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고, 차량압류 맞서 “지옥까지 찾아가 응징” 각오
밥그릇인 레미콘 차량이 압류돼, 조합원들은 낮에는 일용노동을 통해 생계를 유지하고 저녁에는 군청 앞으로 달려와 농성을 지속하는 생활. 하루에도 수도 없이 타오르는 분노. 자면서도 이빨을 갈고, 지옥 끝까지라도 찾아가 응징하고야 말겠다는 노동자의 결기를 과연 누가 만들었는가? “얼어죽든 굶어죽든 이번에는 끝장내자!” 레미콘 노동자, 지역의 노동자들의 분노는 하늘을 찔렀다.

“아무리 없이 살아도 최소한의 인간적 도리는 지키며 살아왔는데 자본가들은 레미콘 차량 등 가압류, 가처분 취소 약속을 던져 버렸다. 백번, 천번을 약속해도 그들이 지킨 것은 없었다.” 전국건설운송노조 태안서해 이민형 분회장은 “인간답게 살고자 노조를 결성했는데 그들은 해고로 답했고, 정당한 복직 요구에 ‘네들이 무슨 노동자냐’며 사측은 교섭에도 응하지 않는다”며 분통을 터트렸다.
충남서부지구협 이응두 수석부의장은 “대전의 회장집과 여의도 농성, 청와대도 찾아가 억울함을 호소해 봤다”며 “이번 노숙농성은 반드시 승리로 이끌어 올해를 넘기기 전에 끝장을 보겠다”고 결의를 다졌다.

하청사장의 아들, 딸이 노조위원장?
오전 9시40분 ‘전국순회투쟁단’은 태안군청 인근 마을회관에서 금속노조 동희오토사내하청지회 노동자들과 간담회를 열었다. 동희오토는 기아차 ‘모닝’을 외주생산하는 완성차 업체. 850여명의 노동자들은 11개 하청을 통해 비정규직으로 일하고 있고, 사내하청지회는 11개 하청 가운데 7개업체의 비정규직 조합원으로 구성되어 있다.
동희오토의 노동조건은 시급 3,100원의 최저임금 수준으로 열악 그 자체였다. 노조 설립을 막기 위해 이미 서류상으로만 존재하는 어용노조도 있었다. 더욱 황당한 것은 어용노조 위원장이 사장의 아들, 딸 명의였고, 차체하청업체인 대광의 경우 어용노조위원장이 자신이 위원장인지 조차 모르는 상황.
‘노조 때문에 폐업을 결정했다’는 대광은 노동자들에게 노조에 가입하지 말 것을 종용하고, 집에 까지 찾아가 압력을 행사하는 부당노동행위를 저질렀다. 지난 8월 25일 동희오토 사내하청노조 결성 뒤 200여명의 하청노동자들이 조합원으로 가입했으나 현재 사측의 회유와 협박 등 탄압으로 인해 70여명의 조합원만이 남아 있다.
지회장과 사무장이 사퇴하고 비대위로 전환해 투쟁하고 있는 동희오토사내하청지회. 김희삼 수석부지회장은 “근로계약서를 위조해 해고하고, 사측은 노조 자체를 인정하지 않고, 6~7차례 교섭요구에도 응하지 않고 있다”며 “이후 조합원 가입 확대와 천막농성 등을 계획중”이라고 말했다.
이 자리에서 현대차비정규노조 박경렬 불법파견철폐단장은 현대차 사내하청, 5공장의 문제 등을 공유하며 투쟁을 독려했고, 서훈배 전국학습지노조 위원장도 각 지역 비정규직의 전투는 치열하나 전쟁과 전선이 없다며 사내하청 전국 연대틀 등을 통해 전선을 형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영주 전비연 집행위원도 대구, 경기, 부산에 비정규연대회의가 있는데, 각 지역에서 비정규 연대체 결성의 과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구권서 전비연 의장은 “원청의 사용자성 인정, 불법파견 철폐, 특수고용 노동자의 노동자성 인정 등의 정치적 요구를 선명하게 내세우고 투쟁해야 한다”며 “총파업 투쟁의 선봉에 비정규 당사자가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리해고 박살내고 민주노조 사수하자!”
1시간여 간담회를 마친 순회투쟁단은 정오에 KCC아산공장에 도착했다. 공장은 요새처럼 바위들에 가려져 있었고, 정문 입구에는 경찰차가 대기중이었다. 정문에서 2백여미터 떨어진 곳, 작은 팻말에는 노조(원)의 출입금지가처분 고시가 붙어있었다. 공장 토지 및 건물에 진입 또는 농성을 금지한다는 내용.
회사는 용역전환을 요구했고, 30명에 대해 구조조정 공고를 냈다. 구조조정을 저지하고자 지난 3월 노조 결성 뒤 파업 118일째를 맞아 단협을 체결했고, 노조가 많이 양보했다. 그러나 회사측은 조합원을 성향별로 분류해 41명 조합원을 ‘자택대기’ 시켰다. 대기발령 노동자는 회사 로비와 식당 외에는 출입을 금지시키고 감시카메라로 행동을 감시하며 노조무력화를 꾀하고 있다.
천막농성장은 공장 입구로부터 수백미터 아래 설치되어 있다. 18일 현재 단식농성 23일차를 맞고 있는 박영일 지회장과 조합원들은 사측의 노조탄압과 일방적 정리해고에 반대하며 죽기를 각오하고 싸우고 있었다.

전비연 순회투쟁단의 연대방문에 잠깐의 환한 미소로 답한 박 지회장은 “오늘 내일 중에 정리해고 명단이 발표될 예정이고, 노노대립을 부추기는 등 사측의 노조탄압에 맞서 민주노조를 반드시 지켜내겠다”고 의지를 다졌다.
“월급날, 명절에 월급봉투 뜯어볼 때마다 비정규직의 가슴이 찢어지는 것 잘 알고 있습니다. 노동자를 정규직 비정규직으로 나누고 차별하는 것을 묵과할 수 없습니다.” 연대집회에서 발언한 KCC지회 박한규 대의원도 ‘비정규직’은 언젠가 닥칠 우리들의 문제라며 노동자는 하나임을 강조했다.
“정리해고 박살내고 민주노조 사수하자!” 애정이 듬뿍 담긴 전비연 전국순회투쟁단의 즉석 제작 현수막에 KCC 노조원들은 환호했다.

절망의 공장 딛고 민주노조 깃발로
오후 2시 천안지방노동사무소 앞에서 열린 ‘이현중·이해남 열사 2주기 추모제 및 열사정신 계승 결의대회’에 순회투쟁단도 함께했다. 고인의 약력소개와 추도사에 이어 이해남 열사의 아버지가 편지 글을 낭독했다. “세원테크, 악질자본의 노동탄압에 죽어간 아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노력해달라.”
무대 앞 의자에 앉아 있는 김현중, 이해남 열사의 부모님과 이해남 열사의 부인은 고인 눈물을 삼키려 애쓰는 모습이었다. 이해남 열사의 부인이 추모제 중간에 바깥 공터로 뛰쳐나갔다. 차량 뒤편 노동자들의 시선을 피해 누군가를 얼싸안고 엉엉 울었다. 누구보다 가슴 아플 열사의 가족들. 세월은 흘러도 눈물은 쉽게 마르지 않는다.
힘든 내색 않고 차가운 내손을 잡아주던, 마음이 따뜻한 이해남 위원장, 분신 소식에 미친년처럼 새벽거리를 헤매었다는 가수 지민주. 300여명의 대회 참가자들은 열사를 떠올리는 듯 시종 침울한 표정이었다. 고개는 자꾸만 떨구어졌고, 눈시울을 붉어졌다.

살아있을 때 좀 더 투쟁하지 못한 자신을 질책하듯 가수 지민주는 ‘투쟁은 끝나지 않았다’ ‘비정규차별철폐가’를 힘차게 불렀다. 죽어간 열사의 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노동자들은 고개를 들어야만 했다. 그리고 당당히 투쟁에 떨쳐나서야 했다. ‘절망의 공장을 딛고 민주노조 깃발아래 돌아가자’는 노래가사처럼.
대성엠피씨, 대한솔루션, KCC, 충남지역노조 등 충남지역 투쟁사업장 노동자들은 투쟁의 결의를 다졌다. 집회가 끝난 자리에는 ‘천막농성장’이 곧바로 들어섰다. 천안지방노동사무소는 충남지역 노동자들의 12월1일 총파업 투쟁 거점이 될 것이었다.

총파업 불씨되어 비정규권리입법 쟁취!
이현중·이해남 열사정신 계승대회를 마친 전비연 순회투쟁단은 오후 7시 서울 국회앞 ‘비정규직철폐’ ‘권리보장입법쟁취’를 위한 전비연 천막농성장에 도착했다. 산업인력공단비정규노조 조합원들과 전비연 간부들이 순회단을 맞이했다. 서로가 얼싸안고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이상선 전국순회투쟁단장은 “3박4일 동안 각 지역의 동지들과 소통하며 비정규직철폐와 권리보장입법 쟁취 의지를 모았다”며 “12월1일 총파업 투쟁, 들불의 불꽃이 되자”고 강조했다.
순회투쟁단은 3박4일 짧은 일정 속에서도 전국의 투쟁사업장을 돌며 열악한 환경에서 투쟁의 불꽃을 이어나가고 있는 노동자들을 만났다. 어렵고 힘들수록 ‘노동자는 하나다’라는 연대의 함성도 보았다. 총파업을 승리로 이끌기 위해 11월23일 1천명 이상의 결사대를 조직해 비정규개악안 저지와 비정규권리입법 쟁취를 위한 과감한 투쟁을 준비중인 전비연. 비정규권리입법 쟁취를 위한 전비연 ‘전국순회투쟁단’이 남긴 해단식 현수막의 내용이다. “총파업 불씨되어 비정규권리입법 쟁취하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