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3일 저녁 쌍용자동차 직원들이 주로 들린다는 경기도 평택시 세교동 먹자골목. 북적거려야 할 시간이지만 식당에서 흘러 나오는 TV소리와 인근 놀이터에서 들리는 벌레소리만 가득하다.
저녁 6시부터 새벽 3~4시까지 불야성을 이뤘던 과거와 사뭇 다르다. 밤 10시 정도만 되면 손님이 없어 전기세가 아까워 문을 닫는 상점이 늘고 있다. 5곳 중 1곳에 ‘점포 임대’라고 쓰여진 종이가 붙었다. 요즘은 인근 공원이나 정자에서 삼삼오오 모여 소주를 기울이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고 한다. 대신 식당에는 손님이 없거나, 많은 곳은 한두 테이블 정도만 찼을 뿐이다.

“쌍용차 이력 때문에 재취업 안돼”

“평택 고용개발촉진지역 선정은 왜 한 겁니까? 개코예요. 개코!”
한 식당에 ‘죽은 자’(정리해고된 사람), ‘산 자’, ‘희망퇴직자’ 등 쌍용자동차 전·현직 노동자 5명이 모여 앉았다. 안부를 묻고 술잔이 돌아가자 복직에 대한 희망부터 회사 분위기까지 다양한 얘기가 나왔다.

지난달 전국에서 최초로 지정돼 관심을 모은 ‘고용개발촉진지역’ 얘기가 나오자 희망퇴직자 ㄱ(42)씨가 목소리를 높였다.
“우리를 위한 제도인 줄 알고 모든 신문을 샅샅히 훑었는데, 정작 지원이 필요한 실직자를 위한 제도가 아니더군요. 우리는 A를 원하는데, 쓸데없는 B를 주고 생색만 내요. 누구를 위한 건지 모르겠습니다.”

도장팀에서 근무했던 ㄱ씨는 지난 5월 퇴직 후 여러 번의 구직활동 끝에 두 번의 최종 면접을 봤지만 다 떨어졌다. 아이들 때문에 다른 조건은 다 포기했는데도, 나이와 쌍용차에 근무했던 이력 때문에 쉽지 않았다.

그는 “기대했던 고용개발촉진지역 선정마저도 기업에게만 지원될 뿐 우리들과는 무관하다”며 술잔을 비웠다. 같은 도장팀에서 근무했던 산 자 ㅈ(31)씨도 “주변에서도 고용개발촉진지역에 대해 관심을 보이는 사람들이 없다”고 거들었다.
 

혜택은 사업주에게로

지난달 11일 노동부는 평택시를 고용개발촉진지역으로 선정했고 그 효력은 이틀 뒤부터 발생했다. 94년 고용정책기본법이 시행된 뒤 처음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시행된 지 한 달 반이 지난 지금 그 실효성은 벌써 의심받고 있다.

고용정책기본법에 따르면 ‘고용사정이 현저히 악화되거나 악화될 우려가 있는 지역의 고용안정과 일자리 창출 등의 사업을 원활히 하는 것을 목적’으로 고용개발촉진지역을 지정할 수 있다.

촉진지역에 주어지는 혜택을 보면 고용보험기금 지원 수준이 다른 지역보다 높다. 해고를 피하기 위해 휴업·휴직·훈련을 실시하는 사업주에게는 각종 수당의 90%까지 지원된다. 다른 지역의 경우 66.7~75%밖에 지원이 안 된다.

실직한 노동자의 재취업을 돕는 전직지원장려금도 중소기업은 소용비용 전액을, 대기업은 90%를 지원받는다. 다른 지역 대기업은 66.7%를 지원받는다.

일자리 창출을 위해 평택시에 사업을 이전하거나 신·증설하는 사업주에게는 1년간 임금의 3분의 1에서 절반을 지역고용촉진지원금을 지원한다.

이 밖에 노동부는 평택시에 1만851명분에 이르는 일자리 관련 사업비 505억원을 우선 지원했다. 평택시의 요청에 따라 조만간 1천278억원이 추가로 지원될 예정이다.

그러나 고용유지지원금은 현재 일자리가 있지만 고용이 불안할 수도 있는 노동자들을 위한 것이지, 이미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들에 대한 직접 지원은 아니다.

그나마 신규 일자리를 만드는 데 사용되는 돈은 지역고용촉진지원금인데, 역시 효과는 크지 않다. 평택고용지원센터에 따르면 이달 22일 기준으로 지역고용촉진계획을 신고한 사업장은 총 22곳으로 고용 예정인원은 약 600여명이다. 이마저도 내년부터 기업에 지급될 예정이다.

평택 토박이라고 소개한 택시기사 ㅈ(57)씨는 “공장이 들어온다고 해도 영세한 싸구려 일자리일 텐데 과연 지역에 얼마나 보탬이 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정부가 평택시에 우선 지원한 505억원을 보더라도 415억원이 ‘대부’용이고, 50억원은 창업점포임대 지원금이다.


실직자와 자영업자들 혜택은?

평택시가 정부에 특별지원을 요청한 1조278억원 중에서도 절반 가량인 535억원은 중소기업육성자금 지원용이다. 나머지 돈도 3분의 1가량은 희망근로프로젝트 사업 연장 실시를 위한 것이다.

이상동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소 연구원은 “촉진지역 선정 자체가 사용자 지원을 토대로 하는 고용보험기금의 ‘고용안정 및 직업능력개발’ 사업의 지원규모를 확대한 것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이런 제도만으로는 평택지역 자동차업종 구조조정 실직자 3천342명(쌍용차 1천988명·협력사 1천354명)과 그 가족이 직접 혜택을 받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평택고용지원센터에서 만난 ㄱ(51)씨는 지난 5월 희망퇴직한 뒤 십여 차례 구직을 시도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그는 “쌍용차 이력을 갖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게 이 바닥 정설인데, 과연 정부가 지원한다고 해결 될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주변 명예퇴직자들도 재취업에 성공한 사람이 없어 택시운전이나 건설 현장 등에 몰리고 있다”고 말했다.

올해 3월 회사가 문을 닫아 실직한 쌍용차 협력업체 출신 o(32)씨는 “매달 실업급여를 타러 고용지원센터에 갔지만, 단 한 번도 고용개발촉진지역에 대해 듣지 못했다”며 “고용을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사업주를 위한 제도 아니냐”고 말했다.

실제 실직자들의 재취업률은 아주 낮다. 노동부에 따르면 창원공장까지 포함해 쌍용자동차 퇴직자 2천646명 중 18일 현재 재취업에 성공한 사람은 10.5%에 불과한 279명이다. 그것도 자영업자를 포함한 것이다.<표참조>
 


평택고용지원센터 관계자는 “쌍용차 이력 때문에 취업이 안 된다고 하는데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수는 없다”며 “그간 쌍용차에서 받았던 높은 연봉과 근로 환경에 눈높이를 맞추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사업주 지원방안은 기업을 지원하는 것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일하고자 하는 근로자를 지원해 실업률을 낮추기 위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비단 실직자들만의 문제는 아니다.
평택시의 취업자 가운데 자영업자들의 비율은 30%가량이다. 하지만 고용보험에서 제외돼 있기 때문에 각종 지원금 등과는 거리가 멀다.

세교동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ㅁ(50)씨는 “우리 같은 자영업자들에게 고용개발촉진지역 선정은 먼 나라 얘기”라며 “나이가 많아 다른 사업도 못하고 죽지 못해 식당을 운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평택역 앞 옷가게 사장인 ㅎ(48)씨는 “쌍용차가 얼마나 정상화될 수 있을지 관심이 있긴 하지만 큰 기대는 않는다”며 “다른 지역으로의 이전을 고민 중”이라고 털어놓았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나

애초부터 한계가 있는 고용개발촉진지역 지정이지만, 그나마 빨리 이뤄졌다면 효과가 지금보다는 훨씬 컸을 것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촉진지역 선정에 따른 효과는 77일간의 노조 파업이 끝난 8월6일보다 일주일이 지난 13일에야 발효되기 시작했다. 평택시는 올해 1월부터 신청을 추진했고 노동부도 3월에 지정대상이 된다고 밝혔다. 하지만 쌍용차 노사 간 격렬한 충돌이 끝난 뒤에야 발효된 것이다.

쌍용차의 장기휴업과 경영위기가 지난해 말부터 가시화됐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올 초부터 관련조치가 이뤄졌다면 상황은 달라졌을 수 있다.

고용을 유지하려는 사업주에게 임금의 90%까지 보전해 주는 고용유지지원금이 일찍 지급됐다면, 금속노조 쌍용차지부가 당초 요구했던 고용유지와 일자리 나누기가 가능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이상동 연구원은 “임금을 일시적으로 유보하는 수준에서 순환근무나 유급휴직·근무형태 변경 등을 통해 고용유지가 가능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더구나 고용정책기본법에 신설된 조항에 따르면 교대제전환 지원금을 통해 노동시간 축소분에 해당하는 임금손실분의 최소 3분의 1을 지원받을 수 있다.

노동부 관계자는 “7월30일 평택시의 지정신청을 받은 뒤 여름휴가철인데도 최대한 신속히 선정절차를 끝냈다”고 말했다.

“지역 노사정이 고용의제 발굴해야”

이제부터라도 평택 지역의 실직자와 그 가족·자영업자의 생계보장과 일자리 마련을 위해 고용지원 서비스가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일자리 회복에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기초생활과 교육·세금 등 기초 생계보장을 위한 대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특히 고용지원센터의 인력과 재정을 확대해 일자리 알선부터 직업능력 개발을 담당하는 ‘종합고용센터’로의 전환 필요성도 제기되고 있다.

2000년 대규모 구조조정을 단행했던 대우자동차 노사는 2001년 노동부와 지자체·중소기업까지 참가하는 종합고용센터 ‘대우차 희망센터’를 만들어 운영했다. 어느 정도 해고자들의 재취업 효과를 보기도 했다.

무엇보다 지역고용의제 발굴과 이에 대한 지역 노사정의 역할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높다. 쌍용차 사태는 자동차산업 차원의 지원이 없는 상태에서 이뤄졌다. GM대우를 비롯한 자동차산업 위기는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노동계 관계자는 “쌍용차 파업과 고용개발촉진지역 선정 과정을 보면 지역 중추산업의 고용이 위기에 봉착했는데도 지역의 정치세력들은 제 역할을 못했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노조와 기업·평택시 등이 고용과 관련된 사회적 협의체를 만들어 독자적인 고용지원망을 구축해야 한다는 것이다. 때문에 이런 모델을 GM대우 공장이 있는 인천시에도 적용할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이상동 연구원은 “지역 차원에서 고용문제를 논의할 수 있는 협의체가 우리나라에는 거의 없다”며 “노동계도 지역고용을 전부 책임질 필요는 없지만 지역고용협의체에 관심을 가지고 구조를 만들어 갈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김학태·김은성 기자

해고자들의 재취업 등을 위해 대우자동차 노사가 2001년 2월부터 2002년 말까지 운영한 ‘대우차 희망센터’는 실업급여와 구직상담·직업교육 외에 퇴직자와 해고자들의 재취업을 위한 전직도 지원했다. 또 재교육프로그램과 일자리 발굴 등을 위한 특별서비스도 제공했다.
노동부와 지자체, 중소기업청 등 재취업과 관련된 기관이 모두 참가해 1년간 활동한 결과 대상 퇴직자 4천509명 중 1천546명이 취업과 창업에 성공했다. 취업과 창업에 걸린 시간은 평균 2.5개월이다. 생산직의 성공률은 52%, 사무직은 68% 정도였다. 이런 모델을 쌍용차에도 적용할 수 있다는 주장이 나온다. 퇴직자와 해고자들의 재취업과 창업을 정부기구에 맡기지 않고 고용조정에 대한 노사정의 연대책임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비슷한 역할을 하는 기구는 고용개발촉진지역 선정에 따른 사업의 일환으로 평택시에서도 추진되고 있다. 평택시는 평택역 내에 위치한 시 홍보관에 ‘쌍용차 오뚝이센터’를 차려 쌍용차·협력업체의 실직자와 가족들을 대상으로 종합상담·재취업·창업·방과후 자녀보호 등의 사업을 벌이고 있다. 평택시가 비영리민간단체에 위탁해 운영하고 있다.
대우차 희망센터의 경우 노조 개입력이 비교적 높았지만 쌍용차 오뚝이센터는 노조와의 접촉력이 떨어진다.
파업 당시 노조와 마찰을 빚었던 ‘살아남은 자’가 오뚝이센터 소장으로 부임하면서 금속노조 쌍용차지부가 반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상동 연구원은 “쌍용차든 GM대우든 노조의 개입력을 확보할 수 있는 독자적인 고용망과 지역 노사정 협의체를 구성해 향후 예상되는 사회적 혼란과 추가 비용을 줄여야 한다”고 말했다. 김은성 기자

절차 지연·실업자 지원누락 “의도했나, 의지가 없었나”
평택시에 대한 고용개발촉진지역 선정 과정을 둘러싼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우선 선정이 지연된 것에 대한 논란이 거세다.
노동부는 “평택시가 신청하자마자 고용정책심의위원회를 개최하는 등 절차를 최대한 빨리 밟아 8월11일 선정을 마쳤다”고 밝혔다.
올해 1월부터 촉진지역 선정을 추진한다고 밝혔던 평택시가 노동부에 신청서를 접수한 것은 7월30일이다. 쌍용차가 2천646명에 대한 구조조정 계획을 발표하고 노조가 공장을 점거하고 나서도 한참 뒤다.
이에 대해 평택시는 “노동부가 고시를 하기 전에는 신청을 할 수 없기 때문에 고시를 할 때까지 기다렸다”고 강조했다. 노동부는 구체적인 선정 기준 등을 담은 고시를 7월1일에야 발표했다.
노동부와 평택시 모두 적정한 시기를 놓친 셈이다. 이와 관련해 노동계 일각에서는 쌍용차 협상타결 결과를 지켜보기 위해 의도적으로 절차를 지연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이에 대해 노동부 관계자는 “고시를 하기 위해서는 해당 지방자치단체의 실업률 등을 정확히 파악해야 가능하다”며 “평택시의 실업률 등을 파악하자마자 고시를 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고시 내용도 논란이 되고 있다.
노동부가 발표한 고시를 보면 촉진지역 지정 기준의 법률적 근거조항으로 고용정책기본법 제26조 ‘사업주의 고용조정의 지원 등’이 포함돼 있다.
이는 말 그대로 고용사정이 악화된 업종이나 지역의 사업주에게 지원을 하는 것이다.
반면 고용정책기본법 제28조 ‘실업대책 사업의 실시’ 조항은 빠져 있다. 이 조항은 실업자에 대한 직업훈련은 물론 생계비·생업자금·의료비·사회보험료·학자금 등을 지원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실업자에 대한 직접 지원 내용이 포함된 것이다.
이정호 민주노총 정책국장은 “절차가 늦어지고 주요 법적근거가 고시에서 누락된 것은 최소한 해고를 피하거나 실업자를 지원하겠다는 의지가 없었다는 것을 뜻한다”고 주장했다.
노동부 관계자는 “올해 들어 희망근로사업과 자동차 세제감면 혜택 등이 진행된 상황에서 실업자를 직접 지원하는 조항까지 포함시키는 것은 과도하다고 판단했다”고 해명했다. 김학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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