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장 인테리어 목수인 김동철(55·가명)씨는 올 초부터 체불임금을 받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그는 지난 2007년 10월부터 지난해 10월까지 전남 무안군 남악택지개발지구 아파트 건설현장에서 내장 인테리어 목수 반장으로 일했다.
시공사(원청 건설사)는 ㄱ건설, 하청은 ㅁ건설이었다. 김씨는 ㅁ건설로부터 다시 하도급을 받은 ㅈ인테리어에 속해 일을 했다. 공사는 끝났지만 그와 동료 차아무개(55)씨는 임금 1천200여만원을 받지 못했다. 그는 “2008년 1월부터 임금이 밀리기 시작해 누락된 것이 1천만원이 넘는다”고 말했다. 그가 울화통이 터진 이유는 또 있다. 체불임금을 받기 위해 여기저기 알아보는 과정에서 회사가 고용보험료와 건설노동자 퇴직공제금을 납부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이다. 퇴직공제금이 무엇이길래 김씨의 울화를 치밀게 한 것일까.

건설노동자 노후대책으로 도입

94년 10월 성수대교가 무너졌다. 이듬해인 95년 6월엔 삼풍백화점이 붕괴됐다. 굵직한 대형사고를 계기로 정부는 건설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종합대책 수립에 나섰다. 이 과정에서 다른 산업에 비해 비정규직 비중이 높은 건설현장 노동자들의 복지제도를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일용노동자들의 복지를 향상시켜 ‘성실시공을 하도록 동기를 부여하고 젊은 인력을 유입하자’는 것이다.

다른 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은 근로기준법에 따라 퇴직금을 받을 수 있다. 단 같은 사업장에서 1년 이상 근무를 해야 한다. 하지만 건설일용노동자 가운데 같은 사업장에서 1년 이상 지속적으로 근무하는 경우는 드물다. 때문에 퇴직금제도의 혜택을 받기 힘들다.

고용불안과 함께 노후대책이 없다는 것은 건설노동자들의 가장 큰 불만사항이다.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에 따르면 2008년 12월 현재 건설기능인력 가운데 40대 이상이 71.9%를 차지하고 있다. 전체 취업자 중 40대 이상 구성비가 57.2%, 건설기술관리인력이 35.5%인 것에 비해 월등히 높은 수치다.

정부는 96년 2월 ‘건설근로자 퇴직공제제도’ 도입을 추진하기로 결정했다. 같은해 12월 ‘건설근로자의 고용개선 등에 관한 법률’이 제정됐고 98년 건설노동자 퇴직공제제도가 시행됐다.

임금체불에 퇴직공제금까지 못 받아

퇴직공제제도는 사업주가 건설근로자공제회에 공제부금을 내면 건설노동자가 건설업에서 퇴직할 때 공제회가 퇴직공제금을 지급하는 제도다. 공사예정금액이 5억원 이상인 공공건설현장과 공동주택·주상복합공사·오피스텔공사 200호(실) 이상 현장은 퇴직공제 당연적용 대상 사업장이다. 이들 사업장은 노동자 1명당 하루 4천원씩 공제부금을 납부해야 한다. 사업주가 근무일수만큼 공제부금을 납부하면 건설노동자는 건설업을 그만둘 때나 60세가 넘었을 때 적립된 공제금에 이자를 더해 퇴직금을 받을 수 있다.

김씨가 일한 남악택지개발지구 18블럭은 아파트 9개동 862세대를 짓는 현장이었다. 총 공사금액이 700억원에 달했다. 노동부에 확인한 결과 김씨가 일한 현장의 원청(원수급인)인 ㄱ건설은 10억원 미만 하도급 공사에 대해서는 공제부금을 납부하지 않았다. ㅁ건설은 ㄱ건설로부터 7억7천만원 규모의 공사를 도급받았다.
 
더군다나 ㅁ건설은 2006년부터 2009년 2월까지 해당 현장에서 일한 노동자가 단 3명이라고 신고했다. ㅈ인테리어 소속이었던 김씨는 포함되지 않았다. 때문에 김씨는 임금체불은 물론 퇴직공제·고용보험 혜택을 받지 못한 것이다. 노동부가 내릴 수 있는 처분은 해당 업체에 과태료를 부과하는 것 뿐이었다. 공제금을 관리하는 건설근로자공제회는 지난 2월부터 한시적으로 생활자금 대부사업을 실시하고 있다.

공제회 대부사업 ‘그림의 떡’

건설경기 침체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건설노동자를 대상으로 적립액의 50% 범위에서 최고 300만원까지 빌려 주는 것이다. 지난 22일 현재 약 4만여명의 노동자들이 360억원의 돈을 빌려 갔다. 1인당 90만원꼴이다. 건설일용노동자들의 생활이 그만큼 어렵다는 것을 보여 준다. 98년 퇴직공제금 제도가 도입된 이후 지난 21일까지 총 8만9천256명의 건설노동자들이 1천66억원의 공제금을 지원받았다. 하지만 김씨처럼 사각지대에서 혜택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형틀목수인 이아무개(52)씨는 “고용 문제가 걸려 있기 때문에 원청에서 근무일수를 적게 신고해도 문제를 지적하는 게 쉽지 않다”며 “현장을 여러 곳 돌아다니기 때문에 나중에 적게 신고된 것을 발견해도 일일이 시정을 요구하는 것도 어렵기는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당연적용 대상 현장이 아닌 건설노동자들도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대표적인 예가 플랜트 건설현장 노동자들이다. 다만 포스코는 플랜트건설노조(옛 포항건설노조)의 요구로 공제회에 임의가입해 노동자들에게 혜택이 적용되고 있다.

사각지대 놓인 플랜트건설노동자

98년 도입 당시 하루 2천원이었던 공제금은 지난해부터 4천원으로 인상됐다. 하지만 건설노동자들의 한 달 임금을 대략 200만원이라고 했을 때 퇴직공제금은 여전히 낮은 수준이다. 현재 퇴직공제금은 건설업에 1년 이상(노동일수 252일 이상) 근무한 노동자가 건설업을 떠날 때 받을 수 있다. 252일이면 1년에 100만8천원에 불과하다. 근로기준법에 따른 퇴직금(1년치 200만원)의 절반 수준인 것이다. 때문에 퇴직공제금을 현실화하고 적용대상을 확대해야 한다는 것이 노동계의 주장이다.

김승환 건설노조 수도권본부 사무국장은 “민간공사 현장과 플랜트 현장 등으로 적용대상을 확대해 더 많은 노동자들이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상준 건설근로자공제회 전략기획팀 과장도 “퇴직공제금 적용범위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공감했다.


<2009년 4월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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