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필자가 조하네스버그에 머문 시기에 남아공 최대 노총인 코사투(COSATU)의 여름학교(Summer School)가 열렸고, 운 좋게 11월 16일 오후에 열린 ‘조직개발 세미나’를 참관할 기회를 얻었다. 조하네스버그 외곽에 있는 윌로우 파크라는 리조트에서 열린 여름학교에는 코사투 산하조직의 노조간부 1백여 명이 참석하고 있었다. 참가자의 절반이 여성인데 반해, 백인 참가자는 1명밖에 없던 게 흥미로웠다. 대형교육장에는 “노동계급 교육 20년”이라는 플래카드가 붙었는데, 1985년에 창립한 코사투는 12월 9일로 스무 번째 생일을 맞았다.
노조 위기 때 ‘조직개발’
‘조직개발 세미나’의 사회는 남아공 노동교육원(Ditsela) 원장인 지노 고벤더(Gino Govender)가 맡았고, 금속노조(NUMSA)와 교육보건연합노조(NEHAWU)의 사무총장들이 자기 조직의 조직개발 경험을 발표했다. 필자에게도 15분 정도 ‘한국 노동운동의 도전과 과제’에 대해 발표할 기회가 주어졌다.

“노조 간부가 사용자로부터 돈을 빌리고 차를 얻고 보조금을 타내는 따위의 노조 부패가 일어났고, 노조 본부는 파산상태로 치달아 상근간부의 임금을 지급하지 못했다. 정파는 갈라져 권력 경쟁에 몰두했고, 고위 간부직이 공석이 되기도 했다. 금속노조 내부의 위기는 끝 간 데를 모르고 나빠졌다. 이 때문에 노동조합의 조직개발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졌고, 노동조합이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내부 반성이 자라났다.”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금속노조는 △비전 수립 △규약 개정 △기존 정책의 평가와 조직 구조 및 내부 절차의 재정립 △조직 체계 모니터링 따위의 네 가지 기본 방향을 설정했다. 그리고 △지역 및 지부 사업 강화 △산별교섭 등 본부 역량 강화 △모든 단위의 지도부 교육과 조직 운영 혁신 △재정 및 조합비 납부체계 정비 △조합원 서비스 강화 △상근간부 역량개발 프로그램의 운영 △각종 캠페인의 정비 및 개편을 내용으로 하는 일곱 개의 조직개발 프로젝트를 실시했다.
이런 노력을 기울인 결과 2000년 대의원대회를 지나면서 조직화, 단체교섭, 교육훈련, 법률지원, 재정 및 운영에서 조직이 안정궤도에 올랐다. 논드완구 사무총장은 “능력 있는 상근간부를 어떻게 양성할 것인가와 내부 분열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는 여전히 심각한 과제로 남아있다”고 강조했다.
노조가 성장해도 ‘조직개발’

마졸라 사무총장은 “1996년 코사투 차원에서 노동조합의 미래를 모색하는 셉템버위원회를 운영했고 보고서를 냈는데, 이것이 노동조합의 조직개발에서 가장 좋은 참고자료였다”면서 “1998년과 99년 남아공 노동교육원(Ditsela)의 도움을 받아 조직개발 프로그램을 계속 시행해나갔다”고 설명했다. 교육보건의료노조에게는 △조직 역량의 80%를 파업에 투여하던 기존의 관행을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지와 △ 공공부문의 모든 영역을 포괄하는 노조로 어떻게 성장할 것인지의 두 가지 문제를 정리하는 게 가장 중요했고, 조직개발 프로그램은 그 대안을 찾아가는 과정이었다. 노조 운영과 관련해서는 △현장출신 지도부와 노조가 채용한 상근간부간의 갈등 문제 △노조의 중앙본부와 지부와의 갈등 문제(지역체계 개편)가 제기되었다.
노동조합의 조직개발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노조 내부의 ‘정치적 합의’ 과정이 대단히 중요하다”고 마졸라 사무총장은 강조했다. 노조 내부의 인력·조직력·자원을 점검하고, 누가 개혁 과정을 밀고나갈 것인지를 정리해 놓아야 한다는 말이다. 이 과정에서 외부 전문기관의 도움은 필수적이었다.
세 번째 주제인 한국 노동운동 관련 발표에서 필자는 △비정규직을 어떻게 조직하고 보호할 것인가 △노조 민주주의를 어떻게 강화하고 규율과 도덕성을 복원할 것인가 △국민적 지지와 사회적 연대를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라는 세 가지 문제를 한국 노동운동이 맞닥뜨린 도전으로 지적하면서, 이를 해결하기 위한 실천과제로 △기업별노조의 산별노조로의 전환과 계급 대표성 강화 △노조의 자기개혁과 국민적 신뢰의 회복 △협소한 ‘경제적 전투주의’에서 ‘사회적 조합주의(social unionism)’로의 운동 노선 발전을 언급했다.

셉템버보고서와 ‘사회적 조합주의’
세 개의 발표가 끝난 뒤 “조직개발에 일반 조합원들은 어떻게 참여하는가”, “조직개발에서 노총인 코사투의 역할은 무엇인가” 따위의 질문이 잇따랐다. 필자의 관심을 가장 끈 건 광산노조(NUM) 사무총장으로 있는 그웨데 만타셰(Gwede Mantashe)가 던진 질문이었다.
그는 남아공 발표자에게는 “셉템버 보고서가 코사투 대의원대회에 제출된 게 1999년인데 왜 그때 제대로 된 토론 없이 흐지부지 되었으며, 지금껏 6년째 다루지 않고 있느냐”는 질문을 던졌고, 필자에게는 “사회적 조합주의가 노동조합운동의 계급성을 물타기 한다는 주장이 있는데 노동운동의 노선으로 적합하냐”는 질문을 던졌다(물론 만타셰 총장은 발표자들보다 더 풍부하고 정확하게 자기 질문의 해답을 알고 있었다고 필자는 확신한다).

만타셰 총장이 셉템버보고서와 사회적 조합주의를 언급하자, 좌석 여기저기서 분명 긴장감이 배어있는 웃음과 박수가 터져 나왔다. 필자도 던지고 싶었던 셉템버보고서가 왜 흐지부지 되었냐는 질문의 답변은 의외로 싱거웠다. 얼굴 가득 미소를 띤 금속노조의 논드완구 사무총장이 “1999년 코사투 총회에서 만타셰 총장의 광산노조는 무엇을 했느냐. 당신네도 가만있지 않았느냐”고 맞받자 교육장은 웃음바다가 되어버렸다. 그리고 필자가 질문에 답하기 위해 “음… 사회적 조합주의라”하면서 잠시 고민어린 표정을 짓자 장내는 다시 한번 웃음바다로 변했다. 왁자지껄한 웃음소리에 필자도 따라 웃으며 ‘셈텝버보고서’와 ‘사회적 조합주의’ 문제가 코사투 내부에 ‘뜨거운 감자’로 남아있음을 새삼 실감할 수 있었다.

코사투 여름학교는 두 나라 노동운동 맞닥트린 도전이 크게 다르지 않음을, 나아가 두 나라 노동운동가들의 고민 역시 별반 다르지 않음을 확인한 자리였다. 코사투 여름학교 참관은 노동조합의 국제연대가 멀리 있는 건 아님을 되새기게 해주었다. 총총히 빛나던 남반구의 별빛을 맞으며 교육장인 윌로우 파크를 나서면서 90년대 중후반에 활발했다가 지금은 시들해진 두 나라 노동운동의 교류가 활기를 되찾길 소망해 보았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