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근로사업’이 땜질처방의 대표적 사례다. 행정안전부는 지난 6월 “국민에게 희망을 주고 소비 진작을 통해 지역경제 활성화를 도모하겠다”며 1조7천억원의 사업비를 들여 30만명 가량을 투입하는 희망근로사업을 시작했다.
저소득층 생계지원을 위해 노동능력이 있는 최저생계비의 120%(4인 가구 기준 159만6천원) 이하 소득자를 대상으로 공공부문 일자리를 만들어 최대 6개월간 월평균 83만원의 급여를 현금과 상품권으로 지급하는 사업이었다. 기획재정부는 지난 7일 ‘2010년 예산안 주요 이슈별 편성방향’을 발표하면서 애초 올해 말 종료될 예정이었던 희망근로사업을 10만명 규모로 줄여 내년 상반기까지 연장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땜질 처방’의 극치 ‘희망근로’
하지만 약속한 6개월의 계약기간마저도 온전히 지켜지지 않고 있는 게 현실이다. 최근 홍희덕 민주노동당 의원은 행안부가 희망근로사업 중 단순취로사업을 조기 종결하도록 지침을 내린 사실을 밝혀냈다. 행안부는 “쓰레기 줍기나 풀베기 등 단순 취로사업은 조속히 종결하고 친서민·생산적 사업 위주로 전환계획을 수립해 9월10일까지 제출하라”고 각 지방자치단체에 공문을 보냈다.
홍 의원실이 자체 조사한 바에 따르면 경기도 광주시가 지난달 희망근로 사업(500명)을 종결했다. 포천시도 다음달 15일부로 767명이 일하는 사업을 종결할 계획이어서 1천500여명이 일자리를 잃었거나 잃을 위기에 처했다.
홍희덕 의원은 “애초부터 취로사업수준의 한시근로가 희망근로의 대부분이었는데 행안부가 이제 와 단순 취로사업을 폐지하라고 지침을 내린 것은 사리에 맞지 않다”며 “취약계층 일자리 창출을 위해 시작된 희망근로사업이 취약계층 뒤통수 때리기를 하고 있는 격”이라고 비판했다.
이병훈 중앙대 교수(참여연대 노동위원장)는 “희망근로사업이나 청년인턴제는 일자리가 전혀 없는 사람에게는 당장의 호구지책의 의미는 있을지 몰라도 고용불안을 해소하고 경제 위기를 겪고 나서 발전적인 변화를 기대할 수 있는 대책은 아니다”라며 “국민적 수요가 충분히 있으면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절반 수준인 사회공공서비스 부분에 재원을 투입해 일자리를 창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교육·복지·보건·보육 등 지속가능한 부문에서 일자리를 만들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경제위기, 더 심화한 양극화
지난 1년간 경제위기와 10년 전 외환위기의 다른 점이 있다면 비정규직이 먼저 구조조정 1순위로 내몰렸다는 것이다.
기업회생절차 과정에서 구조조정으로 극심한 몸살을 앓았던 쌍용자동차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쌍용차의 사내하청업체들은 지난 3월 노동자들을 해고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지난해 11월 쌍용차 정규직이 전환배치 되면서 휴직에 들어갔던 비정규직들이었다. 쌍용차는 한 달 후 전체 직원 7천150명의 36%에 해당하는 2천646명을 감원하겠다는 ‘경영정상화 방안’을 발표했다. 하청업체에 이어 정규직마저 정리해고 한 것이다.
노동자들은 경제위기에 이어 정부의 잇따른 법 개정 시도 때문에 ‘이중고’에 시달렸다. 지난해 11월 김성조 한나라당 의원은 ‘최저임금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개정안은 지역별 최저임금제 도입 △수습노동자의 수습기간을 3개월에서 6개월로 연장 △60세 이상 고령노동자의 경우 본인이 원할 경우 최저임금을 감액 적용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김성조 의원은 “금융위기로 애로를 겪고 있는 중소기업의 부담이 가중돼 최저임금법 위반과 취약계층 고용기회 축소 등 부작용이 발생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민주노총은 “경제위기를 틈타 노동자에게 고통을 전가하는 전형적인 행위”라며 비판했다. 이 개정안은 현재도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 계류돼 있다.
특히 비정규 노동자는 정부의 비정규직법 개정 시도로 심각한 고용불안에 직면했다. 노동부는 ‘100만 해고설’을 주장하며 비정규직의 사용기간을 2년에서 4년으로 연장하는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공공기관들은 마치 100만 해고설을 입증하려는 듯 비정규직법 시행을 앞두고 비정규 노동자들을 잇달아 해고했다. 노동부 산하기관도 예외는 아니었다. 최근 이런 노동부의 주장이 사실이 아니었다는 게 드러났지만 해고된 비정규직들은 일자리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경제위기로 실업급여 신규 신청자 수가 급격히 늘면서 올해 1월부터 지난달 24일까지 수급자 수만 100만명을 넘어섰다. 96년 실업급여가 지급되기 시작한 이후 가장 높은 수치다.
‘고용보장’ 사라지고 ‘임금삭감’만
지난달 노동부가 발표한 ‘2분기 사업체임금근로시간조사’ 결과에 따르면 상용 노동자 5인 이상 사업체의 노동자 1인당 월평균 임금총액은 252만4천원으로 지난해에 비해 1.6% 하락했다. 임금총액은 지난해 3분기 2.6% 상승을 정점으로 지난해 4분기와 올해 1분기에 각각 2.1%와 1.9% 연속 하락했다.
노동부는 경기부진이 지속되면서 초과급여와 상여금·성과급이 각각 10.9%와 5.0% 하락한 데 기인한 것으로 분석했다. 반면 주당 총노동시간은 39.7시간으로 지난해 대비 0.5시간 늘었다.
경영계와 노동계는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임금을 동결·반납·절감하는 대신 일자리를 유지·창출하자는데 뜻을 모으기도 했다. 지난 2월 한국노총과 한국경총, 노동부와 종교·시민단체들이 함께 맺은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노사민정 합의’가 그것이다.
하지만 7개월이 흐른 지금, 고용보장은 사라지고 임금삭감만 남은 것 아니냐는 볼멘소리가 나오고 있기도 하다. 한국노총 관계자는 “임금이 동결되고 고용이 보장됐는지 여부는 계량적으로 평가하기 어렵다”며 “노사민정 합의는 경제위기를 극복하려는 노력을 담았다는 상징적 의미가 있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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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금융위기 이후 1년이 지났다.
A “미국발 금융위기는 미국식 금융시스템만 붕괴시킨 것이 아니다. 최근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난제인 공적 의료보험제도 도입을 주장하고 나선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사회복지시스템도 같이 붕괴했다. 또 미국식 고용시스템도 함께 무너졌다. 미국의 실업률은 현재 9.7%다. 수개월 사이에 2배로 이상 높아졌다. 금융위기의 이유는 금융시스템의 파산이지만, 노동유연화로 인한 고용불안이 소득정체를 불러오고, 차입(빚)에 의해 가수요를 확대해 온 노동과 소비시스템의 붕괴이기도 하다.”
Q 경기회복의 기대감이 높아졌지만 피부에 와 닿지 않는다고 한다.
A “금융위기 1년 동안 ‘규제’라는 단어와 함께 ‘구제’라는 단어도 참 많이 나왔다. 구제의 대부분은 부실에 책임이 있는 금융기관에 집중됐다. 미국의 씨티은행은 국유화되는 방식으로 구제됐다. 하지만 구제 대상에서 노동자는 빠졌다. 금융부문의 구제는 많이 됐지만 노동자·서민의 가계부채 증가에 따른 가계부실에 대한 구제는 아직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 고용제도의 개혁에 대한 이야기도 나오지 않는다.”
Q 고용지형 변화를 어떻게 예상하나.
A “금융위기는 실질 실업자들의 숫자를 늘린다. 실업률 통계에 구직단념자와 취업준비생까지 포함할 경우 2004년 9%대였던 수치는 매년 증가해 올해는 12%가 됐다. 기업들은 예측이 불가능한 상황에 고용을 늘리지 않을 것이다. 희망근로와 청년인턴이 끝나는 올 연말과 내년 초 실업자가 양산될 것이다. 제도적으로 고용을 보호할 수 있는 장치를 만들어서 고용을 늘려야 한다. 사회적 합의를 통해 고용을 배제하면서 이윤을 추구하는 행위를 근절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Q 고용보험 시스템에 대한 개혁을 일관되게 주문하고 있다.
A “고용과 관련한 유일한 사회안전망이 고용보험제도인데 역사도 짧거니와 제도적으로 취약점이 많다. 경제활동인구가 2천500만명인데 고용보험에 가입한 인원은 1천만명이다. 자영업자와 취업준비생이 제외된 것이다. 제도의 혜택을 받을 수 있는 대상범위도 좁고 수급요건도 까다롭다. 실업부조와 같은 새로운 제도를 만드는 것도 좋지만 현재의 고용보험제도를 확대해 실업문제에 신속하게 대응할 필요가 있다.”
Q 정부와 재계는 임금동결과 삭감을 요구한다.
A “미국과 마찬가지로 한국도 소비위축을 차입에 의한 소비로 보완하면서 경제를 지탱했다. 이제는 가계대출을 더 늘릴 수도 없다. 결국 실질소득을 늘려서 건전한 소비를 회복시키는 길밖에 없다. 고용불안과 반실업 상태에 놓인 취약계층의 생계를 책임져야 한다.” 오재현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