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대 노동문제연구소 연구위원
쿠팡 새벽배송을 둘러싼 논란으로 ‘야간근로’ 문제가 부상하고 있다. 전자상거래·물류산업이 확대되면서 새벽 배송·분류·운전 등, 노동자들이 새벽 3~5시 시간대에 일하는 관행이 일상화됐다. 국제노동기구(ILO)의 171호 ‘야간근로 협약’은 이 시간을 밤으로 규정한다.
국제적 연구는 공통적으로 새벽 3~5시가 인체 기능의 ‘바닥(nadir)’에 해당한다고 지적한다. 체온·각성도·심박수·멜라토닌 분비가 모두 떨어지고, 집중력과 판단 능력도 가장 낮아진다. 이때의 노동은 생리학적 ‘밤 모드’와 충돌하기 때문에, 동일한 작업도 위험성과 부담이 커진다.
국제암연구소(IARC)는 야간교대근로(night shift work)를 “인간에게 발암 가능성이 있는 요인”으로 분류한다. 수면의 양과 질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생물학적 요소인 멜라토닌 억제, 호르몬 리듬 붕괴, 수면 부족으로 각종 암의 위험을 증가시킨다. 여러 연구는 장기간 야간·교대근무자가 주간근무자에 비해 관상동맥질환·심근경색 위험이 훨씬 높고, 당뇨병 위험도 크게 증가한다고 보고한다. 정신건강도 예외가 아니다. 교대근무자는 우울·불안장애 위험에 더 취약하다.
토마스 웨어(Thomas Wehr)를 포함한 생체리듬 연구자들은 멜라토닌 분비가 끝나고 체온이 오르기 시작하는 구간을 “생리적 새벽(biological dawn)”이라 부른다. 생리적 새벽은 일반적으로 사람이 깨어나기 직전에 발생하는데, 현대 사회의 교대·새벽근무는 이 전환기를 강제적으로 ‘근로시간’으로 전환한다. 신진대사에서 멜라토닌은 아직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고, 각성 신체 시스템은 충분히 켜지지 않아 사고·졸음운전·산업재해 발생률이 높아진다.
새벽 3~5시는 잠에서 깨어나기 위한 생리적 변화가 시작되는 매우 중요한 시간이며, 빛에 의해 멜라토닌 분비가 완전히 멈추기 직전의 준비과정에 해당한다. 이 시간은 생물학적으로 하루의 시작을 준비하는 단계로, 깊은 수면의 다음 단계로서 신체 조직의 회복, 성장 호르몬 분비, 기억 정리 등 필수적인 재정비 과정이 마무리된다. 무엇보다 수면 중에 활발해졌던 면역 시스템이 활동 모드로 전환할 준비를 한다.
국내외 연구는 모두 한 방향을 가리킨다. 새벽 3~5시 노동은 인간 생체리듬과 가장 충돌하는 시간대로, 여러 가지 사고 발생 가능성과 장기적 발암 가능성을 경고한다. 이런 연유로 ILO는 새벽 3~5시를 야간근무의 범위에 넣고 야간노동 보호를 국가의 의무로 규정한다. 공중보건·산업안전·노동권 보호의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13일 ‘꺼지지 않는 불꽃, 전태일 열사를 기리며’라는 글에서 “특수고용직, 비정규직, 플랫폼 노동자 등 이름은 달라졌어도 장시간 저임금 노동과 산업재해의 위험은 현재 진행형”이라면서 “한자 가득한 근로기준법을 해석해 줄 ‘대학생 친구’를 간절히 갈망했던 전태일과 같은 노동자들을 위해 소년공 이재명이 든든한 ‘대통령 친구’가 되겠다”고 썼다. 하지만 전태일과 관련된 진짜 문제는 근로기준법이 한자로 가득하거나 대통령이 노동자의 친구가 아니라서가 아니다. 근로기준법이 자신의 노동(labour)에 의지해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적용되는 최저기준이 되지 못하는 작금의 현실이 진짜 문제다.
전태일이 산화한 11월13일을 법정 국가기념일로 지정하자는 목소리가 커지고, 소년공 출신 대통령까지 전태일 ‘열사’를 기리는 날이 왔지만, 전태일 정신의 본질인 근로기준법 전면 확대는 22살 전태일이 77살 노인이 된 오늘까지 요원하다. 오히려 노동자계급을 근로기준법 적용을 받는 ‘1등 노동자’와 그 적용을 받지 못하는 ‘2등 노동자’로 분리시키려는 시도가 “모든 일하는 사람들의 권익 보장”이라는 미명하에 시도되고 있다.
근로기준법의 영문명은 Labour Standards Act이다. 가진 게 노동력밖에 없어 먹고 살려고 하는 노동(Labour)이 지배계급이 법기술로 그어 놓은 근로(work)나 고용(employment)의 범주에 들지 않더라도 노동기준의 최저선은 보장되어야 한다. 이것이 청년 전태일이 염원한 ‘근로기준법’의 본령이다.
법기술자들은 “특수고용직, 비정규직, 플랫폼 노동자”가 근로기준법상의 근로자가 아니라고 해석한다. 이 때문에 대한민국은 전태일이 산화한 지 55년이 지나도록 건강상 가장 민감한 시간대인 새벽 3~5시간에 일하는 노동자들에게 근로기준법조차 적용하지 못하는 나라가 되고 말았다.
쿠팡 노동자의 새벽배송이 근로기준법의 영역에서 다뤄지지 않는 한, 근로기준법이라는 ‘역사’는 사라지고 전태일이라는 ‘신화’만 남은 대한민국 노동문제의 본질은 바뀌지 않을 것이다.
아시아노사관계(AIR) 컨설턴트/고려대 노동문제연구소 연구위원 (webmaster@labortoday.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