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시화공단에 있는 미국계기업 파카한일유압. 지난 17일 기자가 찾아간 공장 곳곳에는 ‘경제위기 책임전가 구조조정 중단하라’는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조합원들은 구조조정 반대 문구가 새겨진 투쟁조끼를 입고 삼삼오오 모여 담배를 피웠다.

권오진 금속노조 파카한일유압분회 사무부장은 “지난해까지 꾸준히 영업이익을 냈던 회사가 느닷없이 구조조정을 하겠다고 한다”며 담배연기를 한숨과 함께 내뿜었다. 파카한일유압에서는 대체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파카한일유압이 전체 인원 197명 중 113명을 해고하겠다고 노동부에 신고한 것은 2월27일. 회사는 '경영상이유에 의한 해고계획신고서'에서 "주고객사 발주량 감소에 따른 매출감소"를 해고사유로 적시했다. 노동자들은 3월 초 노동부 관계자로부터 전화를 받고서야 회사의 대량해고 방침을 확인할 수 있었다.

금속노조 파카한일유압분회(분회장 송태섭)는 구조조정 철회를 요구했다. 노조가 반발하자 회사는 해고예정일을 3월31일에서 지난 10일로 늦췄다가, 다시 오는 30일로 연기했다. 회사는 이 과정에서 해고인원을 113명에서 41명으로 줄였다.
회사는 올해 누적적자가 66억원으로 예상돼 현 사업규모 유지가 불가하다는 이유를 댔다. 하지만 노동자들은 이런 회사의 방침을 이해할 수 없다고 입을 모았다. 순익규모나, 매출 증가세로 볼 때 뚜렷한 근거가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금융감독원 감사보고서를 보면 파카한일유압의 매출액은 2005년 282억원에서 지난해 6월 421억원으로 무려 150% 급증했다. 지난해 11월 한국기업데이터 기업분석보고서에 파카한일유압의 기업신용등급은 A, 현금흐름 등급은 최상위 등급인 CR1로 명시돼 있다.

꿈을 품었던 공장이지만

컴퓨터 부품 생산공장에서 일하다 외환위기 당시 해고됐다는 김희철(53·가명)씨는 다시 그때가 떠오른다고 했다. 그는 2006년 '잘나가는 외국계기업'이라는 얘기를 듣고 입사했다.
“맞벌이라도 하고 싶지만 아내는 집안사정 때문에 일도 못나가고, 하나 있는 아이 대학이라도 계속 다니게 해 줘야 하는데 걱정입니다.”

옆에 있던 윤아무개씨가 그의 말을 거들고 나섰다. “생산직에서 일하는 많은 이들이 외환위기 때 해고를 경험해 본 사람들입니다. 고통분담을 하면 했지 해고는 다시 경험하기 싫습니다.”
미국 자본인 파카하니핀은 2005년 한일유압의 지분 100%를 인수하면서 회사 이름을 파카한일유압으로 바꿨다. 노동자들도 새로 뽑았다.

설비투자 없는 공장

노동자들이 모여 있던 뒤쪽에 공장으로 통하는 문이 있었다. 안으로 들어서자 바닥이 미끈했다. 기름 때문이라고 했다. 권오진 사무부장은 "바닥 청소를 요구했지만 회사가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말했다.

파카한일유압의 주요 생산품인 유압컨트롤밸드에 들어가는 유압밸브의 경우 제품테스트에 기름이 사용된다. 때문에 ‘기름먼지’가 많이 날린다. 하지만 공장에는 집진장치가 제대로 설치돼 있지 않았다. 기름먼지를 날려 보내려고 한겨울에도 창문을 열고 작업을 해야 하는 실정이다. 한일유압 시절 개인에게 지급됐던 난로는 회사가 파카하니핀으로 넘어간 뒤 화재위험을 이유로 철거됐다.

조남국(35)씨는 파카하니핀이 회사 지분 100%를 소유한 후 많은 이들이 회사를 그만뒀다고 했다. 조씨는 “파카하니핀이 회사를 인수한 후 임아무개 전 이사가 점심시간에 식당을 찾아와 ‘너희들은 밥이 넘어가냐, 더 좋게 된다고 하더니 이게 뭐야’라고 짜증을 냈던 적이 있다”고 말했다. 회사 임원급이었던 임아무개 전 이사는 결국 파카한일유압을 나와 다른 공장을 차렸다.

공장 안 노동자들은 쉬는시간이 아닌데도 일부는 책을 읽고, 일부는 청소를 하고 있었다. 한 공정의 작업지시서에는 평균 5개 이하의 작업물량만이 기록돼 있었다. 일부 노동자들의 작업지시란에는 ‘정리·청소’가 적혀 있었다.

이날 정리·청소 작업지시를 받은 안순자(48·가명)씨는 출근할 때마다 답답함을 느낀다고 했다. 그는 “아침에 출근해도 물량이 없다는 것을 뻔히 알고 있기 때문에 일할 맛이 안 난다”고 말했다. 회사는 최근 파카한일유압의 물량을 파카코리아 제2공장인 장안공장에 넘겼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상자기사 참조>
분회 관계자는 "파카하니핀 대표가 2006년 한일유압 인수설명회에서 100억원을 투자하겠다고 약속했지만 끝내 지키지 않았다"고 말했다.

파카하니핀이 투자약속을 이행하지 않으면서, 공장설비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파카한일유압의 핵심기술은 풀로(유압컨트롤밸브에 들어가는 부품) 가공이다. 풀로는 1천분의 1의 정밀함으로 미세하게 가공돼야 한다. 그런데 10여대의 풀로 가공기계 중 일부가 고장나 멈춰 있다고 했다. 풀로 가공부문에서 일하는 이동익(30·가명)씨는 "기계들이 20년 이상 돼 고장이 잦다"며 "요즘 기계를 고치는 사람이 한 달에 보름은 회사에 상주한다”고 말했다.

투쟁을 준비하는 분회

조합원들은 하나같이 문제의 본질이 외국자본의 노동인식에 있다고 입을 모았다. 조남국(35)씨는 “회사는 해고를 피하기 위해 연장근로를 폐지하고 임금반납, 연차휴가 소진, 복리후생 지급금 중단을 했는데 모두가 노동자에게 고통을 전가시키는 것뿐이었다”고 비판했다.
분회는 17일부터 노동부와 경기도청 앞에서 1인 시위를 시작했다. 분회는 회사의 정리해고 방침이 철회될 때까지 1인 시위를 진행할 계획이다. 지난달 실시한 쟁의행위 찬반투표에서는 99%의 찬성률이 나왔다. 금속노조도 22일 파카한일유압 앞에서 결의대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송태섭 분회장은 "미국계기업 파카한일유압은 막대한 이익을 냈음에도 경제위기의 책임을 노동자에게 전가하고 있습니다. 도대체 우리가 뭘 잘못했습니다. 열심이 일한 죄밖에 없습니다. 회사의 정리해고 방침은 반드시 철회돼야 합니다"고 경고했다.

 
<매일노동뉴스 2009년4월20일>

금속노조 파카한일유압분회(분회장 송태섭)는 파카코리아가 파카한일유압의 독보적인 유압컨트롤밸브 기술과 물량을 빼돌렸다고 주장하고 있다. 회사는 "자체 개발했을 뿐"이라며 반박하고 있다.
분회는 지난달 파카코리아를 방문해 파카한일유압의 유압컨트롤밸브가 생산되고 있는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분회 관계자는 "유압컨트롤밸브를 생산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1년간의 연구개발과 1천장의 설계도면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3년간의 개발기간이 필요하고 1년간의 테스트 기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파카코리아 장안공장이 본격적인 가동에 들어간 것은 2008년 6월. 분회 주장에 따르면 유압컨트롤밸브를 개발·생산하기에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다.
분회는 파카코리아가 파카하니핀 서울사무소를 인수합병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라고 주장했다. 파카하니핀 서울사무소는 한국 내 파카계열사의 영업을 담당하는 곳으로 99년 파카코리아에 인수·합병됐다. 파카코리아의 대표이사가 파카하니핀 한국총괄사장을 맡고 있다. 파카코리아가 파카하니핀의 한국계열사 경영에 관한 지배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분회는 파카한일유압의 물량·기술 유출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하고 있다.
이에 따라 파카코리아와 파카한일유압이 다른 법인이기 때문에 독립적인 업체라는 식의 회사 주장은 설득력이 부족하다. 파카하니핀이 발행하는 사보인 'LIFE@PARKER'에는 "파카코리아가 2005년 한일유압을 인수했다"는 대목이 나온다. 회사는 법인이 다르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실제 생산과 영업은 파카코리아가 책임지고 있다는 분회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다. 더구나 파카코리에서 생산된 유압컨트롤밸브는 파카한일유압의 주 거래처인 두산인프라코어에 납품되고 있다. 회사가 정리해고 추진의 주요 이유로 밝혔던 "주고객사 발주량 감소"가 실제로는 파카한일유압 스스로에 의해 진행된 셈이다.  정영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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