 인기종목을 지도하는 일반코치로 나뉜다. 전임코치인 김씨의 월급은 130만원 남짓이다. 여기서 4대 보험 등을 떼면 실수령액은 100만원이 조금 넘는다. 시·도의 예산에 따라 차이가 나지만 보통 110만원에서 150만원 정도를 받는다. 물론 보너스는 없다. 수당도, 승진도 없다. 게다가 근속연수가 늘어나도 호봉 승급분이 붙지 않는다. 경력 1년차 코치나 10년차 코치나 받는 돈은 똑같다. 김씨가 틈나는 대로 대리운전을 하는 이유다.
고용도 불안하다. 김씨는 “1년 단위로 고용계약을 연장하는 파리목숨”이라고 했다. 교장 눈 밖에 나면 곧바로 해고된다. 그도 해고를 경험한 적이 있다.

“코치를 시작하고 얼마 안 돼 학교에서 공금횡령 사건이 벌어졌어요. 그때 눈치 없이 입바른 소리를 했다가 하루아침에 해고됐죠. 항의할까 생각도 했지만 그냥 참았어요. 좋지 않은 소문이 나면 다른 학교에 취직하기가 어렵거든요.”

선수시절  도 대표로 활약하며 어깨에 힘 좀 주고 다녔다는 김씨. 이제는 학교장 눈에 들기 위해 누가 시키지 않아도 운동장 쓰레기를 줍고, 화단을 청소한다. 어떨 땐 교장 운전수 노릇까지 한다. 체육지도를 위한 연수나 자기개발은 꿈도 못 꾼다. 장기적인 계획을 갖고 유망주들을 키우기보다는 아이들의 성적에 목을 맬 수밖에 없는 구조다. 좋은 성적을 내야 일자리를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성적지상주의와 열악한 노동조건은 종종 체육지도사들을 심판 매수 등의 유혹에 빠뜨리기도 한다.

교육과학기술부와 대한체육회 등에 따르면 지난해 7월 기준으로 운동부를 운영하고 있는 초·중·고등학교는 5천951곳으로, 체육지도사는 전임코치과 일반코치를 합쳐 4천905명이다. 평균 월급은 150만원이며, 1~2년 단위로 고용계약을 체결한다. 각종 대회 성적이 좋지 않을 경우 신분상 불이익이 주어진다. 일부 학교는 전국대회 8강 이상의 성적을 거두지 못하면 자동으로 해촉된다는 조건을 근로계약서에 명시하기도 한다. 일반코치 급여의 절반을 학부모가 부담하는 곳도 적지 않다. 학교 자체예산으로 코치를 고용하는 비중은 26.4%에 불과했다.

사정이 이러니, 종종 언론에 보도되는 체육코치의 선수 폭행사건은 열악한 처우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불안정한 고용구조 속에서 성적을 위해 폭력이 묵인되고 있는 것이다. 김씨는 대학강사의 자살 소식을 들었다고 했다.

“얼마 전 자살한 시간강사 얘기를 들었어요. 남의 일 같지가 않아요. 시합 시즌이 되면 밤도 주말도 명절도 가족도 없이 생활합니다. 그런데도 남들은 체육지도사라고 하면 비리를 저지르거나 선수들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사람으로 취급합니다.”

김씨는 2년 이상 근무한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시켜 주는 기간제법에 기대를 걸었지만, 본인은 해당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좌절했다. 현행 기간제법상 체육지도사는 적용 제외대상으로 분류돼 있다. 그는 “같은 학교에서 근무하는 보건교사나 영양사들은 고용기간이 2년을 초과하면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되는데, 체육지도사들은 왜 안 되는지 이해하기 힘들다”고 비판했다.
 
처우개선 여지 차단된 비정규직 연구원
 
연구기관의 연구원들도 기간제법 적용 제외대상이다. 지난 1월 기간제법 시행령 개정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하면서 박사학위 소지자 외에 석사학위 소지자까지 법의 적용 제외대상이 됐다. 비정규직 신세로 고용을 보장받은 셈인데, 실상은 어떨까.

공공운수연맹 전국공공연구노조에 따르면 정부출연연구기관은 과학기술계 26곳, 경제인문사회계 23곳이 운영되고 있다. 노조는 과학기술계 연구원의 절반 정도, 경제인문사회계 연구원의 20~30% 정도가 비정규직일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연구원들을 전형적인 워킹푸어 계층으로 분류하기는 어려워요. 하지만 비슷한 학력과 경력을 가진 사람들이 일반 기업에서 받는 대우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열악한 게 사실입니다.”

이광오(41) 노조 정책국장의 말이다. 이 국장의 설명에 따르면 30대 초반 과학기술계 계약직 연구원의 월급은 200만~250만원 수준이다.  계약직이라고 해도 최소 석사학위를 소지하고 2~3년의 경력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유사 경력의 대기업 노동자들에 비해 임금이 적다. 같은 연구원에서 동일한 업무를 하는 정규직 연구원 임금의 60~70% 수준이다. 젊고 유능한 이공계 전공자들이 의대나 치대·한의대·로스쿨로 진로를 바꾸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연구원들의 이직이 잦다. 이상민 자유선진당 의원이 교육과학기술부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03년부터 2008년까지 기초기술연구회 소속 연구원 중 500여명이 이직한 것으로 나타났다. 2008년 교과부가 실시한 ‘이공계인력 육성·활용과 처우에 관한 실태조사’ 결과를 봐도 향후 1년 이내 이직 의향을 묻는 질문에 공공연구기관 연구원의 27.3%가 “이직의향이 있다”고 답했다. 그중 45.9%는 ‘신분불안정과 임금처우’를 이직사유로 꼽았다. 권영길 민주노동당 의원이 2008년 한국사회여론연구소에 의뢰해 실시한 조사결과도 다르지 않았다. 정부출연연구기관 연구원 중 58.1%가 “기회가 된다면 연구원을 떠나겠다”고 답했다. 이 국장은 “비정규직 연구원이 정규직이 되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보다 어렵다”고 말했다.

“정규직으로 전환될 수 있는 기회가 거의 없어요. 비정규직으로 오랜 기간 일했다고 해서 무기계약직이나 정규직으로 전환되는 것도 아닙니다. 별도로 시험을 치러야 하는데, 정규직 티오가 워낙 적어요.”

교과부 산하 정부출연연구기관이 2002년부터 2007년까지 5년간 신규 채용한 연구인력 6천315명 중 67.7%에 달하는 4천276명이 비정규직으로 채용됐다. 박사는 채용인력 2천185명 중 49.2%인 1천75명이 비정규직으로, 석사는 78.1%가 비정규직으로 채용됐다. 2000년 이후 총원 대비 비정규직 비율이 45% 이상을 유지하고 있다. 연구원 정원 동결과 신규채용 억제, 인건비가 포함된 예산에 대한 실질적 권한을 행사하는 정부의 인력운용지침이 힘을 발휘한 결과다.

“연구원들이 기간제법 적용대상에서 제외됐다고 해서 상황이 나빠질 것은 없습니다. 다만 처우가 개선될 여지가 사라졌다고 봐야죠. 정규직 전환기회가 박탈된 셈이니까요.”
현재의 시스템은 전문적인 업무역량의 축적을 저해한다. 연구성과의 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노조에 따르면 외국의 경우 연구업무의 특성을 반영해 비정규직 연구원의 비율을 20% 이내로 제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국장은 “고용의 질과 연구의 질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면 정부는 공공연구기관의 예산과 인력을 현실적으로 상향 조정하고, 운용권한을 각 연구기관에 이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비정규직을 보호하기 위해 도입된 기간제법. 그 법에서조차 배제된 비정규 노동자들이 지금, 법의 사각지대인 학교·운동장·연구실에서 빈곤과 싸우고 있다. 
 
구은회·김은성 기자
 

가방끈이 길어져도 고용은 불안하다
고학력화와 고용의 상관관계
열악한 처우에 놓여 있는 대학강사와 연구원들은 ‘가방끈이 길어’ 슬픈 이들이다. 한국사회의 고학력화는 빈곤 문제와 어떠한 상관관계를 갖고 있을까.
김수정 동아대 교수(사회복지학과)가 지난해 발표한 논문 ‘고학력화는 빈곤을 감소시켰는가 : 1985~2006년 도시가계조사 분석’에 따르면 지난 20년간 고등교육의 빈곤 방어력은 눈에 띄게 감소했다.
김 교수는 논문에서 “한국사회의 고학력화는 교육분포를 고도화시킴으로써 빈곤을 감소시키는 역할을 했다”면서도 “고졸자의 상대적 저학력화과 빈곤위험의 급증은 고졸자를 경제적으로 취약한 집단으로 만들었다”고 진단했다. 특히 경제위기를 거치면서 대졸자를 포함한 모든 교육집단의 빈곤위험이 상승하는 과정이 급격히 진행됐고, 결국 고등교육 자체의 빈곤 방어력이 감소했다.
김 교수는 “한국사회의 ‘고등교육을 향한 질주’에 고학력만으로는 방어할 수 없는 경제적 불안정성과 위험의 증가라는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졌다는 뜻”이라고 분석했다. 지난 20년간 고학력화는 저학력집단의 상대적 규모를 줄이면서 전반적인 빈곤을 감소시키는 데 기여했지만, 90년대 후반 경제위기를 전후한 사회경제적 변화가 이 같은 긍정적 변화를 상쇄했다는 것이다.
사회의 고학력화가 진전됐음에도 빈곤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무엇일까. 김 교수는 “교육제도와 노동시장제도·사회보장제도 간 제도적 연계가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실제 우리나라 중등교육의 경우 직업적 특정성이 낮아 소득과의 연계효과가 떨어진다. 고등교육의 경우 진학률은 높지만 산학협동체계가 부실해 만성화된 고학력 실업을 낳고 있다.
게다가 노동시장이 유연화되면서 학력과 무관하게 내부노동시장 규모가 축소돼 직업안정성을 떨어뜨렸다. 괜찮은 일자리를 향한 경쟁은 더욱 치열해졌다. ‘좁은 문’을 통과하지 못한 청년실업자들의 노동력이 사장됐고, 더불어 청년층의 빈곤과 좌절 문제도 심각해졌다.
김 교수는 “교육과 빈곤의 관계를 매개하고 있는 노동시장제도나 사회보장제도에 대한 정부의 전방위적인 개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공공부문 일자리 창출과 민간기업의 채용확대를 위해 직업훈련·취업알선 같은 일자리와 연계된 복지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는 것이다. 구은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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