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기업들은 지난달부터 시작된 주주총회 시즌을 맞아 지난해 영업실적을 잇달아 내놓았다. 경제위기 속에서도 선전한 삼성전자는 비수기인 올해 1분기에만 사상 최대 실적을 올렸다. LG전자도 지난해 매출 55조5천241억원에 영업이익 2조8천855억원으로 사상 최고의 실적을 기록했다. LG디스플레이는 지난해 매출액 20조6천136억원을 달성했다. 역시 사상 최대였다. 포스코도 올 1분기 영업이익만 1조4천470억원을 기록했다.(서울신문 4월14일자 10면)
실적에 맞게 삼성·LG 등 주요 기업들이 올 들어 5% 이상 임금인상을 단행하고 있다. 삼성전자와 LG디스플레이가 올해 5%+α와 8%의 임금인상을 단행해 이미 지난달부터 지급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단순히 임금 5%만 올린 게 아니다. 그동안 문제가 된 연봉제와 생산성격려금 등 성과금체계도 손질하고 임금체계도 하후상박으로 조정했다. 삼성전자는 과장급 이상 간부의 인상률을 4%로 묶고 생산현장과 낮은 직급의 인상률을 8~9%로 높였다.
특히 삼성전자의 ‘알파’는 주목할 만하다. 생산성격려금(PI, Productivity Incentive)에서 월 기본급 100%만큼을 고정급으로 전환했다. 이 때문에 PI의 연간 변동 폭은 최대 300%에서 200%로 줄었다. 직무·직능급 성격을 띤 PI가 개개인의 역량이나 노력보다는 소속 부서에 따라 지급비율이 달라지는 병폐를 개선한 것이다. 고과평가에 따라 크게 들쭉날쭉하던 연봉제를 바꿔 그동안의 평가결과까지 반영하는 누적연봉제로 전환해 급격한 연봉 변화를 줄였다. 삼성중공업도 기본급을 3% 인상해 평균임금으로 환산하면 4% 후반대의 임금인상을 단행했다.
삼성전자의 임금체계 개편은 그동안 노동계가 연봉제와 성과상여금 제도의 문제점으로 지적했던 점을 일부 반영한 것이다. 연봉제와 성과상여금은 임금 격차를 많이 두면 경쟁이 치열해져 생산성이 오를 것이라는 무척 단순한 논리에서 시작된다. 삼성이 이제 인간은 기계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고나 할까. 경쟁이 치열하고 아무리 열심히 일한다고 해도 한 공장 안에서 일부는 경쟁 탈락자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삼성은 경쟁에 탈락, 급격하게 줄어든 임금으로 가계살림을 꾸려 나가기 어렵다는 내부의 불만을 수용한 것이다.
생산성격려금은 겉보기엔 노동자 개별의 생산성과 임금을 연동시켜 합리적 경쟁을 유도할 것 같지만 현실은 그렇게 만만치 않다. 기업 업종에 따라 일률적인 평가방식을 적용하기도 어렵고, 한 기업 내부에서도 성과를 계량화하기 쉬운 부서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부서도 있다. 가장 큰 문제는 특정부서에 따라 성과가 달라진다는 것이다.
주요 기업들이 앞 다퉈 5% 이상의 임금인상을 단행하는 가운데 양대 노총은 올해 임금요구안을 9%대로 발표했다. 경총만 올해 임금인상을 최소한으로 자제해 달라고 주문했다. 경총은 임금인상 대신 고용확대를 주문했다.
그러나 지난해 그렇게 많은 실적을 올렸던 삼성전자의 인력은 고작 623명 늘었다. 현대자동차는 오히려 36명 줄었다. 기아자동차도 104명 줄었다. 대통령과 전경련 소속 재벌회장들이 나란히 손잡고 ‘300만 고용창출위원회’를 출범시킨 게 지난달이다.
위원회는 9일 첫 실무위원회의를 열어 고용·투자환경·산업육성·지역개발 등 네 가지 정책 및 사업과제를 선정했다. 과제별 제목만 봐도 고용확대보다는 잿밥에 더 큰 관심이 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고용은 모르겠고 재벌의 문어발 확장을 위한 규제완화 건의문만 잔뜩 내놓을 게 뻔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