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공단’의 역사는 지난 1964년에 조성된 서울 구로공단(현 디지털산업단지)에서 시작됐다. 공단이라 불리는 산업단지는 경제성장의 전초기지 역할을 해왔고, 일자리 창출의 저수지였다. 국가산업단지·지방산업단지·농공단지·외투기업전용단지·자유무역지역 등이 산업단지로 분류된다. 그렇다면 산업단지가 여전히 우리 경제성장의 견인차 역할을 하고 있는 걸까. 고용창출의 저수지 역할을 하고 있는 걸까. 대구 성서지방산업단지, 마산자유무역지역, 반월·시화공단을 찾아가 속사정을 살펴봤다.



#1. 경상남도 마산시에 살고 있는 손미자(40․여)씨는 지금 ‘백수’다. 이곳저곳 입소문을 내고 있지만, 일자리 구하는 것이 쉽지가 않다. 20년 동안 마산자유무역지역에 위치한 한국산본에서 시계문자판 조립작업을 한 손씨는 지난해 일자리를 잃었다. 일본산본제작소가 모기업인 한국산본은 경영이 악화되면서 지난해 공장가동 중단을 선언했다. 8개월 동안 공장정상화를 요구하는 항의농성과 일본원정을 해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결국, 남은 직원 50여명에게 1인당 400만원의 위로금을 지급하고, 공장은 완전히 폐쇄됐다.

손씨는 “외국의 본사를 두고 있는 외자기업은 철수해버리면 그만”이라며 “길거리로 내몰린 노동자들은 갈 곳이 없다”고 하소연했다.

마산자유무역관리원에 따르면 시계제조 업체 한국시티즌(2002년), 반도체 모듈생산을 하는 한국동광(2006년), 산요계열사인 동경전자(2006) 등 21개의 기업이 공장을 철수했다. 대부분 일본계 외자기업이며, 500명 이상 고용했던 대형기업들이었다.

#2. 우리나라 최대 지방산업단지인 대구 성서공단. 지난 2000년 삼성상용차가 퇴출된 후 여기서 대기업은 찾을 레야 찾을 수 없다. 성서공단에는 금속과 전자, 섬유업종을 중심으로 2천3백여개의 업체가 입주해 있고, 여기서 일하는 노동자는 5만5천명이 조금 넘는 수준이다. 단순히 계산해도 업체당 평균 종업원수가 24명에 불과하다. 300인 이상 사업장은 10개에 지나지 않는다.

성서산업단지관리공단 관계자는 “삼성상용차가 망하면서 일부 부품업체는 같이 망하고 살아남은 업체들이 위기를 극복하고 있다”며 “하지만 공단 전체로 보면 중소영세업체들로 채워지고 있는 점이 우려된다”고 말했다.

대구 성서공단의 경우 기형적인 ‘공장부지 분할’과 ‘임대사업’이 등장하고 있다. 계획 공장용지가 ‘누더기’가 되는 현상이 방치되고 있는 것이다. 영세한 제조업체들이 임차기간이 끝나면 쉽게 공장을 접을 수 있고, 이동이 자유로워 일명 ‘철새공장’도 확대되고 있다. 경기침체가 장기화되면서 사업성이 불투명한데다 경영이 어려워도 피해가 적다는 심리가 임차공장을 양산시키고 있는 것이다.

#3. 경기도 시흥시 정왕동은 시화공단 배후에 있는 반월․시화공단 노동자 밀집 주거단지다. 길목마다 비치된 4~5종의 생활정보지마다 구인광고가 수백개씩 실려 있다.

‘OO 아웃소싱’이라는 곳의 구인광고는 이렇다. “파견사원 모집, 전자부품 생산, 나이 만 30세 이하, 월 130만원, 통근버스 운행, 6개월 후 정규직 전환 가능.” 구인광고 속에 공단의 고용형태와 노동법망의 구멍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파견업체들은 자동차부품, 전자부품 생산업체에 대한 구인광고를 거리낌 없이 하고 있다. 허술한 파견법 규제 탓이다.

현행 파견법은 제조업 직접 생산공정 업무는 제한하고 있지만 ‘출산·질병·부상 등으로 결원이 생긴 경우 또는 일시적·간헐적으로 인력을 확보할 할 필요가 있는 경우’에 한 해 예외를 인정하고 있다. 이 규정에 따라 6개월(3개월+추가 3개월) 동안은 생산라인에도 파견 노동자를 쓸 수 있다. 대표적인 수도권 공단인 반월․시화공단은 이러한 고용형태가 확산되고 있다.

김수정 시화노동정책연구소장은 “종전에는 기업이 직접 채용해 수습기간을 두고 정직원으로 삼았는데 이것이 변했다”며 “지금은 사람이 필요하면 파견업체를 통해 뽑고, 구직자도 파견업체를 찾아가게 됐고, 정규직 사원을 뽑을 때도 파견 받는 6개월을 수습기간으로 쓴다”고 말했다.


산업단지공단에 따르면 2006년말 현재, 산업단지는 전국적으로 608곳에 달한다. 산업단지의 기업규모별 업체수를 보면 소기업(86.6%), 중기업(12.2%), 대기업(1.2%) 순이다. 산업단지의 평균 분양률은 90%대 이상이다. 고용인원만 128만여명, 평균 가동률은 최근 몇 년간 80%대를 유지하고 있다. 입주업체 비중으로 보면 전기전자, 운송장비 제조업체의 비중이 가장 높다. 산업단지는 전체 제조업의 생산액의 35%가까이 차지할 만큼 우리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통계상으로 살펴본 산업단지의 겉모습이다.

하지만 전국의 공단은 지금 ‘중병’을 앓고 있다. 매우 복합적인 증상을 보이고 있다. 외자기업과 대기업이 떠난 후 텅 빈 공단이 늘어나고 있다. 중앙정부와 자치단체의 지원으로 이를 메우고 있으나, 떠난 공장은 중소영세업체들로 채워지고 있다. 공장부지는 분할돼 ‘누더기’가 되고 있고, 임차기간이 끝나면 쉽게 공장을 접을 수 있는 ‘철새 공장’도 늘고 있다. 지금 남아있는 공장들도 사내하청과 하도급업체로 전락하고 있다. 정규직 노동자는 비정규직화 되고, 파견·용역직이 확대되고 있다. 겉으론 멀쩡해보이는 공단이 곪고 있다는 것이다.


공단을 떠나는 외자기업·대기업

공단에서 외자기업과 대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높다. 공단마다 외자기업과 대기업의 수는 적지만 이들이 고용하고 있는 인원과 생산액 비중이 높다. 산업단지공단에 따르면 지난해 연말 국가산업단지의 기업업체 규모별 업체수와 생산액 비중을 보면 300인 이상 대기업은 1.2%에 불과하나 생산액 비중은 72.4%에 달한다. 여기에 수직계열화된 대기업의 경우 하청 부품업체와 함께 산업단지에 들어오기에 고용유발 효과가 매우 크다. 그런데 대기업이 공단을 떠나고 있다. 여기에는 외자기업도 속한다.

대기업과 외자기업이 공장을 버리고 떠나는 대표적인 곳은 마산수출자유지역이다. 외자기업의 탈출 러시가 나타나고 있다. 공장철수는 198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대표적인 공장철수 기업으로는 한국TC, 한국수미다, 한국시티즌이 꼽힌다. 미국계 컴퓨터, 전자관련 부품업체 한국TC는 철수기업 1호에 해당한다. 1972년 입주한 한국TC는 1989년 폐업당시 8천만달러 수출에 1천800여명을 고용하고 있었다. 1990년에 폐업한 한국수미다전기도 한때 연간수출액 3천400만달러, 노동자 1천820명 규모의 대형기업이었다. 1978년 마산자유무역지역에 설립된 한국시티즌은 1980년대 중반 2천800여명의 직원을 유지할 정도로 규모가 컸으나 2002년에 결국 공장을 폐쇄했다. 산요계열사 동경전자도 2006년 말 폐업을 완료했다. 오디오 완제품 생산업체 동경전자는 한때 자유무역지역에서 선두권 업체에 해당했다. 이들업체들이 떠나는 이유는 여러 가지다. ‘제품의 사양화로 인한 물량 감소’, ‘인건비 상승’, ‘노동조합의 설립과 저항’이 그것이다. 외자기업의 경우 보다 싼 인건비를 찾아 동남아나 중국으로 생산기지를 옮긴 것이 근본 이유라 할 수 있다.

이렇듯 마산수출자유지역을 떠난 외자기업 및 대기업은 약 20여개다. 물론 외형적 변화는 없다. 지난해 말 현재, 79곳이 새로 입주해 떠난 업체의 자리를 메워줬기 때문이다. 문제는 마산자유무역지역의 비중이 급격히 떨어졌다는 점이다. 1987년만 해도 3만6천명을 고용했던 이 지역은 현재 7천600명으로 총고용량이 줄어들었다. 수출액 비중도 감소했다. 지난 2000년만 해도 수출액이 44억달러였으나, 점차 축소돼 2006년엔 39억달러로 떨어졌다. 아울러 외자기업이 떠나고 남은 기업의 하청기업화가 급속히 진행되고 있다. 또 단순 조립가공을 했던 외자기업 직원들은 갈 곳이 없었고, 대부분 비정규직으로 전락했다.

비단 이런 모습은 마산자유무역지역에 한정되지 않는다. 300만평이 넘는 지방 최대 산업단지인 대구 성서산업단지의 경우 지난 2000년 삼성상용차가 퇴출된 후 이 곳에서 대형 기업은 손에 꼽는다. 이곳에 남은 300인 이상 사업장은 10여개에 불과하다. 수도권 지역의 공단인 부천지역의 경우 98년 당시 ‘빅 3’라 불렸던 대규모 사업장인 경원세기, 동양엘리베이터, 유성기업이 각각 다른 이유로 떠났다. 수도권에서 최대 산업단지인 반월·시화공단의 경우도 공장 8천개 가운데 대기업이 37개(반월 28개, 시화 9개)에 불과하다. 최근 대폭 오른 땅값 탓에 공장이 이전된 사례도 많다. 시화공단의 최근 땅값은 평당 300~500만원, 반월공단의 땅값은 평당 300만원 선인데 위치에 따라 700만원에 거래되는 곳도 있다. 천정부지로 오른 수도권 지역의 땅값 때문에 공장을 버리고 떠나고 있는 것이다.

‘개미’공장, ‘철새’공장만 수두룩


공단을 떠나는 기업의 빈 자리는 새로운 기업이 들어선다. 여기에는 특정 업종이 사양화되고, 신흥 업종이 부상하는 맥락과 관련이 깊다. 공단의 업종별 입주업체 비중을 보면 과거엔 섬유·의류 제조업체들의 비중이 컸으나 최근엔 기계, 전기전자 업체의 비중이 높아졌다. 산업단지공단에 따르면 2006년말 업종별 입주업체 비중을 보면 기계(35.1%), 전기전자(15.5%) 업체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으며, 섬유업체는 3.5%에 불과했다. 눈여겨 봐야 할 점은 비제조업체도 18.2%로 늘어났는데, 이는 제조업이 줄어든 자리를 서비스업체가 대체하고 있다는 점이다. 또한 대기업이 떠난 자리는 중소영세업체들로 채워지고 있다. 이는 대구 성서공단 사례에서 볼 수 있다.

대구에는 7천여개의 제조업체가 존재하는 데 이 가운데 2천3여개는 성서공단에 자리 잡고 있다. 성서공단의 올해 1분기 매출액은 3조3천360억원으로, 전 분기보다 320억원이 증가했다. 공장 가동률은 73.1%, 지난 2005년 이후 이러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섬유산업은 대구와 성서공단의 대표적인 업종. 84년 1차 단지 조성 후 90년대까지만 해도 섬유업종은 성서공단 전체 제조업체 수의 40% 이상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2006년 말에는 임대공장을 제외한 전체 입주업체(자가공장) 1천790개 가운데 462개로 26% 수준에 그치고 있다. 섬유업체 중에서도 중국과 동남아에 비해 가격경쟁력이 절대적으로 떨어지는 제직과 면사공장들이 먼저 문을 닫았고, 그 뒤를 2차 업체격인 염색공장들이 이었다. 고부가가치 기능성섬유를 생산하는 업체 중심으로 성서공단의 섬유업종은 재편되고 있다.

섬유공장들이 떠난 자리는 주로 운송장비(자동차부품), 조립금속, 전기․전자 업종의 공장들로 대체되고 있다. 2004년 말 814개던 이 업종의 공장들은 2006년 말 992개로, 2년 사이 178개나 늘었다. 전체 입주업체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47.7%에서 51.5%로 높아져 성서공단 입주업체의 반수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이에 따라 2006년 말 성서공단 전체 업체에 고용된 노동자 5만5천334명의 62.3%에 해당하는 3만4천473명이 여기에 종사하고 있다. 이렇듯 성서공단의 전통산업인 섬유산업을 운송장비, 전기·전자 제조업체들이 대체하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새로 진입하는 업체들이 대부분 중소영세업체란 점이다. 또 이들 업체가 자리 잡는 과정에서 기형적인 현상이 빚어지고 있다. 1차 단지 내 한 염직공장. 7천 평의 대규모 부지를 자랑하던 섬유업체였다. 그러나 이곳은 지금 무려 13개 업체가 비집고 들어간 공장터로 변했다. 이 업체가 2005년 부도가 나면서 경매를 통해 부지를 얻은 8개 업체가 지난해 토지를 나눠 새로 공장을 짓고 매매를 하는 방식으로 분할했다. 지금은 13개 업체로 갈라졌다. 성서공단을 관할하는 대구 달서구청에 따르면 성서공단 내 토지 분할 건수는 2005년 10건이었다가 지난해 27건으로 3배 가까이 늘었고, 올해도 4월 현재 8건으로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성서지방산업단지 관리규정에 따르면 ‘500평 이상 규모’로 공장 분할을 하도록 하고 있지만 이런 규정이 유명무실해져 200여 평의 부지안에서 3~4개 업체가 기계를 돌리는 현상이 늘고 있다는 분석이다. 계획 공장용지가 ‘누더기’가 되는 현상이 방치되고 있는 것이다.

성서공단내 한 공장전문 부동산 중개인은 “토지 분할이 이뤄지는 업체의 80% 이상이 1, 2차 단지에 몰려있는 섬유업체들”이라며 “큰 섬유 공장들이 잇따라 쓰러지거나 어려움을 겪으면서 대구에서 가장 훌륭하게 짜여진 계획 공장용지가 무질서하게 변해가고 있다”고 분석했다.

공장 분할과 함께 임차공장도 늘고 있다. 영세한 제조업체들이 임차형식으로 공장을 빌려 입주하는 것이다. 임차기간이 끝나면 쉽게 공장을 접을 수 있고, 이동이 자유로워 일명 ‘철새공장’으로도 불린다. 경기침체가 장기화되면서 사업성이 불투명한데다 경영이 어려워도 피해가 적다는 심리가 임차공장을 양산하고 있는 것이다.

성서산업단지공단 통계에서도 이런 흐름을 유추할 수 있다. 3월말 현재 성서공단 입주업체 2천337개 가운데 자가공장은 1천807개고, 나머지 530개는 임차공장이다. 지난해 연말 임차공장이 492개였던 것에 비하면 3개월 새 38개가 증가한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전국의 어느 공단도 마찬가지다. 용지를 분할해 입주하는 아파트형 공장이 대세로 자리잡으면서 임차공장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다. 반월공단의 경우 지난 2000년 임차공장이 528개 였으나 지난해에는 1천197개로 늘어났다. 시화공단의 경우도 825개에서 2천144개로 늘었다.

고용유발 효과 적고, 비정규직만 양산

떠나는 기업이 있으면 남는 기업이 있다. 새로 진입하는 기업도 있다. 문제는 중소영세업체들로 채워지고 있는 탓에 고용유발 효과가 과거보다 크지 않고, 고용의 질마저도 매우 낮다는 점이다. 중소영세업체들은 종전의 고용수준을 줄이거나, 유지하더라도 대부분 비정규직을 활용한다. 파견·용역직이나 이주노동자를 선호한다.

대구 성서공단의 경우 금속과 전자, 섬유업종을 중심으로 2천3백여개의 업체가 입주해 있고, 여기서 일하는 노동자는 5만5천명이 조금 넘는 수준이다. 단순히 계산해도 업체당 평균 종업원수가 24명에 불과하다. 그야말로 소기업만 수두룩 한 것이다. 최근 새롭게 입주한 전기․전자 업체들은 간접고용으로 생산직을 채운다. 불법파견 시비를 없애기 위해 비교대상이 되는 정규직을 아예 고용하지 않고 현장 자체를 도급계약을 해 넘겨버리는 추세라는 게 지역 관계자의 얘기다. 비교적 큰 규모의 전기․전자 업체들이 4차 단지에 입주하고 앞으로도 첨단산업 단지가 추가로 조성된다는 것을 생각하면 도급계약을 통한 비정규직 확산이 성서공단에 큰 흐름으로 자리 잡을 것으로 보인다.

어차피 영세사업장이 대부분인 성서공단에서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구분은 별 의미가 없다. 고용은 정규직이지만 근로조건은 비정규직과 다르지 않고, 정규직이더라도 늘 고용불안에 시달리고 노동자 스스로 이직하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박찬희 대구성서공단노조 부위원장은 “비정규직보다 못한 정규직”이라고까지 표현했다.

성서공단노조가 2006년 발표한 성서공단 노동자 설문조사에 따르면 월평균 임금 총액은 147만원이었고, 연․월차휴가 수당이 있는 공장은 53.7%에 불과했다. 산전산후 휴가는 6%만 실시하고 있었다. 응답자의 73.2%는 자신에게 직업병이 있다고 답했고, 한달 평균 근로일수는 26.1일로 제조업 평균 근로일 수 23.2일보다 3일이나 많았다.

수도권의 공단인 반월·시화 공단의 경우 이와 비슷하다. 노동법의 사각지대를 악용한 파견업이 확대되고 있다. 노동자 파견이 금지돼있는 제조업 직접 생산공정까지 진출하고 있는 실정이다. 자동차 부품, 전자부품에 구인광고를 거리낌 없이 하고 있는 실정이다. 통근버스까지 운행한다는 조건을 걸고, 대규모로 구직자를 모으고 있다. 현행 파견법에는 제조업 직접 생산공정의 경우 제외돼있지만 ‘출산·질병 등의 결원, 일시적·간헐적 인력 확보’라는 예외조항을 악용한 것이다. 반월·시화공단의 경우 이러한 고용형태가 확산되고 있다.

김수정 시화노동정책연구소장은 “정규직 사원을 뽑는다 하더라도 파견 받는 6개월을 수습기간으로 둔다”며 “수습기간이 두 배로 늘어난 상황이다 보니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구분은 의미가 모호해졌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여기에 대응하는 노조가 있는 것도 아니다. 성서공단노조가 2006년 발표한 성서공단 노동자 설문조사에 따르면 성서공단 50인 미만 사업장의 노조 조직률은 0.4%에 불과했다. 영세사업장의 절대다수가 무노조인 것이다. 노조가 결성됐다 하더라도 유지되기도 힘들다. 반월·시화공단의 포괄하고 있는 민주노총 안산지구협의회에 따르면 지난 2000년에 민주노총 소속으로 9개 사업장에 노조가 결성됐지만 이 가운데 6개가 ‘해산·탈퇴·매각·폐업’했다.

권향숙 민주노총 안산지구협의회 사무차장은 “이제는 노조가 어렵게 결성됐다는 소식을 들어도 얼마나 유지될까 걱정이 앞선다”며 “고용유연화의 흐름 속에 사용자들의 노조 혐오증이 겹치면서 극심한 노조 무력화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지역 ‘노사정’이 함께 나서야

중병을 앓고 있는 공단을 살리기 위한 개입이 아예 없는 것이 아니다. 지역 노동계가 직접 나서는 경우도 있고, 노사정이 파트너십을 통해 논의한 사례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사례는 일시적인 형태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공장 철수 바람이 불었던 마산수출자유지역의 경우는 이러한 사례에 해당한다. 마산지역의 34개 노동계와 시민단체는 지난 2002년 외자기업 자본철수 대응과 노동자 생존권 사수를 위한 ‘경남대책위’를 구성했다. 하지만 자유무역지역 내 노동자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와 토론회가 활동기록으로 남아 있을 뿐이다. 또한 자치단체 차원의 지원이 이뤄지지 않아 노동시민단체의 독자적인 활동으로 그쳤다. 때문에 지속적인 활동으로 이어지지 못한 것이다. 이러한 사례는 반월·시화공단이 자리잡고 있는 안산의 경우도 비슷하다. 안산지역의 노동계와 시민사회단체가 손잡고, 공단의 고용과 환경 문제를 협의했다. 특히 비정규직과 이주 노동자 문제에 대한 해법을 찾고자 했다. 조사와 토론회가 이어졌다. 또 노동계와 시민사회단체는 다양한 협의구조를 만들기 위해 자치단체와 사용자단체에 참여를 제안했지만 선뜻 나서지 않았다. 결국, 노동계와 시민사회단체의 활동은 얼마가지 못했다.

반면 지역의 노동계가 나서서 노사정 차원의 협의테이블을 구성해 활동을 지속적으로 벌이고 있는 사례도 있다. 경기도 부천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부천은 지난 98년 이후 지역의 노사정이 파트너십을 바탕으로 지역노사정협의회를 구성해 고용 및 직업훈련에 대해 여러 사업을 합의하고, 추진하고 있다. 물론 부천과 비슷한 사례는 매우 드물다. 지역마다 차이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일반화시키는 것이 어렵기 때문이다. 지역차원의 노사정협의회가 구성된 사례가 적은 것을 고려할 때 그렇다는 것이다.

그래도 해법을 모색하려 했던 지역의 경우는 나은 것이다. 실패를 거울삼아 다시 시도해 볼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 지역의 노사정은 해법을 찾는 데 무기력 하다. 양대노총의 지역본부는 해당 지역의 일자리 창출과 공단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고 있는 수준에 불과하다. 아직 이러한 지역본부의 문제의식이 실천으로 이어지지 않고 있으며, 정치사업 만큼 활발하지도 않다. 이는 비정규직 활용하는데 급급한 기업주나 단기주의식 사업방식과 외자기업 유치에만 혈안이 돼있는 자지단체의 행태도 한 몫 한다. 이러한 행태가 변해야만 공단이 살아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한국노동연구원 정인수 선임연구위원은 “산업구조 고도화와 고용확대를 위해 개별 사업장, 정부기관, 지역학교와 현장 간, 공공기관과 시민단체 간 여러 층으로 나눠져 있는 노사정 파트너십을 활성화하고 조정하는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며 “이를 바탕으로 지역의 고용창출, 노동시장의 활성화, 경제개발을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이대호, 정청천, 정용상 기자

닮은 꼴 많은 ‘세 공단’
대구 성서공단, 반월·시화공단, 마산수출자유지역
대구 서남쪽 금호강과 구마고속도로 사이, 예전에는 저습지나 구릉지였던 곳에 성서공단이 자리 잡고 있다. 그 규모가 자그마치 300만평이 넘는 우리나라 최대의 지방산업단지다. 국가산업단지, 즉 국가공단이 한 곳도 없는 대구에서는 성서공단이 가장 큰 공단이다.
 


‘섬유메카’에서 ‘전기·전자’로
 

2천3백여개 업체가 자리잡은 성서공단은 대구지역 제조업체의 3분의 1을 수용하고 있는, 대구지역 제조업의 중추임에 틀림없다. 성서공단의 이 2천3백개 ‘개미’ 공장들은 지난 1분기 총 3조3천360억원의 매출액을 끌어 모았다. 공장가동률은 73.1%. 전 분기에 비해 소폭 하락하긴 했지만 2005년 이후 꾸준히 73% 이상의 공장가동률을 이어가고 있다.
 

섬유업종은 성서공단 전체 제조업체 수의 40% 이상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2006년 말에는 임대공장을 제외한 전체 입주업체(자가공장) 1천790개 가운데 462개로 26% 수준에 그치고 있다. 섬유공장들이 떠난 자리는 주로 운송장비(자동차부품), 조립금속, 전기․전자 업종의 공장들로 대체되고 있다. 전체 입주업체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47.7%에서 51.5%로 높아져 성서공단 입주업체의 반수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이에 따라 2006년 말 성서공단 전체 업체에 고용된 노동자 5만5천334명의 62.3%에 해당하는 3만4천473명이 여기에 종사하고 있다.
 


수출자유무역지역 1호
 

마산자유무역지역은 1970년 마산수출자유지역이라는 이름으로 출발했다. ‘수출자유지역설치법’에 따른 한국 최초 외국인전용공단이었다. 마산자유무역지역은 1971년 1천248명을 시작으로 급격한 성장을 기록, 87년에는 3만6천명이 넘는 인원이 이 지역에서 일했다. 87년을 정점으로 줄어들기 시작한 고용인원은 2005년 8천600명을 겨우 넘기고 있다. 전성기의 4분의 1에도 미치지 못했다.
 

그럼에도 마산자유무역지역이 경남지역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크다. 지난해 마산자유무역지역이 기록한 16억8천만달러의 흑자는 우리나라 전체 흑자의 10%를 차지하는 규모다. 이 지역에 종사하는 인원들은 마산시 제조업 고용인원의 40%를 차지한다. 하지만 마산자유무역지역은 내부구조에서 기형적인 형태를 띠고 있다. 2006년 말 79개 입주업체 가운데 휴대폰 전문업체인 노키아TMC와 한국소니전자를 비롯한 5개 업체가 전체 수출 비중의 90%를 차지한다. 업종별로는 전자․전기업종이 총수출의 95%를 차지하고 있다. 수출구조가 지나치게 편중돼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수도권의 대표적 공단
 

반월공단은 1977년 서울의 과밀인구과 공장 밀집을 분산하기 위해 조성되기 시작했으며 1987년 조성이 마무리됐다. 인접한 시흥공단은 1986년 조성을 시작해 2002년 조성이 마무리됐다.
 

이들 공단은 시화호와 인접해 있으며, 주거지역과 공장지역이 엄격히 분리된 지역이며, 지역내에서 고용과 생활을 완결할 수 있는 구조로 처음 설계됐다. 공단의 배후에 안산과 시흥에 주거단지가 만들어져 있다.
 

공단 내 입주한 공장 8천여개 중 대기업이 37개(반월 28개, 시화 9개)에 불과할 만큼 중소영세 사업장들이 들어서 있다. 반월공단은 2006년 11월 현재 8만8천553명을 고용했다. 전년도 9만192명에 비해 줄었다. 반면 시화공단의 경우 2006년 11월 현재 8만4천798명을 고용해 전년도 8만737명보다 늘었다. 자동차․전자 부품 산업이 많긴 하지만, 주 업종을 말하기 어려울 만큼 다양한 업종이 분포해 있다.
 

염색, 도금 등 영세한 공해업종들이 반월공단에 다수 존재했지만 최근에는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이들 업종에는 이주노동자들이 다수 근무하고 있지만, 그 현황은 파악되지 않고 있다.

<매일노동뉴스> 2007년 5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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