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비정규직 노동자 규모가 53%가 아니라 26.4%에 불과하다는 노동경제학회와 한국노동연구원의 연구결과가 일부 언론을 통해 발표되었다. 특히 노동경제학회 연구팀의 한 연구자는 이른바 '비정형근로자'에 대한 정책으로 "근기법의 해고규제 완화와 퇴직금제도의 폐지내지 완화 등 정규직에 대한 노동법상의 보호를 완화하여 정규직과 비정규직간의 임금 및 근로조건 격차를 완화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기까지 했다.

이같은 주장이 노동부로부터 막대한 비용의 연구용역에 대한 보고형태로 발표되었다는 사실에 주목하면서, 이것이 앞으로 정부의 비정규 노동자 대책의 기초로 활용될 것에 심각한 우려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통계수치에 집착하는 사람, 그들은 누구인가

미리 밝혀둘 것은 한국비정규노동센터는 비정규 노동자가 50%를 넘었다는 사실 그 자체에 집착해오지 않았다.

우리가 말하고자 했던 것은 비정규 고용의 급증 '추세'와 그들의 사회적 '조건'이 갖는 심각성이었다. 그러나 바로 이런 이유에서 한국노동경제학회의 연구결과와 이를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왜곡하려는 사용자단체와 일부 언론, 그리고 "OECD 보고서가 잘못된 것이고 비정규직 문제가 심각하지 않다"는 투의 선정적인 보도자료를 배포하면서 정작 그 책임은 개별 연구자와 외부 기관에 떠넘기고 있는 노동부의 희한한 '언론플레이'를 보면서 대단히 실망하고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노동경제학회는 통계청의 [경제활동인구 부가조사] 원자료를 이용하여 '비정형 근로자' 수가 3,423천명으로 전체 임금노동자의 26.4%라고 추정하였다. 범주별로 보면 고용계약 기간이 1년 미만인 노동자가 13.5%(175만명)이고, 여기에 파견/용역/가내근로 등 간접고용 노동자가 16.2%(210만명), 그리고 시간제(파트타임) 노동자가 9.4%(120만명)으로 조사되었다. 이 가운데 서로 중복되는 부분을 제거한 결과 비정규직 비중이 26.4%로 나왔다는 것이다.

통계기준 그 자체로만 본다면 '부가조사'의 비정규직 구분은 그동안의 종사상 지위구분에 비해서는 여러 측면에서 진일보한 것이다. 파견, 용역 및 특수고용형태 노동자들이 통계에 포함되었고, 시간제 노동자들도 함께 파악될 수 있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그러나 노동경제학회 연구팀의 비정형 노동자 범주에는 결정적으로 '1년 미만의 고용계약'을 체결하고 있으면서, 계약을 수차례 반복갱신하거나 자동연장하는 방식을 통해 계속근로기간이 1년이 넘는 노동자들이 모두 제외돼 있다. 이들이 정규직과 동등한 노동법상의 보호나 근로조건을 보장받는다면 하등 문제될 것이 없다. 그러나 현실은 결코 그렇지 않다.

*1년 이상 임시직은 정규직이다?

오히려 계속근로 기간이 1년을 넘는 비정규 노동자들에 대한 일방적인 해고가 훨씬 더 일반적이다. 그들은 '단지 비정규직이라는 이유' 만으로 한마디 항의도 하지 못하며, 앞으로도 평생을 실업과 비정규직을 전전해야 하는 상황이다. 결국 노동경제학회는 언제 잘릴지 앞날을 알 수 없는 상당수 노동자를 정규직으로 분류했다. 사정이 이러한데도 "비정규직의 규모가 53%가 아니라 26%에 불과하다"는 주장을 펴는 것은 눈을 가리고 고양이 흉내를 내는 것에 불과하다.

그것이 아니라면 계속근로기간이 1년을 초과하는 노동자를 실제 노동조건이나 사회적 보호장치에 있어서도 통상(정규) 근로자로 대우하도록 하는 것이 마땅하다. 비정규직의 규모를 억지로 줄여서 문제의 심각성을 호도하려는 의도가 아니라면, 통계수치로만 비정규직이 26%라고 주장할 것이 아니라 노동자의 실제 상태를 그것에 조응하도록 해야 한다는 말이다. 노동경제학회에 연구용역을 의뢰한 노동부가 이 점을 가장 먼저 유념해야 할 것은 물론이다.

이렇게 볼 때 한국비정규노동센터와 양대 노총, 참여연대, 한국여성단체연합 등 32개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비정규공대위'가 국회에 제출한 입법청원안에서 "기간을 정한 고용은 임시적, 일시적인 사유가 명백할 경우로 한정하고, 그 기간은 1년을 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요구한 것은 너무도 정당하다.

*더 이상 정부가 할 일을 미루지 말라

그리고 연구팀도 인정하다시피 26.4%의 비정규직 비중이나 17.6%로 추산된 임시직 규모도 결코 적은 수가 아니다. OECD 회원국 가운데 가장 높은 수준이며, 이는 한국의 노동시장이 유연화를 넘어서 심각한 '불안' 상태에 놓여 있다는 국내외의 기존 연구들을 재확인시켜준 것이었다. 더구나 사회보험과 각종 부가급여의 지급 등을 분류기준으로 추가할 경우 비정규직 규모가 46.1%에 이른다는 분석결과는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정작 더 중요한 것은 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조건이다. 비정규직의 상대적 임금은 단순비교로는 정규직의 49.5%에 불과하고, 노동시간과 인적특성, 직무특성을 통제한다 하더라도 - 이같은 통제값의 타당성이 검증된 것은 아니다 - 그 차이는 20%가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것 역시 양대 노총을 비롯한 노동계의 자체 조사에서 이미 확인되었던 사실이다. 게다가 고용보험, 국민연금, 의료보험 등 3대 사회보험 가입률은 각각 14.6%, 14.3%, 16.2%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것을 방치한다면 결국 무책임한 기업들을 '시장의 승자'로 만들어줄 뿐이다.

우리가 이번 연구결과를 통해 얻어야 할 진정한 교훈은, 비정규 노동자에 대한 제도적인 보호장치를 마련하고 기업들의 무분별한 비정규직 대체와 확대를 규제하는 일을 더 이상 늦추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노동자의 억울한 고통을 더는 일에는 게으르면서, 보고서의 숫자 놀음에만 민첩한 태도를 고치지 않는 한, 문민정부 수준을 넘어서는 민주주의조차 가능할 리가 없다.

국회에 관련법 개정안이 청원된 지 석 달이 넘었고, 다수의 의원입법안도 정부 탓으로 둘러대면서 대기중이다. 11월말로 약속했던 부처간 협의 시한은 대통령의 입을 빌려 2월말로 늦춰지고 말았다. 시간만 때우는 식의 '구렁이' 행정이 매양 통할 것이라는 착각에서 정부는 하루빨리 벗어나야 한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