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가 마냥 즐겁지 않은 노동자들이 늘고 있다. 쉬고 싶어도 쉬지 못하거나 쉬어도 쉰 것 같지 않기 때문이다. 치솟은 휴가비용 탓에 갈 곳이 마땅치 않고, 집에서 쉬자니 아이들의 원성이 만만치 않다. <매일노동뉴스>가 노동자들의 휴가 풍속도를 들여다봤다.

바야흐로 휴가철이다.
경기불황 탓에 ‘휴가 풍속도’도 예년과 조금 다르다. 치솟은 물가와 휴가비용 걱정에 집에서 ‘홈캉스’(홈과 바캉스의 합성어)를 보내겠다는 사람들이 있는가하면, 여름휴가와 연차휴가까지 묶어서 한 달씩 휴가를 보낸다는 사람들도 있다.

최근 대기업·금융기관·공무원 노동자는 ‘휴가를 꼭 쓰라’는 사용자의 성화에 등을 떠밀리고 있다. 휴가수당이라도 아껴서 비용을 절감하겠다는 것이다. 한 달 간의 긴 휴가로 해외여행을 다녀오거나 자격증까지 딴다고 하지만 중소영세사업장 노동자에게는 실감이 나지 않는다.
 
딜레마에 빠진 보험사 영업소장

국내 한 보험사의 영업소장 김아무개씨. 김씨는 요즘 휴가를 써야 하나 말아야 하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하루하루 전쟁터인 영업현장에서 잠시라도 멀어지면 밀려나지 않을까라는 불안감이 들기 때문이다. 연차휴가조차 없는 보험설계사의 사정을 외면할 수밖에 없는 것도 마음에 걸린다고 한다. 회사는 이런 사정을 뻔히 알면서도 그에게 휴가를 가라고 한다. 그는 “한 번쯤 재충전하는 차원에서 모든 걸 잊고 쉬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며 “회사도 눈치 보지 말고 자율적으로 쉬라고 하니 그렇게 하고 싶다”고 말했다.

보험설계사의 영업을 관리하는 그가 자리를 비웠을 때 마땅한 대안이 없다. 그는 “나름대로 하루하루 열심히 보험설계사들과 얼굴 맞대고 영업을 풀어가고 있지만 풀어야 할 숙제는 남아있고 영업력은 점점 떨어진다”고 털어놨다. 그는 “보험설계사들에게 매일 출근해서 영업활동을 하라고 지시한다”며 “휴가조차 가지 않고 열심히 활동하는 보험설계사들은 휴가를 가버린 영업소장을 더 이상 신뢰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내가 있는 곳은 매일매일 전쟁터”라며 “전쟁터의 수장이 자리를 비우면 다른 대안이 있어야 하는데 아무런 대책도 없이 알아서 하라는 건 쉬지 말라는 얘기”라고 꼬집었다.

골병 든 노동자에게 휴가의 의미

김씨처럼 휴가를 가야할지 말아야할지 걱정하는 이들도 있지만, 휴가를 어떻해 보내야할 지 걱정하는 사람도 있다. 요즘 점심 식사 자리에서 ‘여름휴가 언제 가세요’라든가 ‘휴가지로 어디가 좋은가요’라는 질문은 단골 메뉴다.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최근 전국 100인 이상 236개 기업을 대상으로 ‘2009년 하계휴가 실태조사’를 실시한 결과, 올 여름 휴가시기는 8월 초가 될 것으로 조사됐다.
하계휴가 실시시기는 8월 초가 50.0%로 가장 많았고 7월 말 26.8%, 8월 중순과 7월 중순 8.9% 등의 순으로 집계됐다. 올해 하계휴가를 실시할 기업은 전체의 93.2%에 달했다. 하계휴가 일수는 평균 4.6일, 휴가비는 평균 43만5000원으로 조사됐다.

과거 농경사회나 현재의 농촌은 휴가나 휴일의 개념이 없다. 사실 휴가라는 제도는 현대 산업사회와 함께 생긴 것이다. 농경사회에서 휴가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추수를 끝내고 나면 덜 바쁜 것이고, 다음 농사를 위해 잠시 쉬는 것이었다. 요즘처럼 휴가를 어디서 보내야 하고, 휴가를 다녀와서 “얼마나 돈을 썼다”라고 계산하거나 따지지 않았다.

휴일과 휴가, 중소영세사업장 노동자

그렇다면 휴일과 휴가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휴일은 근로제공의 의무가 없는 날을 말한다. 특정한 날을 기념하거나, 연속된 노동으로 피로가 누적되는 것을 막고 최소한의 여가시간을 보장하는 제도다. 법정휴일(주휴일·노동절)과 약정휴일(공휴일·명절·회사창립일·노조창립일 )로 나뉜다.

반면 휴가는 본래 근로제공의무가 존재하지만 장기간 근로제공의무를 면제하는 날이다. 노동자에게 장기간의 시간이 소요되는 일(출산·결혼·가족의 사망)들을 처리할 시간을 주거나, 노동자의 건강하고 문화적인 생활을 실현하기 위해 보장된 제도다.
근로기준법 55조에 따르면 사용자는 근로자에게 1주일에 평균 1회 이상의 유급휴일을 주어야 한다. 연장근로나 야간근로(오후 10시~오전 6시 사이의 근로)와 휴일근로 때도 통상임금의 100분의 50 이상을 가산해 임금을 지급해야 한다.

건설노동자 같은 일용직 노동자들에게 휴일과 휴가는 다른 나라 이야기처럼 들리기도 한다. 플랜트건설노조 일부 지역 노사는 단체협약으로 7~8월 작업의 경우 휴가를 주기로 했지만 1~3일 정도가 전부다. 휴가비를 주는 곳도 없다.
강상규 플랜트건설노조 울산지부 사무국장은 “일 없으면 휴가 가는 것이고 통상 날이 너무 뜨거우면 일이 안 돼 하루 쉬자고 하는 게 전부”라고 말했다.

휴가마저 경쟁해야 되나

사업장 규모에 따라 휴가 조건도 다르지만 사람마다 ‘쉬는 것’에 대한 생각도 제각각이다. 때문에 휴가 풍속도를 보면 노동의 현실을 되짚어 볼 수 있다.
휴가기간에 집에서 텔레비전만 보면서 시간을 보내는 건 노동자들이 텔레비전조차 볼 시간 없는 노동을 하고 있다는 뜻이다. 휴가 때 가족과 함께 보내려는 것은 평소 가족과 함께 지내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것을 반증한다.

정소성 사무금융연맹 교육선전실장은 “휴가 때 하루 종일 집에 누워 리모콘만 만지는 노동자는 평소 빈둥거릴 시간이 없이 일만 했던 것”이라며 “휴가 없이 일만 계속한다면 골병이 들어 일할 수 없는 것이 노동자의 현실”이라고 말했다.

올 여름 휴가는 ‘어디로 다녀와서 무엇을 보고 얼마를 썼다’는 방식보다, 노동에서 벗어난 진정한 휴식의 시간을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

 
연차유급휴가 사용 합의, 임금반납일까 아닐까
연차유급휴가(수당)는 임금일까 아닐까. 금융권에서 연차휴가 사용을 권장하고 있는 가운데 금융산업노조(금융노조) 소속 은행 노사도 연차휴가 사용촉진에 합의했다.
그런데 산별노조인 금융노조가 가지고 있는 임금체결권을 침해한 것인지 여부를 둘러싸고 해석이 분분하다.
금융노조가 노무법인 B&K·삼신·한국노총 중앙법률원 3개 기관에 자문해 지난달 29일 발표한 결과에 따르면 연차휴가는 임금범위에 속하지 않지만 연차휴가 미사용에 따른 노동제공의 대가(미사용 수당)는 임금에 포함된다. 연차휴가 미사용 수당이 통상임금에 포함(대법원 94다19501)되면서 퇴직금을 산출하는 데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세 기관은 연차휴가사용 합의가 임금반납으로 볼 수 있는지 여부에 대해 모두 ‘볼 수 없다’고 답했다. 연차휴가는 가급적 사용하는 것이 근로기준법의 취지에 맞으며, 연차휴가 사용촉진 합의를 임금반납으로 평가할 수 없다는 것이다. 미사용 수당은 발생하지 않은 채권이기 때문에 이미 발생한 채권을 내놓는 임금반납과 다르다는 설명이다.
B&K는 “연차휴가 사용이 근로기준법 취지에 부합한다는 측면에서, 지부 노사의 합의는 본조가 개입해서 규율할 성격이 아니다”고 보았고, 삼신과 한국노총 중앙법률원은 “금융노조 규약(59조 교섭체결권)에 따라 규제할 수 있다”고 밝혔다. 오재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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