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월25일, 민주노총 정기대의원대회를 사흘 앞두고 문재인 대통령이 양대 노총 위원장을 만났다. 민주노총의 경사노위 참여를 촉구하기 위해 대통령이 제안한 자리였다. 모두발언에서 대통령은 “(양대 노총이) 경사노위에 참여해 정상화되면, 회의에도 (대통령이) 직접 참여하겠다”며 경사노위에 힘을 실었다.
민주노총 경사노위 참여 독려
문 대통령, 양대 노총 위원장 면담
민주노총의 경사노위 참여를 촉구하는 모임에 한국노총 위원장이 참석한다는 게 한국노총으로선 썩 달가운 일만은 아니었다. 그렇잖아도 정부가 한국노총을 민주노총의 뒷자리에 놓는다는 불만이 적지 않던 터였다. 한국노총이 국제노동기구(ILO) 기본협약 비준을 논의하던 노사관계제도·관행개선위원회를 박차고 나온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는 관측이었다.
“오늘 대통령 면담에서 한국노총을 들러리로 세우는 듯해 기분이 나빴습니다. 그러니 그냥 액션으로 봐주세요”. 한국노총이 ILO 기본협약을 논의하다 자리를 떠났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성경 한국노총 사무총장에게 전화를 걸었을 때 들은 대답이었다. 민주노총의 경사노위 참여를 독려하는 자리에 함께한 김주영 한국노총 위원장의 불편함은 조선일보가 생생하게 전했다.
“청와대·정부의 과도한 ‘민주노총 챙기기’가 한노총의 반발을 부르면서 현재 노사정 대화 구도까지 흩트릴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됐다. 김주영 한노총 위원장은 이날 ‘오늘 이 자리가 민노총의 (대화 참여를 위한) 자리임을 잘 안다’면서 ‘그러나 민노총이 참여해야지만 사회적 대화가 이뤄지는 건지 냉정하게 생각해봐야 한다’고 했다. 김주영 위원장은 ‘대통령께서 민노총 참여 여부와 관계없이 사회적 대화를 하겠다는 의지가 있는지 말해달라’고도 했다.”(조선일보, 2019년 1월26일)
급기야 한국노총은 성명을 내며 경사노위 참여 중단을 경고하고 나섰다. 대통령이 민주노총의 참여를 권고하고 민주노총이 그 여부를 결정하는 날(2019년 1월28일), 한국노총은 경사노위를 떠날 수 있다고 경고하고 나선 셈이었다. 성명의 제목은 ‘한국노총 사회적 대화 중단’이었다. 한국노총이 내세운 이유는 ILO 기본협약 비준과 관련해 사쪽 공익위원안이 노동기본권을 침해하고 있는데도 경사노위가 이를 전체 공익위원안으로 채택하려 든다는 것이었다. 미묘한 시점에 나온 미묘한 성명이었다.
이해하기 힘든 일은 소설처럼 이어졌다. 이번에는 ILO 기본협약 비준 논의에서 발표된 사쪽 공익위원안이 유출되면서 전체 공익위원안으로 둔갑하는 일이 벌어졌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민주노총 내 경사노위 참여를 반대하는 쪽에겐 더할 나위 없는 호재였다. 일찌감치 경사노위 불참을 공식화한 공공운수노조가 성명을 발표했다. “오늘(1월25일), 경사노위 산하 노사관계제도·관행개선위에서 제시된 공익위원안의 내용을 확인한 우리 노조는 경악했다. 노조 활동과 투쟁을 전면적으로 제약하고 사용자의 노조탄압에는 면죄부를 주는 내용으로, 그간 경총이 요구해왔던 내용을 모두 반영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노조 무력화법 강행이 사회적 대화인가, 노조법 개악 당장 중단하라’, 2019년 1월25일)
경사노위는 긴급하게 해명자료를 발표했다. 노동계 추천 공익위원의 발제에 이은 사쪽 추천 공익위원의 발제였을 뿐, 전체 공익위원의 안이 아니라는 설명이었다.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유출된 발제문은 공익위원안으로 포장돼 경사노위 불참의 연료로 활용되고 있었다. 자료가 유출된 경로는 확인할 수 없었다. 사용자 추천 공익위원인 권혁 부산대 교수와 김희성 강원대 교수는 사퇴 의사를 밝혔다. 자료 유출에 대한 항의나 부담의 표시였겠지만 자칫 ILO 기본협약 비준 논의를 중단시킬 수도 있는 판단이었다.(김희성 교수는 사퇴 의사를 철회했다.) 민주노총 대의원대회는 그렇게 다가오고 있었다.
아무 결정도 못 내린 민주노총 대의원대회
운명의 날이 밝았다. 민주노총 정기대의원대회는 서울 화곡동 우장산 밑, KBS 아레나홀에서 열렸다. 민주노총의 경사노위 참여 여부는 안팎으로 뜨거운 쟁점이었다. 기자석은 취재진으로 가득 찼고 대의원은 재적(1천273명) 대비 1천46명(82.2%)이 참석해 사상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
오후 5시30분부터 시작된 경사노위 안건 토론은 7시간이 넘도록 이어졌다. 경사노위 참여를 두고 “참여한다”는 원안 이외에도 3개의 수정안이 제출됐다. 1수정안은 경사노위에 불참하고 대정부 투쟁에 나서자는 안이었다. 투표자 958명 중 331명 찬성으로 부결됐다. 2수정안은 조건부 불참안이었고 936명 중 362명 찬성으로 역시 부결됐다. 탄력근로제 개악 철회, 최저임금제도 개악 철회, 노조법 개악 철회 및 ILO 기본조약 정부 비준, 노정교섭 정례화 요구를 정부가 수용하지 않으면 경사노위에 참가할 수 없다는 안이었다.
산별 대표자 8명(건설연맹·서비스연맹·교수노조·대학노조·보건의료노조·사무금융노조·언론노조·정보경제연맹)은 수정안 3안을 공동발의했다. 경사노위에 참여하되 정부가 탄력근로제와 최저임금제, ILO 협약 비준과 관련한 노동법 개악에 나서고 국회에서 이를 강행 처리할 경우 경사노위에서 즉각 탈퇴한다는 안이었다. 이 안 역시 부결됐다. 912명 중 402명 찬성에 그쳤다.
토론은 뜨겁고 격렬했다. 반대쪽 토론자로 나선 김수억 금속노조 기아차비정규직지회장은 “제가 믿는 것은 문재인 정부가 아니라 민주노총의 투쟁”이라며 “노동개악을 굴욕적으로 강요하는 경사노위에 참여하지 말고 민주노총답게, 촛불 항쟁 주역이던 우리가, 김용균이 바로 우리라고 외치면서 투쟁하자”고 강조했다. 찬성쪽 토론을 한 나순자 보건의료노조 위원장은 “사회적 대화를 통해 사회 양극화 문제, 사회 안전망을 확대하는 문제, 재벌체제를 극복하는 문제를 쟁취할 수 있다”며 “이제 당당하게 교섭과 투쟁을 병행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모든 수정안이 부결된 뒤 김명환 위원장은 “집행부 원안 표결은 무의미하다고 생각해 더 이상 (표결을) 진행하지 않겠다”며 원안을 철회했다. 김 위원장이 “산별노조 대표들이 제출한 안에 대해 결정해 준다면 경사노위 참여 원안과 관련해 주장하지 않겠다”고 밝힌 것이 원안 표결의 발목을 잡았다. 결국 그날 대의원대회는 아무 결정도 내리지 못한 채 끝났다. 경사노위 참여안도 부결됐고 불참안도 부결됐다. 모든 안이 부결되면서 민주노총의 경사노위 불참 입장은 살아남았다.
밤 12시가 넘도록 컴퓨터로 대의원대회를 지켜보다 경사노위 간부들과 술집으로 향했다. 허탈했다. “원안을 상정했더라면 어떻게 됐을까, 이제 경사노위 참여 문제는 조합원 총투표에 부쳐야 하는 게 아닐까”라는 맥락 없는 생각들만 들끓었다. 사회적 대화를 가교 삼아 “사업장 담장을 넘어 한국 사회 대개혁으로” 건너가려던 김명환 집행부의 여정은 멈췄다. 경사노위로서도 도돌이표에 걸린 듯, 다시 ‘민주노총 없는 사회적 대화’로 되돌아가고 말았다.
“떠나고 싶은 자/ 떠나게 하고/ 잠들고 싶은 자/ 잠들게 하고/ 그리고도 남은 시간은 침묵할 것”(강은교, ‘사랑법’)
민주노총이 사회적 대화에 결합하지 않기로 했다면 그건 누구를 위한 결정일까. 이남신 비정규직 계층위원이 <매일노동뉴스>(2019년 1월31일)에 기고한 글의 일부다.
“한계가 분명하고 문제도 많지만 경사노위는 사회적 비상구다. 특히 집단적 목소리가 배제된 사회적 약자인 비정규직, 청년, 여성, 영세 자영업자들의 이해를 그나마 반영할 수 있는 유일한 사회적 대화기구다. 일종의 산소호흡기다. 더욱이 경사노위는 명칭과 성격, 운영구조 등 민주노총이 개선을 요구한 주요한 사항들이 반영된 기구이기도 하다. 당장은 돌이키기 어렵게 됐지만 사회적 대화는 여전히 필요하다.”
전 경사노위 상임위원 (tjpark07@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