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정위원회가 새로운 기로에 섰다. 노사정위는 1998년 IMF 극복을 위해 출범한 이래 장기간 민주노총의 불참에 이어 지난해 한국노총의 탈퇴와 복귀까지 수차례 우여곡절을 겪어 왔다. 이 과정에서 노사정위의 정체성은 심하게 흔들렸고, 해체부터 강화까지 다양한 의견들도 제기된 바 있다.

이제 노사정위는 이같은 과정을 거쳐 새로운 발전방향을 모색하고 있다. 이는 한편으로 한국사회에서 시도됐던 ‘사회적 대화틀’의 성패의 갈림길에 서 있는 것과도 같다. 노사정위는 불안정한 정체성 속에서도 지난 나름의 성과를 딛고 새롭게 도약할 수 있을 것인가.

노사정위원회(위원장 김금수)는 지난 14일 오후 여의도 국민일보(CCMM)에서 ‘노사정위 발전방향을 위한 대토론회’를 가졌다.<사진>

이날 사회는 임종률 성균관대 교수가 맡고, 주제발표는 김형기 경북대 교수, 임상훈 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이 나섰고, 지정토론자로는 이목희 열린우리당 국회의원, 배일도 한나라당 국회의원, 정현백 한국여성단체연합 대표, 김기식 참여연대 사무처장, 최영기 한국노동연구원장, 정이환 서울산업대 교수, 우득정 서울신문 논설위원, 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장이 참여했다.


비정규직 등 참여주체를 확대하라

이날 김금수 노사정위원장은 인사말을 통해 “96년 노사관계개혁위원회 발족부터 IMF 이후 노사정위 출범 이후 그동안 한국에서 추진된 사회적 대화는 참여민주주의 신장에 나름대로 기여했다”며 “지금도 사회적 대화로 풀어야 할 과제가 많다”며 활발한 노사정위 발전방향 토론을 기대했다. 또 이용득 한국노총 위원장도 인사말을 통해 “지금의 노동시장은 정부가 획일적으로 이끌고 있는 가운데 노사 당사자의 역할이 중요함에도 서로 대화 없는 후진적 관계를 이어가고 있다”며 “노사가 자율적으로 대화할 수 있는 민간기구가 필요하다”며 노사정위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날 ‘사회적 대화체제 경험과 발전방향’이란 주제발표에 나선 김형기 교수는 “정부의 일방적 통치가 아니라 노·사·정·민 등 이해관계자가 상시적으로 대화하고 협의하는 사회적 대화체제인 민주적 거버넌스(협치)가 필요하다”며 우리사회에서 사회적 대화체제의 복원을 강조했다. 이를 위해 노사정위 역할은 ‘정부로 하여금 사회통합과 양극화해소를 위한 사회적 대화를 주도하도록 해야 하며’, ‘노사정간 공통이익을 증진할 수 있는 사회적 의제 개발을 통해 노사정이 사회적 대화에 나서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본지 4월14일자 참조>

이에 따라 노사정위 개편방향으로 “노사정위가 사회적 대화의 중심기구로 확실히 자리매김토록 해야 한다”며 현재의 대통령 자문기구로서의 위상 정립을 위해 대통령의 지속적 관심과 의지는 물론 사회적 통합과 국가경쟁력 강화를 주요 의제로 삼으면서 업종별 노사정협의회를 설치하고 지역노사정협의회를 강화해 중층적 사회적 대화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밝혔다. 또한 노사정 어느 일방의 탈퇴·불참에 대한 제도적 장치도 강구하라고 제시했다.

이를 위해 특히 참여주체의 확대방안이 눈에 띈다. 이날 토론회에서도 김 교수는 국민적 대표성 확보를 위해 노(정규직)-노(비정규직)-사(대기업)-사(중소기업)-정(중앙)-정(지방정부)-민(NGO나 대학)의 7주체 참여를 제안했다. 그는 노동운동의 정규직 중심 탈피, 대-중소기업 간 대등한 위치 등이 대화체에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노사정’ 중심의 대화기구 활성화해야

이밖에도 김 교수는 중앙 노사정위-업종별 노사정협의회-지역 노사정협의회 간 연계체제 구축 등 중층적 대화체제 구축, 노사정위원장이 인사권, 예산편성권을 가지고 위원장과 상임위원을 정무직으로 하는 자주성 및 독립성 확보 방안, 향후 임금, 세제 등 정책적 거대담론 등 논의 의제 확대 등을 제시했다.

이어 ‘주요 외국의 사회적 대화체제 비교 및 시사점’이란 주제발표에 나선 임상훈 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세계화와 신자유주의 범람 속에서 사라질 것으로 보였던 사회협약은 80년대 중반 이후 다시 등장했다”며 “다시 등장한 사회협약은 보다 확장돼 재정, 임금, 노동시장, 사회정책과 같은 형식적, 제도적으로 구별돼 있는 그렇지만 상호 연관된 정책들을 조정하기 위해 노사정이 장기적으로 만나는 ‘거시적 정책조정’을 뜻하게 됐다”며 우리사회에서의 사회적 대화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임 연구위원은 브라질, 남아공, 스페인, 이탈리아, 네덜란드, 아일랜등 등 모두 6개국의 사례연구를 통해 “6개국은 사회협약(사회적 협의) 실패의 경험을 공유하고 있다는 점과 기존의 실패를 딛고 새로운 사회협약을 체결하는데 성공했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며 “이 과정에서 사회협약 의제가 확장됐으며 사회적 협의기구가 제도화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 같은 외국사례로 볼 때 한국사회에서 사회적 협의기구의 확대가 필요하며 이는 노사정위 중심으로 논의하며 사회적 대화의 활성화가 필요하다”며 참여주체의 확대, 중층적 대화체제, 사회갈등해소 메커니즘을 갖춰야 한다고 밝혔다.


NGO, 시민사회 포함한 대화기구 제안

이날 토론회는 열띤 토론으로 이어졌다. 우선 배일도 한나라당 의원은 그동안 자주 강조해 온 노사 대화의 자율성을 강조하며 노사정위 해체를 주장하기도 했다. 그는 “노사정 간 신뢰와 협조 없는 노사정위 운영에는 회의가 들 수밖에 없다”며 “노사간 자율적인 교섭과 대화를 통해 해결할 수 있도록 재원을 마련해 소위 노동재단을 세워 노동자 복지나 사회임금 등을 해결하는 것이 낫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날 토론자의 대부분은 사회적 대화의 필요성에 공감하는 의견이었다. 다만 사회적 대화의 형식이나 내용 등에서 엇갈린 의견이 나오기도 했는데, 노사정위 중심이냐 아니면 다른 방식이냐를 두고도 열띤 쟁점이 형성되기도 했다.<상자기사 참조>

이 같은 의견을 주도한 곳은 NGO진영. 우선 정현백 여연 공동대표는 “사회문화를 바꿔가는 거대담론을 중심으로 큰 틀에서 제기돼야 한다”며 “노사정위 틀이 아니라 보다 확장된 광범위한 시민사회가 참여하는 틀이 필요하다”고 제기했다. 특히 정 대표는 ‘대표성’의 문제를 제기했다. 그는 “최근 빈곤의 여성화가 제기되고 있으나 노사정위가 이같은 거대담론에 대한 자신의 대안을 마련하기 위해선 남녀평등적 관점이 없으면 곤란하다”며 “‘그들만의 전문성’이 아닌 여성이나 소수자의 관점이 반영되도록 노사정위의 대표성 문제를 전면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기식 참여연대 사무처장도 “우리 사회가 제대로 사회적 교섭을 해본 적이 없고 이것이 지난 수년간의 현실”이라며 “노사정을 중심으로 한 사회적 대화는 낙관적이 아니다”라고 운을 뗐다. 이어 김 사무처장은 “노동관계법으로 노동시장의 양극화 문제를 해소할 수는 없다”며 “이는 산업, 조세정책 등이 유기적, 종합적으로 실행될 때 가능하며 노동관계법 중심의 의제를 가지고 첨예한 대립을 하고 사회적 대화의 공감대도 형성 못하는 상황에서 노사정위 개편으로 해답을 찾긴 어렵다”고 밝히며, 현재 진행 중인 ‘저출산·고령화대책연석회의’에 주목할 것을 제안했다.

노사정 중심의 ‘사회적 대화’가 중요하다

그러나 NGO 진영의 의견에도 불구하고 이날 토론회에서는 기존의 사회적 대화 체제에 회의하면서도 노사정을 중심으로 한 사회적 대화의 필요성에 공감하는 의견이 주를 이뤘다.

이목희 열린우리당 의원은 “노사정위가 잘 안 된 이유는 우선 만들어놓고 의지와 역량을 쏟아붓지 않은 정부의 책임이 크며 쉽게 드나드는 행태를 보인 노동계 역시 책임이 있다”고 전제하고, “그러나 노사정위는 잘 가꿀 필요가 있고 일정 정도 자기 역할을 할 수 있는 기반이 있다”며 “논의 의제를 확대하고 정무직 전환에 찬성하며 참여주체 확대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밝혔다.

최영기 한국노동연구원장은 우선 사회적 대화 정책에서 ‘정부의 잘못’을 지적했다. 그는 “정부는 지난 3년간 노사관계 로드맵과 비정규법안으로 사회적 타협을 이루려다 보니 대화와 타협을 더 어렵게 했다”며 “노사정위란 기구가 발전하는 게 아니라 사회적 대화의 발전 방안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최 원장은 특히 재계의 리더십 부재도 지적했다. 그는 “노동계의 대표성과 리더십을 자주 지적하지만 재계의 대표성과 리더십 역시 만만치 않게 약하다”며 “사회적 대화 체계가 잘 작동되는 나라는 재계의 단결과 주도권이 잘 되고 있는 곳들로 우리나라 경제단체, 5대 재벌은 한국의 노사관계 선진화를 위한 전략을 갖고 있어야 한다”고 따끔한 지적을 아끼지 않았다.

정이환 서울산업대 교수는 “노사정위가 우리나라 사회적 대화를 위해 중요하며 노사정위 중심의 사회적 대화가 발전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당장의 합의를 기대하고 연연해 하기보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노사정이 모여 조금씩 대화를 통해 신뢰를 쌓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장은 “정부측의 의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그러나 정부는 98년 노사정위 1기 때 협약 도출을 위해 정부 차원의 노력과 투자가 있었으나 그 시기를 제외하곤 립서비스로 사회적 대화의 필요성을 주장했지만 실질적 투자와 정상화 노력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이어 김 소장은 “민주노총 지도부가 노사정위 참여 건을 다룰 때 내부의 격렬한 반발을 뚫고 가기 위한 반대급부가 있어야 한다”며 “민주노총이 참여하고 노사정위가 정상화되면 초기업·산업별 노사관계를 진전시킬 수 있고 노동시장 근로빈곤층 문제를 해소할 수 있다는 믿음과 신뢰를 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현재 노사정 대표자회의가 이제 노사정위 개편방안 막바지 논의 중인 가운데 노사정이 빠진 채 외부 전문가로만 구성된 이날 토론회의 결과를 반영해 이달말께 어떤 개편방안을 내놓을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노사정위냐 연석회의냐
사회적 대화기구의 참여주체의 확대 문제는 이날 토론회에서 뜻밖에 민감한 문제로 떠올랐다. 당초 주제발표자 김형기 교수는 참여주체 확대의 의미는 사회적 대화의 중심은 노사정이 돼야 하되, 대표성의 다양성을 위해 비정규직, 중소기업, 지방정부, NGO와 대학 등이 논의의제별이나 상무위 등에서 참여해야 한다는 입장을 의미한 것이었다.


그러나 논의는 노사정위가 아닌 시민사회가 참여하는 거대담론을 다루는 사회적 대화체가 돼야 한다는 NGO 토론자들의 의견이 나오면서 현재 진행 중인 저출산·고령화대책연석회의와 노사정위가 자연스레 비교의 대상이 됐다.


이날 김기식 참여연대 사무처장은 “노사정위에서 노동관계법 중심의 의제로는 노동시장의 양극화 등을 해소하기는 곤란하다”며 “지난 1월 출범한 저출산·고령화대책연석회의가 조만간 1차 합의를 이뤄 6월초께 1차 발표를 하고 나면 그 성과에 따라 포괄적 사회적협의체 논의가 불거질 텐데 지금 노사정위 개편방안 논의가 의미가 있겠냐”고 주장했다. 지금 연석회의에는 민주노총도 들어와 있고 실제 사회적 협약이라는 성과도 만들어낼 것이란 설명.


그러나 이날 토론자의 대다수는 연석회의가 보완관계는 될 수 있을지 몰라도 사회적 협의체는 노사정이 중심이 돼야 함을 강조했다. 김형기 교수는 “사회적 대화의 핵심은 자본주의사회에서 노사 간 교환의 문제라는 점을 망각해선 안 된다”며 “노사정을 중심에 두고 시민사회로 확대해가는 게 맞다”고 주장했다.


최영기 원장은 보완관계론을 펼쳤다. 그는 “노사정위와 연석회의는 서로의 기능을 구분하는 것이 좋은 방식이라고 본다”며 “파트너십 정신, 민관합의의 정신은 노사정위가 담아내기 어려우므로 보완관계로 갈 수 있을 것”이라고 의견을 내놓았다. 임상훈 연구위원은 “연석회의는 경제나 사회의 청사진을 제시하는 것이지 노사정 간 협의나 합의를 대체하는 것은 아니”라며 “노사정위가 거시적 정책을 못 다루는 원인을 연구하고 발전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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