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미국의 자유무역협정(FTA)이 지난 2일 체결되면서 자동차업계에 미칠 후폭풍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정부가 밝힌 자동차분야 체결내용은 3천cc 이하 승용차는 즉시, 3천cc 초과 승용차는 3년 내, 타이어는 5년 내, 픽업(Pick-up) 트럭은 10년 내 미국 관세를 철폐한다는 것이다. 한국 쪽 관세(8∼10%)도 없어진다. 더불어 우리나라는 배기량 기준 세제를 간소화하기로 했다. 특별소비세는 3단계에서 2단계로, 자동차세는 5단계에서 3단계로 개편된다.

그렇지만 국산차의 수출증대 효과가 기대되는 이면에 미국산 일본차의 국내 유입, 미국차의 내수시장 잠식, 국내 완성차업체의 현지생산체제 가속화 등의 문제가 자리잡고 있다. 정부가 홍보에 열을 올리고 있는 ‘자동차의 FTA 수혜효과’가 그리 크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 섞인 전망이 나오고 있다. 한미FTA 파급효과에 대한 정확한 분석은 협정서 원문이 공개된 이후에나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이번 산업·업종 탐구에서는 세계 자동차산업 구조재편의 원인과 배경, 국내 자동차산업과 부품산업의 현황과 특징을 살펴본다.

자본과 노동의 이미지를 동시에

자동차산업은 첨단산업과 전통산업의 이미지를 동시에 가지고 있다. 우선 거대한 설비와 장비, 고도의 운영시스템이 필요한 자본집약적 산업이다. 자동차는 2만개가 넘는 부품으로 만들어진다. 산업연관효과, 기술파급효과, 고용 창출력이 웬만한 산업과 비교조차 하기 힘들 만큼 매력적인 조립산업이다. 미래학자인 피터 드러커는 “자동차산업은 ‘산업 중의 산업’(Industry of Industry)”이라고 표현한 바 있다.

반면에 자동차산업은 노동집약적이라는 성격도 띤다. 최종 조립공정의 자동화율이 기껏해야 15%를 넘지 못하기 때문이다. 자동차산업은 어느 나라에서건, 국가 경제발전의 견인차로, 노동운동의 본산으로, 혹은 전자장비나 부품소재 개발의 주력으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국내 자동차산업도 다르지 않다. 산업자원부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자동차산업은 수출액 430억 달러로 사상 최대치를 달성, 우리나라 총 수출액(3천260억 달러)의 13.2%를 차지했다. 수출과 무역흑자, 일자리 창출 등에서 모두 1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산자부는 오는 2015년이면 한국 자동차산업이 세계 4위권에 들면서 첨단기술 개발과 1인당 국민소득 2만달러 시대를 이끌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생산대수 1위는 일본, 한국은 5위

한국자동차공업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는 384만대를 생산해 세계 5위를 기록했다. 4위에 오른 독일(582만대)과는 100만대 가까운 격차를 보이고 있다. 이는 해당 국가에서 생산된 자동차만 집계한 것이다. 해외 현지생산량은 그 나라 통계에 포함됐다.<표1 참조>

 
지난해 세계에서 자동차를 가장 많이 만든 나라는 일본이다. 일본은 1천148만4천대를 생산해 미국(1천126만4천대)을 제치고 1위에 등극했다. 지난 94년 미국에 추월당한 이후 12년 만의 일이다. 그동안 일본은 해외생산량 확대에 치중하면서 국가별 순위에서 줄곧 미국에 뒤져왔다. 하지만 지난해의 경우 수출이 전년 대비 18.1% 급증, 간발의 차이로 미국을 앞질렀다.

역시 눈에 띄는 국가는 중국이다. ‘자동차산업의 블랙홀’로 불리는 중국은 지난해 728만대로 3위를 기록했다. 2005년(570만1천대)에 비해 무려 27.7% 증가했다. 협회 관계자는 “중국의 자동차 내수가 증가하면서 현지공장을 가진 완성차 메이커들의 생산량이 대폭 늘어났다”고 말했다.

공급과잉에 인수합병으로 맞서

산자부는 올해 국내 자동차 생산이 내수시장 회복과 수출증가에 힘입어 최초로 400만대를 돌파할 것으로 내다봤다.<표2 참조> 자동차 내수의 경우 신차 출시와 보유차량 차령증가로 인한 잠재수요를 고려해 4.3%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수출에서는 4.9%의 증가율을 예상했는데, 해외수요 증가추세에다 국산차의 품질·브랜드 가치 상승, 수출단가 상승요인을 반영한 것이다.


그렇다면 세계 자동차산업은 어떤 상황일까. 어차피 국내 자동차산업도 세계 자동차산업의 큰 흐름인 글로벌 소싱(Global Sourcing)과 모듈(Module)부품 개발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형편이다. 글로벌 소싱은 “어느 나라에서든 질만 괜찮으면 부품을 공급받겠다”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세계 자동차산업은 90년대 중반 이후 만성적인 생산설비 과잉국면에 부닥쳐 있다. 공급과잉 물량만 2천만대에 육박할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즉, 자동차 생산설비는 연간 8천만대를 웃도는데, 수요량은 6천만대를 약간 넘는 ‘수요·공급의 불일치’ 현상을 보이고 있다. 실제로 글로벌 인사이트(Global Insight)의 조사에 따르면 2005년 세계에서 팔린 자동차는 6천313만6천대에 그쳤다.

공급과잉 국면에서 세계 완성차업체들의 전략적인 선택은 ‘규모의 경제’를 달성하기 위한 인수합병(M&A)이었다. 지난 98년 독일의 다임러벤츠와 미국의 크라이슬러가 합병, 다임러크라이슬러(DCX)가 출범한 이후 인수합병은 봇물을 이뤘다.

한계에 다다른 ‘규모의 경제’

제너럴모터스(GM)가 오펠·사브·이스즈·스즈키·스바루·대우, 포드가 재규어·볼보·마쯔다·애스턴마틴·랜드로버를 인수했다. 다임러크라이슬러는 다시 미쓰비시와 합병했다. 폭스바겐(VW)은 아우디·세아트·스코다·람보르기니, 도요타자동차는 히노와 다이하츠, 르노는 닛산·다치아·삼성을 각각 인수했다. 결과적으로 세계 자동차산업은 GM, 도요타, 포드, 르노·닛산, 폭스바겐, DCX 등 6대 메이저 자동차그룹으로 재편됐다.<그림1 참조>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차그룹이나 BMW, 혼다, 피아트 등의 업체도 독자기업으로 존재하면서 나름대로의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다. 몇 개월 전에는 DCX가 크라이슬러 부문 매각방침을 공개하기도 했다. DCX와 함께 미국의 ‘빅 3’로 불리는 GM과 포드는 대규모 구조조정을 진행하고 있다.

인수합병을 통한 ‘규모의 경제’로 공급과잉 국면을 돌파하겠다는 세계 완성차업체들의 경영전략이 적절했는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는 배경이다. 대형 자동차업체 5개 내외만 살아남는다는 이른바 ‘글로벌 과점화론’이 한계에 다다랐다는 분석도 나온다. 2010년에 세계 5위권 자동차그룹으로 도약하겠다는 현대차그룹의 이른바 ‘Global Top 5’(GT 5) 전략과 비교해 곱씹어볼만한 대목이다.

국내자본 VS 외국자본

세계 자동차산업이 인수합병의 소용돌이에 휘말릴 당시, 국내 자동차산업은 외환위기라는 외부충격에 의한 구조조정을 겪었다. 지난 97년 기아자동차그룹의 부도로 시작된 국내 완성차업체의 구조조정은 지난 2005년 중국의 상하이자동차가 쌍용자동차의 경영권을 인수하면서 마무리됐다.

외환위기 이전에 현대·기아·대우의 자동차 3사 과점구조였던 국내 자동차산업은 외환위기 이후 현대·기아·GM대우·르노삼성·쌍용의 5사 체제로 바뀌었다. 내용적으로는 국내자본(현대·기아차그룹)과 외국자본(GM대우·르노삼성·쌍용)의 양자구도가 형성된 셈이다.
현대차그룹은 기아차를 인수한 이후 국내 자동차 내수시장의 70% 이상을 점유했다. 현대차그룹의 독점적인 시장지배력이 강화된 것이다. 이로 인해 국내 자동차산업, 특히 부품산업에는 세 가지 특징이 나타났다. 현대차그룹의 부품산업 수직계열화와 외국자본의 국내 부품업체 인수, 현대모비스의 급성장이 그것이다. 생산독점이 부품수요독점으로 이어졌다고 볼 수 있다.

현대차그룹의 부품산업 수직계열화의 핵심은 그룹 내 핵심모듈업체로 자리 잡은 현대모비스다. 이러한 사실은 현대차그룹의 자동차 계열 부품사 지분구조를 살펴보면 금세 확인할 수 있다.<그림2 참조>


수직계열화와 외국자본의 부품업체 인수

현대차그룹은 사실상 지주회사인 현대모비스를 중심으로 한 순환 출자구조를 가지고 있다. ‘현대모비스→현대자동차→기아자동차→현대모비스’로 이어지는 지분구조를 보인다.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일가가 현대모비스의 일부지분을 가지고 현대차와 기아차는 물론이고 현대오토넷·다이모스·위아 등 부품계열사까지 장악하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모듈(현대모비스·위아), 내비게이션과 전장부품(현대오토넷), 변속기(다이모스)와 같은 핵심 부품업체를 지분구조로 얽어 ‘부품 수직계열화’ 체제를 갖춰나가고 있다.

현대차그룹의 수직계열화는 현대모비스라는 핵심모듈업체를 두고, 부문별 모듈업체를 계열사 중심으로 재편하는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현대차그룹이 지난해부터 매각협상을 진행 중인 (주)만도까지 인수할 경우 부품계열화 작업은 완성단계에 접어들 것으로 분석된다.

외국자본의 국내 부품업체 인수러시도 빼놓을 수 없는 특징이다. 한국자동차공업협동조합에 따르면 해외 부품전문업체들이 인수한 국내 부품업체의 생산아이템은 전자제어·전장부품·에어백·베어링 등 주요부품을 망라하고 있다. 외환위기 직후인 99년부터 2004년까지 6년간 국내 부품산업에 투자된 외국자본만 10억6천만 달러. 현재 기술력을 갖춘 국내 부품업체 250여곳의 경영권은 이미 외국자본에 넘어가 있는 상태다. 이상욱 금속노조 현대차지부 지부장은 “국내 주요 부품업체 60% 이상에서 외국자본이 경영권을 행사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지난 수년간 국내 자동차산업에서는 생산의 외부화(아웃소싱), 고용의 외부화(자산인수) 현상이 확산되고 있다. 지난 2005년 현대차그룹의 사내하청 불법파견 판정이 대표적인 사례다. 또한 현대모비스의 자산인수 방식은 ‘고용의 외부화’라는 독특한 결과를 낳았다. 자산인수는 ‘공장의 설비를 인수하되, 기존의 직원들을 별도법인에 승계하는 방식’을 말한다. 현대모비스는 별도법인에 인수한 공장의 설비를 무상으로 임대하는 방법으로 ‘불법파견’의 여지까지 없앴다.

산별차원 대책 필요

현재 현대모비스는 17곳에 달하는 국내 생산공장에서 비정규직 중심의 인력운용을 하고 있다. 금속산업연맹의 한 관계자는 이를 두고 “현대모비스는 굴뚝 없는 공장”고 표현했다.

현대차그룹의 해외공장 확대전략도 우려스럽긴 마찬가지다. 현대차그룹은 미국 앨라배마(현대)와 조지아(기아)공장을 중심으로 중국(북경현대, 동풍열달기아), 인도(첸나이), 터키(이즈미트), 슬로바키아(질리나)에 생산거점을 확보한 상태다.

국내 자동차산업의 리딩컴퍼니인 현대차그룹의 현지생산체제 구축전략은 필연적으로 국내공장의 고용불안을 내포할 수밖에 없다. 현대차그룹의 한 고위임원은 지난해 노사정위원회 제조업발전특위 위원들을 만난 자리에서 “내수침체는 고용을 줄어들게 만든다. 현재 수출이 잘 돼 감춰져 있지만, 수출이 타격을 받게 되면 가장 먼저 (고용문제가) 불거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그땐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해야 할 것”이라고 의미심장한 말을 던졌다.

국내 다른 완성차업체에서도 ‘고용’의 문제는 노사간 핵심 화두로 떠올라 있다. GM대우의 경우 경상용차인 다마스·라보의 생산중단으로 정규직을 전환배치하면서 비정규직이 계약해지되는 사태를 맞았고, 쌍용차도 정규직 전환배치에 따른 비정규직의 계약해지를 경험했다. 각각 환경기준 미달과 판매부진에 이은 라인폐쇄라는 배경을 갖고 있지만, 궁극적으로 노동자들의 고용은 시장상황의 하위변수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해준 사례다.

때문에 정규직이 고용을 위협받는 상황에서, 완성차의 기업별노조가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지난해 완성차노조들이 대거 산별노조로 전환한 만큼 올해 금속노조의 산별교섭에서 거시적인 고용전략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원·하청 불공정거래행위에 기반한 고질적인 단가인하(CR)의 병폐도 시급히 다뤄야 할 과제 중 하나다.
 
<자동차 사용자 현황>
완성차업체는 공업협회, 부품업체는 공업협동조합
국내에는 5개의 완성차업체가 있다.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 GM대우, 쌍용자동차, 르노삼성자동차. 대우버스와 같은 군소업체를 포함하면 8개업체로 집계된다. 보통 국내 완성차업체를 얘기할 때는 5곳만 언급한다. 완성차들이 가입해 있는 한국자동차공업협회(회장 조남홍, 기아차 사장)에도 5개 업체만 가입돼 있다.
 

이들 중 현대차와 기아차만 국내 자본인 현대차그룹 소속이다. 나머지 완성차업체들은 각각 미국(GM대우)·중국(쌍용)·프랑스(르노삼성) 자본이 경영권을 갖고 있다. 외환위기 이전에 현대·기아·대우 등 국내 자본간 과점체제에서, 국내자본 대 초국적 자본의 경쟁구도로 바뀌었다. 자본에 국적이 있거나 색깔이 있을 리 없지만, 국가 산업정책을 다루는 데 있어 외국자본의 경영방식을 고려해야 할 상황임은 분명한 것 같다.
 

주요 부품업체들은 한국자동차공업협동조합(이사장 신달석)에 속해 있다. 공업협동조합에 따르면 지난해 말 현재 완성차업체와 직접 거래하고 있는 1차 협력업체수는 902곳이었다. 이들 중 종업원이 300명 미만이거나, 자본금이 80억원 이하인 중소기업이 811곳으로 90%에 육박했다. 지역별로는 경기(213곳)와 경남(146곳)에 위치한 부품업체가 많았다.
 

그렇지만 이 통계는 어디까지나 1차 협력업체를 대상으로 한 것이다. 1차 협력업체에 납품하는 2차 협력업체, 또 다시 3차 협력업체까지 감안하면 전체 부품업체 숫자는 5∼6천개를 웃돌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 2005년 현대차그룹의 협력업체 숫자만 1차, 2차, 3차를 합해 4천742곳에 달했다.



<자동차노조 현황>
민주노총 11만2천명, 한국노총 2만6천명
국내 자동차노조는 산별노조인 민주노총 금속노조(위원장 정갑득)와 산별연맹인 한국노총 금속노련(위원장 장석춘) 소속으로 나뉘어져 있다. 르노삼성자동차를 제외한 완성차업체 4사 노조는 지난해 산별노조 전환을 결의했고, 현재 금속노조 기업지부로 편제돼 있다.
 

현대차지부(4만3천명), 기아차지부(2만8천명), GM대우차지부(1만명), 쌍용차지부(6천명) 등 완성 4사 기업지부 조합원만 8만7천명에 달한다. 여기에 금속노조에 가입한 부품사노조(85곳) 조합원 숫자가 2만5천명이다. 민주노총 금속노조에 있는 자동차노조 조합원은 완성 4사와 부품사노조를 합해 11만2천명이다. 전체 금속노조 조합원(16만명)의 70%가 자동차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인 셈이다.
 

한국노총 금속노련에도 부품업체 노조들이 많다. 지난해 3월, 금속노련은 자동차업종분과위원회(위원장 장재성, 새론오토모티브)를 출범시켰다. 150개 조직에 2만6천명이 가입돼 있다. 금속노련은 올해 10월 대산별노조로 전환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하지만 내부 이견이 많아 오는 25일 열리는 중앙위원회에서 대산별 전환시점이 연기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분과위 관계자는 “대산별 전환이 무산될 경우 연맹 방침과는 별개로 부품업종 중심의 통합노조를 만들기로 의견을 모은 상태”라고 말했다.
 

자동차노조의 올해 임금·단체협상은 그 어느 때보다 주목받고 있다. 막강한 조직력을 갖고 있는 완성차업체 4사 노조가 금속노조의 기업지부로 첫 교섭에 나서기 때문이다. 금속노조의 산별 중앙교섭 성사여부가 자동차부문 노사관계뿐만 아니라 올해 노·사, 노·정 관계에 대한 전반적인 분위기를 가름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모듈화와 아웃소싱
보통 자동차 한 대에 들어가는 부품은 2∼3만개에 이른다. 때문에 완성차업체들은 지난 90년대 중반 이후 개별부품을 갖다붙여 덩어리로 만드는 ‘모듈’(Module)의 개념을 도입했다. 수십, 수백 개의 부품을 덩어리로 만들어 자동차를 조립하는 방식이다. 조립공정을 최소화한 것으로, 일종의 생산시스템 간편화작업이다. 모듈화는 일본 완성차업체의 자동차 생산방식(JIT)에 밀려 어려움을 겪던 유럽 완성차업체들의 노력에서 비롯됐다. 폭스바겐(VW)이 시초로 알려져 있다.
 

그동안 도요타자동차를 비롯한 일본 완성차업체들은 부품재고를 최소화하는 ‘적기생산’(Just In Time) 방식을 사용했다. 이에 대응해 유럽의 완성차업체들은 덩어리부품으로 비용과 시간을 절감하는 ‘동기생산’(Just In Sequence) 방식을 개발했다.
 

모듈화의 핵심은 덩어리부품을 만드는 모듈업체가 연구개발(R&D) 기능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래야 완성차업체와의 조율 속에서 기능통합이 가능하다. 부품조달능력과 품질관리능력은 필수다.
 

국내 대표적인 모듈업체인 현대모비스도 모듈업체다. 현대자동차가 개별 컨셉트를 정하면 현대모비스가 그에 맞는 덩어리부품을 개발한다. 현대모비스는 설계와 시스템 구축에 집중하면서, 설비투자 대신에 기존 설비를 흡수하는 경영전략을 취하고 있다.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을 구속에까지 이르게 했던 글로비스는 물류회사임에도 불구하고, 부품을 납품받아 간단한 조립과 서열작업을 한 후 완성차에 납품하는 역할까지 맡고 있다.
 

그렇지만 현대차그룹의 모듈화에 대한 우려 섞인 반응도 적지 않다. 피가 섞인 계열사 중심의 부품산업 수직계열화를 진행하고 있는 것도 그렇고, 모듈화가 진행되면서 생산의 아웃소싱, 고용의 아웃소싱이 증가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모비스의 부품사 자산인수와 비정규직 중심의 인력운용이 대표적인 사례다.

 
‘군림하는’ 완성차, ‘눈치보는’ 부품사
부품이 있어야 자동차를 만들고, 자동차를 만들어야 부품을 공급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최종 조립을 책임지는 완성차업체와 부품을 공급하는 부품업체는 곧잘 이와 잇몸의 관계에 비유된다. 잇몸(부품)이 부실하면, 이(자동차)가 시릴 수밖에 없다. 윗잇몸이냐 아랫잇몸이냐의 구분은 무의미하다. 하나라도 없으면 씹을 수가 없는 만큼, 자동차산업에서 부품산업은 든든한 버팀목이다.
 

유럽 자동차업체를 살펴보면, 완성차업체와 부품업체의 협력관계가 잘 형성돼 있다. 비슷한 시기에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완성차업체가 부품업체의 적정한 이윤을 보장해줄 정도로 신뢰의 폭이 깊다.
 

하지만 한국 자동차산업은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대기업-중소기업 상생협력을 위한 회의’를 직접 주재할 정도로 공생관계가 형성돼 있지 않다. 국내 자동차산업은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완성차가 형태를 갖춘 다음에야 부품산업이 형성됐다. 완성차업체의 경영방침은 부품업체에 ‘내리꽂듯이’ 통용된다.
 

연례행사에 속하는 단가인하(CR) 강요는 말할 것도 없다. 국내 완성차업체들은 해마다 적게는 3%에서 많게는 10% 이상의 단가인하를 요구하고 있다. 경북지역의 한 부품업체 관계자는 “대여섯 부품아이템을 납품할 경우 자잘한 단품은 아무리 생산해도 수익이 나지 않아 재하청을 준다”며 “그나마 수익이 남는 부품은 단가인하로 수익률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지난 2005년에는 현대차그룹이 ‘중국 바이백’(Buy-Back) 확대를 강요한 사실이 드러나 물의를 빚기도 했다. 바이백은 중국공장에서 부품을 생산해 국내에 납품하는 방식이다. 중국과 한국의 인건비 차이를 활용한 것으로, 단기인하의 변형된 형태로 볼 수 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해 4월 현대차의 중국 바이백이 원·하청 불공정거래행위라는 최종 판정을 내린 바 있다.
 

멀쩡한 부품업체가 완성차업체의 ‘부품 이원화’ 전략에 따라 순식간에 문을 닫아야 했던 사례도 적지 않다. ‘군림하는’ 완성차와 ‘눈치보는’ 부품사의 관계가 개선되지 않는 한 국내 자동차산업의 미래지향적인 발전을 기대하기 힘들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프레스  →  차체  →  도장  →  조립
자동차 조립공정 들여다보기
자동차는 무거운 것을 운반하기 위한 수레(바퀴)에 기원을 두고 있다. 자동차편람에 따르면 1839년에 시속 105킬로미터의 속도를 내는 전기자동차가 제작됐다는 기록이 있다. 물론 주행거리가 짧아 상용화에는 실패했다. 자동차산업이 본격화한 것은 독일의 오토(Nikolaus. A. Otto)가 ‘4사이클 가솔린 엔진’을 개발(1876년), 다임러와 벤츠가 이를 자동차에 장착하면서부터다. 다임러(Gottieb Daimler)와 벤츠(Karl Benz)는 옛 ‘다임러-벤츠’사의 창업주들이다. 1893년에는 독일의 디젤(Rudolf Diesel)이 열역학을 이용한 엔진을 만들었다. 이른바 ‘디젤 엔진’이다. 한국에 자동차가 등장한 것은 1903년인데, 당시 고종황제는 4기통짜리 캐딜락을 수입했다.
 

그렇다면 자동차는 어떻게 만들어질까. 자동차는 크게 찍고(프레스), 씌우고(차체), 칠하고(도장), 조이는(조립) 등 4개 공정을 거쳐 완성된다. 프레스공정은 자동차용 강판을 반듯하게 펴는 작업이다. 차체공정에서는 강판을 가지고 자동차 모양을 만든다. ‘공장자동화’가 적용되는 대표적인 공정으로, 로봇이 용접하는 장면을 떠올리면 된다. 예컨대, 현대자동차의 울산3공장의 경우 460여대의 로봇이 불꽃을 튀기며 차체용접을 하고 있다. 도장공정은 외관에 페인트를 칠하는 과정이다. 칠했다, 말렸다 하는 과정을 수차례 반복한 후 최종 조립공정으로 넘어간다. 이때부터 노동자의 섬세한 손길이 요구된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만나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조립공정에서 각종 덩어리부품(모듈)과 전장부품, 엔진, 트랜스미션 등이 장착된다.
 

자동차 생산방식은 노동과정에 대한 논쟁의 역사였다. 대량생산과 포디즘, 탈숙련, 대량소비, 포스트 포디즘, 유연전문화론, 작업장 체제 등 노동과정에 대한 대부분의 논쟁은 자동차 생산방식을 분석하는 것에서 출발했다.

 
 
 
<매일노동뉴스> 2007년 4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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