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부천시 여월동의 주택공사 아파트 신축공사 현장. 최근 전문건설업체가 경기불황을 이유로 임금을 삭감해 노동자들이 반발하고 있다. 조현미 기자 ⓒ 매일노동뉴스
지난 12일 오후 찾아간 경기도 부천시 여월동의 주택공사 아파트 신축공사 현장. 타워크레인이 4대가 지하층 공사를 진행하고 있었다.
한창 바쁘게 일할 오후 3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지만 형틀목수 노동자 10여명이 원청업체인 ㅇ건설 현장사무소 앞에서 농성 중이었다.

“일당 12만원으로 알고 일을 했는데 지난 10일에 115만원밖에 입금이 안 됐어요.”
ㅈ아무개(50)씨는 지난달 15.5일을 일했다고 했다. 원래대로라면 186만원이 입금돼 있어야 하는데 70여만원이나 적은 돈이 들어왔다.

같은 기간 일한 노동자들끼리 월급도 제각각이었다. 똑같이 15.5일을 일했다는 ㄱ아무개(60)씨는 139만원을 받았다. 그런데 통장을 보니 입금자 명의가 전문건설업체(하청)인 ㅍ건설이 아닌 김아무개씨로 돼 있었다. 팀장인 황아무개씨의 부인이라고 한다. 올해부터 시공참여자제도가 폐지되면서 하청업체가 건설노동자를 직접고용해 임금을 지급해야 하지만 ㅍ건설은 팀장을 통해 임금을 지급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예 임금을 받지 못한 노동자들도 있었다. ㅇ아무개(52)씨와 ㅅ아무개(56)씨는 이날까지 돈을 받지 못했다.
“팀장 밑의 총무가 와서 하는 말이 계좌번호를 잊어버렸다고 해서 다시 불러줬어요. 저녁때 확인해 보라더니 아직도 입금이 안 됐네요.” ㅅ씨는 "은행 기계가 고장이 나서 돈이 안 들어갔다니 그게 말이 됩니까"라고 울분을 토했다.

“공사중단·임금삭감, 하나를 선택하라”

ㅍ건설 현장소장은 “유로폼(건축자재)값이 두 배 이상 상승한 데다 본사 자금사정이 안 좋아 동절기 공사를 중단할 것인가 임금을 삭감할 것인가 고민했다”며 “조장(팀장)과 상의해 일당 1만원을 삭감하기로 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11월 일당부터 1만원이 삭감됐다는 것. 그는 “현장에 있는 90%의 노동자들이 이에 찬성했다”고 말했지만 농성 중인 노동자들은 “사전에 그런 얘기를 듣지 못했고 월급 당일에서야 임금이 삭감됐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반박했다. 노동자들이 임금이 삭감된 사실을 모른 채 일을 했다는 얘기다.

ㅈ아무개(50)씨가 지난달 임금이 입금된 자신의 통장을 보여 주고 있다. 임금이 삭감돼 70여만원이나 적게 들어왔다. 입금자는 건설업체가 아닌 팀장의 부인이다. 조현미 기자 ⓒ 매일노동뉴스
건설업체에서 임금을 직접 지급하지 않고 팀장 부인 명의로 입금이 된 것에 대해 업체측은 “하루 출력인원(현장에서 일하는 인원)이 들쑥날쑥하고 단기간 일하다 나가는 사람이 많아 계좌번호를 모두 확보하지 못했다”며 “조장(팀장)에게 돈을 주면 조장이 입금하도록 하고 있다”고 말했다. 팀장인 황아무개씨가 신용불량자여서 부인에게 돈을 입금했다는 얘기도 덧붙였다.

팀장이 일당 1만~2만원씩 가져가

ㄱ아무개(60)씨는 9~11월 3개월치 월급을 다른 사람처럼 계좌가 아니라 노란봉투로 받았다. ㄱ씨는 “시다오께 오야지인 황아무개씨 밑의 또 다른 오야지(상급 팀장) 밑에서 일하기 때문”이라고 털어놓았다. 일당도 제각각이다. 9월부터 10월까지는 일당 10만원을 받았고, 11월엔 9만5천원을 받았다.

같은 기간 ㄱ씨와 함께 일했다는 ㅊ아무개(62)씨는 일당으로 10만원 정도를 받았다고 했다. 그런데 ㅊ씨는 지난 10월6일에 분명히 일을 했는데 돈을 받지 못했다.

“출력일보(건설노동자들이 출근했다는 사인을 하는 서류)는 팀장이 일괄적으로 사인을 하는 경우가 있어요. 그날 분명히 일했는데 누락된 거예요. 식당에서 제가 밥 먹은 것도 사인이 돼 있다니까요.”

결국 전문건설업체측에서 노무관리를 하지 않고 시다오께 오야지나 오야지 등 팀장급들에게 노무관리를 맡기다 보니 관리가 허술한 것이다. 이상한 점은 ㅍ건설측에서 밝히는 하루 일당이다.

ㅍ건설 현장소장은 10월까지 하루 일당은 식대를 포함해 13만5천원을 지급하고 11월 일당부터 1만원을 삭감했다고 했다. 업체측에서 주장하는대로 식대 1만5천원을 빼면 하루 일당은 12만원이다. 하지만 9~11월 사이에 일한 ㄱ아무개씨와 ㅊ아무개씨는 9만5천~10만원의 일당을 받았다. 2만원 정도가 모자란다. ㅊ씨는 "팀장이 중간에서 가져간 것"이라고 말했다.

원청 ㅇ건설 관계자는 "공정별로 노임이 다르다"며 "일괄적으로 12만원이 지급되는 것은 아니다"고 해명했다.
ㅍ건설 관계자는 "팀장과 도급계약을 한 사실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건설노조 경기중서부건설지부 관계자는 “시다오께 오야지가 자기 팀뿐만 아니라 다른 팀 간식까지 챙겨주고 있다”며 “물량도급이 아니면 자기 일이 끝났을 때 도와 주기도 하는데 팀별로 구역을 나눠 일을 하다 보니 자기 구역 일만 하고 있다”고 말했다.

주공, "팀장이 임금지급…금시초문"

현장에 대한 총괄 책임을 맡고 있는 주택공사 관계자는 팀장을 통해 임금이 지급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금시초문”이라고 답했다. 그러면서도 불법다단계하도급에 대해서는 부인했다. 주공 관계자는 “불법하도급이라면 하청이 팀장한테 일괄도급을 줘야 한다”며 "팀장이 임금을 계좌로 입금했다는 사실만으로는 불법하도급이라고 단정지을 수 없다"고 말했다. 주공과 원청업체 관계자는 “노동자들이 임금을 받았다는 것을 직접 서명한 일용근로소득 지급명세서를 매달 제출받고 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현장 노동자들은 “월급명세서도 없이 그냥 입금해 주는 대로 임금을 받았다”며 “그런 서류에 사인을 한 적이 없다”고 반박했다.

오희택 건설노조 조직쟁의실장은 “팀장이 도급계약을 한 것이 아니라면 굳이 노무관리를 할 필요가 있겠느냐”며 “사실상 불법하도급”이라고 주장했다.


‘시공참여자제도’ 폐지 1년 됐지만 실태조사 한 차례도 없어

지난 10월 말까지 부도난 건설업체는 330여개. 정부가 경영위기에 놓인 건설사를 살리기 위해 약 9조원의 공적자금을 투입하기로 했지만 건설현장의 노동자들은 이미 ‘경기불황’을 몸으로 직접 느끼고 있다.

김태범 건설노조 토목건축분과 분과장은 “부천의 주공 현장뿐만 아니라 대구와 인천에서도 일방적으로 임금이 삭감되는 일이 있었다”며 “경기침체를 틈타 전국적으로 이런 사태가 확산될 것으로 우려된다”고 말했다.

임금삭감도 문제지만 중간에서 ‘노무관리’를 명목으로 팀장(오야지)들이 일당의 일정 부분을 가로채는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현행 근로기준법(9조)에 따르면 누구든지 법률에 따르지 않고는 중간 이익을 취득할 수 없다.

전문건설업체와 팀장이 도급계약을 할 수 있도록 허가한 ‘시공참여자제도’가 폐지됐지만 건설노조는 “9월에서 11월 사이에만 33개 현장에서 불법하도급 사례가 있었다”고 주장했다. 게다가 정부는 올 들어 단 한 차례도 전국단위의 불법다단계 하도급 실태조사를 벌이지 않았다.

국토해양부 관계자는 “위법사항을 제보하면 조사하는 방식의 ‘옴부즈맨 제도’를 시범적용해 확대 운영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며 “내년부터 공공기관에서 발주하는 공사에 대해서는 자체적으로 책임지고 조사해 결과를 통보하도록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건설노조는 국토해양부에 공동으로 실태조사를 벌이는 방안과 노조에서 최근 공개한 33개 현장에 대해서만이라도 조사에 나서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국토부와 건설산업연맹은 지난 5월 정례협의회에서 6월 중 불법하도급 명예단속원 제도를 실시하기로 합의했지만, 이행되지 않았다.   조현미 기자


<매일노동뉴스 12월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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