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지난 5월1일 집회 참가자들에게 진압봉을 휘두른 경찰간부의 얘기가 인터넷을 뜨겁게 달궜다. 이 경찰에 대해 비판한 블로그와 포털사이트 다음의 아고라 게시판의 게시물 다수가 보이지 않게 ‘블라인드’ 처리, 즉 임시로 삭제조치된 것이다. 게시글 삭제를 요청한 사람은 다름 아닌 당시 진압봉을 휘두른 경찰간부였다. 삭제된 게시물 중에는 한 블로거가 해당 경찰간부에게 정중하게 쓴 공개 질의서도 포함돼 있었다.

#2. 포털사이트 다음에서 ‘최병성의 생명편지’라는 블로그를 운영하며 환경운동을 하고 있는 최병성 목사의 블로그에서 최근 무더기로 글이 삭제됐다. 그는 3년 전부터 시멘트 제조과정에 쓰레기가 사용돼 시멘트에 인체에 유해한 성분이 다량 함유돼 있다는 문제를 지속적으로 제기해 왔다. 그러자 시멘트 업체들은 50여개의 글에 대해 명예를 훼손당했다며 다음에 권리침해를 신고했다. 다음은 권리침해 신고가 들어오면 30일간 임시로 삭제조치해야 한다는 정보통신망법(44조2항)에 따라 명예훼손 여부를 따지지 않고 삭제를 했다. 더군다나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시멘트공장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4개의 글을 ‘영구 삭제’ 조치했다.
6월 임시국회를 앞두고 ‘사이버통제’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일명 ‘사이버모욕죄’로 대표되는 각종 법률 개정안은 “당신도 미네르바가 될 수 있다”는 우려를 확산시키고 있다. ‘사이버통제법’의 문제점을 분석하고 대안을 찾기 위한 자리가 마련됐다. 16일 오후 국회 헌정기념관 회의실에서 ‘사이버통제법과 정보인권적 대안 토론회’가 열렸다. 민주노총 IT연맹(위원장 박흥식)과 진보네트워크센터·참여연대·문화연대·함께하는시민행동·언론개혁시민연대가 공동 주최하고 권영길 민주노동당 의원과 최문순 민주당 의원이 후원했다.

이미 침해받고 있는 ‘표현의 자유’

정보통신망법에 의해 임의조치로 게시물이 삭제된 후 블로그 운영자나 네티즌들은 어떻게 대응했을까. 최병성 목사는 언론인권센터와 함께 방송통신심의위원회와 미디어다음을 대상으로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최 목사는 그의 블로그에서 “국민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 쓰레기시멘트의 유해성을 지적하는 기사를 아무 근거도 없이 시멘트공장의 신고만으로 삭제 조치한 것에 대한 손해배상 소송”이라고 밝혔다.

임시국회를 앞두고 인터넷관련 규제법률이 통과될 것에 대한 우려가 높다. 대표적으로 지목되는 법안들은 한나라당 의원들이 발의한 것이다. 지난해 11월 나경원 한나라당 의원 등이 발의한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에 따르면 정보통신망을 통해 다른사람에게 모욕을 준 사람은 2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같은당 이한성 의원 등이 발의한 통신비밀보호법 개정안은 수사기관이 감청을 통해 합법적으로 통신제한조치를 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동전화사업자와 전기통신사업자가 관련장비를 구비하지 않으면 매년 10억원 이하의 이행강제금을 물게 된다.

하지만 앞선 사례에서 보듯 이미 수많은 네티즌들이 인터넷과 관련된 규제로 피해를 입고 있다.
전응휘 녹색소비자연대 상임이사는 “우리나리에는 일일이 다 설명하기도 어려울 만큼 온갖 종류의 인터넷 관련 규제법률이 도처에 흩어져 있다”고 말했다.
잘 알려진 정보통신망법 외에도 전기통신사업법·전기통신기본법·인터넷주소자원에 관한 법률·저작권법·전자상거래등에서의 소비자보호에 관한 법률·공직선거법·신문법·언론중재법 등에 모두 인터넷 규제와 관련된 내용이 포함돼 있다는 것이다.

전응휘 상임이사는 “새로운 인터넷 관련 규제법률을 만들려면 우선 현행 규제제도의 적정성에 대한 평가부터 이뤄져야 한다”며 “지금은 현행 제도에 대한 평가도 이뤄지지 않은 채 ‘인터넷에는 문제가 많다, 그래서 규제제도가 필요하다’는 식의 단순논법이 반복되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미디어 전문가들이 갖고 있는 생각부터 바꿔야 한다고 지적했다. 인터넷을 통신이 아닌 전통적인 미디어와 같은 것으로 인식하는 것부터 잘못이라는 것이다.
그는 “인터넷은 방송처럼 일방적으로 메시지를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개개인이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통신 차원에서 이해돼 왔다”며 “그동안 통신에 대한 규제는 내용에 대해서는 터치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통신 사업자와 소비자 사이의 요금에 대한 분쟁을 조정하기 위해 통신 사실만 기록하는 것이 통신 규제의 근본 원리라는 것이다.

국정원 도와주는 통신비밀보호법?

인터넷이라는 공간에서 왜 표현의 자유가 중요한가라는 질문에 장여경 진보네트워크센터 활동가는 “인터넷은 인류 역사상 평범함 사람들에게 처음으로 주어진 표현 수단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통신의 비밀은 헌법(18조)에서 보장하고 있는 기본권이다. 현행 통신비밀보호법에 따르면 범죄수사 등을 위해 합법적으로 감청을 하더라도 ‘다른 방법으로는 그 범죄의 실행을 저지하거나 범인의 체포 또는 증거 수집이 현저히 어려운 경우’에 한하여 허가하도록 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이한성 한나라당 의원이 대표발의한 통신비밀보호법 일부개정법률안에 따르면 전기통신사업자는 감청 장비를 의무적으로 구비해야 한다. 구비하지 않으면 매년 10억원 이하의 이행강제금을 부과해야 한다. 장여경 활동가는 “개정안의 가장 큰 문제는 정보기관에 대해 직접 감청을 허용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개정안에 따르면 외국인에 대한 정보기관의 긴급감청은 36시간 이내에 종료되는 경우 법원 등 어느 곳에도 통보할 필요가 없다. 그는 “외국인 감청의 명분으로 정보기관이 직접 감청할 수 있도록 예외를 두는 것은 오남용 소지가 매우 크다”며 “결국 정보기관에 비밀스런 감청 권력을 부여하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방송통신위원회가 1년에 두 번 발표하는 자료에 따르면 감청을 가장 많이 하는 기관은 다름 아닌 국정원이다. 검철이나 경찰·군수사기관에 비해 국정원이 행한 감청 건수가 압도적이다. <표 참조>
법무부가 제공한 2001년부터 2006년 사이 죄명별 감청현황 통계에 다르면 살인죄(603회)·절도·강도(434회)·마약(48회)·성폭력범죄(27회)·미성년자 약취·유인(18회)보다 국가보안법위반(1천23회)의 경우가 월등히 많다. 국가보안법 위반은 국정원이 수사권을 갖고 있는 범죄다.

한나라당은 통신비밀보호법 개정안의 이유로 “지능화·첨단화돼 가는 범죄와 테러 환경에 대응하기 위해 합법적인 통신제한조치를 보장해야 한다”고 밝혔다. 반면 강성준 천주교인권위원회 상임활동가는 “대부분의 감청이 국정원에 의해 이뤄지고 있는 점, 그 대상 범죄도 국가보안법임을 감안하면 통신비밀보호법 개악안은 국정원의 대국민 감시기능에 날개를 달아 주는 것 이상이 될 수 없다”고 말했다.

강화수 IT연맹 수석부위원장은 “인터넷 관련 정책은 IT산업과 연관 산업의 발전을 위해 정부가 장기적이고 미래지향적인 관점에서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며 “사이버통제법안이 IT산업 자체를 위축시키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비판했다.

 
<2009년 6월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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