받는 시급제 노동자들에게 구조조정은 생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월급봉투만
얇아지는 게 아닙니다. 복지축소에 임금체불, 정리해고로 이어집니다. 일터에서 쫓겨
나는 노동자들은“일한 죄밖에 없다”며 억울함을 호소합니다. 반면에 기업들은“모두
가 살기 위해 사람을 줄일 수밖에 없다”고 강변하고 있습니다. <매일노동뉴스>가 국내
최대 산업별노조인 금속노조와 공동으로 경제위기 현장을 찾아갑니다.

GM대우자동차가 다시 술렁이고 있다. 모기업인 미국 제너럴모터스(GM)의 파산보호 신청 이후 GM대우차에 미칠 영향 때문이다.
GM대우차가 ‘굿 GM’과 ‘배드 GM’ 중 어디에 속할 것인가에 관심이 모아진다. GM대우차가 어느 곳에 속하더라도 강도 높은 구조조정은 불가피하다. GM은 6월1일 파산보호를 신청할 것으로 알려졌다. GM대우차에는 ‘폭풍전야’의 긴장감이 흐르고 있다. 미래에 대한 불안감도 높아지고 있다.
580일 넘긴 천막농성장
인천시 부평구 청천동 GM대우차 서문 맞은편에 자리 잡은 사내하청노동자(비정규직)들의 천막농성장. 지난 29일 <매일노동뉴스>가 찾은 농성장에는 금속노조 GM대우차비정규직지회(지회장 이대우) 조합원 3명이 천막을 지키고 있었다.
천막농성장은 GM대우차 서문 앞 사거리 한쪽을 차지하고 있다. 2개동의 천막농성장은 두 번의 긴 겨울을 보낸 흔적들이 남아 있다. 비바람을 막았던 비닐이 천막농성장 위에 설치돼 있다.
“농성이 오래되다 보니 늘어나는 것은 살림살이 뿐이네요.” 천막 안에는 모기약에서 침낭까지 구비돼 있었다. 겨울에서 여름, 다시 겨울을 거쳐 두 번째 여름 초입에 접어들었다. 천막농성장도 지금 두 번째 여름을 준비하고 있다.
비정규직지회의 천막이 설치된 것은 2007년 10월30일. 지회는 그해 9월 결성됐다. GM대우차가 일부공정에서 업체를 변경하고 외주화한 것이 갈등의 불씨가 됐다. 지회는 고용승계와 외주화 철회를 요구했지만, 지회 조합원 다수가 해고됐다.
감산 장기화로 휴업수당 줄어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지난해 하반기에 경제위기가 닥쳤다. 판매량 감소에 대응하기 위해 GM대우차는 감산체제로 전환했다. GM대우차는 지난해 12월 부평·군산·창원 등 3개 공장 가동을 전면중단했다.
다시 재개된 GM대우차의 생산은 예년수준에 이르지 못했다. GM대우차는 올해 들어 월 평균 12~15일만 공장을 가동하고 있다. 부평공장은 주 2~3일 생산활동이 이뤄지고 있다.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4월 말까지 부평공장의 생산일수가 104일에 그쳤다. 휴업일수는 40일에 달했다.
수출 중심인 GM대우차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급격한 판매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GM대우차는 올해 1분기에 9만7천477대를 수출해 지난해 1분기(20만824대)에 비해 51.5%나 줄었다. 1분기 내수(1만8천576대)도 지난해 1분기(2만8천98대)보다 33.9% 감소했다. 생산대수는 11만5천646대로 1년 전(22만5천465대)에 비해 48.7% 줄었다.
감산은 노동자들의 임금감소로 이어졌다. GM대우차의 임금체계는 일한 시간만큼 월급이 정해지는 시급제다. 공장이 가동되는 날에는 일한시간 만큼의 임금이, 일하지 않은 날에는 휴업수당이 지급된다. 휴업수당은 3개월간 평균임금의 70%가 지급된다. 감산이 장기화되면서 임금이 점차 줄어들고 있다. 휴업수당 산정의 기준이 되는 3개월 평균임금이 적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정규직에 비해 낮은 임금을 받고 있는 비정규직들이 느끼는 임금감소 폭이 크다. 지회에 따르면 부평공장 비정규직들은 올해 2월부터 평균 110만원가량의 월급을 손에 쥐고 있다. 월급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줄어들고 있다.

‘정규직 전환배치=비정규직 정리해고’
“부평공장이 조만간 비정규직 없는 사업장이 될 지도 모르겠어요.” 천막농성장에서 농담 아닌 농담이 나왔다. 경제위기로 비정규직이 대규모로 잘려 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GM대우차는 지난 4월 생산물량 감산에 이은 후속조치로 정규직 전환배치를 단행했다. 전환배치에 앞서 GM대우차와 금속노조 GM대우차지부는 3월20일 고용안정과 전환배치 등을 골자로 하는 고용안정협약서에 합의했다. 회사와 정규직 사이의 고용안정 합의였다.
GM대우차의 전환배치는 판매급감에 대응하기 위해 진행한 작업공정 재배치의 일환이다. 부서별로 진행되고 있는 협의에서는 라인운영속도조절(JPH 조정)과 인력전환배치가 논의됐다.
전환배치에 따라 정규직이 비정규직 일자리로 옮겨갔고, 비정규직이 해고되는 악순환이 나타났다. GM대우차 부평공장에는 3월만 해도 최대 2천500명가량의 비정규직이 일했다. 1차 사내하청업체 비정규직 1천375명, 2·3차 하청업체 비정규직 500~600명, 비생산 간접부서 비정규직 500여명 등으로 추산됐다.
정규직의 전환배치로 인해 기존 일자리에서 밀려난 비정규직은 1차 하청노동자의 70%에 달하는 900~950명으로 알려졌다.
젠트라를 생산하는 부평 1공장에서 도어서브라인·RH서브라인·칵핏서브라인 등 3개 공정을 담당했던 1차 사내하청 ㄷ실업은 정규직 전환배치로 칵핏서브라인을 제외한 2개 공정을 원청인 GM대우차에 반납했다. 비정규직이 담당하던 도어서브라인·RH서브라인에는 5월1일부터 정규직들이 배치됐다. ㄷ실업에 근무하던 127명 가운데 2개 공정의 94명이 무급순환휴직이라는 명분으로 기존 일자리에서 밀려났다.
무급휴직이 희망퇴직으로
전환배치에 앞서 비정규직들은 '무급순환휴직동의서'를 작성했다. 무급휴직은 5월1일부터 실시됐다. 전환배치는 비정규직의 무급휴직에만 그치지 않았다. 무급휴직 한 달이 지나기도 전인 5월 중순부터 각 업체별로 희망퇴직이 진행됐다. 사내하청업체들이 애초에 약속했던 순환휴직은 이뤄지지 않았다.
지회는 무급휴직에 들어갔던 900~950명 중 800명 이상이 희망퇴직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희망퇴직자들에게는 300만원의 위로금이 지급됐다. 이대우 지회장은 “GM대우차를 바라보는 시선으로 인해 처음부터 희망퇴직을 실시하기에는 부담스러웠을 것”이라며 “무급순환휴직이라는 단계를 거치면서 자연스럽게 정리해고를 마무리했다”고 비판했다.
5월에 실시된 GM대우차의 비정규직 구조조정은 규모면에서도 결코 작지 않다. 2001년 대우차 정규직 정리해고(1천725명)의 50%를 넘는다. 노조의 파업 등 격렬한 저항으로 이어졌던 당시 상황에 비춰 본다면 최근 비정규직들의 희망퇴직은 큰 ‘잡음’없이 일사천리로 진행된 셈이다.
비정규직들은 왜 저항 한번 없이 순순히 무급순환휴직과 희망퇴직을 받아들였을까. 이 지회장은 “장기화된 임금체불에 지쳐 있는 상황에서 비정규직들이 미래가 불투명하다는 판단을 내린 것 같다”며 “한마디로 자포자기한 것”이라고 안타까워했다.
아쉬운 정규직-비정규직 연대
비정규직 해고 과정에서 GM대우차 정규직은 그야말로 ‘방관자’였다. 비정규직이 대규모로 잘려 나갔지만,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의 연대활동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정규직이 수세적이고 방어적인 태도를 보인 이유는 이른바 '정리해고 학습효과' 때문이다. 대우차는 2001년 1천725명을 정리해고했다. 2006년까지 1천600여명이 복직했다.
천막농성장을 찾은 정규직 조합원은 “괜히 나섰다가 자신들에게 피해가 돌아갈 수 있다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며 “정규직이 앞장서서 구조조정을 막아 내야 한다는 심리보다는 현재 상황이 원만하게 풀리기를 바라는 기대심리가 높다”고 전했다.
그러나 GM대우차 정규직의 고용안정이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GM의 파산보호 신청과 한국산업은행의 자금지원 과정에서 전제조건으로 인력감원이 진행될 것이라는 소문이 부평공장에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2009년 6월1일>

이대우(34·사진) 금속노조 GM대우자동차비정규직지회장은 “경제위기를 가장 취약한 노동자인 비정규직에게 전가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지회장에 따르면 부평공장 사내하청업체들은 올해 들어 고용유지지원금에서 60일가량의 휴업수당을 지원받았다. 고용유지지원금은 연간 최대 180일까지 지원되기 때문에 업체들은 120일분의 지원금을 고용유지에 사용할 수 있다.
최근 희망퇴직자에게 지급된 300만원의 위로금과 120일치의 고용유지지원금을 합하면 7개월 정도는 고용유지가 가능하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 지회장은 1차 사내하청노동자 1천375명의 70%인 900~950명이 4월에 무급순환휴직동의서를 작성했고, 이 가운데 800명 이상이 5월에 희망퇴직한 것으로 추산했다.
이 지회장은 “공장이 잘 돌아갈 때에는 저임금·고강도 노동을 위해 비정규직을 뽑아 놓고 막상 경제가 어려워지자 공장에서 쫓아내고 있다”고 비판했다.
“지회 활동이 안착되기도 전에 경제위기를 맞았습니다. 비정규직들이 잘려 나가는 상황에서 제대로 된 활동을 펼치지 못한 것이 너무 아쉽습니다.”
이 지회장은 2003년 11월 부평공장 1차 하청업체 ㄷ실업에 입사했다. 자동차 문을 만드는 도어라인에서 일했다. 그는 회사가 일부공정 외주화를 추진하던 2007년 9월 지회를 결성했고, 곧 해고됐다.
지회는 결성과 함께 해고자 복직과 단체교섭을 요구했다. 지난해 12월에는 부평구청 앞에서 120일간의 고공농성도 했고, 올해 1월에는 한강대교 아치 위에 오르기도 했다.
“왜 그렇게 무모한 방법을 선택하느냐고 질문을 많이 받았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극단적인 방법을 취하지 않으면 아무도 우리를 쳐다보지 않기 때문입니다.”
경제위기와 함께 지회 조합원도 줄어들고 있다. 90명에 달했던 조합원은 최근 30여명으로 감소했다. 생계대책은 없다. 지회 조합원에게 금속노조가 지급하던 신분보장기금도 지난해 10월을 마지막으로 중단됐다.
“예전 같았으면 조합원들이 돌아가면서 생계전선에라도 뛰어들 수 있었을 텐데 요즘은 일자리가 없어 그것조차도 쉽지 않습니다.”
이 지회장의 고민은 노동자들에게 각인된 경제위기 피해의식이다. 일터를 떠나고 있는 비정규직들 스스로가 '같이 싸워 보자'는 생각을 갖고 있지 않다. 정규직은 비정규직의 고용을 외면하고 있다.
"모든 노동자가 함께 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연대가 절실한데 생각처럼 잘되지 않네요." 정청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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