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태별로 보면 유통산업의 가장 큰 축을 차지하는 대형마트의 성장세가 지속되고 기업 간 인수합병(M&A)를 통한 과점화 역시 심화될 전망이다. 대형마트와 함께 양대 축을 이루는 백화점 역시 신규 출점과 인수를 통한 과점화가 심화되고, 업체간 경쟁 역시 치열해질 전망이다. 부지확보의 어려움 등으로 대형마트와 백화점의 시장 개척이 주춤하는 사이, 시공간의 제약으로부터 자유로운 인터넷쇼핑과 홈쇼핑이 부상하고 있다.

이마트-롯데쇼핑, 과점화 심화
대형마트 업계는 지난해 두 건의 대형 인수합병을 거치면서 이마트·홈플러스·롯데마트 등 ‘빅3’ 경쟁에 이랜드홈에버가 가세한 형국이 됐다. 국내 대형마트 업계 4,5위를 차지했던 다국점 유통기업 까르푸와 월마트가 지난해 국내 기업인 이랜드와 이마트에 점포를 매각하고 한국 시장에서 철수함에 따라 업계 1위 이마트의 영향력은 더욱 커졌다. 또 중저가 패션사업으로 성장한 이랜드가 중견 유통업체로 발돋움하게 됐다.
대형마트의 절대강자 이마트는 지난해 월마트 인수 이후 더욱 막강한 파워를 자랑하게 됐다. 월마트 인수로 전국 100호점을 돌파한 이마트는 박리다매를 기본으로 하는 대형마트의 운영기반인 ‘규모의 경제’를 갖추게 됐다. 대형마트에 있어 점포수 증가는 외형확대 외에도 납품업체들에 대한 구매교섭력의 강화를 의미하기도 한다.
한국체인스토어협회 등에 따르면 지난해 이마트의 매출액은 9조1천억원, 올해 10조원 돌파가 무난할 것으로 전망된다. 월마트 인수 이수 100호점을 돌파한 이마트는 현재 전국 110개 점포를 운영 중이다.
홈플러스는 지난해 11개 신규점을 개점, 5조8천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롯데마트의 지난해 매출액은 4조원이며, 9개 신규점을 개점했다. 까르푸 인수로 업계의 관심을 한몸에 받고 있는 홈에버의 지난해 매출액은 1조9천500억원. 그밖에 농협유통(하나로클럽+하나로마트)이 1조6천억원, 뉴코아아울렛 1조5천억원, GS마트 7천800억원, 세이브존 7천억원, 메가마트 7천400억원, 코스트코 홀세일 6천500억원, 2001아울렛 6천억원 등 매출을 올렸다.
그러나 현재 이마트·홈플러스·롯데마트 등 상위 3개 업체의 국내 시장점유율은 이미 70%를 넘어선 상태이기 때문에 출점이 곧바로 출혈경쟁으로 이어지는 상황에 봉착했다. 따라서 올해는 소규모 인수합병이 이어질 것으로 보이며, 이마트의 독점적 지위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대형마트와 양대산맥을 이루는 백화점 역시 올해 신규 출점과 인수를 통한 경쟁이 심화될 전망이지만, 롯데쇼핑의 강한 입지는 흔들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현재 시장 점유율 43%를 확보하고 업계 1위 자리를 고수하고 있는 롯데쇼핑은 매년 한개 이상의 신규 백화점을 출시할 계획이기 때문에, 경쟁사들의 선두진입 가능성은 매우 낮다. 최근 경기도 분당 삼성플자라를 애경그룹에 매각하며 삼성그룹이 유통사업에서 손을 뗀 것 역시 후발주자들의 선두권 진입의 어려움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지난해 백화점 업계는 약 18조3천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8월을 제외하면, 2005년 3월부터 무려 22개월간 매출이 지속적으로 상승했다. 업계는 매출 상승의 주요 원인으로 2005년 말 급속히 팽창한 증시의 효과를 꼽고 있다. 자산효과의 혜택을 받은 소비자층이 백화점 매출을 견인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하지만 올해 백화점 경기전망은 밝지 않다. 통계청이 발표한 소비자 기대지수, 가계수지 동향, 고용(취업)동향 등은 어두운 경기전망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다. 현재와 비교해 6개월 뒤의 경기, 생활형편, 지출에 대한 소비자들의 기대심리를 나타내는 통계청의 1월 소비자 기대지수는 기준치(100)이하인 ‘96.1’. 향후 경기에 대한 불안심리가 크고, 소비심리 역시 얼어붙고 있다는 뜻이다.
소비자들의 소비위축은 IMF를 거치며 경제의 불확실성이 증폭되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결제 불황은 소비자의 명목소득 자체를 감소시켜 구매력을 떨어뜨리는 한편, 소비자들의 구매패턴을 변화시키기도 한다. 저가를 지향하는 소비형태가 심화되고, 이에 궤를 같이한 대형마트의 급성장이 백화점 시장을 크게 잠식하게 됐다. TV홈쇼핑이나 인터넷 쇼핑 같은 무점포 소매업의 급성장도 백화점 업계를 압박하는 한 요인이다.

유통기업간 인수합병 활성화
유통업계 선두기업 과점화의 배경에는 지난해 진행된 두건의 대형 인수합병이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했다. 지난해 소매유통업계 세계 1,2위를 다투는 까르푸와 월마트가 잇달아 한국시장에서 철수했다. 1996년 국내 유통시장이 전면 개방된 이후 공격적으로 한국 진출에 나섰던 이들 기업이 유사한 시점에 한국 철수를 결정한 이유는 무엇일까. 빠른 진출, 자본력, 다양한 해외시장 경험까지 두루 갖춘 이들 기업이 유독 한국에서 맥을 못 춘 까닭에 대해 업계는 △현지화 노력 미흡 △현지파트너와의 마찰 △사회적 책임의식 부족 등을 꼽는다.
한편, 이들 기업이 떠난 자리에 이마트와 이랜드가 둥지를 틀었다. 앞서 지적했듯 이마트는 월마트를 인수하면서 100호점을 돌파하며, 시장점유율 32.3%를 돌파했다. 대형마트 세 곳 중 한곳이 이마트인 셈이다.
이랜드의 까르푸 인수는 백화점업계에 압박요인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중저가 패션사업을 기반으로 한 이랜드는 까르푸를 인수하며 대형마트업계 4위권에 안착했다. 그러나 ‘프리미엄급 할인점’을 표방하며 출발한 이랜드홈에버는 백화점의 패션시장을 겨냥하고 있다. 경기 불황으로 인한 소비자들의 소비심리 위축이 장기화될 경우, 백화점 패션시장은 크게 위협받을 것으로 보인다.
올해도 기업간 인수합병은 활성화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최근 매년 30개 이상의 대형마트 출점이 이어지면서, 상권 중복, 부지확보 한계 등 대형마트 시장의 외형확대가 한계점으로 치닫고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어 지난해와 같이 업계의 판형 자체를 뒤흔드는 규모의 '대형 인수합병'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새로운 유통점포의 등장과 해외진출
대형마트와 백화점의 시장 개척이 한계점에 다다랐다는 지적이 심심찮게 나오고 있는 가운데, TV홈쇼핑, 인터넷쇼핑몰, 카탈로그 판매업 등 무점포 판매업의 약진이 두드러진다. 이중 TV홈쇼핑업계는 2년 연속 10%대 성장을 기록했다. 특히 지난해 오프라인 유통강자인 롯데쇼핑이 우리홈쇼핑을 인수함에 따라, 롯데의 홈쇼핑 사업 진출 여파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대형마트의 소형화 추세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이마트 등은 올해 출점하는 매장이 3,300㎡(1천평) 전후의 ‘미니 할인점’ 형태를 띨 것이라고 밝혔다. 대형마트의 소형화 추세는 대형 부지 확보의 어려움 때문이기도 하지만, 안정적인 매출 증대를 위해 업체들이 수도권 입점을 선호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아울러 대형마트의 해외 진출이 활발해질 전망이다. 국내 시장의 경쟁 심화에 대한 대안으로 유통업체들이 해외시장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지난해 중국에 3개 점포를 추가한 이마트는 중국의 해외업체 소매업 투자 규제 완화에 따라 2010년까지 중국에 34개의 점포를 출점할 계획이다. 아웃렛으로는 처음으로 지난해 11월 세이브존도 중국에 매장을 오픈, 1호점 성공여부를 지켜본 뒤 추가 개점을 검토한다는 방침이다. 롯데쇼핑도 2007년 모스크바 백화점 개점과 베트남 시장 진출계획을 세워 놓고 있다. 지난해 베트남 합작사를 설립한 롯데마트는 내년 상반기 호치민에 1호점을 오픈한다. 그러나 업계 전문가들은 해외시장에 진출에 따른 가시적 효과가 출점 후 3년 이상 지나야 나타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가장 먼저 해외로 진출한 이마트의 경우도 1997년 첫 개장한 매장만이 현재 영업이익을 내고 있고, 2004년 개장한 두 번째 점포는 내년 이후에야 흑자를 낼 전망이다.
반면 백화점업계는 살아남기 위한 차별화 방안으로 ‘명품 시장’에 눈을 돌리고 있다. 경제 불안으로 인한 전반적인 소비심리 위축에도 불구하고, 수입 명품에 대한 수요는 꾸준히 늘고 있다. 백화점 업계 입장에서 볼 때, 명품 시장은 물가상승의 압박에서 대형마트에 비해 자유로운 부분이다. 백화점 매장을 찾는 손님 수는 줄고 있지만, 손님 한 명당 지출비용이 늘고 있다는 점은 업계가 명품시장에 공을 들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각개 약진 하는 유통산업 노조
유통산업이 몇몇 대기업 독과점 구조로 개편되면서 유통업 종사자들의 고용불안이 가중되고 있지만, 이에 대응하기 위한 노동계의 대응력은 미약한 실정이다. 현재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에 가입돼 있는 유통업 종사자 수는 약 1만여명. 소매업 종사자 수가 200만명을 넘어서고 있는 현실을 감안하면, 노조 조직률은 0.5%수준에 불과하다.
유통업체 노조 대부분이 가입해 있는 민주노총 서비스연맹은 올해 안으로 산별노조를 건설해 업종별 공동투쟁을 벌이겠다는 계획이지만, 조합원들 사이 산별노조에 대한 인식의 편차가 커 진척이 더딘 상태다.
백화점 노조의 경우 현재 한국노총 소속 롯데쇼핑노조(2,500명)와 민주노총 소속 현대백화점노조(2,200명)가 대표적 노조에 속하나, 이들 노조 간 연대활동은 거의 없다. 대형마트 노조의 경우는 한국노총의 롯데마트노조(800명)과 민주노총의 이랜드일반노조(1,100명)가 대표격이다. 이중 지난해 인수합병을 거치며 노조를 통합한 이랜드일반노조(이랜드+홈에버)는 같은 이랜드계열사인 뉴코아노조와 함께 공동투쟁본부를 구성하는 등 공동행보에 나선 상태다. 대부분의 유업산업 노조들이 산업전망을 반영한 요구안을 마련하지 못하고 임금인상 수준의 교섭을 벌이고 있는 상황을 감안하면, 이랜드계열사 노조들의 공동행보는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이랜드계열사 유통노조들은 올해 공동요구안을 만들어 공동임단협을 벌인다는 계획. 이들 노조가 밝힌 올해의 주요 요구안은 ‘고용보장과 비정규직 정규직화’다. 이 같은 요구는 오는 7월 비정규법 시행과 맞물려, 유통업계 노조 전반의 요구로 확산될 전망이다.
시작이 반이다. 유통산업은 늘어나고 있는 고용인원에 비해 노조 조직률은 미약하다. 때문에 노동계는 유통산업 노동자 조직화에 사활을 걸고 있다. 양대노총의 지원이 남다른 것은 이러한 이유에서다. 게다가 복잡한 고용구조와 비정규직이 많은 유통산업은 7월부터 시행되는 비정규법안의 시험대가 될 가능성이 높다. 비정규직 문제가 핵심현안으로 대두되고, 노사갈등의 여지가 크다는 것이다. 이러한 점들은 노동계가 추진하고 있는 산별노조 전환계획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랜드계열사 노조의 공동 임단협은 산별교섭으로 가는 시금석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유통산업 노조가 열악한 조직력을 딛고, 새로운 활로를 모색할 수 있을 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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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노동뉴스> 2007년 3월 6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