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도노조(위원장 김영훈)의 파업이 끝나지 않았음이 여기저기서 메아리치고 있다. 서울·부산KTX열차승무지부는 지난 4일 노조의 업무복귀 선언 뒤에도 업무에 복귀치 않고 현재까지 파업을 지속하고 있고, 철도 해고자들 역시 대전지역 3곳에 천막을 치고 '현장으로 돌아가자'며 농성을 진행 중이다.

그 중 단지 해고자라는 이유로 각종 여론으로부터 '투쟁의 정당성'을 외면받은 해고자들의 천막농성 소식은 어디에서도 접할 수 없었다. 지난 23일, 철도 해고자들의 목소리를 찾아 대전으로 향했다.

가장 먼저 찾은 곳은 대전 신탄진에 위치한 대전정비창 앞. 정문 앞에는 천막 한 동이 자리잡고 있었다. 안으로 들어서니 마침 노조 대전정비창본부와 해고자들이 대전정비창 단장실을 항의방문하고 돌아온 뒤였다.

이날 오후 3시 해고자와 대전정비창본부는 고소·고발자를 제외한 조합원들의 직위해제를 철회하라는 요구를 들고, 단장실을 항의방문해 단장으로부터 "다음주까지 고소·고발자를 제외한 나머지 직원들에 대해 직위해제를 풀도록 노력하겠다"는 답변을 얻었다. 철도해고자들이 천막농성을 시작한 것도 철도노조 파업으로 인한 조합원들을 대상으로 한 대량 직위해제가 원인이 됐다.


전상운(전 대전정비창본부장) 해고자<사진>는 "2,244명에 이르는 대량 직위해제와 200여명에 이르는 고소·고발 철회를 위해 천막농성에 들어갔다"고 밝혔다. 대전지방본부의 관할 직위해제자는 총 48명으로, 현재는 33명의 직위해제자가 남아 있다. 전 해고자는 "직위해제를 철회하는 과정도 한 곳에 집중돼 풀리거나, 노조 간부가 일반 조합원들보다 먼저 풀리는 등 형평성에 어긋나고 기준도 없다"고 지적했다.

이번 철도노조 파업 동안 많은 해고자들이 원직복직을 기대하고 있었다. 전 해고자는 "파업 전 해고자들이 용산검수창 지붕에 올라가 농성을 했을 때, 현장에서는 3, 40여명이 복직될 거라는 얘기가 흘러나왔다"며 "그러나 막상 교섭장에 가보니 공사는 처음 얘기했던 11명 복직을 주장하고 있을 뿐"이었다고 밝혔다.

파업 돌입 뒤 열린 교섭에서 철도공사는 기존 얘기됐던 11명 복직에 6명을 추가하는 방안을 내놓기도 했다. 그리고 여기에는 '노사평화선언'을 전제로 한다는 안을 공사가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해고자들의 이야기는 달랐다. 한 해고자는 "쟁대위를 즉각 해체하고, 공사에 누가 되는 일은 하지 않는다라는 조건을 내세웠다"며 "사실상 무쟁의 선언이나 마찬가지인 안을 내놓았을 뿐 공사는 해고자 문제를 해결할 생각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또 "공사에서 선복귀 후대화를 주장해 업무에 복귀했는데, 업무복귀 뒤 열린 교섭에서 공사는 오히려 잠정합의안보다 더 후퇴된 안을 내놓는 등 노조 무력화와 항복을 요구하고 있다"며 "공사가 변하지 않는 한 재파업을 포함한 어떤 투쟁도 감수할 것"이라고 밝혔다.

대전정비창 앞 천막농성장을 뒤로 하고, 두번째 농성장인 대전정부청사 앞 천막을 찾았다. 청사 앞 천막 하나에서 "현장으로 돌아가자"는 깃발이 펄럭였다.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는 시간인지라 천막 안은 어두웠다. 그 어둠속에서도 책을 붙잡고 있던 김도환(전 철도노조 수석부위원장) 해고자를 만났다.

김 해고자는 "철도의 공공성 강화를 주장하고, 시장논리에 의한 이윤추구를 막아내기 위한 파업에서 해고자가 발생했던 것"이라며 "우리는 이에 대한 명예회복을 원하는 것이고, 그것이 바로 원직복직"이라고 밝혔다.

또 "일부 언론에서는 이철 사장을 성공한 CEO처럼 치켜세우는데, 이철 사장의 지도력과 집행력은 직권중재라는 악법을 방패로, 공권력과 대량징계를 창으로 해서 비무장 노동자들을 탄압한 것"이라며 "이는 중고등 학생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지도력일 뿐 진정한 경영자로 거듭나려면 대화와 협상을 통해 문제를 풀 수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어느새 날이 어두워져 서울로 올라오기 위해 대전역으로 향했다. 대전역 앞에도 역시 철도해고자들의 천막이 세워져 있었다. 천막을 뒤로 하고 서울행 KTX에 올라탔다. KTX여승무원이 없는 KTX에는 열차팀장이 혼자서 18량 388m의 KTX를 관리하고 있었다. 그 때문인지 각 역의 정차시간이 보통 때보다 더 긴 것 같았다.

철도노조의 투쟁이 계속되고 있음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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