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8월, 금속노조 아사히비정규직지회는 9년간의 투쟁 끝에 조합원 전원이 현장에 복직하게 됐다. 무수한 갑질과 차별, 불법파견과 부당노동행위 등 지난한 투쟁과 장기간의 법적 다툼 끝에 얻어낸 값진 승리였다. 우리는 이 투쟁을 어떻게 기억해야 할까. 그들의 투쟁이 장식장 속 트로피로 남아서는 안 된다는 점만은 분명하다.
아사히비정규직지회. 경북 구미에서 유리를 생산하는 아사히글라스 공장의 비정규 노동자들이 모여 설립한 노조이다. 파견직으로 고용된 노동자는 고된 노동과 열악한 노동조건으로 이직률이 높았다. 어딜 가든 비슷한 상황이었기에 싸우는 것보단 일터를 옮기는 편이 이득이라면 이득이었다. 그런 곳에서 구미 공단 최초 비정규직 노조가 만들어졌다. 그러나 노조 설립 권리가 법으로 보장돼 있음이 무색하게도 조합원들은 노조 설립 한 달 만에 문자로 해고 통보를 받게 됐다. 계약기간은 6개월이나 남았고 경영상의 위기 같은 이유도 없었다. 명목은 도급계약 해지로 인한 해고였지만 실질적으로는 원청의 노조 활동을 방해하기 위한 부당노동행위였다. 노동자들의 고용 형태는 도급이라는 허울을 쓰고 있었지만 사실상 원청의 지시를 받는 불법파견이었기 때문이다. 명백했다. 그럼에도 그 ‘명백’을 위해 9년을 싸워야 했다. 장장 9년. 9년이라는 두 음절의 짧은 글자 속에 얼마나 많은 희망과 절망, 기쁨과 갈등이 있었을까. 그 긴 시간 동안 노동자들은 어떻게 투쟁해 온 것일까. 어떤 마음으로 살아온 것일까. 소희 작가의 <파치>는 우리를 아사히비정규직지회 투쟁의 9년 속으로 초대한다. 이야기꾼 면모가 돋보이는 생생한 묘사와 풍부한 표현을 통해, 노조를 설립하기 위한 움직임에서 공동투쟁으로 확장되는 과정까지 각각의 장면을 생동감 있게 그리며 우리를 관찰자가 아니라 투쟁의 한 장면 속 인물로 서게 만든다.
저자인 소희 작가는 처음부터 아사히비정규직지회를 기록하겠다는 마음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2015년 노조 설립 한 달 만에 문자로 해고 통보를 받은 노동자들이 걱정돼 ‘한번 가 봐야겠다는 생각에 이르렀’(8쪽)고, ‘빈손으로 만날 수 없는 노릇이라 (옥수수)파치라도 싸 들고’(8쪽) 농성장에 들렀던 것이 인연의 시작이었다. 아사히비정규직지회와 함께하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소희 작가는 ‘노동조합이 노동자들에게 어떤 기쁨과 해방을 만끽하게 해주길래 이렇게 오랜 세월 싸우면서도 그날을 떠올리면 설렐까’(20쪽)라는 궁금증이 들기 시작했고 이유를 알아야겠다는 마음은 ‘노동조합을 만드는 길고 긴 이야기를 퍼즐 맞추듯 꿰며 쓰기 시작’(22쪽)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조합원들의 인터뷰와 자신의 연대 경험을 되짚었고 때로는 그 순간을 살아내기도 하면서 집을 짓듯이 아사히비정규직지회의 9년을 재현한다.
재현. 이미 일어난 일을 다시 나타나게 만든다는 뜻이지만, 있는 그대로 표현되는 것이 아니라 재현하는 주체를 통해 의미가 재구성돼 생산되는 과정을 가리킨다. <파치> 역시 ‘사실의 기록’에 머물지 않는다. 아사히비정규직지회 노동자들과 하나의 세계를 구축해 그 세계에 살아가고 있는 이들의 목소리를 들려준다. 그 세계는 참으로 현실감 있고 단단해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나를 기어코 회사 이사에게 ‘회사 내 노동조합을 하던 사람이 있다’는 노골적 언사를 들어야 했던 차헌호(64쪽)의 장면에, 자신은 머뭇거렸으나 당당하게 단결투쟁 머리띠를 묶고 일하는 동료들을 보며 뭉클함을 느꼈던 오수일(100쪽)의 장면에, 중요한 투쟁에 빠지고 싶지 않아 심한 몸살로 아픈 몸을 이끌고 대구지방검찰청 점거 투쟁에 함께한 김정태(206쪽)의 장면에 살게 만든다. 투쟁이 어떻게 인식됐고 의미화됐는지 설명될 필요 없이 읽는 이로 하여금 그때의 그 순간을 경험하도록 하는 힘이 있다. 그 힘이 아사히비정규직지회의 투쟁을 계속해서 살아나게 만들었다.
<파치>를 읽는 내내 3대에 걸친 노동자 가족의 이야기를 통해 한국 근현대사를 관통한 황석영 작가의 소설 <철도원 삼대>가 생각났다. ‘나가는 글’에서 소희 작가의 딸은 작가의 글을 보며 “엄마는 문학적 재능이 없어 보여. 르포를 쓴다면서 왜 소설을 쓰려고 해?”(291쪽)라고 말한다. 딸이기 때문에 남들보다 더욱 매섭게 지적했으리라. 그러나 나는 저자의 딸의 말에 일부만 동의한다. 소설처럼 보일 수 있다. 그만큼 소희 작가는 인간으로서 맞닥뜨릴 수밖에 없는 노동자들의 감정과 고민을 세심하게 살피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파치>는 재현이다. ‘쓰다 버리지는 삶을 거부한 아사히비정규직지회’를 재현해 내며 투쟁의 의미를 되살려낸다. 끝난 투쟁의 기록이 아니라 여전히 사회 곳곳에서 반복되는 투쟁의 또 다른 순간이 된다. 계속해서 되살아나는 투쟁에는 고이 모셔둘 장식장이 필요 없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