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매일노동뉴스>와 만난 김진웅(32)씨의 말이다. 두 달 전까지 산재의료원 동해병원에서 야간 응급실 수납과 입원수속 업무를 담당했던 그는 이번 추석에 고향에 내려갈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가슴이 답답하다고 호소했다. 비정규직법 기간제한 조항이 적용되기 바로 전날인 6월30일 실직자가 됐기 때문이다. 산재의료원에서 함께 비정규직으로 일하던 그의 아내, 김혜영(29)씨도 같은날 해고됐다. 이들 부부는 실업급여를 받으며 이제 막 첫돌이 지난 아기와 근근이 생활을 꾸리고 있다.

산재의료원은 6월30일부터 7월31일 사이 고용계약이 종료된 기간제 비정규직 26명을 모두 해고했다. 두 달여간 농성 끝에 노사는 12월 말까지 적절한 해결방안을 마련하기로 합의했지만 아직까지 뾰족한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 해고된 비정규직과 합의 당사자인 노사 모두 국회만 바라보고 있는 상황이다.
비정규직법 기간제한 조항이 발효된 지 석 달 가까이 흘렀다. 그 사이 노동부의 ‘기간제 근로자 실태조사’ 결과 노동부의 ‘100만 해고설’이 터무니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비정규직 운명의 7월1일…그 후로 석 달
올해 7월부터 1년 동안 계약기간이 만료되는 사람은 38만명이고, 7월 한 달 동안 정규직이나 무기계약으로 전환한 사람은 63%, 계약이 끝난 사람은 37%로 각각 나타났다.
하지만 이 조사는 민간부문만을 대상으로 한 것이다.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사정은 다르다.
국회 지식경제위원회 노영민 민주당 의원이 22일 지식경제부 산하 71개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기간제 고용실태를 조사한 결과 7∼8월 사이 2년 이상 근속한 424명 중 35명(8.2%)만 정규직으로 전환됐다. 노동부의 실태조사에서 일반사업장의 정규직 전환 비율(36.8%)을 크게 밑도는 수치다. 조사결과에 따르면 전체의 절반 이상인 239명(56.4%)은 해고됐고, 계약기간 갱신을 통해 비정규직으로 다시고용된 노동자는 150명(35.4%)이었다.
지난달 10일 조해진 한나라당 의원이 20개 공공기관의 ‘2009년 하반기 정규직 전환계획’을 점검한 결과도 크게 다르지 않다. 조 의원에 따르면 올 하반기 공공기관 비정규직의 정규직·무기계약직 전환율은 상반기 12.71%보다 10.8%포인트 떨어진 1.91%를 기록할 것으로 추정됐다. 대부분 공공기관이 비정규직을 정규직 또는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할 계획이 없는 것으로 확인된 것이다.
사실 이 같은 결과는 지난해 공기업 선진화방안이 발표될 때 이미 예견됐다.
정부가 공공기간 정원 2만여명을 감축하고 예산을 10% 절감하겠다는 방침을 세웠을 때, 이미 정규직으로 올라가는 사다리가 사라진 셈이다.
민주노총이 노동부 자료를 바탕으로 산출한 6월30일 현재 정규직 전환 대상 공공기관 비정규직은 총 6만5천여명이다. 하지만 하반기 들어 공공기관 비정규직의 대량해고는 있었어도 대량 정규직(무기계약직)화는 없었다.
비정규직 소리 없는 해고
한국폴리텍대학 산학협력단에서 일하는 비정규직 17명은 지난달 말 무더기 계약해지됐다. 6월30일 19명이 집단해고된 데 이어 두 번째다.
이들은 폴리텍대학에서 2008년 1월 별도법인으로 설립한 7개 권역별 산학협력단 소속으로, 주로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한 교육사업 등 지원업무를 맡고 있다. 사측은 올 연말까지 계약기간이 만료되는 100여명을 차례대로 해고할 방침이다. 심지어 계약기간이 남아있어도 무차별적으로 해고하고 있다. 배미옥(32)씨는 김제캠퍼스 산학협력단과 올해 12월31일까지 근로계약을 체결했으나 지난달 30일 계약해지 통보를 받았다. 그는 “학교당국으로부터 ‘근로계약서상 계약기간까지 계속 근무하면 비정규직법에 따라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말을 들었다”며 “비정규직법 때문에 발생한 부당한 해고”라고 주장했다.
민영기 공공노조 미조직비정규사업 차장은 “보통 비정규직의 계약만료 시점이 공공기관 회계연도와 맥을 같이 하고 있어, 올 연말 대량해고 사태가 재연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비정규직 선진화대책’은 왜 없나
2년 이상 비정규직 해고뿐만 아니라 다시 비정규직으로 재계약하거나, 아무런 조치 없이 계속 고용하는 편법사례도 잇따르고 있다.
서울대병원 보라매병원 의무기록실에서 일하다 23개월 만에 계약해지 통보를 받은 김성미(26)씨는 해고 이후 넉 달 만에 병원으로부터 ‘비정규직으로 재계약을 체결하겠다’는 통보를 받았다. 올 연말까지 재계약 방안을 찾아보겠다는 병원측의 통보가 억울하지만 비정규직법으로부터 보호를 받을 수 없는 김씨는 “그나마 다행”이라고 말했다.
한국노총비정규직연대회의가 계약해지 무효·사용자지위확인 집단소송에 동참한 비정규직 가운데 이미 해고통보를 받은 이는 물론, 계약기간이 만료됐지만 여전히 비정규직으로 일하고 있는 이들도 다수 포함돼 있다.
집단소송이 제기되자 일부 공기업들이 계약만료에 따른 계약해지를 중단한 채 관망하고 있기 때문이다.
비정규직법 시행 불똥이 공공기관에 집중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이유는 정부의 ‘무대책’이 가장 큰 원인이다. 노무현 정부가 추진한 공공기관 비정규직 종합대책에 따라 공공기관에서는 2년 이상 상시·지속적 업무 종사 기간제 총 8만3천990명이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됐다. 2007년 대상자 총 20만6천742명 중 43%의 전환율을 보였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가 지난해 ‘조직개편이나 업무량 감소 등 구조조정이 예정돼 인력조정이 불가피한 경우’는 무기계약직 전환에서 제외해도 된다는 지침을 발표하면서 무기계약직 전환은 사실상 중단됐다.
민주노총은 “공기업 선진화방안으로 말미암아 정부가 추진했던 공공기관의 지속적인 무기계약 전환계획이 전면 중단되면서 결과적으로 대량해고가 발생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비정규직법 개정 논의가 원점으로 되돌아간 지금, 현 정부의 공공기관 비정규직 정책이 바뀌지 않는 한 해고예정 날짜를 받아 놓고 애태우는 비정규직은 계속 늘어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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