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소 : 서울 영등포 보건의료노조 사무실
일시 : 2010년 6월25일(금) 오전 8시
사회 : 김봉석 매일노동뉴스 기자
참석 : 이상호 금속노조 정책연구원 연구위원
유주선 금융노조 정책국장
이주호 보건의료노조 전략기획단장

내·외부적 조건 악화, 정체기 겪는 산별노조
이상호 : 산별노조는 산별중앙교섭을 통해 산업별 의제와 사회적 의제를 논의하고 산업별 조직 확대를 추진하는 등 세 가지를 주요 목적으로 한다. 금속노조는 지난 시기 산별조직체계 완성과 산별중앙교섭 성사에 많은 역량을 할애했다. 산업별 의제 발굴이나 산별조직 확대에서 많은 성과를 달성하지는 못했지만, 실패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관성에 빠져 산업별·사회적 의제를 발굴하고 다양한 방식으로 이슈화하려는 전략적 고민이 부족했던 것은 긍정적으로 평가하기 어렵다. 기업별 의제를 그대로 받아 산별중앙교섭 의제로 내놓는 것이 현재 수준이다. 조직확대도 산별노조 전환 이후 중소규모 지회들이 새로 가입하기는 했지만 내용적으로 이들을 책임질 만한 활동을 했는지 의문이다. 기존 활동을 넘어선 산별노조운동을 추진하지 못하고 있다.

이주호 : 보건의료노조는 98년 출범해 2004년부터 산별중앙교섭을 시작했다. 지난해에는 사용자단체가 해산돼 중앙교섭마저 중단했다. 올해 역시 산별중앙교섭 개최가 쉽지 않아 보인다. 노조법이 개정되면서 산별노조는 중대한 어려움에 봉착했다.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해야 할 때라는 것만은 분명하다. 기업별노조체제가 보편화된 한국사회에서 산별노조운동은 쉽지 않다. 고립된 섬과 같다. 그러나 각 산별노조는 어려운 조건 속에서도 새로운 길을 개척했고, 한계가 있더라도 그 길을 꾸준히 가고 있다. 이 점은 긍정적으로 평가해야 한다. 산별중앙교섭의 틀을 갖추는 것을 넘어 산업의제 등 내용적인 부분을 강화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사회 : 현 시기 산별노조운동이 어떤 국면에 접어들었다고 보는가.
이상호 : 지금은 방어기다. 새로운 전략을 마련하지 않으면 전진하기가 쉽지 않은 국면이다. 금속노조는 산별노조를 완성하기까지 상당한 어려움을 겪었다. 그럼 다음에는 산별의제를 발굴하고 그 내용을 공유하고 실천을 통해 피드백하는 과정을 거치지 못했다. 산별노조운동으로 기업별노조체제를 벗어나려고 애썼지만 여전히 반쯤 잠겨 있는 것도 사실이다. 반면에 산별노조를 만들면 산업적 의제뿐만 아니라 단위사업장 문제까지 모두 해결할 수 있다는 조합원들의 과도한 기대도 여전하다. 산별노조에 대한 비판적 평가와 과도한 기대가 혼재해 있다고 볼 수 있다.
이주호 : 방어기인 것은 맞지만 한편에서는 모색기라고도 표현하고 싶다. 정부의 강한 노동통제 정책으로 산별노조가 정체 국면에 접어들었다. 한국의 산별노조운동은 그동안 일정한 성과도 거뒀고, 한계를 드러내기도 했다. 이에 따라 산별노조에 대한 과도한 비판이나 기대도 일정 영역 안으로 수렴되고 있다. 여러 의견 속에 이러저러한 실천을 해 보니 결과가 이렇다는 것, 즉 한계와 성과를 어느 정도 평가할 수 있는 수준이 됐다는 것이다. 공통된 인식의 기반이 어느 정도 쌓인다면, 그 영역 안에서 한국적 산별운동의 가능성을 모색할 수 있을 것이다.
유주선 : 한국 산별노조는 완성된 형태가 아니다. 기업별노조에서 산별노조로 넘어가는 과도기에 있다. 앞으로 더 나아가야 하지만 여기까지 온 것도 성과다. 노조법이 개정되고 정부가 노조를 통제하려 하면서 산별노조뿐만 아니라 노동계 전체가 위기상황을 겪고 있다.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는 산별노조뿐만 아니라 노동계 전체가 고민해야 한다. 단위 사업장의 대응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 노조 간 연대나 산별노조의 역할이 중요해질 수밖에 없다.
“노조 자주성 운운하기 전에 공정한 룰부터 만들어야”
사회 : 다음달 1일부터 전임자임금 지급이 금지되는데.

이상호 : 복수노조 허용과 전임자임금 지급금지는 원론적으로 노조가 자주적 운동을 펼치기 위해 가야 할 길이라는 것에 동의한다. 그러나 이것을 시행하는 정부나 자본의 목적이 불순하다. 대공장을 타깃으로 삼아 노동운동을 약화시키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겉으로는 중소기업노조를 위하고 대기업노조의 과도함을 규제하려는 것 같지만 숨은 의도는 따로 있는 것 같다. 특히 노조법과 노동운동체제를 기업별노조로 되돌리려는 분명한 목표를 가지고 있다. 전임자임금 지급금지를 통해 대공장노조를 약화시키고, 복수노조시 교섭창구 단일화를 통해 산별중앙교섭을 무력화시키려 하고 있다. 산별노조운동을 펼치면서 가장 어려웠던 것이 기업별노조의 관성을 뛰어넘는 것이었는데, 개정 노조법은 그 관성을 강화시키고 있다.
유주선 : 장기적으로 노조법은 전면 재개정돼야 한다. 노조법은 헌법이 보장하는 노동기본권을 하위법이 침해하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 또 사용자와 노조 간의 관계를 악화시키고, 노조 내부의 분열을 가속화할 소지가 크다. 이러한 법이 바람직한 법일 리 없다. 그러나 당장 법 시행을 앞두고 있기 때문에 자구책이 필요하다. 금융노조는 산별중앙교섭을 통한 문제해결을 모색하고 있다. 타임오프 한도 내에서 최대한 전임자를 확보하고 조합비 인상 등 산별재정확보를 통해 무급 전임자나 반무급 전임자를 두는 것을 주된 방향으로 대응책을 마련하고 있다.
사회 : 노동계가 산별노조운동을 벌였던 목적 중 하나는 복수노조 허용과 전임자임금 지급금지 국면에 대비하기 위해서였다. 산별노조가 실제 이점이 있는가.

이주호 : 전임자 현행 유지를 내세우면서 투쟁하고는 있지만 그것 자체가 전략적 목표는 아니다. 정부는 전임자를 줄이고 노동계는 전임자를 지키겠다고 맞서고 있는데, 그 안에는 전임자가 어떤 존재인지에 대한 질문이 빠져 있다. 정부는 사실상 전임자를 부정하고 있고 일부 국민과 조합원들도 비슷한 인식을 갖고 있다. 노조 전임자가 어떤 역할을 하고 왜 중요한지에 대해 국민과 조합원에게 속 시원히 설명할 수 없다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 노동조합의 존재 가치와 위상, 전임자의 역할에 대한 노동계의 성찰이 필요하다.
유주선 : 산별노조는 그 자체가 하나의 노조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산별노조 전임자는 상급단체 파견전임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전임자임금을 사업 또는 사업장 조합원수에 따라 정하도록 한 노조법 문구를 두고 여러 해석이 있지만 ‘사업’은 장소보다는 노조활동의 내용이나 목적으로 파악해야 한다. 금융노조는 중앙산별교섭을 통해 지부의 임금·단체협약 교섭을 진행한다. 금융노조 활동이 지부 활동을 포괄한다. 업무 내용으로 본다면 산별노조 전임자와 지부 전임자는 다르지 않다. 따라서 산별노조 간부들도 유급활동을 보장받아야 한다.
“교섭창구 단일화, 산별중앙교섭 무력화할 것”
사회 : 노조법은 복수노조시 교섭창구를 사업장 단위로 단일화하는 규정을 담고 있다. 산별중앙교섭이 약화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된다.
이주호 : 전임자임금 지급금지는 산별노조를 약화시킬 뿐이지만 복수노조 교섭창구 단일화는 산별노조 자체를 무력화시킬 것이다. 기존 노조법보다 훨씬 개악됐다. 법원은 그동안 판례 등을 통해 산별노조의 사업장 단위 복수노조를 허용했다. 사용자에게 산별교섭도 요청할 수 있었다. 그런데 개정 노조법이 적용되면 사업장 단위로 교섭창구를 단일화해야 한다. 산별교섭이 무력화될 것이다. 산별중앙교섭이 열리지 않는다면 산별노조는 주저앉을 수밖에 없다. 조직확대도 어렵다. 정말 심각한 문제다. 창구단일화 법제화가 불가피하다면 산별교섭만이라도 제외하자는 것이 노조법 개정 막바지까지 쟁점이었는데, 끝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정부와 언론은 기업별노조에 대해 집단이기주의라고 비판을 쏟아 내면서도 노동운동이 기업별노조체제에서 벗어나지 못하도록 막고 있다.
유주선 : 비행기의 날개를 꺾은 꼴이다. 향후 노조법 전면 재개정 투쟁의 1순위는 바로 창구단일화 강제규정을 없애는 것이다. 산별노조도 문제지만 비정규직 등 소수 노동자의 권리를 박탈하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복수노조 시대를 대비해서는 산별노조가 소통 기능을 강화하고 문호를 먼저 넓혀야 한다. 금융노조는 무기계약직에게도 문호를 개방하고 조합원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조합원 범위를 확대해 다양한 업종·계층의 노동자들이 금융노조에 가입할 수 있다면 복수노조가 심각한 문제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이상호 : 금속노조는 산별단체협약에서 금속노조를 유일교섭단체로 명시해 복수노조시 교섭창구 단일화에 대한 대비책을 마련했다. 그러나 임시방편일 뿐이다. 실제 복수노조가 설립되고 사업장 단위로 창구단일화 시도가 지속된다면 금속노조가 유일교섭단체로서의 지위를 잃어버릴 가능성이 크다. 사용자들이 산별노조를 기피하는 가운데 법마저도 산별중앙교섭을 무력화하는 방향으로 개정됐기 때문에 이런 흐름을 막기에 역부족일 수 있다.
사회 : 산별노조가 그런 문제를 극복해 나갈 해법은 없는 것인가.
이상호 : 노조법 개정 외에는 답이 없다. 산별노조가 이 모든 문제를 극복할 만큼의 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면 해결이 가능하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역으로 창구단일화는 기존 기업별노조의 기득권을 보장해 주는 측면이 있다. 금속노조처럼 산별노조가 조합원 과반수를 점한 지부를 앞세워 사용자를 압박, 유일교섭단체로서의 지위를 획득하더라도 또다시 기득권 유지 논란에 휘말릴 수 있다. 창구단일화 조항은 이래저래 산별노조에 불리한 조항이다.
이주호 : 많은 법학자들이 복수노조가 허용될 경우 교섭창구 단일화 절차가 워낙 복잡해 현실에서 적용하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노조법 시행일인 내년 7월1일까지 대책을 마련해야겠지만, 법 자체가 워낙 문제가 많아 재개정이 불가피하다. 올해 보건의료노조는 산별중앙교섭 대신 대각선 교섭을 추진하고 있다. 사용자들은 그동안 경험을 통해 산별중앙교섭의 단점은 물론 장점까지 충분히 인식하고 있으면서도 힘겨루기 차원에서 노조의 교섭 요구에 응하지 않고 있다. 그래서 산별중앙교섭 성사에 힘을 낭비하기보다는 대각선 교섭을 통해 현장투쟁을 강화하자고 의견을 모았다. 대각선 교섭도 결국 아래로부터 산별중앙교섭을 강화시키기 위한 방안 가운데 하나다. 노조법은 산별중앙교섭을 약화시킨다는 점에서 산별노조 발전에는 독소조항이다.
사회 : 이야기를 들어 보니 복수노조 창구단일화나 전임자임금 문제에 대한 대응책이 마땅치 않은 것 같다. 앞으로의 전망은 어떤가.
유주선 : 노조법으로 인해 노조활동이 상당 부분 어려움을 겪을 것은 분명하다. 장기적으로 노조법 재개정 투쟁을 해야 한다. 특히 법 개정 이전이라도 근로시간면제심의위원회를 다시 열어 지역적 분산이나 교대제 근무 등 사업장 특성을 반영하는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 양대 노총이 이러한 활동에 뜻을 모아야 한다. 노조활동도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현장 조합원에게 적극 다가가는 활동을 펼치면서 조직강화에 나서야 한다. 연대의 가치를 중심에 두고 양대 노총이 공동대응하면서 산별노조운동을 강화해야 한다.
이주호 : 노조법은 반드시 재개정돼야 한다. 투쟁을 통해 무력화시켜야 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싶다. 그러나 노조가 전략적인 측면에서도 승리를 거두려면 지난 활동에 대한 반성적 성찰이 수반돼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올해 하반기가 중요한 시기일 것 같다. 노조와 전임자의 위상과 역할을 재정립하고 복수노조 허용과 창구단일화에 대비하면서, 노동운동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고민을 더욱 깊고 넓게 해야 할 시기다. 노동3권을 효과적으로 발휘할 산별노조의 최적화 모델을 실사구시적으로 모색해야 한다.
이상호 : 노동계도 반성해야 한다. 노동계는 복수노조·전임자임금 투쟁을 하면서 조합원들의 동참을 끌어내지 못했다. 그동안 활동 과정에서 조합원과 노조간부의 관계가 상당 부분 흐트러졌다는 반증이다. 조합원들은 노조의 활동이나 간부들의 문제를 더 이상 자신의 문제로 인식하지 않았다. 노조 전임자, 특히 산별노조에 맞는 전임자 활동은 어떠해야 하는가. 새로운 모델을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전임자수와 같은 기술적인 측면으로만 접근할 게 아니라 노동운동을 복원하고, 새로운 방향을 제시할 수 있는 고민이 필요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