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란한 기계 소리와 함께 덜컹거리는 건설용 리프트를 타고 100여m를 올라간 그곳은 아직 마감공사도 하지 않아 '호화찬란'의 속살을 드러낸 듯 했다. 대리석이 깔릴 예정인 복도와 침실과 서재, 대형드레스룸이 아직 제자리를 찾지 못한 그곳에 ‘인간답게 살고 싶다’는 그들의 목소리가 적혀 있었다.

지난 23일 ‘건설노동자 파업 승리를 위한 민주노총 결의대회’에 참가한 노동자들이 고공농성에 들어간 50여명의 대구경북건설노조 조합원들을 만나기 위해 건설현장을 찾았다. 경찰들이 가로막은 육중한 문이 열리고 남궁현 건설산업연맹 위원장 등 대표단 5명과 함께 기자들에게 농성장 방문이 허락됐다.
지상에서는 이날 대회에 참여한 2천여명의 노동자들이 볼륨을 최대한 높이고 이들의 안부를 물었지만 땅보다 하늘이 가까운 이곳에서 그들의 목소리는 바람에 묻혀 들리지 않고 어렴풋 ‘파업투쟁 승리’ 소리만 들릴 뿐이다. 휑한 창문으로 고개를 내밀어 힘껏 손을 내저었지만 땅 아래서도 이들이 보이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한 조합원이 답답했는지 휴대폰을 꺼내 밑에 있는 동료에게 전화를 건다. 커다란 나무 밑에서 손을 흔들고 있는 동료를 찾자 그도 백열등을 흔들며 자신의 위치를 알린다. 그렇게 2시간이 지나고 하늘이 어둑해지자 동료들이 채웠던 자리에는 경찰들이 다시 자리를 잡기 시작한다.
그제서야 볼펜과 수첩을 쥔 기자들에게 그들이 말문을 열었다. ‘제발 우리들 목소리 좀 똑바로 실어달라’는 당부와 함께.
“기자양반, 당신이 서 있는 이 현장에서만 4명이 죽었어, 우리는 그 죽은 동료 위에서 먹고 살겠다고 아등바등 일하고 사는 거야, 사람 한명 죽으면 5일간 건설현장이 쉬는데 그럼 우린 5일간 일을 못하는 거지.” 동료가 죽었는데도 하루일당 날라 가는 것이 아쉽기만 한, 비가 와서 날이 너무 더워서 1년 365일 많이 일해 봐야 240일을 넘지 못하고 나머지 날들은 손을 놓고 살아야 한다는 그들의 말이 이어진다.
“10년 동안 임금이 인상되기는커녕 오히려 먹고 살기조차 어려워서 고작 2만원 인상해달라는 것이 무리한 요구야? 최소한 인간답게 살 수 있도록 해달라는 요구가? 살 수 있도록만 해달라는 데….”

사납게 쏟아놓던 이들의 말이 멈추고 정적이 흘렀다. 이들은 이날 전문건설업체와 노조간 교섭이 파행으로 끝난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한 조합원이 다시 말을 잇는다. “참고 살았던 우리가 바보지. 우리 손으로 집 지으면서도 내 집 한칸 마련 못하는 것이 내가 무능력해서 내가 모자라서 그런 줄 알았던 거야. 그래서 시키면 시키는 대로, 열심히만 하면 되는 줄 알았고. 이젠, 우리 요구가 수용되기 전까지는 절대 내려가지 않을 거야, 차라리 여기서 죽으면 죽었지.”
어둠으로 가득한 도시 곳곳에 불이 켜진다. 스위스와 대한민국의 월드컵 경기를 앞둔 저녁거리도 한산하다. 지난밤 내린 비로 습기가 가득한 현장에 몸을 가누기조차 힘들 정도로 바람이 거세다. 평당 1,500만원 하는 초호화 아파트에서 이들 건설노동자들은 또 한뎃잠을 자야 한다.

조기현 위원장<사진>은 “조선노동조합 전국평의회 이후 토목건축 건설노동자들이 지역 전체를 거점으로 총파업을 벌인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며 “180만 건설일용노동자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한 대구경북건설노조의 투쟁은 반드시 승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매일노동뉴스>가 수배중인 조기현 위원장을 지난 23일 만났다.
- 장기화된 파업, 노조의 요구는.
“지난 1일 파업에 돌입한 노조는 ‘적정임금 인상’, ‘유보임금 근절’, ‘조합원 우선고용’, ‘시공참여제도 폐지’, '다단계하도급 철폐’ 등 5대 요구안을 내걸고 있다. 평균 연령 47세인 건설노동자들 대다수는 3.6인의 부양가족과 평균 157만원의 임금을 받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IMF 이후 10년간 임금이 인상되기보다는 다단계 하도급으로 인해 오히려 일당이 삭감되고 시공참여자제도를 악용해 건설노동자들의 생존권을 위협하고 있는 상황이다.”
- 11차례에 걸쳐 전문건설업체와 교섭을 진행했다.
“지난달 8일 교섭공문을 보내고 12일 첫 교섭을 가졌다. 그러나 3차에 이르는 교섭기간 동안 전문건설업체는 사용자대표단을 구성하지도 않았고 실질적으로 임금을 둘러싼 논의를 시작한 것은 지난 20일 9차 교섭에서야 가능했다. 조합원 설문결과 하루일당 17만원 정도를 요구하고 있으나 노조는 10% 인상인 12만원(기능공 기준) 일당을 내놨다. 그러나 사쪽은 5천원 인상안인 5% 인상안을 고수하고 이 역시도 철근은 제외, 형틀 목수로 국한, 10월1일부터 계약하는 공사에 한해서만 10% 인상안을 제출한 상황이다. 노조가 8시간 기준 10% 인상안을 제출했지만 전문건설업체는 이 역시도 거부하고 있다.”
- 건설현장에서 불법인 다단계 하도급 문제가 더 심각한 것 같다.
“현재 아파트 공사의 경우 7~8단계의 하도급이 성행하고 있다. 이로 인해 건설노동자들의 일당이 계속 줄어드는 것이 사실이다. 뿐만 아니라 건설현장의 부실공사를 막기 위한 제도인 시공참여자제도는 ‘팀장’을 사용자로 전락시키면서 제도적 불법다단계 하도급을 양성하고 있다. 이는 일당삭감의 원인뿐 아니라 팀장들에게 산업재해 문제나, 장비지급, 고용보험 등의 비용을 전가시키는 등 단순 동료관계인 팀장과 팀원을 고용관계로 전락시킨다.”
- 23일째 파업이 계속되고 있는데.
“교섭이 난항에 빠지면서 1천여 조합원들은 죽기를 작정하고 원청과 전문건설업체, 그리고 경찰과 검찰을 상대로 투쟁을 벌이고 있다. 특히 경찰과 검찰이 합법적인 노조의 파업을 불법으로 몰고 강경대응으로 일관하면서 사용자들은 교섭조차 해태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100m 높이의 32층 아파트 건설현장을 점거, 고공농성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아직까지 조합원들은 크게 동요하고 있지는 않다. 전문건설업체에서 조합원들에게 해고의 위협을 계속 가하고는 있지만 조합원들은 ‘죽더라도’ 이대로 현장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고 말한다.”
- 이번 파업 투쟁의 의의는.
“‘노가다’ 인생 10년에서 30년, 건설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들이다. 누구 하나 알아주지 않았지만, 망치 하나 들고 고속도로도 만들고, 초고층 아파트도 올렸다. 숱한 시간, 척박한 노동환경을 참고 살아 왔던 건설노동자들의 울분이 이제 폭발했다고 보면 된다. 대구경북 1천여 건설노동자가 이제 건설현장부터 다시 기초공사를 쌓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