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음표 공인노무사(공공운수노조 법률원)
▲ 김음표 공인노무사(공공운수노조 법률원)

“귀하가 주장한 바와 같이 피진정 사업장으로부터 미지급 금품이 존재하고, 근로기준법 36조에 따라 청산돼야 한다 판단됩니다. 그러나 피진정인에게 금품 미지급의 고의가 있다고 보기 어려운바 형사처벌의 대상이 되지 않아 해당 사건을 행정종결합니다. 다만 형사처벌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해서 미지급 금품에 대한 민사상 지급 책임이 면제되는 것은 아니므로, 미지급 금품에 대해서는 피진정 사업장에 대한 민사상 청구 등으로 해결하기 바랍니다. 끝.”

노동자 A씨가 노동부 B지청으로부터 받은 임금체불 사건처리 결과 회신 내용이다. 이처럼 최근 현장에서는 ‘검찰이 내사 지휘를 내리면 고용노동부는 모든 조치를 멈추는 현상’이 반복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즉 검찰이 형사처벌 요건인 ‘고의성’이 없다고 판단하면 노동부는 사용자의 미지급 금품이 명백히 존재함을 알고도 사건을 종결한다. 이후 노동자에게 남는 것은 “민사로 해결하라”는 내용의 회신 한 장뿐이다.

노동자는 절망한다. 확신과 희망을 가지고 제기한 임금체불 진정은 감독관의 조사부터 시작해 검찰의 수차례 보충수사 지휘, 그리고 형사처벌 대상 판단이 나오기까지 수개월에서 길게는 1년 이상이 소요된다. 그런데 체불된 임금을 받기 위해선 또 민사소송으로 넘어가라니. 노동자들이 민사소송의 존재를 몰라서 노동부를 찾는 게 아니다. 시간과 비용 면에서 부담이 큰 소송 절차 대신, 노동자의 입장에서 노동부가 신속하게 조사하고 임금체불을 해결할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임금체불이 단순한 사인 간의 금전 문제가 아닌 한 사람의 ‘생계 문제’임을 고려하면, 현재와 같은 문제는 단순한 행정적 비효율을 넘어선 ‘생계유지권 침해’에 가깝다.

근로감독관은 근로기준법과 근로감독관 집무규정에 근거해 특별사법경찰관으로서 수사권을 행사할 수 있으면서도 동시에 행정기관 공무원으로서 시정지시권을 보유한다. 이들은 사법경찰직무법에 따라 수사 및 형사처벌 영역에서 검찰의 지휘를 받는 구조다. 그러나 문제는 이 같은 형사수사 지휘 관계가 행정적 시정지시 권한 행사까지 제약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임금체불 사건에서 근로감독관은 집무규정 27조1항에 따라 임금이 지연된 경우 신속한 청산을 위해 적극 노력해야 한다. 같은 규정 37조의2 8항에 의해 법 위반 사실이 확인되면 시정지시를 해야 한다. 그럼에도 현실에서 노동부는 검찰이 형사처벌 요건을 충족하지 않는다고 판단하면 시정지시를 생략한 채 사건을 종료한다. 미지급 금품이 있음을 확인하고도 말이다. 형사처벌 가능성이 사라지면 행정적 조치까지 중단되는 구조는 근로감독 행정의 본질적 기능을 훼손하는 결과만 낳는다.

임금은 노동자의 헌법상 보호되는 최소 생계수단이다. 따라서 임금체불을 단순한 계약 위반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 ‘미지급 금품이 존재한다’는 것은 법 위반 가능성이 확인된 상태로서, 검찰이 고의성 판단을 유보하거나 부정하더라도 노동부는 국민의 권익 보호를 위한 행정기관으로서 시정지시를 별도로 내릴 수 있어야 한다. 이 구별이 무너지면 근로감독의 정당한 기능이 위축되고, 사용자의 위법행위가 ‘고의성 부재’ 등의 이유로 사실상 면책된다. 검찰의 판단과는 별개로 노동부는 근로감독 기능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최근 정부조직 개편 논의 속에서도 검찰의 수사지휘권과 근로감독관 제도적 관계가 어떻게 재편될지가 주목된다. 여전히 근로감독관의 본질적 역할은 ‘사후 처벌자’가 아닌 ‘사전 예방자’라는 점에서, 노동부는 행정적 구제 역할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검찰이 고의성을 부정했다는 이유로 노동부가 행정적 조치까지 멈춘다면, 그 피해는 결국 노동자 개인에게 귀속될 수밖에 없다.

노동부는 국민의 노동권을 보장하기 위한 유일한 행정기관이다. 형사처벌 여부와 무관하게 미지급 금품을 확인했을 때 신속하게 시정지시를 내려 노동자의 생계를 보호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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