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키네 슈이치로씨는 일본 파견유니온 서기장이다. 파견유니온을 결성하기 이전부터 노동자 상담을 했던 그는 2006년부터 갑자기 늘어난 일용 파견노동자들의 하소연에 이상한 낌새를 느꼈다. 하나같이 열악한 노동조건을 성토했기 때문이다.
그는 곧바로 거대 파견 회사에 일용파견으로 ‘위장 취업’을 했다.
처음 취업(파견등록)한 곳은 노동자만 수만에 달하는 파견업체였다. 등록하고 나서 근로조건과 관련한 메일을 받았는데 용모가 어떠냐, 장발이냐, 금발이냐, 수염이 있느냐, 뚱뚱하냐 등의 질문에 답변하라고 했다. 그는 당시 상황에 대해 “노동자를 물건으로 취급했다”고 불쾌해 했다.
그는 그를 포함해 2~3명에 불과한 풀커스트유니온을 통해 문제를 제기했다. 그런데 풀커스트는 2007년 노조와 교섭과정에서 잘못을 인정하고 ‘파견노동자에 관한 협정서’를 맺었다. 그는 파견업계 1위 기업인 ‘굿윌’에 취업한 뒤에는 부당한 수수료를 걷었던 사실을 밝혀내 배상과 관련한 개별교섭을 벌이기도 했다. ‘굿윌’에는 전부터 이미 노조가 조직돼 있었다. 그는 “일본에서는 한 사람이 가입한 노조가 요구해도 회사가 교섭에 나오도록 돼 있다”고 말했다.
승자독식, 소수노조 단결권 형해화
공익위원이 제출한 복수노조 관련 조항은 6개로 구성됐다. 첫 번째는 사업이나 사업장 단위에서 노조 설립의 자유를 보장한다는 것. 이는 단결권을 보장한다는 선언적인 문구다. 두 번째는 교섭창구 단일화를 언급했다. 노조의 자율적 교섭창구 단일화를 원칙으로, 합의가 되지 않을 경우 전체 조합원의 과반수 교섭대표에 의해 교섭창구를 단일화한다는 것이다.
우선 기업 내에 있는 노조끼리 단체교섭 시작 전 단일화를 시도한다. 합의에 실패하면 조합비 일괄공제(체크오프)나 조합원카드를 통해 과반수 노조를 가려 교섭권을 준다. 만약 과반수 노조가 없을 경우에는 선거를 통해 과반수 대표를 선정한다. 노동위원회는 조합원수를 세고 선거를 관장한다. 공익위원들은 캐나다 모델을 염두에 둔 것으로 알려졌다. 노조는 우리나라의 노조가입원서와 비슷한 조합원카드를 모아 노동위원회에 교섭대표 승인신청을 하고 노동위원회는 회사가 제출한 노동자카드와 대조한다.
50%를 넘으면 교섭대표로 승인하고 35~50%면 투표를 한다. 조합원수가 35% 미만인 경우나 투표결과 과반수 득표가 없으면 승인요청을 기각하고 3개월 동안 재신청이 금지된다.
일단 과반수 노조로 지위를 인정받으면 다음은 탄탄대로다. 전임자 임금문제를 비롯해 타 노조에 제공되는 편의를 독차지할 수도 있다. 교섭대표가 단체교섭과 단체협약 체결의 주체가 된다고 규정해 추인받지 않아도 되는 권한을 갖는다.
그야말로 승자독식이다. 교섭대표가 단체교섭 뿐 아니라 단체협약의 해석과 적용과정에서 소수노조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아야 한다는 ‘공정대표의무’를 부담한다는 규정을 넣었지만 실효성은 확신할 수 없다.

기업별 노조 강화될 수도
한 공익위원은 “승자독식이 맞다. 교섭권을 갖지 못하면 와신상담하며 다음을 노리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교섭권을 갖지 못한 소수노조의 단결권은 약해지기 마련이다. 게다가 교섭단위, 단일화의 대상을 조직대상의 중복과 관계없이 사업장 내 모든 노조조직으로 삼았다. 산별노조 기업지부도 단일화 대상이다. 재계가 요구했던 대로 1사업장에 1교섭 원칙이 도입된 셈이다.
이는 전임자임금 지급금지와 맛물려 왜곡된 형태로 나타날 공산이 크다. 전임자임금 문제에서는 산별노조식 틀을 제시하고, 복수노조에서는 기업별노조 해법을 강요하는 셈이기 때문이다.
“못하죠. 노조 하지 마라는 얘기지. 당장 머리 역할을 하는 상급단체부터 공동화될 수밖에 없어요.”
전임자임금 지급을 금지하는 대신 근로시간 면제제도(타임오프제도)를 도입하자는 공익위원안에 대해 한국노총 소속의 한 산별연맹 간부는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이 연맹은 파견직 간부가 73%를 차지할 정도로 사실상 모든 업무를 전임자가 수행해왔다. 타임오프제 대로라면 파견 간부의 대부분은 회사로 돌아가거나 조합비로 급여를 줘야 한다. 복귀하면 업무가 마비되고 조합비로 급여를 충당하자니 매달 수억원에 이르는 돈을 새로 조달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 분명하다. 또 다른 간부는 “전임자임금 지급이 금지됐을 경우 상급단체에 내는 맹비도 줄어들 것”이라고 위기의식을 표현했다.
전임자임금 지급금지의 대안으로 선택된 타임오프제는 노조업무에 종사하는 사람의 업무가 기업의 이익과 부합할 경우 그 활동 시간만큼 임금을 지급하는 제도다. 대개 노조 조직활동이나 상급단체 활동 업무는 무급으로, 근로조건과 관련한 내용은 유급으로 처리한다. 공익위원안은 노조 활동이 기업의 이익과 부합하는 업무를 다섯 가지로 정리했다.
△고충처리 △단체교섭 △노사공동 설치기관 운영과 노사협의 △산업안전보건 △권리구제기관 업무가 그것이다. 여기에 노사관계의 원활한 운영을 위해 시행령으로 정한 업무도 포함됐다. 열거된 업무 이외에 기업이 임금을 주는 것은 불법이 된다. 처벌하도록 법제화된 나라도 있는데, 우리나라도 이를 따르게 됐다.
공익위원들의 미세한 견해차
타임오프제를 놓고 공익위원 간에도 미묘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최근 노사관계선진화위원회 공익위원 중 일원인 이철수 서울대 교수는 한 토론회에서 전임자임금과 관련해 2개의 명제를 제시했다.
초기업 차원에서 활동하는 산별노조의 전임자 급여는 노조가 전담해야 한다는 것과, 기업 차원의 전임자 임금은 사용자가 지급할 수도 있지만 바람직하지 않기 때문에 합리적 노력을 강구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이는 “기업별노조에서는 전임자가 종업원 신분을 동시에 가지고 있어 산별노조와는 달리 파악돼야 한다”는 전제에서 출발했다.
그는 “노조 자주성 원칙을 손상시키지 않으면서도 사업장 내의 전임자에게 사실상 급여를 지급하는 제도를 강구해 볼 수도 있다”며 “경영참가 모델과 급여 지급을 연계시키는 방안을 생각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대부분 산별노조의 조합원이면서 유급활동을 인정받는 독일의 종업원평의회 근로자위원을 검토할 만한 예로 들었다. 프랑스와 독일은 면제업무를 정하지 않고 있다.
반면 이승욱 이화여대 부교수(법학)는 공익위원안으로 제시된 타임오프를 “영국식에 가까운, 미국식과 영국식의 중간 수준”정도라고 했다. 영미식 타임오프제는 기업노조 간부격인 직장위원(shop steward)들이 정해진 근로시간 면제업무만 하도록 돼 있다.

전임자 절반 이상 축소 불가피
이승욱 교수는 “업종의 성격에 따라 노사가 합의할 수 있는 업무 범위가 달라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단체협약을 통해 업무에 가중치를 줄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의 경우 민간부문 단체협약을 분석해보니 산업안전 관련업무는 60%, 고충처리업무는 46%, 단체교섭은 8%가 임금을 지급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업무 내에서 상한을 늘린다고 해도 다섯 가지로 제한된 타임오프로는 지금같은 전일 전임은 하지 못한다. 유럽의 경우도 주당 7~20시간의 면제시간이 주어질 뿐이다.
노사관계선진위에 참여했던 한 공익위원은 전임이 100이라면 타임오프로 확보하는 시간은 50이 안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 공익위원은 그 근거로 “다섯 가지 업무가 전임자의 활동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연구한 결과 전임의 3분의 1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문제는 중소사업장 노조의 존립 여부다. 임금이 지급되지 않는 한 중소사업장 노조는 생존하기 어렵다. 기업별노조에서 파견한 간부들이 전임활동을 하는 산별노조의 처지도 다르지 않다. 기업별노조 틀을 벗어나지 못한 나라에서 산별노조 체계가 확고한 서유럽 제도를 도입하는 데 따른 부작용도 우려된다.
공익위원안은 이를 명쾌하게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300인 미만 중소기업 대책에 대해 정부가 재정을 지원할 수 있도록 특별법 제정을 강구해야 한다고 했지만, 정부가 마련하고 있는 대책은 노사파트너십프로그램과 노동단체 지원사업을 신청하면 지원한다는 방침이다.
세키네 파견유니온 서기장은 한 사람이 개인적으로 가입한 노조가 교섭을 요구해도 회사가 나오도록 돼 있다는 말 끝에 이렇게 물었다.
“한국은 그렇지 않나요?”
자칫 2010년에는 파업권은커녕 교섭권마저 없는 복수노조가 시행되는 것은 아닌지, 전임자 임금 금지 속에 노조의 싹을 없애려는 비수가 숨겨진 것은 아닌지 따져봐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