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 것도 같고 모를 것도 같고, 선생님의 질문에 학생들은 고개를 갸웃거린다.
“여러분들이 이미 잘 알고 있는 사람, 바로 ‘헨리 포드’입니다. 컨베이어벨트 시스템을 고안해, 20세기 전 세계 공장의 작업환경을 뒤바꿔 놓은 사람이죠. 2만개가 넘는 부품이 들어가는 자동차 공정에 컨베이어벨트를 도입해 1분만에 자동차 한 대를 뽑아낸 포드는 괴짜로도 유명한데요. 특히 유태인과 노동조합을 증오하고, 히틀러를 추앙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죠.”
“아하! 포드!”
선생님의 설명에 학생들은 고개를 끄덕인다.
지난 24일 여의도 전경련회관 3층 1회의실. 20명 남짓의 ‘학생’들이 강의를 경청하고 있다. 한창수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의 강의로 진행된 이날 수업의 주제는 ‘생산적인 근로자’. 수업을 듣는 ‘학생’들은 전국의 중학교 사회과목 교사들이다.<사진>
전경련과 ‘경제교육 교사 연구회’가 공동으로 주최한 ‘미국경제교육협의회(NCEE)의 체험식 경제교육 교습법’ 연수회가 지난달 23일부터 나흘간 진행됐다. 이번 연수의 목적은 ‘체험식 경제교육의 필요성과 우리 사회 경제교육의 방향을 제시하자는 것. 따라서 대부분의 수업이 사례 위주의 강연과 현장 견학으로 채워졌다. <매일노동뉴스>가 연수 둘째날, ‘생산적인 근로자’ 주제수업 현장을 찾았다.
‘근로자=경영자+노동자+α’
‘‘생산적인 근로자’가 무엇인가? 신자유주의 그늘 아래 착취당하는 현장 노동자들을 지칭하는 것인가? 아니면 착취구조의 당위성을 설명하자는 말인가?’ 사회 교사들 틈바구니에서 기자는 이러한 의문을 품고 수업을 듣기 시작했다. 더구나 이곳은 전경련 회관, 강사는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이다.
그러나 이 수업에서 다뤄지는 ‘근로자’란, 현장의 노동자와 경영자를 포함, 기업과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모든 사람을 통칭하는 말로 사용됐다. ‘근로자’의 범위가 확대되면서, 이날 수업의 주제는 자연스럽게 ‘자본의 흐름과 기업의 경쟁력’ 부분에 맞춰졌다.
“광복 이후 분단을 거치면서, 남쪽은 ‘자본주의’를 채택하게 됩니다. 물론 이것은 우리 스스로의 선택이 아니라, 남이 달아준 명찰이었죠. 자본주의를 하려면 자본(capital)이 있어야 하는데, 당시 우리에게는 자본이 없었습니다. 외국에 돈을 꾸면서 ‘차관 자본주의’가 시작됐죠.”
마르크스는 ‘자본 축적’의 과정을 ‘착취’로 봤지만, 이에 대해서는 논의가 필요하다는 설명과 함께, 한보, 기아가 무너지면서 ‘차관’으로 몸집을 불려 온 우리나라 자본주의의 허구가 드러난 것이라는 설명이 이어진다. "로비로 빚 늘리고, 또 로비해 빚 늘리고…. 이게 바로 한보가 망한 이유입니다.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빚만 늘여 온, 극단적으로 나쁜 경영의 본보기인 셈이죠. 이런 기업들이 어디서 돈줄을 끌어 왔겠습니까? 거슬러 올라가면 결국 미국 월스트리트 세계은행에서 흘러 들어온 돈이었던 거죠.”
빚으로 빚을 갚고, 또 다시 빚을 내 빚을 갚던 우리나라 기업들이 하나 둘 한계를 드러내면서 그 파장이 아래로 아래로 퍼졌고, 결국엔 ‘줄줄이 도산’으로 이어진 게 IMF였다는 설명이다.

“이건희 회장은 모차르트”
하지만, “상당수 기업이 빚으로 몸을 불릴 때 차곡차곡 돈을 모아 온 기업, ‘삼성’을 빼놓고는 한국의 자본을 말할 수 없다”는 강사의 설명이 계속됐다.
“어떤 기업가가 좋은 기업가일까요? 딴 생각 하지 않고, ‘어떻게 하면 돈을 많이 벌 것인가?’를 고민하는 기업가가 훌륭한 기업가입니다. 자동차나 골프 생각만 하는 사장 밑에서 일하는 근로자는 불행한 사람들입니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삼성의 이건희 회장은 돈에 대한 감각이 탁월한 사람입니다. 말 솜씨나 글 솜씨는 뛰어나지 않지만, 본능적으로 모든 안테나가 돈에 맞춰져 있는 사람이죠.”
이쯤에서 기자의 머리 속을 스치는 의문 두 가지. ‘삼성의 노동자들은 행복한가?’, ‘이건희 회장에게 노동조합은 ‘방해 전파’인가?’
“영화 <아마데우스>를 보면 천재 모차르트와 노력파 살리에르가 등장합니다. 모차르트가 음악과 함께 숨쉬고 음악 속에서 생활하는 ‘물고기’라면, 살리에르는 물고기를 따라 하려고 애쓰는 ‘수영선수’인 셈이죠. 이건희 회장은 모차르트에 가까운 유형의 사람입니다.”
돈은 어디에서 오고 어디로 가는가?
2004년 삼성전자가 기록한 순이익은 우리 돈으로 10조원. 달러로 환산하면 100억 달러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금액이다. 100억 달러의 순수익을 기록하는 기업은 전 세계 8개 기업, 이중 아시아 기업으로는 일본의 도요타자동차와 우리나라의 삼성전자가 해당된다.
<강사의 질문 : “삼성전자가 10조의 이익을 낸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기자의 생각 : “그만큼 노동자들을 쥐어짰다는 거겠지 뭐.”>
<강사의 대답 : “자본 없이 시작한 한국의 자본이, 자본을 축적하기 시작했다는 뜻입니다.”>
전쟁 직후 원조물자를 기반으로 면방, 밀가루, 설탕 등 소위 ‘3백 산업’을 육성하고, 이후 경공업, 중공업, 가전, IT산업으로 육성 산업을 변화시켜 온 한국의 자본은 현재 산업자본주의를 지나고 있다. 경영학자들이 말하는 산업자본주의의 다음 단계는 금융자본주의, 쉽게 말해 한국자본은 ‘돈 장사’의 시대를 앞두고 있다.
“이미 미국 등 선진국은 금융자본주의로 이전한 단계입니다. 또한 세계적인 금융자본인 ‘골드만 삭스’의 주인은 유태인들입니다. ‘돈많은 사람이 주인’이라는 자본주의 정신에 입각할 때, 미국을 움직이는 미국의 주인은 유태인이라는 말이 됩니다.”
중세 로마 카톨릭이 ‘이자놀이’를 금할 때, 중세의 눈으로 볼 때 이교도에 해당하는 ‘유대교’를 믿던 유태인들은 ‘돈놀이’를 시작했다. 돈을 빌려주고 원금과 이자를 받는 과정의 복잡한 계산과 논리를 유태인들은 이미 중세시대부터 경험해 온 셈이다.
“산업자본주의가 발달하면서 일부 제조업 분야에서는 한국이 미국을 앞서기도 합니다. 하지만 ‘돈놀이’에 있어서만큼은, 미국이 대학생이라면 한국은 유치원생 수준입니다. 유태인들이 고등수학의 원리를 적용해가며 헤지펀드 등의 ‘게임’을 즐길 때, 우리는 ‘게임의 룰’ 자체도 이해를 못하는 수준입니다.” 한마디로, 금융자본주의 체제에서 한국은 미국과 ‘게임’이 안 된다는 설명.
‘되는 집의 논리’ vs ‘안 되는 집의 논리’
한편, 한국의 산업자본주의를 설명할 때 삼성과 함께 빼놓을 수 없는 기업이 있으니, 바로 포항제철, 현재의 포스코다.
“‘다 반대할 때’ 박정희 전 대통령이 한일수교조약을 맺고, 3억 달러의 무상원조를 받아와 세운 기업이 포항제철입니다. 한 마디로 포항제철은 기적의 회사입니다. 박태준 회장의 군인정신이 더해져, 철광석이 없는 우리나라를 최강의 철강국가로 탈바꿈해 놓았죠. 한국의 기간산업으로서 역할도 톡톡히 하게 되고요. 삼성, 포스코, 현대 등의 기업이 성장한 과정은, 앞서 지적했듯 한국 자본의 축적을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한국 자본은 온전한 형태를 띠고 성장해 온 것일까?
“물론, 삼성, 포스코, 현대의 자본의 100% 한국의 자본은 아닙니다. 외국인 지분 비율이 상당 부분 차지하고, 언제 외국 투자자들이 숨겨둔 발톱을 치켜세울지 모르는 상황입니다. 일각에서는, 이제는 대기업의 성장보다는 분배에 치중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지만 이것은 ‘안 되는 집의 논리’입니다. 잘 되는 집은 잘 되게 도와주는 게 맞죠.”
“변화의 시기엔 미국식이 적합”
‘되는 집의 논리’와 ‘안 되는 집의 논리’. 이같은 기준을 따르자면, ‘양극화 해소’의 주장은 ‘안 되는 집에 논리에 해당하게 되고, '구조조정’은 ‘되는 집의 논리’에 해당하는 것일까.
“기업이 이윤을 내는 방식은 크게 미국식과 일본식으로 나뉩니다. 약한 기능은 도려내고, 강한 기능을 접붙이는 외과수술의 방식, 즉 ‘구조조정’의 방식이 미국식입니다. 반면, 일본의 경우 구조조정 대신 ‘끊임없는 개혁과 혁신’을 강조합니다.”
이윤창출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자본주의 체제하의 우리 자본들은 결국 ‘미국식’, ‘일본식’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 이날 강의를 마치며 한창수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다음과 같이 강조했다.
“구조조정은 민감한 문제입니다. ‘사회공익적’으로 접근할 수도 있고, ‘기업경쟁력’ 차원에서 접근할 수도 있습니다. 한 가지 유념할 점은 어느날 갑자기 회사가 사라지고, 회사의 이름이 바뀌는 일에 있더라도, 빠른 변화의 시기에는 ‘미국식’이 효과적이며, 그것이 대세라는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