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오후5시부터 국회 환노위 소회의실에서 열린 실무회의는 이목희 환노위 법안심사소위원장, 정병석 노동부 차관, 권오만 한국노총 사무총장, 이석행 민주노총 사무총장, 김영배 경총 부회장, 김상열 대한상의 부회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배석자 없이 비공개로 약 1시간30분 동안 열렸다.

이날 회의에서 노동계는 인권위의 의견을 존중하고 수용해야 한다고 강조했으나 정부와 경영계는 인권위 의견표명에 강한 유감을 밝히며 인권위를 비난했다.
노사정-국회 대표들은 공식회의가 열리기 전부터 인권위 의견표명을 둘러싸고 신경전을 벌였다. 권오만 한국노총 사무총장은 “오늘 합의할 것으로 예상하고 도장까지 챙겨 왔다”고 운을 뗀 뒤, “아쉬운 대목도 있지만 대승적인 차원에서 인권위 의견 정도에서 합의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사·정 대표들에게 공을 넘겼다. 그러자 김영배 경총 부회장은 “인권위가 양대 노총 성명과 자료 베껴 글 쓰느라 수고했다"고 인권위를 비난한 뒤 "양대 노총의 평소 로비력에 감탄을 금치 못하겠다”고 맞받았다.
이어 공식회의가 시작되자 공방은 더욱 치열해졌다.
이목희 의원은 모두발언에서 “인권의 의견표명은 내용보다 시기가 더 문제”라고 인권위를 비판하며 “비정규법은 조기입법 돼야 하며 각 주체들은 초심으로 돌아가 비정규직의 눈물을 닦아달라”고 주문했다.
김영배 경총 부회장은 “협상 중간에 인권위가 의견을 내서 대화 분위기가 경직되고 노동계 요구가 강경해진 것은 유감”이라며 “노사 간에 원활한 대화가 되지 않으면 모두 인권위가 책임져야 한다”고 강한 불만을 표시했다. 김상열 상의 부회장도 “국가기관인 인권위가 그런 발표를 한 것을 보고 놀랐다”며 “지금 시기에 그런 발표를 했어야 했는지 모르겠다”고 거들었다.
정병석 노동부 차관도 “인권위 발표는 내용적으로나 시기적으로 모두 부적절하다”며 “비정규법은 국제적 입법례와 국내상황을 고려해 입법을 추진했으며 국제적으로도 전향적인 법안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으니 4월 국회에서 처리하자”고 말했다.
이에 권오만 한국노총 사무총장은 “인권위 의견은 부족하고 아쉽지만 (인권위 의견을) 존중하겠다”며 “노동현장에서 눈물흘리는 비정규노동자들이 차별과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한발씩 양보해 4월 국회 입법화에 노력하자”고 말했다.
이석행 민주노총 사무총장도 “인권위 의견을 대하는 정부의 태도가 더 안타깝고 몰상식하다”며 “인권위 의견 정도를 가지고 그렇게 비난할 정도인데 노사정 교섭 결과 인권위보다 더 노동계 요구쪽으로 결과가 도출되면 정부가 과연 이를 수용할 의지가 있는지 의심스럽다”고 정부 태도를 강하게 비판했다.
이 총장은 또한 “장관이 인권위를 ‘돌부리’라는 등 상식을 초월하는 발언을 했는데 그 발언이 노동부의 공식입장이라면 더이상 노사정 대화는 무의미하다”면서 “교섭은 모든 가능성을 다 열어두고 하는 게 원칙”이라며 정부의 ‘열린 자세’를 촉구했다.
이어 비공개회의가 시작됐지만 참석자들은 서로 언성을 높이는 등 ‘인권위’ 논쟁만 벌이다 1시간만에 회의장 문을 열고 나왔다. 6명이 각 10분도 발언을 하지 않은 셈. 계속된 언쟁에 갈증이 났는지, 노사정-국회 대표들이 자리른 뜬 책상 위에는 빈 생수통들이 즐비했다.
회의 직후 권오만 한국노총 사무총장은 “양대 노총은 인권위가 시의적절하게 의견을 밝혔다고 말하며 비정규법의 기준을 제시했다고 했지만 경영자단체와 정부는 부정적인 입장을 고수해 고성이 오갔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정병석 노동차관은 “물만 마시다 끝났다”며 “법안 쟁점에 대해서는 한 줄도 논의하지 못햇다”고 말했다. 김영배 경총 부회장도 “인권위 개입으로 판이 다 깨졌다”며 “4월 법안처리는 모르겠지만 분위기가 험악해져 노사정 협상 타결은 이제 힘들 것 같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