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몽골대제국 건국 800주년을 맞는 몽골에 첫 발을 내디딘 것은 지난달 26일 밤 11시15분. 건조한 냉대성 기후인 몽골에선 비를 보기가 어렵다는데 이날은 비가 내리고 있었다. 비 내리는 그 야밤에 울란바토르 징기스칸 공항에는 친조리그(Chinzorig) 몽골 노동부 차관이 직접 나와 이상수 노동부 장관 일행을 맞았다.

몽골을 방문한 한국대표단은 이상수 노동부 장관, 김종률 열린우리당 의원(환경노동위), 송문현 노동부 외국인력고용팀장, 박창현 국회 입법조사관(환경노동위) 등 모두 8명이었다.

양국간 노동분야 협력을 강화하고 고용허가제 MOU를 갱신·체결하는 한편 ILO 아태총회의 성공적 개최를 위한 협조를 요청하기 위한 다양한 목적을 가진 방문이었다.

하지만 주목할 점은 이번 방문은 지난 5월 노무현 대통령의 몽골 방문시 엥흐바야르 몽골 대통령의 부탁도 있었고 같은달 룹산 오동케메드 몽골 노동부장관의 한국 방문시 이상수 노동부장관을 찾아 특별하게 몽골행을 부탁해서 이뤄진 결과라는 점이다. 몽골 방문 내내 몽골이 한국에 무엇을 원하는지 극명히 드러나는 여정이기도 했다.


젊은 몽골은 일자리를 원한다

27일, 한국대표단은 울란바토르 시내의 정부종합청사로 향했다.

당초 예상되는 일정은 이랬다. 오전 9시40분 몽골 노동부장관을 짧게 면담한 뒤 몽골총리 예방에 이어 국회부의장을 방문하고, 다음날인 28일 한-몽 MOU 체결에 앞서 양국 노동장관의 면담시 실질적인 이야기(요구)가 나올 것으로 예상됐다. 그러나 이 같은 예상은 깨지고 총리 예방에 앞서 노동장관의 면담부터 팽팽한 긴장감이 형성되고 있었다.
룹산 오동케메드 몽골 노동사회보장부 장관은 올해 63세의 기골이 장대한, 예의 부드러운 인상 속에서도 날카로운 눈빛의 소유자로 다가왔다.

그는 의사출신(도르노고비 의과대학 학장)으로 몽골적십자사 총재를 역임했으며 2000년부터 국회의원(인민혁명당)으로 재임 중이며 올해부터 노동사회보장부 장관을 역임하고 있다.

몽골에서 63세면 상당한 연장자에 속한다. 몽골은 1921년 중국으로부터 독립하고 1924년 소련에 이어 2번째로 사회주의 국가를 수립했으며 90년대 동구 사회주의권이 무너지면서 1992년 민주공화제로 전환, 현재는 대통령과 총리의 이원집정부제 정부형태를 띠고 있다. 독립 당시 몽골은 인구가 50만명도 채 되지 않았다고 한다. 인구증가정책을 펴온 결과 현재 250만명에 이르게 됐다. 그러다보니 현재 모든 분야, 특히 정부관료들의 나이도 모두 젊다. 엥흐볼드 총리는 42세(64년생)에 불과하다.

이같이 ‘젊은’ 몽골은 노동력 증가율도 연평균 1.9%로 인구증가율 1.1%를 웃돌고 있다. 그러나 2002년 기준 실업자는 여성이 54%, 청년층(16~35세) 63%, 비숙련직 53.2%로 젊은이들의 실업이 더 심각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당신은 행운의 손님이십니다”

몽골 종합청사. 기골이 장대한 몽골 노동장관 곁에 수타바르 돌고린 해외취업청장, 엥크투야 투머오키르 노동정책협력국장 등이 일제히 배석했다.

“몽골에선 비를 보기가 어렵습니다. 이 장관님은 비를 몰고 온 행운의 손님이십니다.”

몽골에 도착하자마자 맞은 비는 다음날도 어김없이 내리고 있었다. 한국과는 달리 비는 그들에게 행운의 상징인 모양이다. 단순한 인사치레 같아보이지가 않는다. 한국의 노동장관은 그들에게 ‘행운’을 가져다줄 손님임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뜻밖에 그들은 만나자마자 꽤나 많은 요구를 내놓았다.

“송출인력을 더 많이 늘려주십시오. 부부도 함께 거주할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또 지금보다 여성노동자도 더 많이 뽑아주세요. 한국내 몽골체류자(불·합법) 보호에도 더 많은 관심을 가져주십시오. 또 지방에서도 한국어능력시험을 볼 수 있게 해주세요. 시험도 연 2회 볼 수 있도록 해주시고요. 노동부간 노동협력 MOU도 가급적 체결해주셨으면 합니다.”

몽골 노동장관은 이 같은 요구를 관철시키겠다는 단호한 의지가 엿보였다. 하지만 한국정부로서는 대부분 난감한 주제들이 아닐 수 없다. 노동부 단독으로 결정할 수 없는 사안들이기 때문이다.

몽골 총리의 면담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더 젊은 얼굴에 기골이 장대해 보이는 엥흐볼드 총리는 “이 장관님의 몽골 방문을 계기로 양국의 시급한 문제들을 해결했으면 좋겠습니다. 지금 이 장관님의 방문에 관련부처는 물론 국민의 관심이 지대합니다. 한국 송출희망자가 많습니다. 가족체류도 원하고요. 또 노동부간 MOU가 체결되면 양국 노동부간 직접교류가 활성화될 것입니다.”

양국 노동부간 MOU는 인력송출 MOU와는 구분되는 것으로 양국 노동부간 교류·협력의 확대를 위한 것으로 예산지원 등이 따르는 것으로 범위가 더 넓다.

어김없는 ‘외교전’이다. 그러나 그들의 열망은 뜨거워보였다. 10배 이상의 돈을 벌 수 있는 한국행은 국민적 관심사이기도 하다. 게다가 한국 노동부장관의 몽골방문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몽골정부는 이 ‘기회’가 더 없이 소중할 따름이다. 팽팽한 긴장감이 흐르고 있었다.


치열한 외교전 ‘인력송출’

‘행운의 손님’ 이상수 장관은 여전히 비가 내리는 28일 다시 몽골종합청사를 찾았다. 이번 방문의 목적인 인력송출 MOU를 체결하기 위해서이다. 또한 전날의 몽골정부의 요구에 대한 답도 준비했을 터다.

사실 몽골정부의 요구는 끈질겼다. 양국간 노동부간 MOU 체결은 외교협약인데다 직업훈련 지원 등의 문제가 걸려있어 한국의 외교부와 기획예산처 등 관련부처와의 협의가 필요한 사항임에도 그들은 먼저 노동부간 MOU안을 작성해 전날 제출했던 것이다. 몽골정부가 작성한 MOU 안에는 이밖에도 양성평등(여성노동자 송출확대), 몽골노동자 서비스업 진출 등 전날 요구한 사항들도 포함돼 있었다.

“양국 노동부간 MOU 체결에 대한 검토를 해봤습니다. 예산지원이 수반되지 않는 한 고용지원센터의 경험이 있으니까 지원이 가능할 것입니다. 제안서를 주신다면 검토해보지요.” 이상수 장관이 인력송출 MOU 체결에 앞서 답을 주었다.

“노동부간 MOU는 외교부 협약사항이라 상의가 필요합니다. 어차피 8월29일 (ILO 아태총회건으로) 방한하실테니까 그때 체결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이상수 장관이 마지막 답을 주었다.

그 순간, 투박한 몽골 노동장관의 얼굴에 살짝, 그러나 숨길 수 없는 웃음꽃이 피었다. 그들의 모든 요구가 관철된 것은 아니지만 한 달 뒤 체결하자는 답을 얻어냈기 때문이다.

“사실 미리 말씀드리지 못하고 갑작스럽게 요구하게 돼 죄송합니다. 앞으로 한 달간 준비 잘 하겠습니다. 그리고 저희 총리께서 ILO 아태총회에 직접 참석한다는 말씀 전해달라고 하십니다.”

그들은 화답했다. 그리고는 무난히 인력송출 MOU는 갱신·체결됐다.


최대 고객이 방문한 ‘해외취업청’

다음 방문지는 몽골 해외취업청(MBE). 바로 몽골의 송출기관이다.

몽골 해외취업청은 지난 2002년 실업률 해소와 청년고용 증대를 목적으로 한 정부사업의 일환으로 설립됐으며 일자리 알선, 직업능력기술 개발 훈련, 취업대상자 건강검진, 한국과 대만에 인력송출을 실시하고 있으며 일본, 뉴질랜드, 헝가리, 캐나다 및 미국으로 인력송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몽골에선 심각한 문제가 나타나고 있는 듯 했다. 바로 한국의 고용허가제는 송출기관의 송출비리 근절을 위해 ‘공공성’을 강조, 정부나 정부기관이 직접 운영토록 하고 있다. 그러나 몽골의 해외취업청은 이미 몽골 노동부가 좌우하지 못하는, 영리화 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때문에 이번 몽골 방문 내내 몽골 노동부와 해외취업청간의 팽팽한 ‘신경전’이 드러나기도 했다. 또한 몽골 노동부가 이번 이상수 장관의 방문을 계기로 무엇을 원하는지도 더욱 잘 드러났다.<인터뷰 참조>

해외취업청은 가장 중요한 고객인 한국의 노동부장관을 맞는다고 떠들썩했다. 몽골의 방송·신문사 기자들도 해외취업청에 몰려들었다.

“현재 저희 해외취업청은 대만에 500명, 한국에 8천명(고용허가제) 가량 인력을 송출하고 있습니다. 저희가 조사한 결과 현재 3만명의 몽골노동자가 한국행을 희망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저희는 그런 노동자에게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수타바르 돌고린(47) 해외취업청장이 이상수 장관에게 해외취업청을 소개하기 시작했다.

“한 가지 요청드릴 게 있습니다. 저희 해외취업청은 한국에 지사를 설치하고자 합니다. 8~9명이 근무할 것으로 예상되고 사무소 운영비는 자체적으로 댈 것입니다. 한국서 일하는 몽골노동자 관리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또 하나 요청은, 한국어능력시험 실시 이후 학원에서 준비하는 노동자들이 많아졌어요. 한국어 준비 비용이 시험실시 이전엔 30~40달러였던데 반해 지금은 100~300달러에 달합니다. 현재 노동부 산하에 몇 개의 한국어교육기관을 두자고 요청중입니다. 그러면 효과적으로 비용을 낮출 수 있을 겁니다.” 이어진 해외취업청장의 요구였다.


“한국에서 다시 뵙겠습니다!”

취재경쟁은 치열했다.

이상수 장관이 해외취업청의 각 부서를 다닐 때마다 취재·사진기자들은 그를 물샐틈없이 에워싸고 취재경쟁을 벌였다. 확실히 그는 몽골의 ‘행운의 손님’임이 틀림없어 보인다.

해외취업청에서 가장 눈에 띄는 곳은 역시 한국 취업을 앞두고 있는 노동자들이 교육을 받고 있는 현장이 아닐 수 없다.

해외취업청에서는 한국에 올 이들을 대상으로 한국어교육 80시간, 한국문화 교육 및 고용허가제 관련 교육 13시간, 산업안전교육 15시간, 전문직업교육 35시간 등을 교육시킨다.
이 장관이 찾아간 교실에선 한국 취업을 앞둔 젊은 남녀 노동자들이 빼곡히 앉아 교육을 한국어교육을 받고 있었다.

“8월4일에 한국 간다고요? 어떤 일할 예정입니까?”
이 장관이 한 몽골 남성노동자에게 물었다.

“식품공장입니다. 이미 갈 공장이 정해졌어요.”

또 다른 남성노동자는 “전 경기도 한 전기회사에 들어갈 예정입니다”라고 답했다. 그는 4년제 대학에서 지질학을 전공한 사람이었다. 8월5일 한국으로 떠난단다.

이 장관이 교실을 뜨려하자 몽골교육생들은 일제히 “다음에 뵙겠습니다”라고 외친다.

그런데 여기에서 한 가지 문제점이 드러났다. 이날 교실에서 본 노동자들은 8월4, 5일 한국행을 예정해두고 이미 본인이 갈 회사도 정해져있는 이들이 자기가 정확히 무슨 회사에서 무슨 일을 하는지 잘 모른다는 점이다. 실제 이주노동자인권연대의 보고서에 따르면 ‘입국 전 어떤 회사에 근무할지 아느냐’란 질문에 응답자 127명 중 64.6%인 82명이 ‘모른다’고 응답하기도 했다.

이날 몽골 기자들의 이 장관에 대해 질문이 쏟아졌다.

“인력송출 MOU 갱신·체결에 대한 이 장관님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불법체류자에 대해 노무현 대통령은 관심을 갖겠다고 말씀하신 바 있습니다. 진전사항은 있습니까?”

이에 대해 이상수 장관은 “한국에서도 건실히 일하고 여기서도 철저히 준비하셔서 인력송출 MOU가 갱신·체결됐습니다. 앞으로 계속 갱신·체결해서 몽골노동자들이 한국에서 계속 일할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또한 불법체류자가 몽골로 송금하는데 협력사항을 검토하고 있습니다”라고 화답했다.

서로 도움주는 관계 “이흐 바이를라”

몽골인들은 ‘자존심’이 특히 세다고 한다. 이번 방문 내내 한국대표단에 대한 예우는 최고였으나 그들의 기대와 요구 또한 만만치 않았다.

그들은 8월29일 노동부간 MOU 체결을 약속받은 것에 상당한 만족감을 표현하고 있다. 몽골 국민들의 요구와 기대가 높은 만큼 몽골 정부는 이를 실현해내야 한다는 부담감이 커보였다.

이번 방문 중 만난 한 몽골 언론인은 “이번 한국 노동부장관에 대한 일반 젊은이들은 상당히 중시여기고 있다”며 “특히 예전엔 지금처럼 오픈 돼서 알려지지 않았는데 지금은 이 장관의 방문을 모두 알고 있다. 당연히 그의 행보에 초점이 모아지는 것이다.”

한국도 몽골과의 협력을 일방적인 시혜의 의미로 생각지 않고 있다.

이번 방문에선 몽골인들도 미처 생각지 못했다가 이번 한국대표단 방문에서 그들의 자존심을 살려줄 ‘언급’을 이상수 장관 등 한국대표단으로부터 들었다. 그저 한국에 인력송출을 해서 돈을 버는 것 뿐 아니라 그들이 한국에서 일함으로써 ‘한국경제’에 기여한다는 사실 말이다.

“그런 말씀을 들으니 참 기쁩니다. 한국서 돌아온 노동자들은 한국식으로 열심히 일합니다. 저희들은 노동력을 한국에서 양성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몽골의 인력송출은 양국의 발전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몽골 장관)

“저 역시도 그런 말씀을 들어서 기쁩니다. 이흐 바이를라(대단히 감사합니다).”(이상수 장관)

“해외취업청 영리화에 다시 정부 고삐 죌 것”
룹산 오동케메드 몽골 노동부장관은 한국대표단 방문 내내 한국의 노동부 장관을 최고로 예우하며 든든한 동반자 관계임을 과시해왔다. 그는 한국 노동부장관의 방문을 어떤 의미로 바라보고 있는 것일까.


- MOU 갱신체결의 의미를 어떻게 보는가?
“MOU를 갱신체결하기 위해 오랫동안 서로 준비해왔다. 기초적인 준비부터 튼튼히 한 MOU다.”


- 이번에 추가요구가 많았다.
“몽골은 현재 실업률이 매우 높다. 해소의 일환으로 외국인력을 송출하고 있다. 가족이 함께 하면 경비도 절감하고 일에 전념할 수 있을 것이다. 노동부간 MOU 체결은 부처간 협력의 기초라서 중시여기고 있다. MOU 본안에 몽골측 요구만이 아니라 한국측 요구도 반영했으면 한다.”


- 노동부간 MOU를 8월29일 체결하자고 했다. 의미를 어떻게 보는가?
“이상수 장관의 말씀에 찬성한다. 예산에 대한 부처간 협의가 필요하고 외교부 협의가 필요한 사항을 이해한다. 8월29일 서명했으면 좋겠다.”


- 이전의 산업연수제와 지금의 고용허가제를 비교한다면?
“우리로선 고용허가제 하에서 좀더 많은 이들이 한국에 갔으면 한다는 것이다. 제도가 무엇인지는 크게 상관치 않는다.”


- 고용허가제 하에서는 송출기관의 공공성을 중시여기고 있다.
“사실 몽골의 송출기관에선 노동부와 서로 협의하지 않은 사항들이 해외취업청 맘대로 행해지고 있다. 정부에서 해외취업청의 권한을 가져오는 조치를 단행할 예정이다. 정부에서 권한을 갖고 해결하면 비용이 절감될 것이다. 좀더 공정히 사람이 모집될 수 있도록 공평한 절차를 유지할 것이다.”


- 해외인력청이 어떤 문제를 안고 있는가.
“처음엔 정부의 명령에 의해 정부산하기관으로 설립됐으나 지금은 정부와 무관한 기구가 돼버렸다. 이 문제를 종결짓고자 한다. 이상수 장관의 방문의 결과로 개선될 것이라고 본다.”


- 한국서 일하다 온 몽골노동자의 만족도는 어떤가.
“본인이 얼마나 열심히 일했느냐가 관건인 것 같다. 대부분 사람들은 흡족해한다. 한국을 다녀온 많은 이들이 집과 차를 사고 개인사업을 시작하기도 한다.”


연재순서
1. 몽골인구의 1% 한국에 체류하다                          2. ‘젊은 몽골’은 한국의 일자리를 원한다


<편집자주> 최대의 몽골노동자 수입국인 한국. 어느새 고용허가제 도입 2년이 지나 지난달 28일 몽골과 인력송출 MOU를 체결했다. 이례적으로 이번에는 한국 노동부장관이 송출국을 직접 찾았다. 본지는 이번 노동부장관의 몽골방문에 동행취재했다. 2회에 걸쳐서 고용허가제와 몽골의 현황과 몽골방문 동행기를 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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