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유치원 선생님입니다. 어린 아이들과 함께 생활하는 저는, 항상 웃음을 잃지 않지요. 하지만요, 겉으론 웃고 있지만 가슴 속엔 멍이 들었습니다. 요즘엔 세수할 때 세숫물에 눈물까지 같이 닦아내곤 합니다. 꼭 죽고 싶은 심정이 들 때도 있어요.”

광명 △△초등학교 병설유치원에 근무 중인 최혜민(43)씨는 올해로 15년째 유치원 강사로 일하고 있다. 유치원에서는 담임교사를 맡아 어린이들을 가르쳤고, 수업시간이 끝나면 각종 공문을 처리하고, 수업교재·교구를 만들기도 했다. 방학 때면, 구연동화대회 등 유아교육과 관련된 경연대회에도 참석했다.

여느 공립유치원 교사와 다를 바 없는 직무를 수행하며 십년 넘게 근무해온 그녀지만, ‘이 생활도 2월28일까지구나’ 하는 데 생각이 미치면 눈앞이 캄캄해진다. 경기도교육청이 요구한 ‘기간제 신청서’에 서명을 하지 않아 2월28일자로 해임통보를 받은 그녀는, 경기도 공립유치원의 ‘임시강사’다.

‘임시강사’란 무엇인가? 누구인가?

1984년 정부의 유아 공교육 확대 방침에 따라 전국의 초등학교에 공립병설유치원이 증가하기 시작했다. 교실 수는 점점 늘어나는데 교사 수가 뒷받침 되지 못하자, 1986년 교육부는 ‘공립유치원 전임강사 운영관리지침’을 하달한다. 각 학교가 임용고시 절차 없이 서류전형 및 면접을 거쳐 ‘전임강사’를 채용할 수 있도록 문을 연 것이다. 교원 임용고시를 거치지 않았기 때문에 전임강사는 ‘비정규직’인 동시에, 유치원 교원 정원에 해당하지 않는 ‘정원외 교사’로 분류됐다.

1990년도까지 전임강사 채용을 허용해 온 교육부는 1991년에 이르러 전국 각 지역 교육감에게 ‘교육부 전임강사 특채계획’을 시달한다. 이같은 조치로 1990년까지 채용된 전국의 전임강사 2,090명이 1998년까지 단계적으로 정규직화(정규교사로 전환) 됐다.

한편 수도권 인구집중으로 인해 병설유치원이 꾸준히 증가해 온 경기도의 경우, 교실 수에 비해 교사 수가 현저히 부족한 현상이 지속됐다. 이에 경기도교육청은 1992년을 기점으로 경력 3년 이상 된 전임강사만을 정규교사로 특별채용하고, 경력 3년 미만의 강사는 ‘임시강사’로 명칭만 바꾼 채 채용을 이어갔다.

앞서 안타까움을 토로했던 최혜민씨는 1990년에 경기도 공립유치원 임시강사에 채용된 경우다. 최씨는 임용고시를 거친 정교사와 동일한 업무를 수행하며 15년간 근무해 왔고, 매년 ‘무난하게’ 계약 갱신이 이뤄져 왔다고 말한다. 최씨처럼 1990년 이후 채용된 경기도 내 임시강사는 모두 153명. 노사관계 전문가들은 “경기도 공립유치원 임시강사의 경우 상시직 노동자로 볼 수 있다”고 지적한다.

‘임시강사’들에게 무슨 일이?

경기도 내 또다른 공립병설유치원에서 7년 넘게 근무해온 조미연(30)씨는 경기도 유치원 교사들이 모인 자리에서 전체 교사를 대표해 구연동화를 시연해 보일 정도로 실력을 인정받아 왔다. “‘비정규직이라 대충대충 가르친다’는 얘기 안 듣기 위해 정말 열심히 가르치고 공부했어요. 비정규직이라서 받는 차별과 설움도 많았지만, 저를 포함한 임시강사 선생님들 모두 남들에게 부끄럽지 않게 최선을 다해 왔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기간제로 전환하라니….”

조씨를 포함한 153명의 임시강사들은 지난해 10월 청천벽력같은 소식을 들었다. 경기도교육청이 ‘임시강사 전원 기간제 전환 방침’ 및 (기간제 전환에 동의하지 않을 경우) ‘기간만료로 해임’ 조치를 공식 발표한 데 이어, 각 학교 교장들이 임시강사들에게 본인 자필로 ‘기간제 신청서’를 작성토록 종용했기 때문이다.

“도교육청은 기간제 전환에 사인하면, 내년 1년간 기간제 교사로 계약하고, 2007년에는 병설유치원 종일반 전일제 강사로 일하게 해주겠다고 했어요. 이게 싫으면 관두고 나가라는 건데….” 조씨는 그러나 이러한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꼼짝없이 2월28일 해임을 앞두고 있는 상태다. 조씨처럼 기간제 전환에 동의하지 않은 임시강사는 103명. 50명의 강사는 기간제 전환에 동의했다.

“왜 기간제 신청서에 서명하지 않았냐고요? 적게는 5년, 많게는 15년간 사실상 상시근로 해온 우리 임시강사들의 지위를 박탈하고, 필요할 때 쓰고 필요 없으면 자르겠다는 거잖아요. 우리 중 누구도 취미삼아 유치원 선생님 하는 사람은 없어요. 유일한 생계수단인데, 언제 해고될지 모르는 기간제를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겠어요?”

교육청이 제시한 ‘종일반 전일제 강사’라는 것도 도무지 말이 안 된다는 게 조씨의 주장이다. “전일제 강사란, 맞벌이 부부를 위해 마련된 종일반 수업에서 정규교사를 돕는 보조교사를 말합니다. 십수년씩 현장에서 아이들과 부대껴 온 임시강사들이 보조교사가 되고, 갓 임용고시를 통과한 새내기 정교사들이 담임을 맡게 되는 건데요. 아이들과 함께 해온 우리들의 경력이 그렇게 하찮은 건가요?”


천막농성 열이틀째, ‘임시강사’들을 만나다

기간제 전환을 거부한 103명의 임시강사들에게 결국 2월28일자로 기간만료가 통지됐고, 이에 반발한 임시강사들은 지난달 27일부터 경기도교육청 정문 앞에서 천막농성을 벌이고 있다. 농성 돌입 열이틀째인 지난 7일 오전 경기도 수원에 위치한 경기도교육청 앞 천막농성장을 찾았다. 전국 최저기온이 영하 9.6도를 기록한 혹한의 날씨였다.

마침 농성단의 아침식사 시간. 찬이 뭔가 둘러보니, 계란 장조림과 오이지무침, 김치, 김구이 등이다. 자세히 보니 장조림은 꽁꽁 얼어붙었다. 전기장판에 난로까지 들여놨지만, 1월초 아스팔트의 냉기는 냉동고나 매한가지다.

“교육부 정책에 의해, 그리고 교육청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임시강사’입니다. 86년도에 만들어진 ‘공립유치원 전임강사 운영관리지침’에 의해 운영되고 있지만, 법적 근거도 미약한 특수한 변형근로의 형태입니다. 법에도 없는 특수한 신분을 만들어 정규직과 동일한 일을 시키다가, 이제 와서 정리하겠다는 거지요.”

식사를 마친 임시강사 농성단원들의 하소연이 이어진다.

“비록 임시강사라는 비정규직으로 채용됐지만, 지금까지 특별한 해임 사유가 없는 한 매년 재임용돼 왔습니다. 그런데 이제 와서 교육청은 ‘교육부가 법적근거가 없는 임시강사를 해소하라는 지침을 보내 왔습니다. 지금은 국가가 강사를 필요로 하지 않는 시기다’라며 기간제 선택을 강요하고 있습니다. 교육부 역시 ‘교원의 임용은 경기도 교육감의 소관사항’이라며 발뺌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참담하고 기가 막히다”, “억울하다”, “죽고 싶었다” 등등. ‘임시’딱지 붙인 유치원 선생님들은, 가슴팍에도 시커먼 딱정이 하나씩을 붙이고 있는 듯 보였다.


임시강사 vs 임용고시생…“교육청은 왜 특채를 강조하나?”

임시강사들의 교육청 앞 농성 소식이 전해지자, 교육부도 교육청도 아닌 유치원 임용고시 준비생들이 가장 크게 반발하고 있다. 도교육청 홈페이지는 물론, 임시강사들이 조합원으로 가입돼 있는 전교조의 본부 및 경기지부 홈페이지 자유게시판 등은 강한 어조로 ‘임시강사 특채 반대’를 주장하는 임용고시 준비생과 미발령자들의 성토로 채워지고 있다. 이들은 한결같이 ‘임시강사들도 임용고시에 응시하라’거나, ‘임시강사의 특채 요구는 염치없는 발상’이라는 내용의 글로 각 홈페이지 게시판을 도배하고 있는 상황이다.

대개 유치원 임용고시에는 유아교육과 졸업생이나 공립병설유치원보다 처우가 열악한 사립유치원 교사들이 적게는 2년 많게는 5년 이상씩 준비해 응시하고 있다. 합격만 하면 교육공무원의 지위가 보장되기 때문에, 매년 10대1 이상의 높은 경쟁률을 기록하는 상황. 워낙 경쟁이 치열하다보니, 임시강사들의 ‘상시근로를 인정하라’는 요구가 자칫 경기도 내 공립유치원 정교사 정원(T/O)을 쪼개자는 것은 아닌지 민감하게 반응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그러나 정작 임시강사들은 ‘정규직 전환’요구를 하지 않고 있으며, ‘특별채용 하라’는 요구도 하지 않고 있다. 그저 지금까지처럼 ‘정원외 교사’의 형태로 계속 일하게 해달라는 게 임시강사들의 주장이다.

“우리가 교육청에 정교사 만들어달라고 요구하는 것도 아니에요. 여태까지처럼 기간 정함이 없는 상시근로로 인정해 달라는 겁니다. 우리는 ‘특채’라는 말을 꺼내본 적도 없습니다. 오히려 교육청이 언론 등에 ‘특채’라는 말을 흘려 임용고시 준비생들의 혼란을 부추기고 있습니다.” 교육청 앞에서 농성중인 한 임시강사의 지적이다. 교육청이 ‘고용안정’이라는 쟁점을 흐리기 위해 임시강사와 임용고시생들의 대결을 부추기고 있다는 주장이다.

‘임시강사’를 바라보는 노동계의 시선들…“맥시멈과 미니멈의 차이?”

한편, 공립 유치원 임시강사 문제가 경기지역만의 특수한 상황인 까닭에 현재 민주노총 경기본부와 전교조 경기지부, 경기비정규직연대 등이 임시강사 투쟁에 연대하고 있다. 또한 경기도 교육위원회에서도 꾸준히 문제제기를 하고 있다.

일단 민주노총 경기본부는 “최악의 경우 기간제 전환을 받아들이게 되면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될 것”이라며 “이 문제 해결에 있어 전교조가 더 적극적으로 나설 필요가 있다”는 입장이다.

“사실 임시강사들의 고용불안 문제는 이미 수년전부터 불거진 상태였습니다. 당시에도 임용고시 준비생들이 ‘임시강사가 정규직 되면 본인들의 일자리가 줄어든다’며 전교조 홈페이지에 도배하는 사태가 있었고, 이 때 전교조 일각에서는 ‘임시강사도 임용고시를 봐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이 나왔었습니다. 전교조 내부의 의견이 하나로 모아지지 않은 거지요.” 민주노총 경기본부 관계자의 지적이다.

그는 조심스러운 어조로 “임시강사들의 투쟁은 마치 대공장 내에서의 비정규직 투쟁과 매우 흡사한 양상을 띠고 있다”며 “이들의 투쟁을 받아 안고 공세적으로 싸워야 할 전교조가, 이들의 요구마저 정규직의 잣대로 재단하려는 것 같아 마음 아프다”고 말했다.

이어 “임시강사들이 힘들게 투쟁을 결의한 만큼, 사직의사가 없는 한 고용이 보장될 수 있도록 상시근로자의 지위를 확보하는 것이 가장 큰 목표가 될 것이고, 현행처럼 정원외 특별관리의 형태로라도 현재의 지위를 유지하게 하는 것이 이번 투쟁의 마지노선이 돼야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임시강사들이 현재와 같은 ‘정원외 교사’의 지위를 유지토록 하는 것을 투쟁 목표의 ‘최소치(minimum)’으로 설정하고 있는 입장이다.

전교조 경기지부의 입장은 약간 다르다. 목표치 설정에 있어 눈높이가 좀 더 낮다. 한번에 다 쟁취하기 어려우니 두번에 나눠가자는 것이다.

“전교조 경기지부의 입장은 이분들이 5년에서 15년까지 반복적으로 상시근무 해 왔기 때문에, 그런 부분을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상시근로자의 지위를 박탈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것입니다. 다만 ‘본인들이 사직의사가 없을 경우 무기한 고용보장 쟁취’라는 투쟁목표는 과도한 요구라는 입장입니다. 교육청이 임시강사들에 대한 해임 의사를 굽히지 않고 있는 상황인데, 최악의 경우 현재 투쟁하고 있는 103명의 임시강사 모두 해고되면 이들의 생존권은 누가 보장하나요?” 전교조 경기본부 관계자의 주장이다.

그는 “해임된 뒤에라도 강고하게 투쟁하면 요구사항을 쟁취해낼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은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다”며 “이번 투쟁에서는 현재의 임시강사 지위를 유지하는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민주노총 경기본부의 ‘최소치(minimum)’가 전교조 경기지부의 ‘최고치(maximum)’인 셈이다.

그는 이어 “일단 현재 임시강사의 지위를 유지한 후에, 비정규직 차별철폐 법안이 만들어지고,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화가 사회의제화 될 때 더 높은 단계의 목표치를 설정해야 한다”며 “현 단계에서는 희생자를 최소화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한편, 최남희 전교조 유치원 위원장은 “이 문제는 현재 경기지부에서 관할하고 있으며 공식적인 입장을 밝히기 곤란하다”고 전제한 뒤, “상시근로의 지위를 인정받는 게 최선이라고 보고, 그것이 어려울 경우 교육청은 당사자들에게 유아교육인들이 납득할 수 있는 수준의 피해보상을 해줘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해고돼고, ‘임시강사’들의 투쟁은 멈추지 않을 것”

임시강사들이 도교육청 앞에 천막을 친 지 9일 현재 2주째. 103명의 임시강사들에게 통지된 해임기간이 꼭 50일 남았다. 오리털파카에 털모자까지 중무장을 하고 냉동고 같은 천막에서 밤을 나는 유치원 선생님들은 “3월1일부터 해고자가 되더라도, 정당한 요구를 관철시키기 위해 투쟁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며 전열을 가다듬고 있다.

“3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까지의 여선생님들입니다. 한 가정의 생계를 책임지는 선생님들도 많습니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에 자부심과 긍지를 갖고 최선을 다해 왔고요. 이제는 유치원과 아이들이 삶의 일부가 돼버린 사람들입니다.”

11년차 임시강사인 정옥자 경기도공립유치원임시강사대책위원회 위원장은 “교사가 설 곳은 오직 아이들이 기다리는 교실 뿐”이라며, “기간의 정함이 없는 상시근로를 인정받고, 정든 교실로 돌아갈 때까지 열심히 투쟁할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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