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성장 바로 옆 회사 정문에는 해고자들이 "사랑하는 자녀들아 미안하다"라고 적은 문구가 눈에 띄었다. 17년간 근무한 해고노동자 김은영(47)씨는 "올해 대학에 입학한 아들이 등록금이 없어 입학을 포기했다"며 "아들이 입학 대신 아르바이트를 선택해 생계를 책임지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노총 광산노련 대림비앤코노조(위원장 이정식)는 지난달 27일부터 회사 정문 앞 천막농성과 출근 선전전을 펼치고 있다.
날벼락 같은 정리해고 통보
대림비앤코의 전신인 대림요업(주)은 지난 68년 박정희 정권 당시 정부투자법인 형태로 설립됐다. 충북 제천과 창원에 공장을 두고 건축자재인 타일과 위생도기 등을 생산하고 있다. 대림비앤코는 지난 2004년 노동부로부터 경공업 대기업부문에서 '안전경영대상'을 받을만큼 경남지역의 견실한 중견기업으로 손꼽힌다. 유가증권시장 상장사인 회사는 지난해 국내 위생도기 제조업부문에서 시장점유율 1위를 차지했다.
그런데 회사는 지난달 7일 경영적자를 이유로 타일 생산부를 폐지하겠다고 노조에 통보하고, 같은 달 21일 1차 정리해고 대상자 10명을 발표했다. 위생도기에서 수익을 내고 있지만, 타일이 중국에서 값싸게 수입되는 탓에 타일부문에서 누적적자가 발생했다는 것이 회사의 설명이다.
대림비앤코는 지난달 30일 공시에서 "지속적인 영업손실과 재고누적으로 인한 수익악화로 타일부문의 생산을 8일부터 중단한다"고 밝혔다. 회사는 "위생도기부문 중심으로 사업역량을 집중하는 것으로 향후 타일부문의 생산재개 계획은 없다"고 덧붙였다. 지난해 이 회사의 위생도기, 타일 등의 생산 총액은 621억원으로 이 가운데 타일부문이 143억원을 차지했다. 생산액의 23%를 차지하는 타일제조업을 폐지하겠다는 것이다.
생산라인 폐쇄는 노동자들의 고용불안으로 이어졌다. 지난달 21일 해고통보를 받은 10명의 해고자중 4명은 생계의 압박으로 어쩔 수 없이 회사가 제시한 명예퇴직을 받아들였다. 타일부문 생산직과 관리직 등 84명이 희망퇴직을 통해 이미 회사를 나갔다. 회사는 지난 7일 타일부문에서 일하던 12명에 대해서도 2차 정리해고를 통보한 상태다. 종전에 정리해고 대상자 10명 중 명퇴자를 제외하고 6명이 남은데다 12명이 추가돼 총 18명이 길거리로 쫓겨날 판이다.
회사 공시자료, "안정적 재무구조 유지"
회사는 지난해 당기순이익이 17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는 것을 해고 이유로 들었다. 하지만 2008년 한 해 당기순이익을 제외한 나머지 재무지표로는 긴박한 경영상의 어려움을 판단할 수 있는 근거가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회사는 2005년 46억원·2006년 22억원·2007년 35억원의 흑자를 기록했다. 2008년 매출액은 2007년(935억원)보다 1.9% 감소한 917억을 달성했다. 2008년 내수는 2007년 934억원에서 2.2% 감소한 914억원을 기록했지만 수출은 같은 기간 1억원에서 4억원으로 늘었다.
재무상황도 안정적이다. 회사가 지난 3월 발표한 공시자료를 보면 자산이 1천143억원으로 전년의 1천191억원이었다. 특히 부채는 전년도 570억원에서 553억원으로 감소했다.
실제로 회사는 공시자료에서 "자기자본비율 51.6%과 부채비율 93.8%로 매우 안정적인 재무구조를 유지하고 있다"고 밝혔다.
노조가 '경제위기에 무임승차해 돈 안 된다고 생각하는 부서를 이번 기회에 정리하려고 하는 속셈'이라고 주장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쌓인 이익잉여금과 부동산자산으로 해고 피해야
그런데도 회사는 정리해고를 고수하고 있다. 이태균 관리이사는 "지난 6년간 타일사업부문 적자가 250억원에 달한다"며 "타일부문의 매출에서 인건비가 56%를 차지하고 있어 구조조정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그는 "위생도기부문도 65%의 가동률을 보이고 있어 위생도기 제조부문의 흑자로 타일부문의 적자를 메우는 구조도 힘들어졌다"고 말했다. 지난 4일 경남지방노동위원회도 노조가 낸 쟁의행위 조정신청에 대해 "노동쟁의라고 볼 수 없어 조정대상이 아니다"고 판단해 노조의 정리해고 철회 투쟁은 어려움에 빠진 상태다.
하지만 노조는 '사람을 자르는 구조조정' 말고도 방법은 많다고 지적했다. 현재 대림비앤코 창원공장 부지 가치는 약 2천억원대로 추산된다. 회사는 지난 98년 공장 부지 10분의 1을 매각해 외환위기 당시에도 15억원의 당기순이익을 기록한 경험이 있다.
특히 회사는 지난 2005년부터 3년간 365억원의 이익잉여금을 확보하고 있다. 이정식 노조위원장은 "지금껏 어려울 때를 대비해 비축한 이익잉여금을 출현해 현재의 위기상황을 극복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매일노동뉴스 2009년 5월11일>
이정식(47) 광산노련 대림비앤코노조 위원장은 "회사가 2008년 한 해 적자가 조금났다고 120명의 노동자를 희망퇴직과 해고로 길거리로 내몰려고 하는 것은 무책임한 태도"라며 "경영상의 문제에 왜 책임을 지는 경영자는 없느냐"고 비판했다.
이 위원장은 "중국산 저가 타일 수입이 늘어나면서 타일부서의 경쟁력이 줄어 폐지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회사의 주장이지만 경영 위기를 해결할 다른 방법은 찾지 않고 사람만 자르려 하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이 위원장은 회사가 산재를 경험했던 이들과 현재 산재환자와 장기근속자 위주로만 해고자를 선정했다는 의혹을 강하게 제기했다. 이에 대해 회사 관계자는 "근무태도와 부서장 평가 등을 고려한 것이지 일부러 산재환자를 골라 해고자로 선정한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위원장은 "인건비 절감만을 위해 고령 노동자와 산재노동자를 쳐내려는 것이라는 의혹을 감출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7일 2차로 정리해고를 통보받은 12명과 함께 정리해고 철회를 위해 경남지역 노동단체와 시민사회단체 등에 해고의 부당성을 적극적으로 알려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오재현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