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일호 변호사(법률사무소 시선)
▲ 정일호 변호사(법률사무소 시선)

1. 사안의 경위

A와 B는 금융회사에 재직 중인 동료 근로자이며 여성이다. 회사에서 2박 3일 일정으로 합숙을 했는데, B가 A에게 ‘남성 근로자인 C와 불륜 관계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는 취지로 성희롱 발언을 했다. A와 C는 위 발언에 관해 회사에 성희롱 신고를 했으나, 회사는 이러한 사실관계를 확정하기 어려우며, 업무 관련성도 없다고 보아 직장내 성희롱으로 인정하지 아니했다. 그리고 그 직후에 A에 대해 직장내 괴롭힘 등의 이유로 감봉의 징계가 이루어졌다.

A는 회사가 직장내 성희롱 피해자에게 적절한 조치 의무를 하지 아니하고, 성희롱 신고로 인해 불리한 처우를 했다는 내용으로 충남지방노동위원회에 시정신청을 했다.

2. 노동위원회의 판단

이에 대해 충남지방노동위원회 및 중앙노동위원회는 ‘노동위원회는 직접 성희롱 여부를 판단할 수 없고, 사업주 또는 지방고용노동청의 조사 결과 직장내 성희롱 사실이 확인된 경우를 전제로 시정명령을 할 수 있는데, 이 사건은 사업주 측에서 성희롱 발생 사실을 인정하고 있지 아니한바, 사업주가 적절한 조치를 했는지 살펴볼 필요 없이 조치 의무 위반이 인정되지 않는다.’고 설시하면서 신청을 기각했다.

3. 관련 규정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약칭: 남녀고용평등법)

제26조(차별적 처우 등의 시정 신청) ① 근로자는 사업주로부터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차별적 처우 등(이하 “차별적 처우 등”이라 한다)을 받은 경우 「노동위원회법」 제1조에 따른 노동위원회(이하 “노동위원회”라 한다)에 그 시정을 신청할 수 있다. (후략)

제14조제4항 또는 제14조의2제1항에 따른 적절한 조치를 하지 아니한 행위

제14조(직장내 성희롱 발생 시 조치)

④ 사업주는 제2항에 따른 조사 결과 직장내 성희롱 발생 사실이 확인된 때에는 피해근로자가 요청하면 근무 장소의 변경, 배치 전환, 유급휴가 명령 등 적절한 조치를 해야 한다.

 

4. 법원의 판단

법원은 두 가지 지점에서 판단을 했는데 ① 노동위원회가 사업주가 인정하는 성희롱 사건 외에도 남녀고용평등법상 시정명령 판단을 위해 직접 조사할 권한 혹은 의무가 있는지 여부 ② (만약 노동위원회가 조사하지 아니한 위법이 있다면) 실제 성희롱의 존부는 판단하지 않고 법원이 노동위원회가 성희롱 여부를 조사하지 아니했다는 이유만으로 노동위원회의 재심판정을 취소해야 하는지, 아니면 법원이 직권으로 성희롱이 존재하는지 사실관계까지 인정하는 단계로 나아갈 것인지이다.

재판부는 ‘노동위원회의 심판 대상에는 사업주의 조사 결과 직장내 성희롱 발생 사실이 확인된 경우에 사업주가 조치 의무를 위반했는지 여부뿐만 아니라, 사업주가 직장내 성희롱 발생 여부에 대한 조사를 소홀히 해 직장내 성희롱 발생 사실을 확인하지 못함으로써 결과적으로 피해근로자에 대한 적절한 조치 의무를 위반했는지 여부도 포함된다고 봄이 타당하다. 이와 달리 이 사건 재심판정이 사업주의 조사 결과 직장내 성희롱 발생 사실이 확인된 경우에 한해 조치 의무 위반 여부를 심판할 수 있다고 본 것은 남녀고용평등법에 따른 직장내 성희롱 시정명령 제도를 잘못 해석한 것으로서 받아들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이미 노동위원회가 성희롱을 조사할 수 있는 법적 근거와 권한 및 조직을 갖추고 있다고 보았다. 예를 들어 남녀고용평등법 제27조에서 정하는 필요한 조사, 당사자 심문(1항), 증인(2항), 전문위원(5항), 노동위원회 규칙 제105조 및 제46조에서 정하는 자료 제출 요구(제1항), 당사자·증인·참고인의 출석 조사, 사실관계 확인을 위해 사업장 방문 및 서류 그 밖에 물건에 관한 조사(제3항) 등을 언급했다.

또한 ‘사업주의 조사 결과 직장내 성희롱 발생 사실이 확인된 경우에만 노동위원회의 시정명령이 가능하다고 본다면, 오히려 사업주는 직장내 성희롱 발생 사실 확인을 위한 조사에 소극적으로 임하게 될 우려가 있고, 사업주가 조사를 소홀히 해 직장내 성희롱 사실을 확인하지 못한 경우 피해자 보호조치 의무 위반에 대한 시정명령을 할 수 없게 됨으로써 시정명령 제도의 적용 범위가 크게 축소돼 원래의 도입 취지와 목적을 달성할 수 없게 된다’고도 했다.

나아가 B가 한 성희롱 발언을 했음을 인정하면서, 그 발언은 회사의 업무상 출장 중에 있었던바 업무 수행에 편승해 이루어진 것으로 직장내 성희롱에 해당한다고도 판단했다.

결론으로 직장내 성희롱에 해당하므로, 노동위원회는 원고가 이 사건 조치에 보호조치를 요청했는지 여부, 회사가 원고에 대해 적절한 보호조치를 했는지 여부를 심리해 시정명령 여부를 판정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5. 대상 판결에 관한 검토

당연히 사용자 입장에서는 회사 내에서 성희롱이 존재한다고 인정하기보다는 부인하는 것이 대처하기에 여러모로 용이하다. 따라서 성희롱이 부존재한다는 판단을 내릴 유인이 있다. 이 사건에서도 초기에는 B가 성희롱 발언을 했다는 점을 인정하다가 나중에는 발언 사실을 부인했는데, 회사가 조사보고서를 상급 기관 및 노동위원회에 제출하면서 B가 발언 사실을 인정한 부분을 삭제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회사는 성희롱 발언 사실을 인지하고도 은폐한 것에 가까운 행위를 했는데, 이러한 상황까지도 노동위원회가 시정명령을 하지 아니한 것은 매우 부적절해 보인다.

사용자가 성희롱이 없다고 주장하는 것만으로 노동위원회가 아무런 판단을 하지 않고 넘어갈 수 있다는 노동위원회의 판정은 수긍하기 어렵다. 이는 노동위원회가 자신의 권한과 영역을 축소시키는 판정이다. 노동위원회가 가지는 고유의 판정 기능을 일부 상실하는 결론이 될 수밖에 없다. 성희롱 사건에 대해 피해자를 보호하고, 피해자가 오히려 차별받지 않기 위한 법의 취지를 살핀다면, 노동위원회의 소극적인 판정을 바로잡는 법원의 판단이 타당하다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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