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른 아침 기자를 만난 서경석 선진화정책운동 공동대표는 “우리 사회 양극화 현상의 뿌리에는 4년째 임금을 동결하고 있는 도요타와 달리 6,250만원의 고액연봉에도 만족하지 못하고 임금인상만 고집하는 현대차 노동자들의 집단이기주의가 존재한다”며 “이 같은 이기주의를 규탄함과 아울러 현대차의 성장전망이 확실해질 때까지 향후 수년간 임금동결을 촉구한다”고 밝혔다.<인터뷰 기사 참조>
서 공동대표는 출발 직전인 차량에도 올라 집회참가 의의를 설명했고, 권태근 사무총장은 “국민들의 여망을 담은 뜻 깊은 행사에 대한 언론의 뜨거운 반향을 볼 때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대기업노조 이기주의가) 심각하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이윽고 버스는 출발했고, 아침식사 등을 위해 몇군데 휴게소에 들른 뒤 집회 예정시각인 오후 2시가 가까워서야 현대차 정문 앞에 도착했다.

집회 참가자? 참관자?
서둘러 차에서 내린 참가자들은 미리 준비한 피켓과 플래카드를 들고 집회대열을 맞췄다. 서경석, 이각범 공동대표는 “지난 몇년간 현대차는 임금협상과정에서 노조의 요구를 거의 일방적으로 수용함으로써 현대의 국제경쟁력이 저하되고 그 부담을 하청협력업체에 전가(CR·납품단가인하)함으로써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영업이익 격차, 임금격차를 키워 왔다”, “현대차노조는 환율하락으로 인한 경영위기에 대처하기 위한 고통분담에 동참해야 하며, 현대차 역시 투명경영을 통해 노조가 고통분담의 불가피성을 이해하도록 노력하는 한편 하청계열기업에 대한 단가인하요구를 기업들이 감내할 수 있는 수준까지 인하해야 한다”, "사주가 노조에 약점을 잡혀 임금협상에서 노조에 일방적으로 양보하는 일이 더 이상 있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집회에서는 공동대표 및 임원진들의 발언과 성명서 낭독만 있었을 뿐 참가자들은 그 흔한 구호 한번 외치지 않았다. 물론 이날 집회는 미리 현대차가 한달치 집회신고를 미리 내놓은 탓에 ‘기자회견’ 형식을 빈 것이긴 하지만, 참가자들은 어떤 생각을 하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참가자들은 ‘현대차노조 각성하라’, '경영진은 투명경영! 노조는 고통분담!', '협력업체 잘 돼야 현대차도 잘 된다', '대기업노조 이기주의 국민경제 뒤흔든다', '현대차 노사담합 협력업체 휘청휘청' 등이 적힌 피켓으로 자신들의 생각을 오롯이 말했다고 생각하는 걸까?
집회가 진행되는 동안 한 참가자에게 왜 집회에 참석했냐고 물었다. “현대차 노동자들의 임금이 너무 높아 양극화가 초래되고 있기 때문에 이를 시정할 것을 촉구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현대차 정규직들의 임금이 얼마인 것으로 알고 있느냐”고 다시 묻자 “그건 잘 모르겠다”는 답이 돌아온다. 다만 그는 “어쨌든 대기업과 부품사 노동자들 임금이 균형을 맞춰야 한다”고 한다.

그나마 양호한 답변이었다. 한 여성 참가자는 “어떻게 참가하게 됐냐”고 묻자 “울릉도(울산을 잘못 알아들은 듯했다) 놀러간다고 해서 왔다. 근데 여기가 어디냐”고 기자에게 다시 질문을 던지는가 하면, 또 어떤 참가자는 “현대차 공장 견학시켜준다고 해서 왔는데, 왜 공장 안에는 안 들어가느냐”고 말하기도 했다.
대부분 50~60대로 보이는 ‘참가’자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집회를 ‘참관’하는 듯했고, 집회 주최측의 의지만 높은 듯했다.
채 1시간도 안 돼 집회는 끝이 났고 참가자들은 공장 견학은커녕 울산의 봄바람도 제대로 쐬지 못한 채 다시 서울로, 부산으로 발길을 옮겨야 했다.

- 부품사에 CR을 과도하게 요구한 것은 노조가 아닌 회사다.
“지금 양극화가 사회적 문제로 확대되고 있는데, 현대차가 부품업체에 10%씩 납품단가인하(CR)를 요구하는 건 문제다. 감내할 수 있는 수준으로 경감시켜야 한다. 그런데 지금 현대차는 환율하락 등으로 매출감소 예상액이 2조2천억이나 된다고 한다. 노조가 고통분담에 나서지 않으면 현대차도 살아남을 수 없다."
- 환율, 유가에 영향받는 건 현대차만이 아니다. 비상경영 선언이 ‘엄살’이라는 지적도 있다.
“세계경쟁을 생각해야 한다. 지금 현대차는 도요타와의 싸움에서 이겨야 한다. 도요타는 평균연봉 8천만원대이면서 4년째 임금을 동결하고 있다. 현대차의 상대적 임금은 도요타의 2배를 넘는다. 그런 가운데 비상경영을 한다는 건 결코 엄살이 아니다.”
- 노동시간이나 임금체계의 차이를 감안해서 비판해야 하지 않나. 실제 도요타는 현대차 생산직에게는 없는 호봉제가 있어 임금동결을 해도 매년 기본급 6만5천원이 자동 인상된다.
“그 부분은…, 회사에 자세히 물어봐야 한다. 노동시간은 솔직히 잘 모른다. 북한인권, 사학법 문제에 힘쓰다 보니까 그랬다. 하지만 분명한 건 도요타에 비해 생산성이 낮음에도 높은 임금을 받고 있다는 점이다.”
- 이 집회는 현 정부의 대기업이기주의 공격과도 맞닿아 있다. 본격적인 임단협을 앞둔 이데올로기 공세의 한 측면이라는 비판도 있다.
“노사 모두 문제가 있다고 보지만 둘 다 비판하면 자칫 양비론에 휘말릴 수 있다. 이 문제 극복의 열쇠는 단연코 노조가 갖고 있다.”
- 현대차는 부품사에는 CR 요구하면서 임원 보수한도를 70억에서 100억으로 늘리는 등 이율배반적 행위를 하고 있다.
“한심하다고 봤다. 하지만 경영진도 임금동결 한다고 하지 않았나. 허겁지겁 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경영진도 고통분담 하는 모습 보여야 한다.”
- 현대차 회사나 노조 관계자들과 사전 면담 등은 없었나.
“회사쪽은 일부러 접촉하지 않았다. 회사와 짝짜꿍이 됐다는 소릴 듣지 않기 위해서. 근데 집회한다는 소식이 알려진 뒤 회사 홍보실에서 찾아왔더라. 팩트가 잘못됐다고. CR 비율이 평균 10%가 아니가 5.2%임을, 노동자 평균연봉이 6,400만원이 아닌 6,250만원임을 알려줬다. 노조는 아직 만나지 않았다. 우리는 만나길 원하지만, 우리가 얘기한다고 해서 임금동결 하겠다고 말하겠나. 노조가 우리를 상대하겠다는 생각을 갖도록 해야겠다고 판단했다. 스스로 자정을 못한다. 외부단체 압력이 필요한 이유가 그것이다.”

- 다른 사회적 문제엔 목소리를 내지 않다가 현대차노조 규탄을 위해선 집회까지 조직했다.
“골프 총리나 성희롱 국회의원 등 기존 정치권에 대해서도 비판적이지만 구체적 행동을 조직하진 못했다. 그리고 비자금을 조성한 두산그룹 행태 등에 대해서 지적하지 못한 데 대해선 내부 비판도 많다. 앞으로 재벌의 지배구조 문제에 대해서도 지적을 할 것이다. 이번 집회는 그동안 제 목소리를 내지 못했던 우리 단체가 양극화 문제에서부터 비판을 제기하겠다는 그 시작으로 봐 달라.”
- CR로 대표되는 원하청 불공정거래의 고리를 근본적으로 끊기 위한 대책은 뭔가.
“힘 있는 대기업노조의 양보를 통해 '피해분을 약자(부품사)에 떠넘기는' 일방적인 단가이하 폭을 줄이는 한편 부품사 고용증대와 경쟁력 제고를 위한 정부 차원의 지원도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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