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위기 이후 10년이 지난 2009년. 여성노동자들이 또다시 경기침체 한파 속에 '구조조정 0순위'로 내몰리고 있다. 최근 인사개편을 한 한국화장품은 생산직 여성노동자들을 영업직으로 원거리 발령을 내는가 하면, 현대백화점은 인건비 절감을 위해 정규직 여성노동자들을 기존 비정규직이 하던 업무로 전환배치해 논란이 일고 있다.

◇근속연수 높은 여성노동자 전환배치=4일 화학노련에 따르면 한국화장품은 최근 직원 33명에 대한 인사개편을 단행했다. 한국화장품노조(위원장 이덕행)는 인사발령을 받은 33명 가운데 조합원 18명에 대한 인사가 “퇴직을 강요하는 부당한 인사발령”이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노조에 따르면 인사발령을 받은 조합원 18명 중 여성노동자는 14명. 대부분 10~20년 동안 생산 또는 행정서무 업무를 맡아 오던 40대 이상의 여성노동자들이다. 그런데 이들이 영업직으로 발령났다. 그동안 전혀 하지 않았던 생소한 부서에 배치된 것이다.
특히 음성공장에서 제품을 포장하는 일을 했던 생산직 여성노동자 9명은 서울 영업직으로 원거리 발령이 났다. 대구에서 서울로 발령을 받은 한 40대 여성노동자는 자녀가 심장질환을 앓고 있어 계속 현지근무를 할 수 있도록 회사측에 선처를 호소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 노동자는 퇴사를 심각하게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화장품 단체협약(12조)에 따르면 노조 임원에 대한 인사는 사전에 합의를 해야 힌다. 그런데 회사측은 공장물류팀에서 근무하던 여성부위원장을 서울 영업직으로 발령하면서 노조와 합의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회사측은 최근 경기침체와 매출부진 등을 이유로 “관리직 내근 여직원과 단순노무 고임금자를 영업직으로 전환배치하겠다”고 노조에 밝혔다. 이덕행 위원장은 “20년 가까이 생산직 업무를 하던 여성노동자들에게 다른 지방에서 영업직으로 일하라는 것은 사실상 일을 그만두라는 의미”라며 “노조와 협의를 거치지 않은 일방적 구조조정”이라고 반발했다.
노조 간부들은 지난달 말 충북지방노동위원회에 부당전보발령 및 부당노동행위 구제신청을 하는 한편 서울 본사 앞에서 천막농성을 진행하고 있다. 현재 중앙노동위원회에서 쟁의조정 절차를 밟고 있다.
◇비정규직 업무에 배치, 비정규직은 어디로?= 현대백화점은 지난달 26일 정규직이던 조장과 서무담당 여직원 124명을 단기채권추심이나 백화점 회원모집을 하는 업무로 전환배치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조장은 매장에 입점한 업체의 직원 교육과 직원들의 건의사항을 회사측에 전달하는 업무를 맡고 있다. 백화점과 직원 사이의 가교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백화점측은 경비절감을 위해 정규직인 이들을 백화점 카드의 단기채권추심이나 회원모집 등 그동안 용역노동자나 아르바이트가 하던 업무에 배치하겠다고 밝혔다. 노조 관계자는 "직무에 대한 설명이나 전환배치에 대한 이유를 충분히 듣지 못했다"고 반박했다. 회사측은 그러나 경비절감을 위해 전환배치를 미룰 수 없다는 입장이다. 회사 관계자는 "인사발령은 이미 결정됐다"며 "전환배치를 한 뒤에 보완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현대백화점은 최근 이른바 '업무개선프로세스'를 추진하고 있다. '담당→조장→서무'로 돼 있는 업무구조에서 조장과 서무를 없애겠다는 것이다. 정규직 여성노동자들이 옮겨간 비정규직 업무에서 일하던 비정규 노동자에 대한 대책도 없다.
노사는 지난해 말 현대백화점 부산점 인력감축을 놓고도 갈등을 겪었다. 회사측은 경비절감을 이유로 직원 53명에 대한 감원을 제안했다. 노조는 부산점의 인력운영과 매출자료를 검토한 뒤 인건비를 제외한 다른 경비를 절감해 인원을 유지할 수 있는 근거를 제시했다. 노사는 여전히 팽팽한 의견 차이를 보이고 있다.

◇10년 전 IMF 당시 인사노무관리 답습= 지난 99년 농협은 외환위기로 어려워진 회사 사정을 이유로 농협 내 부부사원 중 여성을 우선 해고하는 방침을 밝혀 논란을 일으킨 바 있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났지만 위기 타개를 위한 기업의 인사노무관리방식은 여전히 10년 전에 머물러 있다. 국책연구기관의 한 연구위원은 "기업들이 성별·나이별·고용형태별로 가장 취약한 계층부터 먼저 내치는 10년 전 인사노무관리 관행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며 "사람을 자르는 방식이 아닌 다른 방식의 구조조정 방식을 찾기 위한 특단의 조치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전환배치의 근거인 단순업무로 한번 분류되면 설사 경기가 회복돼도 한번 추락한 임금이나 노동조건을 회복하기도 어려울 것"이라고 우려했다.
오재현 기자
조현미 기자
 
 
<매일노동뉴스 1월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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