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지만 국산차의 수출증대 효과가 기대되는 이면에 미국산 일본차의 국내 유입, 미국차의 내수시장 잠식, 국내 완성차업체의 현지생산체제 가속화 등의 문제가 자리잡고 있다. 정부가 홍보에 열을 올리고 있는 ‘자동차의 FTA 수혜효과’가 그리 크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 섞인 전망이 나오고 있다. 한미FTA 파급효과에 대한 정확한 분석은 협정서 원문이 공개된 이후에나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이번 산업·업종 탐구에서는 세계 자동차산업 구조재편의 원인과 배경, 국내 자동차산업과 부품산업의 현황과 특징을 살펴본다.
자본과 노동의 이미지를 동시에
자동차산업은 첨단산업과 전통산업의 이미지를 동시에 가지고 있다. 우선 거대한 설비와 장비, 고도의 운영시스템이 필요한 자본집약적 산업이다. 자동차는 2만개가 넘는 부품으로 만들어진다. 산업연관효과, 기술파급효과, 고용 창출력이 웬만한 산업과 비교조차 하기 힘들 만큼 매력적인 조립산업이다. 미래학자인 피터 드러커는 “자동차산업은 ‘산업 중의 산업’(Industry of Industry)”이라고 표현한 바 있다.
반면에 자동차산업은 노동집약적이라는 성격도 띤다. 최종 조립공정의 자동화율이 기껏해야 15%를 넘지 못하기 때문이다. 자동차산업은 어느 나라에서건, 국가 경제발전의 견인차로, 노동운동의 본산으로, 혹은 전자장비나 부품소재 개발의 주력으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국내 자동차산업도 다르지 않다. 산업자원부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자동차산업은 수출액 430억 달러로 사상 최대치를 달성, 우리나라 총 수출액(3천260억 달러)의 13.2%를 차지했다. 수출과 무역흑자, 일자리 창출 등에서 모두 1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산자부는 오는 2015년이면 한국 자동차산업이 세계 4위권에 들면서 첨단기술 개발과 1인당 국민소득 2만달러 시대를 이끌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생산대수 1위는 일본, 한국은 5위
한국자동차공업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는 384만대를 생산해 세계 5위를 기록했다. 4위에 오른 독일(582만대)과는 100만대 가까운 격차를 보이고 있다. 이는 해당 국가에서 생산된 자동차만 집계한 것이다. 해외 현지생산량은 그 나라 통계에 포함됐다.<표1 참조>
지난해 세계에서 자동차를 가장 많이 만든 나라는 일본이다. 일본은 1천148만4천대를 생산해 미국(1천126만4천대)을 제치고 1위에 등극했다. 지난 94년 미국에 추월당한 이후 12년 만의 일이다. 그동안 일본은 해외생산량 확대에 치중하면서 국가별 순위에서 줄곧 미국에 뒤져왔다. 하지만 지난해의 경우 수출이 전년 대비 18.1% 급증, 간발의 차이로 미국을 앞질렀다.
역시 눈에 띄는 국가는 중국이다. ‘자동차산업의 블랙홀’로 불리는 중국은 지난해 728만대로 3위를 기록했다. 2005년(570만1천대)에 비해 무려 27.7% 증가했다. 협회 관계자는 “중국의 자동차 내수가 증가하면서 현지공장을 가진 완성차 메이커들의 생산량이 대폭 늘어났다”고 말했다.
공급과잉에 인수합병으로 맞서
산자부는 올해 국내 자동차 생산이 내수시장 회복과 수출증가에 힘입어 최초로 400만대를 돌파할 것으로 내다봤다.<표2 참조> 자동차 내수의 경우 신차 출시와 보유차량 차령증가로 인한 잠재수요를 고려해 4.3%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수출에서는 4.9%의 증가율을 예상했는데, 해외수요 증가추세에다 국산차의 품질·브랜드 가치 상승, 수출단가 상승요인을 반영한 것이다.
그렇다면 세계 자동차산업은 어떤 상황일까. 어차피 국내 자동차산업도 세계 자동차산업의 큰 흐름인 글로벌 소싱(Global Sourcing)과 모듈(Module)부품 개발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형편이다. 글로벌 소싱은 “어느 나라에서든 질만 괜찮으면 부품을 공급받겠다”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세계 자동차산업은 90년대 중반 이후 만성적인 생산설비 과잉국면에 부닥쳐 있다. 공급과잉 물량만 2천만대에 육박할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즉, 자동차 생산설비는 연간 8천만대를 웃도는데, 수요량은 6천만대를 약간 넘는 ‘수요·공급의 불일치’ 현상을 보이고 있다. 실제로 글로벌 인사이트(Global Insight)의 조사에 따르면 2005년 세계에서 팔린 자동차는 6천313만6천대에 그쳤다.
공급과잉 국면에서 세계 완성차업체들의 전략적인 선택은 ‘규모의 경제’를 달성하기 위한 인수합병(M&A)이었다. 지난 98년 독일의 다임러벤츠와 미국의 크라이슬러가 합병, 다임러크라이슬러(DCX)가 출범한 이후 인수합병은 봇물을 이뤘다.
한계에 다다른 ‘규모의 경제’
제너럴모터스(GM)가 오펠·사브·이스즈·스즈키·스바루·대우, 포드가 재규어·볼보·마쯔다·애스턴마틴·랜드로버를 인수했다. 다임러크라이슬러는 다시 미쓰비시와 합병했다. 폭스바겐(VW)은 아우디·세아트·스코다·람보르기니, 도요타자동차는 히노와 다이하츠, 르노는 닛산·다치아·삼성을 각각 인수했다. 결과적으로 세계 자동차산업은 GM, 도요타, 포드, 르노·닛산, 폭스바겐, DCX 등 6대 메이저 자동차그룹으로 재편됐다.<그림1 참조>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차그룹이나 BMW, 혼다, 피아트 등의 업체도 독자기업으로 존재하면서 나름대로의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다. 몇 개월 전에는 DCX가 크라이슬러 부문 매각방침을 공개하기도 했다. DCX와 함께 미국의 ‘빅 3’로 불리는 GM과 포드는 대규모 구조조정을 진행하고 있다.
인수합병을 통한 ‘규모의 경제’로 공급과잉 국면을 돌파하겠다는 세계 완성차업체들의 경영전략이 적절했는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는 배경이다. 대형 자동차업체 5개 내외만 살아남는다는 이른바 ‘글로벌 과점화론’이 한계에 다다랐다는 분석도 나온다. 2010년에 세계 5위권 자동차그룹으로 도약하겠다는 현대차그룹의 이른바 ‘Global Top 5’(GT 5) 전략과 비교해 곱씹어볼만한 대목이다.
국내자본 VS 외국자본
세계 자동차산업이 인수합병의 소용돌이에 휘말릴 당시, 국내 자동차산업은 외환위기라는 외부충격에 의한 구조조정을 겪었다. 지난 97년 기아자동차그룹의 부도로 시작된 국내 완성차업체의 구조조정은 지난 2005년 중국의 상하이자동차가 쌍용자동차의 경영권을 인수하면서 마무리됐다.
외환위기 이전에 현대·기아·대우의 자동차 3사 과점구조였던 국내 자동차산업은 외환위기 이후 현대·기아·GM대우·르노삼성·쌍용의 5사 체제로 바뀌었다. 내용적으로는 국내자본(현대·기아차그룹)과 외국자본(GM대우·르노삼성·쌍용)의 양자구도가 형성된 셈이다.
현대차그룹은 기아차를 인수한 이후 국내 자동차 내수시장의 70% 이상을 점유했다. 현대차그룹의 독점적인 시장지배력이 강화된 것이다. 이로 인해 국내 자동차산업, 특히 부품산업에는 세 가지 특징이 나타났다. 현대차그룹의 부품산업 수직계열화와 외국자본의 국내 부품업체 인수, 현대모비스의 급성장이 그것이다. 생산독점이 부품수요독점으로 이어졌다고 볼 수 있다.
현대차그룹의 부품산업 수직계열화의 핵심은 그룹 내 핵심모듈업체로 자리 잡은 현대모비스다. 이러한 사실은 현대차그룹의 자동차 계열 부품사 지분구조를 살펴보면 금세 확인할 수 있다.<그림2 참조>
수직계열화와 외국자본의 부품업체 인수
현대차그룹은 사실상 지주회사인 현대모비스를 중심으로 한 순환 출자구조를 가지고 있다. ‘현대모비스→현대자동차→기아자동차→현대모비스’로 이어지는 지분구조를 보인다.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일가가 현대모비스의 일부지분을 가지고 현대차와 기아차는 물론이고 현대오토넷·다이모스·위아 등 부품계열사까지 장악하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모듈(현대모비스·위아), 내비게이션과 전장부품(현대오토넷), 변속기(다이모스)와 같은 핵심 부품업체를 지분구조로 얽어 ‘부품 수직계열화’ 체제를 갖춰나가고 있다.
현대차그룹의 수직계열화는 현대모비스라는 핵심모듈업체를 두고, 부문별 모듈업체를 계열사 중심으로 재편하는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현대차그룹이 지난해부터 매각협상을 진행 중인 (주)만도까지 인수할 경우 부품계열화 작업은 완성단계에 접어들 것으로 분석된다.
외국자본의 국내 부품업체 인수러시도 빼놓을 수 없는 특징이다. 한국자동차공업협동조합에 따르면 해외 부품전문업체들이 인수한 국내 부품업체의 생산아이템은 전자제어·전장부품·에어백·베어링 등 주요부품을 망라하고 있다. 외환위기 직후인 99년부터 2004년까지 6년간 국내 부품산업에 투자된 외국자본만 10억6천만 달러. 현재 기술력을 갖춘 국내 부품업체 250여곳의 경영권은 이미 외국자본에 넘어가 있는 상태다. 이상욱 금속노조 현대차지부 지부장은 “국내 주요 부품업체 60% 이상에서 외국자본이 경영권을 행사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지난 수년간 국내 자동차산업에서는 생산의 외부화(아웃소싱), 고용의 외부화(자산인수) 현상이 확산되고 있다. 지난 2005년 현대차그룹의 사내하청 불법파견 판정이 대표적인 사례다. 또한 현대모비스의 자산인수 방식은 ‘고용의 외부화’라는 독특한 결과를 낳았다. 자산인수는 ‘공장의 설비를 인수하되, 기존의 직원들을 별도법인에 승계하는 방식’을 말한다. 현대모비스는 별도법인에 인수한 공장의 설비를 무상으로 임대하는 방법으로 ‘불법파견’의 여지까지 없앴다.
산별차원 대책 필요
현재 현대모비스는 17곳에 달하는 국내 생산공장에서 비정규직 중심의 인력운용을 하고 있다. 금속산업연맹의 한 관계자는 이를 두고 “현대모비스는 굴뚝 없는 공장”고 표현했다.
현대차그룹의 해외공장 확대전략도 우려스럽긴 마찬가지다. 현대차그룹은 미국 앨라배마(현대)와 조지아(기아)공장을 중심으로 중국(북경현대, 동풍열달기아), 인도(첸나이), 터키(이즈미트), 슬로바키아(질리나)에 생산거점을 확보한 상태다.
국내 자동차산업의 리딩컴퍼니인 현대차그룹의 현지생산체제 구축전략은 필연적으로 국내공장의 고용불안을 내포할 수밖에 없다. 현대차그룹의 한 고위임원은 지난해 노사정위원회 제조업발전특위 위원들을 만난 자리에서 “내수침체는 고용을 줄어들게 만든다. 현재 수출이 잘 돼 감춰져 있지만, 수출이 타격을 받게 되면 가장 먼저 (고용문제가) 불거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그땐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해야 할 것”이라고 의미심장한 말을 던졌다.
국내 다른 완성차업체에서도 ‘고용’의 문제는 노사간 핵심 화두로 떠올라 있다. GM대우의 경우 경상용차인 다마스·라보의 생산중단으로 정규직을 전환배치하면서 비정규직이 계약해지되는 사태를 맞았고, 쌍용차도 정규직 전환배치에 따른 비정규직의 계약해지를 경험했다. 각각 환경기준 미달과 판매부진에 이은 라인폐쇄라는 배경을 갖고 있지만, 궁극적으로 노동자들의 고용은 시장상황의 하위변수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해준 사례다.
때문에 정규직이 고용을 위협받는 상황에서, 완성차의 기업별노조가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지난해 완성차노조들이 대거 산별노조로 전환한 만큼 올해 금속노조의 산별교섭에서 거시적인 고용전략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원·하청 불공정거래행위에 기반한 고질적인 단가인하(CR)의 병폐도 시급히 다뤄야 할 과제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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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노동뉴스> 2007년 4월 19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