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장우 공인노무사(노동법률사무소 새길)

배우 배두나의 팬이다. 이 배우의 작품은 거의 다 보았는데, 올해 4월 우연히 이 배우의 인터뷰 기사를 보게 됐다. 인터뷰에서 이 배우는 자신의 영화를 몇 편 소개했는데, 그중 하나가 내가 보지 않은 영화였다. 그 영화는 바로 정주리 감독의 <다음 소희>였다.

영화 <다음 소희>의 소재이기도 한 직업계고 현장실습생 사망 사건을 처음 접했을 때는 멀쩡히 학교 잘 다니던 아이가 현장실습에 들어간지 얼마 안 돼 차가운 호수에 몸을 던졌는지 도대체 이해가 되지 않았다. 고인의 산재 사건을 진행하면서 회사쪽과 교섭하는 과정에서 현장실습이 고인에게 엄청난 고통의 시간이었음을 알게 됐다. 그래도 고인이 느꼈을 그 고통의 무게는 아직도 가늠이 안 된다. 많은 사람의 도움으로 아이의 사건이 마무리됐지만 비극은 멈추지 않고 아이 가족에게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왔다. 이 엄청난 비극은 나에게 방어기제를 작동하게 만들었다. 그 사건을 멀리하고 싶고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아이의 사고 현장은 이 지역에 인기가 높은 관광지 중 하나고 나도 자주 갔었지만 그 사건 이후로는 발길을 끊었다. 영화 <다음 소희>를 안 본 이유도 마찬가지다. 더구나 이 영화를 보면 이 배우의 다른 영화나 드라마를 볼 때마다 그 사건이 생각날까 봐 볼 용기를 못 내고 있다. 이젠 영화를 보는 것도 용기가 필요한 나이가 됐다.

안타깝지만 우리 인간은 먹어야 생명이 유지되고, 먹으려면 생산활동에 참여해야 해서 노동은 살아가는 데 필수불가결한 요소다. 한편 유발 하라리는 저서 <넥서스>에서 호모사피엔스인 현 인류가 현재 지구의 지배종이 된 이유가 생각하는 능력보다는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능력 때문이고, 그래서 우리는 처음 보는 사람과 함께 노동해야 한다고 말한다. 인류는 지배종이 돼 지구를 호령하고 있지만, 나와 너는 저 낯선 부장이 사장이 또는 위원장이 나를 언제 공격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숨죽여 살아야 하는 처지가 됐다.

타인에게 공격을 받게 되면 정신적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그래도 고통이라도 느껴지는 단계는 양호한 편이다. 고통이 극에 달하면 우울증 등 정신병으로 넘어갈 수 있는데 이때는 문제가 심각해진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에서는 우울증이 얼마나 무서운 병인지 알 수 있는 실감 나는 장면이 나온다. 극 중 정신건강의학과 간호사인 주인공 정다은(박보영 분)은 가까운 환자를 자살로 떠나보내고 자신도 자살 충동에 시달리다 어느 날 갑자기 차도로 뛰어든다. 이 장면이 충격인 점은 차도로 뛰어든 사실을 정작 자신은 몰랐다는 것이다. 비록 극 중 한 장면이지만 드라마적 상상에 불과하다고 치부할 수 없을 정도로 직장내 괴롭힘은 심각한 문제를 초래할 수 있다. 피해자의 정신적 고통이 하루라도 빨리 치유되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한다.

피해자의 정신적 고통이 치유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피해자의 가족·동료 등 주변 사람들의 도움이 있다면 얼마든지 회복할 수 있다. tvN 드라마 <나의 아저씨>에서 주인공 이지안(이지은 분)은 6살 나이에 부모의 막대한 빚을 모조리 떠안고 폭력을 일삼는 빚쟁이에게 시달리다 결국 그를 살해하게 된다. 이를 자책하고 고통스러워하는 이지안을 보고 박동훈(이선균 분)은 이렇게 말한다. “나 같아도 죽여.” 치유의 첫걸음은 피해자를 지지해 주는 것이다.

직장내 괴롭힘 심의에 들어가게 되면 피진정인에게 항상 “진정인에게 사과했나요?”라고 묻는다. 대부분 가해자는 사과했는데 별 소용이 없었다고 하거나, 만나면 안 된다는 규정 때문에 안 만났다고 한다. 직장내 괴롭힘 대응 매뉴얼은 가해자와 피해자 대면을 지양하도록 한다. 그런데 왜 지양하게 하는 것일까. 변명만 늘어놓고 면피용 사과만 하기 때문이다. 무엇이 미안한지를 말하지 않는 사과는 피해자를 희롱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대신 가해자의 진정한 사과는 피해자가 정신적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된다.

연대와 지지는 죽어 가는 사람을 살릴 수 있다. 장기투쟁사업장 연대집회에 참석하고 ‘희망버스’에 몸을 싣는 것도 모두 사람 살리려고 하는 것 아닌가. 이러한 노력과 시간의 반의 반 만이라도 주변 동료들에게 쓰면 된다. 그리고 진정한 사과는 내 것을 내려놓고 책임을 지는 것이다. 내 것을 내려놓은 다음에 “미안해”라고 말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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