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서연 공인노무사(노무법인 푸른솔)

국회 기후에너지환경노동위원회의 국정감사에서 근로복지공단의 구조적 한계가 다시 드러났다. 지난해 이어 올해도 공단이 의학적 인과관계 판단에 매몰돼 높은 행정소송 패소율과 장기 처리기간을 보인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이용우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공단의 행정소송 패소율이 전체 평균보다 최대 8배 이상 높으며, 특히 진폐·난청·뇌심혈관계 질환에서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또 “승산이 낮은 사건까지 상소를 남발해 보상이 지연되고 있다”며 신규 인력을 투입해 처리기간을 단축하고, 반복 패소 사건의 판례를 분석해 소송 관행을 개선하라고 촉구했다.

그러나 반복되는 지적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실질적인 해법은 제시되지 않고 있다. 처리기간 지연 배상을 위한 ‘평균임금 증감제도’ 확대, 의학 중심의 ‘소음성 난청 장해판정 가이드라인’ 폐지, 판례를 반영한 법 개정 등 구체적인 제도 개선이 필요한 시점이다.

공단의 소송 남발 문제는 2017년 국감에서도 지적됐다. 당시 공단은 “상소 제기 요건 명문화”와 “1심 중심 소송 추진”을 약속했지만, 여전히 3심까지 가는 항소 관행이 반복되고 있다.

특히 2023년 공단은 법률전문가 검토 없이 의료진 용역 결과만으로 만든 ‘소음성 난청 가이드라인’을 새 판단 기준으로 채택하며 의학적 인과관계 중심의 판단을 공식화했다. 이로 인해 업무처리기준이 처분에 반영되지 않게 되면서 불승인 비율과 관련 소송이 증가했다.

소음성 난청 소송 추이를 보면, 2020~2021년 법원 판결을 반영해 업무처리기준을 개정한 후 공단의 승소율은 55.2%까지 상승했으나, 가이드라인이 제정된 2023년 이후 다시 40%대로 떨어졌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도 산재 인정률은 줄고 패소율은 높아졌다는 비판과 함께, 규범적 인과관계에 따른 판정 기준 개선, 1심 우선보상제도 도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국감에서 유사한 지적이 매년 반복되는 이유는 근본적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단순히 “판정 기준을 개선하라”는 요구만으로는 누적된 신뢰 위기를 회복할 수 없다. 실질적인 해결책은 △소음성 난청 가이드라인 폐지와 업무처리기준의 법제화 △‘지급결정일 기준’ 평균임금 증감제도 확대다.

공단 내부에서는 현재 의학적 판단 중심의 지침을 따르기에 판례 법리와 동떨어진 결정이 내려지고 있다. 피해자는 소송을 거쳐서야 규범적 판단을 받게 되는 악순환이 발생한다. 따라서 소음성 난청 가이드라인이 폐지되고, 개선된 업무처리기준을 시행령에 반영해야 공단의 판단체계가 판례 법리에 부합할 수 있다.

또한 재해자가 장기간 소송을 거치는 동안 보상의 실질 가치가 떨어지는 문제를 막기 위해 ‘지급결정일 기준’ 평균임금 증감제도 도입이 필요하다. 최초 진단일이 아닌 ‘지급결정일 기준’으로 평균임금을 증감해 보상하는 제도는 우선보상제도의 부작용(환수 문제)을 피하면서도 피해자의 경제적 불이익을 보정할 현실적 대안이다.

지난 9월1일 고용노동부는 현 정부 신속 추진 과제 설정에 따라 ‘업무상 질병 처리기간 단축 방안’을 발표했다. 김영훈 노동부 장관은 “이번 대책은 그동안 산재 처리 기간 지연으로 불편을 겪어 온 노동자들의 목소리에 응답한 것”이라고 강조했지만 정작 가장 오래 지연돼 온 소음성 난청 분야는 개선 대상에서 제외됐다. 이미 장기간 소송으로 고통받은 재해자들에 대한 보상책도 언급되지 않았다.

공단은 이제라도 판단 절차를 근본적으로 개선해야 한다. 정부와 국회 또한 반복되는 지적이 ‘연례행사’로 끝나지 않도록 제도적 개입에 나서야 한다. 잘못된 판단과 불필요한 소송으로 고통받아 온 노동자들의 현실이 이번엔 정말로 바뀌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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