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승수 공익법률센터 농본 대표/변호사

이재명 대통령이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와 한미관세 협상에서 성과를 보이면서 지지율이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국무회의에서 공개 토론을 하고 타운홀 미팅을 통해서 국민과 직접 소통하려는 노력을 하는 것도 신선하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걱정도 된다. 대통령이 관심 갖는 문제를 제외하면 국정과제 추진에 동력이 붙지 않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모든 국정과제의 추진 상황을 알지는 못하지만, 필자가 관심 있는 국정과제들을 보면 힘 있게 추진되는 모습은 보이지 않고, 지지부진해 보이는 상황이다.

대표적인 것이 개헌이다. 국정과제 1호로 선정됐지만, 정치권에서는 개헌 관련 움직임이 보이지 않는다. 야당은 물론이고 여당도 개헌에 관심이 없어 보인다. 국정과제 1호가 이런 상황인데, 다른 국정과제들이라도 제대로 추진되고 있을까 걱정이 들 수밖에 없다.

지난 탄핵 당시에 광장의 시민들이 요구했던 사회대개혁과 관련해서도 마찬가지이다. 사회대개혁위원회가 국무총리실에 설치된다고 하는데 자문기구 정도의 위상이다. 이런 자문기구를 만들어서 얼마나 실효성 있게 사회대개혁 논의가 진행될지 의문이다. 정부나 여당만으로는 풀기 어려운 문제는 시민사회와 협력해야 한다. 정부나 여당이 먼저 협조를 요청해도 모자랄 판인데, 소통도 원활해 보이지 않는 경우들이 있다.

세부적인 국정과제로 들어가도 그렇다. 일부 읍·면·동에서 시범실시하고 있는 주민자치회를 본격실시하겠다는 것이 국정과제에 포함돼 있다. 지역에서부터 풀뿌리 주민주권을 실현하기 위해, 주민자치위원회보다는 역할이 강화된 주민자치회를 보편적으로 실시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지방자치법 개정이 필요하다. 그런데 법 개정에 힘이 붙지 않는 모습이다. 최근 주민자치회 법제화를 추진해 온 시민사회단체들이 국회 정문 앞 1인 시위까지 시작한 상황이다. 주민자치와 관련된 또 다른 국정과제인 ‘주민선택 읍·면·동장제 시범실시’도 지지부진하기는 마찬가지이다. 로드맵도 나오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국정과제만이 아니다. 지난 8월 대통령이 참석했던 ‘나라재정 절약 간담회’에서 나왔던 얘기도 구체적으로 추진이 되고 있는지 의문이다. 당시에 ‘국민소송제’ 도입 얘기가 나왔고, 대통령도 검토해 보라고 지시다. 국민소송제도는 공공기관의 예산낭비에 대해 국민이 직접 소송을 제기해서 따질 수 있게 한 제도이다. 지방자치법에 도입돼 있는 주민소송제도의 국가판이라고 볼 수 있다.

국민소송제도는 노무현 정부 시절에도 추진되다가 관료들의 반발로 좌절됐던 경험이 있는 제도다. 그런데 이번에 이재명 대통령이 검토지시를 한 것이다. 국가재정이 어려운 상황에서 국민소송제도는 꼭 필요한 상황이다. 문제는 누가, 어떻게 추진하고 있는지를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런 식의 문제가 한둘이 아니다. 국가의 모든 문제의 해법을 대통령 한 사람이 챙길 수는 없다. 정부의 고위공직자들 개개인이 자신의 역할을 제대로 해야 한다. 국정과제로 선정됐거나 대통령의 지시가 있는 사항에 대해서는 담당하는 부처나 참모들이 로드맵을 만들고 제대로 검토·추진해야 한다.

여당도 제 역할을 해야 한다. 입법을 통해야 해결되는 과제들은 여당이 책임 있게 검토하고 추진해야 한다. 대통령은 무소속으로 당선된 것이 아니라 여당의 후보로 당선된 것이다. 대통령의 공약이나 국정과제는 여당이 공동책임을 져야 하는 문제이다. 그런데 여당이 개헌 같은 중요한 문제에 대해 손을 놓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심각한 문제이다. 또한 법률을 고치면 충분히 개선하거나 해결할 수 있는 문제조차도 지지부진한 것도 문제이다.

작년 12월3일 대한민국의 국가시스템은 크게 흔들렸다. 어려운 과정을 거쳐서 수습하고 국가시스템을 정상화해야 하는 상황이다. 그 모든 것을 대통령 한 사람에게 기대서도 안 되고 책임을 전가해서도 안 된다. 국민세금으로 월급을 받는 고위공직자라면, 한 사람 한 사람이 국가공동체를 위해 제 역할을 해야 할 때다. 고위공직자들이 자기 책임은 다하지 않으면서 대통령의 입만 쳐다보는 식이 돼서는 안 된다.

공익법률센터 농본 대표/변호사 (haha960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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