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어제는 사무실에 문의 전화가 빗발쳤다. 자문노조들이 희망퇴직한 퇴직자들이 손해배상청구소송을 할 것이 걱정돼서였다. 주말에 법원 판결 소식을 보도한 언론 기사를 접했던 터라 나는 대충 어떤 이유로 노조들이 걱정하는 것인지는 짐작하고 있었다. 조합원 총회를 거치지 않은 채 사쪽과 특별희망퇴직에 합의한 KT노조에 조합원 1인당 50만원을 손해배상하라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이에 관한 언론 기사에 나는 동일한 쟁점으로 KT노조 사건에 대해서는 이미 대법원이 같은 취지로 판결했던 것인데, 법원 판결이라니 대법원 판결 뒤에 조합원들이 대규모로 소송을 제기해서 이번에 법원 판결이 나온 것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정확한 내용을 파악할 필요가 있었다. 매일노동뉴스에서 이번 법원 판결에 관한 기사를 찾아서 읽은 후, 그 기사를 작성한 기자에게 연락해서 구체적인 사실관계를 알아보고 판결문을 받아서 자세한 판결 이유를 살펴보았다.
2. KT노조는 2021년 3월25일 대의원대회에서 조합원 총회의 의결을 거쳐 단체협약을 체결하도록 규정하고 있던 규약 61조를 개정했다. 정기 임금협약 및 정기 단체협약의 체결은 조합원 총회 의결을 거치도록 하고, 그 외 단체협약 체결의 경우에는 필요하다고 인정할 때만 총회 의결을 거치도록 개정했던 것이다. 그 뒤 2024년 10월17일 특별희망퇴직에 관한 노사합의를 했다. 당연히 조합원 총회를 거치지 않았다. 이에 대하여 조합원 189명이 KT노조를 상대로 규약 개정의 무효 확인 및 조합원의 절차적 권리 침해를 이유로 불법행위에 따른 손해배상을 청구하였다. 바로 이에 대한 1심 법원의 판결이 이번에 나온 것이다.
판결문을 읽어보면, 서울중앙지법(42민사부)은 노조법 16조1항은 ‘단체협약에 관한 사항’을 총회 의결사항으로 규정하고 있을 뿐, 정기·기타 단체협약을 구분해 정기 단체협약의 경우에만 총회 결의를 거치면 되는 것으로 해석할 근거가 없다고 적시하였다. 이러한 규약 개정이 단결권, 단체교섭권 등 노동3권을 보장한 헌법 33조1항과 ‘단체협약에 관한 사항’을 총회 의결사항으로 규정한 노조법 16조1항3호, 조합원의 균등한 노조 참여 권리를 규정한 22조를 위반한 중대한 내용상 하자가 있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규약 개정은 무효이고, 이 개정 규정에 따라 노조가 조합원 총회를 거치지 아니한 채 이 사건 노사합의를 체결한 행위는 헌법 및 노동조합법이 보장하는 원고들의 단결권과 노동조합의 의사 형성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절차적 권리를 침해하는 불법행위에 해당하므로 원고들에게 불법행위에 따른 손해배상책임을 부담한다고 판결했다. 조합원의 단체교섭권 및 조합의 의사결정에 참여할 권리를 침해해서는 안된다고 판단한 것이다.
3. 판결문을 읽고서 곰곰이 법리를 생각해 보았다. 2018년 대법원 판결 법리와 동일하다고 볼 수 없었다. 당시 대법원 판결은 조합원 총회의 의결을 거쳐 단체협약 체결을 하도록 규정하고 있었던 규약을 위반해서 KT노조가 특별명예퇴직 및 임금피크제에 관한 노사합의를 한 데 대하여 조합원들에게 노조가 손해배상하라고 한 것이었다(대법원 2016다205908 판결). 노조의 노사합의는 노조 규약에서 규정하고 있는 총회의 의결을 거치지 않는 것이었고, 대법원도 “노동조합이 조합원들의 의사를 반영하고 대표자의 단체교섭 및 단체협약 체결 업무 수행에 대한 적절한 통제를 위하여 규약 등에서 내부 절차를 거치도록 하는 등 대표자의 단체협약체결권한의 행사를 절차적으로 제한하는 것은, 그것이 단체협약체결권한을 전면적·포괄적으로 제한하는 것이 아닌 이상 허용된다”며 “노동조합의 대표자가 위와 같이 조합원들의 의사를 결집·반영하기 위하여 마련한 내부 절차를 전혀 거치지 아니한 채 조합원의 중요한 근로조건에 영향을 미치는 사항 등에 관하여 만연히 사용자와 단체협약을 체결하였고, 그 단체협약의 효력이 조합원들에게 미치게 되면, 이러한 행위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보호되는 조합원의 단결권 또는 노동조합의 의사 형성 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권리를 침해하는 불법행위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규약 위반은 아니었다. 그 사이, 즉 대법원 판결 이후 KT노조는 정기 임단협이 아닌 경우에는 필요시에만 총회를 거치도록 규약을 개정해 놓았던 것이다. 이에 따라 총회 의결 없이 KT노조는 2024년 10월17일 특별희망퇴직에 관한 노사합의를 했으나 규약을 위반했다고 볼 수 없게 됐다. 이것은 대법원 판결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노조 위원장 등 집행부의 단체협약 체결권한에 대한 조합원 총회를 통한 통제권한의 행사를 못마땅하게 여겼던 것이고, 이를 피할 방책으로 위와 같은 규약 개정을 궁리해냈던 것이 분명하다. 위 대법원 판결의 법리는 이러한 규약 개정을 통해서 피할 수 있다고 보고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못했다. 이번 1심 법원은 이런 규약 개정조차도 무효이고, 그에 따른 노사합의는 조합원의 권리를 침해하는 불법행위로서 손해배상책임을 진다고 판결했으니 말이다.
4. 이번 판결의 법리가 대법원 판례 법리로 확인될지는 아직 모른다. 정기 임단협과 그밖에 단협 체결을 구분하여 총회 의결에서 차별한 것이 노조법 위반으로서 규약 개정이 무효라는 것인지, 노조법은 단체협약에 관한 사항을 총회 의결을 거치도록 규정한 것이라서 일체의 단체협약 체결은 총회의 의결을 거쳐야 한다는 것인지 판결문은 명확하게 읽히지 않는다. 그렇다 해도, 설사 이렇게 이번 판결의 법리가 이 나라에서 확고하게 판례 법리로 자리 잡을 것인지는 명확하지 않을지라도 또다시 법원이 판결을 통해서 조합원 총회를 무시하는 노조의 행태에 경종을 울린 것만은 명백하다.
노동조합은 노동자가 주체가 되어 자주적으로 단결하여 근로조건의 유지·개선 기타 근로자의 경제적·사회적 지위의 향상을 도모하기 위하여 조직한 단체이다. 이것이 이 나라의 노조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노동조합의 정의인 것이다(2조4호). 노동자들이 주체가 돼 자주적으로 단결 활동을 하는 단체인 것이니, 조합원이 노조 활동에 참여해서 권한을 행사한다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고, 이에 따라 노조법도 조합원은 균등하게 노동조합의 모든 문제에 참여할 권리를 가진다고 규정하고 있다(22조). 단체교섭 및 단체협약 체결에 관한 노동조합 대표자의 권한을 노조법은 규정하고 있는데, 이것은 조합원의 권리를 침해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조합원의 근로조건 유지 개선이라는 향상을 위해서 행사하여야 한다(노조법 33조1항 등 참조), 이러한 노동조합에 관한 노조법 규정들을 읽다 보면, 임금피크제, 희망퇴직 등을 비롯해서 기존의 임금권리를 삭감하고, 고용보장이 아닌 사업장에서 퇴출시켰던 셀 수 없이 많았던 이 나라의 노사합의서들이 떠오른다. 물론 그때마다 변명은 있었다. 임금인상을 위해서는 불가피했다며, 아직은 조합원에는 해당하지 않는 것이라며 이 나라에서 노조는 노사합의를 해왔다. 이랬던 것이니, 우리 노조들은 ‘총회 없는 노사합의(단협체결) 행위는 불법행위다’라는 법원 판결 소식에 걱정이고 두려운 것이다. 누구는 어용이라고, 우리는 그렇지 않다고 안심할지도 모르겠지만, 총회의 의결 없는 일체의 노사합의(단협체결) 행위는 불법행위라는 판결에 이 나라에서 안심할 노조가 몇이나 될까. 이 칼럼을 읽고 있는 당신의 노조는 어떤가. 과연 지금까지 우리 노조는 사측과 노사합의서를 작성할 때마다 조합원 총회의 의결을 거쳐서 했나. 거의 대부분의 노조에서는 임단협 체결을 제외하면 각종 노사합의는 총회 의결 없이 합의서를 작성해 왔을 것이다.
5. 사실 이 나라에서 법원이 조합원 총회의 의결을 중요하게 취급했던 것은 아니다. 단체협약 체결에 관하여 총회의 의결을 거치도록 한 총회인준권 조항에 관하여 대법원은 “노조 대표자의 단체협약 체결 권한을 전면적·포괄적으로 제한함으로써 사실상 단체협약체결 권한을 형해화”시키는 것이라며 무효라고 반복해서 판결했었다. 이에 따라 총회인준권 조항을 이유로 사용자가 노조와의 교섭을 거부해도 부당노동행위에 해당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이러한 상태에서 한 노조의 쟁의행위는 정당하지도 않다고 판결했었다. 대법원은 이런 판례 법리를 아직까지 변경하지 않았다. 단지 2014년 대법원은 규약 등 내부 절차를 거치도록 하는 등 대표자의 단체협약체결권한의 행사를 절차적으로 제한하는 것은 단체협약 체결 권한을 전면적·포괄적으로 제한하는 것이 아닌 한 허용된다고 판결하면서(대법원 2010다24534 판결), 위 2018년 KT사건 대법원 판결과 이번 법원의 판결이 나올 수 있었다. 그러니 아직은 이 나라는 ‘총회 없는 노사합의(단협 체결) 행위는 불법행위다’고 선언하지 않았다. 총회인준권 조항이 무효가 아니고, 이를 이유로 한 사용자의 교섭 거부가 부당노동행위이며, 이러한 상태에서 노조의 쟁의행위는 정당하다는 법원의 판결이 나올 때까지는 이번 KT사건에 관한 법원 판결에도 불구하고, 조합원의 단체교섭권 및 조합의 의사결정에 참여할 권리를 온전히 보장받기 위해서는 아직은 갈 길이 멀다.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