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대 정치외교학과에 다니는 최진배(22·사진)씨는 지난 3월 초 군대를 전역한 뒤 복학을 미루고 일자리부터 찾았다. 20년 넘게 '열쇠집'을 하시던 부모님은 2년 전 프랜차이즈 분식집으로 전업했다. '현상유지'만 하다 지난 4월 아예 문을 닫았다. 등록금 1천만원 시대에 대학생이 둘이나 되니, 장남인 최씨가 복학을 미룬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간접고용 유통업 아르바이트의 경험

"구청에 가서 주민등록등본과 이력서를 한 뭉치씩 발급 받았어요. 요즘은 아르바이트도 쉽게 구하기 힘들 거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거든요. 4일 동안 12군데에 지원하고 면접만 6번 봤습니다."
결국 그는 3월10일 유통매장인 세이브존 노원점에 취직했다. 입사 첫날 오전 8시에 출근했다. 인터넷으로 본 구인광고에서는 출근 시각이 오전 9시30분이었다. 최씨는 "첫날이니 가르쳐 줄 일도 많아서 일찍 부르는 줄 알았다"고 말했다.

첫날부터 매장에 들어올 야채 등을 담은 각종 박스를 한 시간 넘게 날랐다. 매장 문을 여는 시각은 오전 10시. 1시간30분가량 일한 대가는 식대로 주는 3천원이 전부였다. 입사 이후 두 달 동안 12일을 이렇게 일했다. 구인광고에는 오전 9시30분에 출근해 오후 6시30분에 퇴근하거나, 오후 1시에 출근해서 오후 10시에 퇴근하다고 적혀 있었다. 회사는 노동시간과 임금을 적은 근로계약서를 쓰자고 하지도 않았다.

"하소연 할 곳도 없었다"

최씨는 그래도 묵묵히 일했다. 그런데 지난 4월10일 월급통장을 보고는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는 지난 3월10일부터 31일까지 22일치 일한 임금으로 67만원을 받았다. 아침 일찍 출근한 수당을 못 받은 것도 문제지만 정체를 알 수 없는 신원보장보험 1만원도 수상했다. 그는 "출근카드에 밤 1시라고 찍혔는데 설마 수당을 안 줄까 했는데 주지 않았다"고 말했다.

최씨가 세이브존 노원점 관리자에게 물었더니 인력업체에 가서 물어보라고 했다. 위드아인이라는 인력업체 주임에게 물었더니 나중에 이야기 해주겠다고만 말했다. 같은 항의를 했던 한 동료는 관리자로부터 "이 XX야, 돈 1만원 가지고 뭐하는 거냐, 짜증나니까 그만 좀 해라"는 막말까지 들었다. 최씨는 아무도 사용자로서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간접고용 노동자의 현실을 몸으로 느꼈다.

"세이브존 노원점에서 모든 지시를 했습니다. 그런데 월급은 인력업체에서 줍니다. 사용자가 한 곳이면 바로 가서 항의하는데 그게 차단돼 있었죠. 다들 왜 우리한테 와서 얘기하냐고만 해요."
위드아인은 세이브존의 노원점·성남점·상동점·광명점 등에 인력을 제공하는 업체다. 세이브존은 2007년 5월까지 원래 직접채용 비정규직이었던 판매노동자 등을 2007년 7월 1일 비정규직법 시행 이전에 외주화했다.

그러니 최씨뿐만 아니라 이곳에서 일하는 20대 초중반 청년들은 물론 '여사님'으로 불리는 아줌마 노동자들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그는 "수십 년 동안 매장에서 랩을 싸는 일을 했고 손가락 관절이 굽었는데도 80만원 조금 넘게 돈을 받는 어른도 있었다"며 "그런데 그 분은 예순이 넘어 퇴직을 앞두고 있어 아무런 문제 제기도 할 수 없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체불임금 13만6천원보다 중요한 것

결국 그는 지난달 25일 서울지방노동청 서부지청에 진정서를 제출했다. 진정 취지는 연장근무에 따른 연장수당 미지급이다. 다니던 직장은 지난달 31일자로 그만뒀다. 체불임금 내역은 조기출근 식대 3천원으로 때웠던 1시간30분의 연장근무수당 미지급분 7만2천원과 야간근무수당 미지급분 6만4천원을 합해 13만6천원이다.

"어떻게 보면 적은 금액이죠. 하지만 많게는 수십 년째 일한 분들과 앞으로 일할 사람들이 제대로 대접받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어요. 현직에 있는 분들은 불이익을 걱정해 이런 진정서를 내기도 힘들잖아요."
서울지방노동청 서부지청은 지난 29일 최씨의 진정건을 담당할 근로감독관을 배정했다. 최씨는 "두 달이 조금 넘는 짧은 아르바이트 경험이었지만 느낀 점이 많았다"고 말했다.

"내가 쓰는 사람이 얼마짜리라는 생각보다 앞으로 내 고객, 파트너 또는 거래처 사람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야 합니다. 사람을 얼마 주고 쓰는 물건이라고 생각하는 인식부터 달라졌으면 좋겠어요."

 
<2009년 6월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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