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호운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사무국장

민주노총이 ‘민주노총 30년사 출판기념회 및 30주년 기념식’을 개최했다. 지난 11일 열린 행사는 민주노총이 걸어온 30년의 여정을 공식적으로 정리하고 기록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지닌다. 민주노총이 공식적으로 만들어 낸 수많은 기록을 모아 하나의 책으로 엮어냈다는 것은 한국 노동운동사에서도 중요한 이정표가 될 것이다.

30년사를 만들 수 있었던 데에는 무엇보다 기록의 힘이 있다. 사마천이 “술왕사 지래자((述往事 知來者: 지난날을 기술하여 다가올 일을 안다)라고 말했던 것처럼, 과거를 제대로 기록하고 정리하는 것은 미래를 준비하는 첫걸음이다. 이번 30년사를 통해 민주노총은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를 준비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

이번 작업은 민주노총 스스로 지난 30년을 되돌아본 소중한 시간이 분명하다. 지난 30년의 기록을 돌아보면서 성과와 한계를 동시에 마주했을 것이다. 잘못도 있고 성과도 있겠지만, 중요한 것은 평가로 끝내는 것이 아니라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계획을 준비하는 것이다. 그 과정이 불편할 수도, 뿌듯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러한 작업이 가능했던 것은 꾸준히 쌓아 온 ‘기록’이 있었기 때문이다. 크고 작은 기록이 모여 하나의 역사가 되었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는 매년 ‘비정규노동 수기공모전’을 개최하고 있다. 어느덧 15년째 이어 온 공모전은 9월부터 11월까지 응모를 받아 12월에 심사를 거쳐 시상식을 진행한다. 최근에는 비슷한 공모전이 곳곳에서 열리기도 한다. 비정규노동에 대해 직접 기록한 수기에는 노동 현장과 자기 삶에서 경험하는 희로애락이 모두 담겨 있다. 또한 가혹한 노동환경과 불안정한 고용구조 등으로 인한 현실을 생생하게 드러내기도 한다.

글쓰기는 단순히 문자를 나열하는 작업이 아니다. 나를 되돌아보고 내 삶을 재구성하는 시간이며, 흩어진 경험을 모으고 의미를 부여하는 과정이다. 그 과정에서 상처받았던 기억이 치유되기도 한다. 실제로 우리 센터는 예전에 삶의 기록과 치유를 위한 글쓰기 모임 ‘쉼표하나’를 운영하기도 했다. 글쓰기 모임은 참여자들의 소중한 치유와 성찰의 시간이기도 했다.

물론 글을 쓰는 것은 쉽지 않다. 필자도 빈 화면 앞에서 깜빡이는 커서에 압박을 느끼곤 한다. 그럼에도 한 글자씩 써 내려가며 썼다 지웠다를 반복하다 보면 어느새 글이 완성되기도 한다. 마음에 들지 않기도 하고, 누구에게 보여준다는 게 부끄럽기도 하다. 문장은 어색하고 표현은 서툴지만, 내가 쓴 글에 애정이 생기기도 한다.

센터의 비정규노동 수기공모전도 이러한 글쓰기의 힘을 믿기에 15년째 이어 오고 있다. 당사자들이 자기 이야기를 써 내려간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고통스러운 기억을 다시 꺼내고, 말하기 힘든 경험을 글로 표현해야 한다. 하지만 글을 통해 자기 이야기를 되돌아보고 의미를 되새기면서 상처가 치유되고, 경험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기도 한다. 나아가 글쓰기를 통해 자신의 경험을 사회와 연결하며 소통하기도 한다. 이러한 개인의 이야기가 모여 집단의 역사가 되고, 그것이 다시 사회를 변화시키고 나아가게 만드는 힘이 되기도 한다.

우리가 기록한다는 것은 지금의 나와 미래의 나를 위한다는 점에서 소중한 작업이다. 민주노총이 30년사를 출판한 것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민주노총이 지난 시간을 차근차근 되돌아보면서 스스로 치유받고, 사회와 다시 소통하며 마주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고 있다고 본다. 그리고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불리고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고 싶은지 스스로 성찰할 수 있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기록은 과거를 보존하는 것이지만, 동시에 미래를 준비하는 일이다. 우리의 이야기를 써 내려가는 것, 그것이 바로 더 나은 내일을 만드는 첫걸음이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사무국장 (kihghdn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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