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백개의 크고작은 공장들이 밀집한 공단지대에 들어서면 “1300만 노동자여”라는 구호가 비로소 숫자가 되어 가슴에 박힌다. <매일노동뉴스>가 국내 최대의 기계공업·중공업 단지인 창원공단 내의 단위사업장 노동조합을 탐방하는 기사를 연재한다. 이 연재를 통해 단위사업장 노동조합들이 현장에서 맞닥뜨리는 문제점과 노사관계의 현주소를 짚어본다.<편집자 주>
노동자의 도시 창원에서 정작 노동자는 살기 어렵다. 인구 30만을 기준으로 설계된 계획도시가 50만을 초과하면서 집값, 전세가, 물가 등이 폭등한 지 오래다. 일부 아파트는 평당 1,500만원을 넘었고, 평균 시세도 부산, 대구, 대전 등 대도시를 제치고 수도권과 맞먹는 평당 600만원에 육박했다. 기름값도 서울과 제주도를 빼면 전국에서 가장 비싸고, 나머지 물가도 마찬가지다. ‘지방의 강남’으로 불리기에 손색이 없을 정도다.
그래서 노동자들은 장유, 김해, 진해, 함안, 마산 등으로 밀려나거나 자발적으로 탈출한다. 출근길. 임대아파트가 즐비한 장유에서 창원으로 들어오는 창원터널은 만성정체를 빚는다. 그 속에서 노동자는 이제 통근버스 손잡이 대신 운전대를 잡고 있다. 그는 아직 창원공단 노동자이긴 하지만 이제 창원시민은 아니다.

공장 입구 넓은 주차장이 꽉 찼다
오전 7시, 삼영지회 조합원들의 출근시간이다. 독자들께서는 ‘공단의 아침을 깨우는 활기찬 출근 인파’를 떠올리시기겠지만, 자동차의 행렬만 이어질 뿐이었다. 80년대쯤의 TV영상에 머물러 있던 기자의 생각을 비웃기라도 하듯 조합원들은 자가용을 몰고 유유히 공장 안으로 들어갔다. 공장 입구 넓은 주차장이 조합원들과 사무직 직원, 협력업체 노동자들의 200~300대는 됨직한 자동차로 꽉 찬다.
박세환 지회 사무장은 “크든 작든 자가용 한 대 정도는 다 가지고 있다"면서 "아침 일찍 출근하고 밤늦게 퇴근하는 경우도 많고, 공단은 대중교통이 불편하기 때문에 대부분 자가용으로 출퇴근 한다”고 설명했다. 출근 후 조합원들은 공장 안에 있는 지회 사무실과 맞은편 탈의실에서 시간을 보낸다. 작업은 오전8시부터다.
조합원들은 피닝, 용접, 기계, 조립, 페인팅, 수압 파트 등에서 일한다. 피닝파트는 보일러에 필요한 고주파 핀튜브와 냉각기에 필요한 일반 핀튜브를 생산한다. 조합원들은 고주파 용접을 하고, 기계를 이용해 핀을 튜브에 감는 오퍼레이터 역할 또는 그 보조 역할을 한다. 용접파트는 1차 공정에서 만들어진 핀튜브가 들어갈 박스를 만들기 위해 철판을 용접하고 노즐 등을 붙이는 작업을 한다. 완성품이 발전소나 정유공장 설비이기 때문에 까다로운 검사를 거쳐야 하고 따라서 특수용접이 동원된다.
기계반은 여러 종류의 자동화된 공작머신을 이용해 작업에 필요한 철판을 절단하고, 용접을 마친 부품에 필요에 따라 구멍을 뚫는 등 재가공을 가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제품은 조립과 세척, 페인팅을 거치고 수압반에 보내져 물을 이용한 압력 테스트와 그 결과 필요한 조치를 받는다.
각 파트 조합원들로부터 작업에 대한 설명을 듣긴 했지만 기계공작과 관련 문외한인 기자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웠다. 특히 현장에서 통용되는 작업 명칭과 기계 이름은 우리말로 표현하기도 쉽지 않았다. 확실한 것은 대부분 주문생산이기 때문에 자동차 생산공장처럼 일정한 라인을 타는 것이 아니라 공정과 공정을 오가는 복잡한 과정을 거친다는 것이고, 조합원들의 작업강도와 피로도가 만만치 않다는 것이다.
점심시간 1시간을 빼고 오후5시까지 8시간 노동을 하고 저녁을 먹은 후 다시 잔업이 시작된다. 파트별로 다르긴 하지만 요즘은 물량이 많아 잔업이 많고 가끔 철야를 하는 파트도 있다.

피닝·기계·조립·용접…복잡한 공정
2004년 9월~11월 3개월 동안 조합원들은 월 평균 잔업과 특근을 73시간 했다. 임금은 두 달에 한 번씩 지급되는 상여금과 초과근무수당까지 포함해 월 평균 209만원. 2005년에는 임금이 5만5,000원 인상돼 215만원 정도다. 여기서 각종 세금과 공제되는 금액을 빼고 나면 실제로 손에 쥐는 급여는 200만원에 턱 없이 못 미친다.
급여 외에 회사에서 조합원들에게 지급하는 것은 거의 없다. 주택자금을 빌려주지만 규모가 작아 순서가 돌아오지 않는다. 유치원생 자녀에게 분기마다 5만원이 지원되고, 중·고생 자녀 학자금은 나오지만 정작 부담이 되는 대학생 자녀 학자금은 단협 요구사항일 뿐이다. 조합원의 기술재교육이나 자기계발을 위해 회사에서 지원하는 것도 없다.
이렇듯 급여만으로 가정경제를 꾸려가기가 불가능하다. 때문에 조합원들의 선택은 잔업과 맞벌이다. 박 사무장은 “낮은 임금을 보충하려고 잔업을 하기 때문에 조합원들이 평일에는 회사와 집을 오가는 생활에서 한치도 벗어날 수 없고, 기혼자들은 대부분 맞벌이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조합원들은 회사가 물량 수주를 많이 해 연초부터 잔업이 많다는 것을 다행으로 여기고 있다. 일부 조합원들은 휴일에도 특근을 해야 할 정도다. 수압반에서 일하는 박영춘 조합원은 “지난달 곱하기 1.5를 해서 잔업을 126시간 했다”며 “매일 밤10시까지 일하고 토요일 일요일에도 특근을 해 몸은 힘들지만 일이 많을 때 바짝 더해야 먹고 살 수 있다”고 말했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지만 잔업과 특근이 이어지면서 취미생활이나 여가활동은 엄두도 못 낸다. 휴일이면 피곤한 몸 눕히기 바쁘기 때문이다.<상자기사 참조> 박 사무장은 “미혼의 젊은 조합원들이야 잔업도 덜하고 휴일이면 자기 시간을 갖지만 가정이 있는 조합원들은 한달에 한번 가족들과 외식하는 것에 만족하고 있다”고 말했다.
조합원들이 그나마 즐기는 것은 축구와 산행, 낚시 정도다. 현재 지회에는 ‘FC 상남’이라는 축구 동아리가 딱 하나 있어 주1회 정도 공을 차고, 일부 조합원들은 공식 동아리는 아니지만 끼리끼리 등산과 낚시를 즐긴다. 물론 회사의 지원은 없다.
7년째 이 공장에서 일하고 있는 이인정(28) 조합원은 “굉장히 탄탄한 회사에 다닌다고 부러움을 받기도 하고, 좋은 회사니까 대우도 좋을 것이란 말도 듣지만 잔업이 없으면 상여금 포함 한달에 150만원도 못 받는다"면서, "비정규직이 아닌 정규직이고 회사가 망할 염려가 없다는 것에 만족하고 있다”고 말했다.
‘잔업’과 ‘맞벌이’…“지친다 지쳐”

핵심은 쟁의행위 시 생산차질을 대비해 가장 중요한 공정인 피닝파트 물량을 창원(성산동) 공장과 함안 공장에 분리해놓고 있다는 것이다. 단협상 성산동 공장 물량 우선 배정 원칙이 있지만 회사는 생산 관련 사항이라는 이유로 협의를 거부한다. 이런 상태에서 교섭기간이나 쟁의행위에 돌입하면 노사 양측은 물량 싸움을 벌인다. 회사는 쟁의행위 돌입 전 대체인력 투입과 물량반출을 시도하고, 지회는 이를 막기 위해 핸드폰 문자메시지를 이용한 게릴라 파업을 주로 벌인다.
박 사무장은 “2003년 지회가 생길 때 탄압이 심했지만 지금은 평상시 간부들의 외부적인 활동을 인정하지 않을 뿐 일상적으로 조합원들을 관리하지는 않는다”며 “회사의 노무관리 전략은 단협사항이라도 들어주지 않거나 생색내기 식으로 들어주면서 더 큰 요구들을 미연에 방지하는 데 목적이 있다”고 말했다.

박 조합원은 “잔업하고 맞벌이를 해서 저축은 못하고, 쓰는 데 불편 없을 정도로만 산다”고 자신의 생활을 표현했다.
지난해 12월 박 조합원은 잔업과 특근을 포함, 127시간의 초과근무를 기록했다. 보통 하루 5시간 잔업을 하고, 토요일과 일요일에도 일했다. 입사 이래 최고였다. 박 조합원은 “일에 미쳤다는 소리 듣겠지만 아침 6시에 일어나 출근하고 밤10시에 퇴근해 바로 쓰러져 자는 생활을 되풀이 했다”며 “이렇게 계속 일한다면 죽겠지만 물량이 항상 많은 것은 아니니까 있을 때 더 하자는 심정이었다”고 말했다.
이렇게 해서 받은 박 조합원의 1월10일 급여명세서에는 기본급에 1월에 지급되는 상여금 110만원과 초과근무수당 100만원을 합해 310만원 정도가 찍혔다. 그러나 실제 수령액은 이것저것 떼고 250만원 정도. 잔업도 없고 상여금도 없는 달은 실수령액이 130만원 정도다. 박 조합원은 “4인가구에 130만원으로는 생활비로도 모자란다"면서, "매달 250만원씩만 받으면 무슨 걱정이 있겠냐”며 쓴웃음을 지었다.
그래서 부인이 나섰다. 박 조합원의 부인 황신애(44)씨는 현재 엘지전자 에어컨 박스를 만드는 하청업체에 2년째 나가고 있다. 전에도 집에서 부업을 했다. 황씨는 “통일중공업을 인수하고 좋은 회사라고 들었지만 남편이 받아오는 것을 보면 적긴 적다”며 “애들 공부시키고 보험 넣고 나면 저축은 전혀 못하고 산다”고 말했다.
다행히 박 조합원은 S&TC에 입사하기 전에 아파트를 장만했기 때문에 집 걱정은 없다. 자영업을 하다 IMF로 가게를 정리하고 이 회사에 입사했다. 급여가 적지만 나이도 있고 해서 다른 직장으로 옮길 생각은 없다. 박 조합원은 “회사가 망할 염려는 없으니까 정년인 56세까지 여기서 근무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걱정되는 것은 자신의 건강이다. 하루 15시간에 달하는 노동으로 지쳐간다는 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집에 가면 쓰러지기 바쁘다. 좋아하는 등산도 요즘 통 못하고, 가족들과 함께 하지 못한다는 것이 제일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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