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벤처단지로 유럽국가 중 최고 성장을 구가하던 아일랜드 경제가 구조적 위기를 맞고 있다.

아일랜드의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은 지난 2000년 11.5%를 고비로급격하게 하락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5.9%로 그나마 유럽국가 중 높은 성장률을 기록했지만 올해는 성장이 거의 정체 상태에 빠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지난 10여 년 동안 아일랜드의 성공을 뒷받침하던 사회적 협력(Social Partnership)의 틀이 깨질 조짐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아일랜드는 87년 경제위기를 맞으면서 가난을 청산하고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으로 사회 전체가 거국적 합의를 도출해 냈다. 노ㆍ사ㆍ정이 모여 양보와 협력을 통해 갈등을 해소하고 국가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대책을 수립한 것이다.

이 합의에 따르면 노조는 임금인상을 자제하고 사업주는 노동자 복지에 최선을 다한다. 또 정부는 노동자들의 소득을 보전하기 위해 낮은세율을 적용한다.

단순해 보이는 이 같은 원칙은 아일랜드의 성장을 이끈 근본 요소로평가됐다. 아일랜드의 성공사례로 꼽히는 외국인 투자와 노사평화도실은 사회적 합의가 전제됐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러나 최근 들어 합의의 틀이 무너지고 있다.

기술인력의 만성적 부족에 물가와 금리가 오르면서 기업들은 유능한인력을 끌기 위해 합의된 것 이상의 임금을 조건으로 걸고 있다. 고성장에도 불구하고 지난 98년까지 연평균 2% 내외를 유지하던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99년 5%대로 치솟았다.

지난 2000년에도 물가상승률은 4.9%를 나타냈고 지난해 역시 높은 수준을 지속한 것으로 분석됐다.

반면 성장률이 하락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최근 임금상승률은 17%대에 달하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자산운용회사의 분석가인 짐 파워는 "기술인력에 대한 시장의 임금동향은 국가적 합의선을 훨씬 웃돈다"고 말한다.

상한선이 깨지자 노조측은 제각각 임금인상을 요구할 조짐을 보이고있다. 그렇지 않아도 노조측은 그 동안 성장의 과실이 노동자들에게제대로 배분되지 않았다고 생각하고 있는 터였다. 데이비드 벡 아일랜드 노조연합 사무총장은 "국가경쟁력은 오로지 이윤만을 염두에 둔개념"이라고 비난한다.

특히 기업복지와 같은 간접적 소득보전조차 없던 공공부문에서 거칠게 항의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10여 년 동안 노사평화의 대명사로알려진 아일랜드에서 간호사와 교사들이 합의는 깨졌다며 파업으로대응하고 있는 것이다.

아일랜드 정부는 공공부문의 이 같은 움직임이 민간부문에 영향을 미치면서 전면적인 임금인상 투쟁으로 번질 것을 우려하고 있다. 이 경우 임금지불 능력이 외국인 투자기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약한 국내기업들이 큰 타격을 받을 것으로 분석된다.

그러나 협력의 유용성에 대한 믿음이 사라진 것은 아니라고 국가경쟁력위원회 브라이언 패터슨 대표는 말한다. 노사간 파트너십을 인정하지 않을 때 불필요한 비용이 들고 경쟁력이 저하된다는 사실을 기업과 노조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87년 이전의 실패와 그 후의 성공이 아일랜드 사람들에게 이를 깨닫게 해 주었다.

다만 그는 상황변화를 감안할 때 대안으로 기업단위의 노사간 협력에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고 설명한다. 기업마다 지불능력의 차이가불가피하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패터슨 대표는 "노동자들의 참여와이윤의 적절한 배분을 통해 기업단위에서 협력의 틀을 유지하는 방안도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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