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일 노사정위원장이 교체됐을 때 주변에선 의외라는 반응이 많았다.
현 정권 임기가 1년도 채 남지 않은 상황에서 대통령 자문기구인 노사정위원회의 위원장 교체가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에 대한 궁금증이기도 했다.
때문에 노동시간단축 협상 결렬 이후 다시금 불거지고 있는 노사정위원회의 위상문제와 관련이 있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노동시간단축 협상 결렬 이후 새 사령탑을 맞은 노사정위원회의 이후 행보를 전망해봤다.



노사정위원회가 갈림길에 섰다.

노동시간단축 논의가 끝내 결렬된 뒤부터다. 가뜩이나 지난해부터 노사정위 '무용론'이 고개를 들고 있는 탓에 분위기가 심상치가 않다. 위원장까지 교체됐다. 현 정권과 함께 탯줄을 묻은 만큼 그 명운도 마찬가지인 것일까. 아니면 새로운 활로를 찾을 수 있을 것인가. 노사정위의 항로에 관심이 집중되는 이유다.

'사회적 협의기구' 위상 재정립 암중 모색

■ 노동시간단축 합의실패 '상처'

노사정위에서 노동시간단축 논의가 갖는 의미는 각별했다. 지난해 불쑥불쑥 노사정위 무용론이 제기될 때마다 노사정위 관계자들의 심기가 불편했지만, 이에 아랑곳하지 않아도 될 버팀목이 있었다. 노동시간단축 논의는 단지 일하는 시간을 줄이는데 그치는 문제가 아니었다. 전 국민의 삶의 질과 직결된 관심사였던 것이다.

그런 기대감 때문이었는지 출발은 좋았다. 노사정위는 지난 2000년 10월 '노동시간을 연간 2 ,000시간 이내로 줄이고 임금저하가 없어야 한다'는 내용의 '근로시간단축의 기본원칙'을 합의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그 뒤 1년 반이 지나도록 협상은 지루하게 겉돌았고 결국 지난달 임금보전 문제에 부딪혀 결렬되고 말았다.

노사정위는 당초 노동시간단축 논의에서 손을 뗄 의향도 있었다. 그 이전에도 누누이 손을 떼겠다고 공언했지만 몇 개월을 끌어왔던 것이 사실. 그만큼 놓치기 아까운 사안이었다. 그러나 이번만큼은 어쩔 수 없는 형국이었다. 임기 말이 코앞에 닥친 것이다.

결국 합의 결렬에 따른 정부의 단독입법 추진은 노사정위의 존재 의의에 작지 않은 상처를 남겼다. 이런 때 노사정위원회의 위원장이 교체됐다. 정권 말기에 으레 있는 인사라고 볼 수도 있으나 정치인 출신을 내보내고 학자 출신을 기용했다는 것은 눈 여겨 볼만한 대목이다. 어떤 형태로든 노사정위에 변화를 예고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 노사정위 4년 반 그리고 '위기론'

그럼 노사정위 무용론 또는 위기론은 어떻게 불거진 것일까.

노사정위가 출범할 당시는 IMF 경제위기 상황이었다. 새 정부는 이 경제위기라는 급한 불을 사회적 합의라는 형식을 통해 끄려고 했다. 주요 타깃은 노동시장 유연화를 통한 고용시장의 관리였다고 볼 수 있다.

이에 따라 98년 1월 노사정위가 출범한 후 사회적 합의를 통해 정리해고법, 근로자파견제 등이 즉각 법제화됐다. 1기 노사정위(98.1∼5)는 당시 모두 90건의 합의를 이뤄냈다. 여기에는 교원노조 합법화, 노동시간단축과 공무원노조 도입 향후 추진에 대한 사항도 포함됐다. 이는 노동계가 얻은 성과였다. 노사정위에 따르면, 당시 합의사항 90건의 '성적표'는 이행 77건, 일부이행 11건, 이행착수 1건, 종결처리 1건이다.

문제는 이들 가운데 특히 미이행 항목의 대부분이 노동계가 요구한 핵심사항들이라는 점이다. 노동시간단축, 예산편성지침·민영화시 노사대표 의견수렴, 택시 완전월급제 실시, 공무원노조 추진, 외국인력제도 개선 등의 약속이 차일피일 미뤄졌다. 파열음을 더욱 커져갔다.

노사정위 2기(98.6∼99.6) 10건의 합의사항 중 미이행 1건이 바로 실업자의 초기업단위 노조가입 건이다. 어디론가 사라진 사안이다. 3기(99.9∼현재)에서도 2002년 3월말 현재 모두 19건의 합의사항 중 이행 9건, 일부이행 5건, 이행착수 2건으로 이행률이 높지 않다.

이런 노사정위의 이행담보 능력에 대한 회의가 바로 민주노총이 노사정위를 박차고 나간 주요 이유이기도 하다. 민주노총 백순환 위원장은 본지와의 인터뷰(지난 6일자)에서 "민주노총도 초창기 노사정위에 참여했으나 합의사항이 몇 차례 뒤집어지거나 입법화되지 않은 사례가 있어 조합원들이 거부감을 갖게 됐다"며 "새로운 협의기구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4년 반 활동평가 속 향후 진로 논의 본격화
…노·사·정 이해따라 위상관련 입장 제각각

■ 노사정위 재편 논의 '3인3색'

이런 사정과 관련해 올해 들어 노사정위 위상과 역할에 대한 논의가 꾸준히 제기돼 왔다. 노동연구원 등은 두 차례에 걸쳐 '노사정 협의모델의 발전방향'에 대해 논의했다. '합의 지향의 사회적 협의기구'로서의 노사정위가 한계를 보이고 있다며 노사정이 모두 참여하는 실질적인 사회적 협의기구가 돼야한다는 의견이 많았다.

그러나 이 새로운 사회적 협의기구 모델에 대해서는 노사정 당사자간 의견이 엇갈린다. 한국노총은 "각 부처간 견해를 통합하는 능력이 부족해 보인다"며 "지금보다 강화된 위상의 노사정위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민주노총도 사회적 협의기구의 필요성을 부인하지 않고 있으나 지금의 노사정위 형태로는 안된다는 입장이다. 또 중앙단위, 산별단위로 나뉘어 노동현안까지 대화를 강조하고 있다. 역시 더 강화된 형태를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반면 경영계와 정부는 사회적 협의기구 위상과 기능의 축소를 바라는 분위기다. 경총은 "운영방법상 노동계가 노사정위에서 결정된 사항을 사법, 행정, 입법을 모두 규제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던 게 문제"는 입장이다. 노동계의 기대심리가 너무 컸다는 얘기다. 또 방용석 노동장관은 사견임을 전제로 "IMF 관리체제 극복에 중요한 역할을 했으나, 합의기구로 운영되는 것에는 시각을 달리한다"고 밝혔다. 노사정위로 인해 행정부의 기능이 축소된 것에 대한 불만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 "노사정위는 합의 지향하는 협의기구"

이런 노사, 정부쪽 입장에 대해 노사정위원회 신홍 위원장은 '노사정위가 초기 눈부신 성과를 이뤄내면서 기대심리가 높아졌다"며 "이것이 그 이후에도 노사정위 위상과 기능에 대한 오해를 생기게 했다"고 평가했다. 그리고 신 위원장은 "이제는 제대로 된 사회적 협의기구로 자리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는 노사정위의 향후 진로에 대한 논의가 본격화됨을 의미한다. 특히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노사정위는 현 정부 노동정책의 핵심이기도 했던 만큼 도마 위에 오를 공산이 크다.

노사정위는 우선 올해 말까지 노사정위 운영과 관련한 개선방안을 내놓는다는 계획이다. 이를 위해 노동연구원에 프로젝트를 발주한 상태다. 연구 도중 일찍 마련되는 개선방안에 대해선 논의를 시작한다는 방침이다. 대표적인 것이 '협상시한제' 등이다.

그러나 노사정위 운영방향 논의에 있어 중요한 것은 이후 사회적 협의기구의 위상이다. 신홍 위원장은 노사정위 무용론에 대해 크게 우려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신 위원장은 "노사관계란 정권이 바뀐다고 달라지는 게 아니다"며 "사회적 협의기구는 계속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 위상은 노사정이 대화하고 그 결과가 국가정책에 반영되는 기구, 가능하면 합의를 지향하는 협의기구라고 말했다.

노사정위가 현 정권의 임기말인 현 시점에서 방향타를 어디로 잡고 있는지 짐작이 가는 대목이다. 노사정이 참여하는 사회적 협의기구의 발전방향이 제대로 마련될지, 또 노사정위가 마지막 그 역할을 해낼 수 있을지 지켜봐야 할 것 같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