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민간서비스연맹이 국회 의원회관에서 개최한 ‘유통산업발전법 올바른 개정 촉구를 위한 토론회’에서는 유통업체 영업시간 제한과 주 1회 휴점제를 도입해 유통서비스 노동자들의 쉴 권리를 되찾고 중소상인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하루 휴일마저 VIP고객에 반납하는 백화점 노동자
발제자로 나선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연구실장은 “그동안 주요 백화점들이 암암리에 주말 영업시간을 연장했던 것도 모자라 지난해부터는 연 1천만~2천만원 이상의 부자고객(VIP)을 상대로 1년에 적게는 4차례 많게는 12차례 ‘나이트파티’를 개최하고 있다”고 밝혔다. 나이트파티는 일반인들의 출입을 막은 채 연예인을 비롯한 고소득층들에게만 개방해 쇼핑을 하도록 하는 행사다. 백화점 판매직은 한 달에 한 번뿐인 휴일을 반납한 채 VIP고객을 모셔야 한다.
김 연구실장은 “백화점의 야간영업 확산추세는 할인점의 24시간 영업과 맞물려 유통서비스 노동자들의 건강권을 심각하게 침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에 따르면 유통업의 주 5일제 시행비율은 29.9%로, 서비스업 평균(40.7%)을 크게 밑돈다. 백화점 판매직의 주당 평균 노동시간은 64.8시간으로 서비스업 평균(47.9시간)보다 무려 16.9시간이 길다.
가뜩이나 감정노동과 서서 일하는 근무형태로 정신적·육체적으로 고된 노동강도를 견뎌야 하는 서비스유통 노동자들은 자꾸만 길어지는 근무시간으로 과로사마저 우려되는 상황이다.
“영업시간 총량제 도입하자”
김 연구실장은 “유통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유통매장의 영업시간과 폐점을 규제하는 법안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미 독일을 비롯한 영국·프랑스·이탈리아 등에서 시행하고 있는 제도다. 특히 영업시간 총량제가 대안으로 떠올랐다. 주당 최대 64.5시간으로 영업시간을 제한하면 사업주에게는 경영의 효율성이, 노동자에게 충분한 휴식이 보장될 수 있다는 논리다.
신규철 중소상인살리기 전국네트워크(준) 공동집행위원장도 대형 유통매장의 영업시간을 제한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이달 기준으로 전국에 할인점이 400여개가 넘고, SSM은 620개가 개점했다”며 “반면 9월 현재 자영업자는 1년 전보다 32만4천명이 줄었다”고 밝혔다. 이 가운데 고용인 없이 나홀로 가게를 운영하는 1인 영세자영업자는 31만4천명으로, 거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소매유통업이 연평균 7.9% 성장률을 기록한 반면 중소상인들은 빠른 속도로 퇴출되고 있는 상황이다. 신 위원장은 “지식경제부 관료가 중소상인들에게 말하길, 백화점·할인점 영업시간 단축은 노사 간 협상을 통해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고 했다”며 “상인이 아니라 노조가 적극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지난 2일 국회 지식경제위원회에 제출한 유통산업발전법에 대한 검토의견서를 통해 백화점·할인점의 영업시간 제한에 수용불가 방침을 밝혔다. ‘헌법에 위배(영업제한)하고, 세계무역기구(WTO) 서비스무역협정 위반’이라는 입장이다. 대신 업계에서 심야영업에 대한 자율적 제한을 유도하겠다는 대안을 제시했다.
하지만 이날 토론회에서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의 황희석 변호사(동서합동법률사무소)는 “WTO 출범 이후 20여년 동안 영업시간 제한을 비롯한 국내 규제로 제소된 사례는 단 한 건도 없었다”고 밝혔다.
실제로 영국의 경우 94년부터 대형점포는 관계기관에 사전통보 없이 일요일에 영업할 수 없고, 영업하더라도 6시간을 넘길 수 없으며 이를 위반하면 5천파운드의 벌금을 내도록 하고 있다. 프랑스 역시 서비스유통 노동자의 근로시간 보호라는 측면에서 노동법을 통해 대형매장의 영업시간을 규제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