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진이 the삶 대표

N잡의 시대. 한 가지 일로는 생계를 꾸리기 어렵다. 글로벌 플랫폼기업 우버가 자사 앱으로 일하는 운전기사와 배달 라이더들에게 ‘기회’라는 이름의 새로운 부업을 제안했다. 바로 AI 데이터 라벨링이다.

최근 우버는 미국의 운전기사와 배달 라이더들이 운전하지 않는 시간에 디지털 작업을 할 수 있는 파일럿 프로그램을 띄웠다. 운전기사들은 우버 앱의 ‘기회센터(Opportunity Center)’에서 음성 녹음, 사진 업로드, 이미지 객체 태깅, 텍스트 분류 등 간단한 작업을 수행한다. “자동차 여러 대가 있는 사진을 올리세요” “모국어로 말하고 음성을 제출하세요” “스페인어 메뉴판 사진을 업로드하세요” 같은 프롬프트에 따라 일하면 된다. 건당 1달러부터 시작하며, 복잡한 작업일수록 보수가 높다. 보수는 24시간 내 계정에 입금된다.

이 프로그램의 배경에는 우버의 AI 데이터 사업 확장 전략이 있다. 우버는 2024년 말 데이터 라벨링 사업부를 신설했고, 올해 6월 ‘우버 AI 솔루션’이라는 이름으로 서비스를 30개국으로 확장했다. 이유는 명확하다. AI 학습용 데이터셋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버는 이 시장에서 독특한 경쟁 우위를 가진다. 하루 3천만건이 넘는 이동·배달 주문을 처리하며 막대한 데이터를 생성하기 때문이다. 2024년 2분기 기준 우버의 운전기사와 배달 파트너는 780만명. 우버가 운전기사들로부터 손쉽게 수집한 위치, 음성, 이미지 등의 데이터는 우버의 자체 AI 모델 훈련에 사용될 뿐 아니라 패키지화되어 고객사에 판매된다.

우버는 데이터 라벨링을 운전기사에게 “추가 수입 기회”로 포장한다.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만큼 일하세요!” 플랫폼기업들이 항상 하는 말이다. 문제는 운전기사들이 운전만으로는 생계를 유지하기 어렵다는 것. 데이터 분석기업 그리드와이즈에 따르면 2024년 미국 우버 운전기사의 주당 평균 수입은 513달러로 전년보다 3.4% 감소했다. 같은 기간 노동시간은 오히려 0.8% 늘었다. 노동시간은 늘어났는데 평균 수입은 줄어든 것이다. 저임금에 시달리던 운전기사들에게 추가로 마이크로 작업을 시키면서 단돈 1달러를 건네는 것은 ‘착취적’이라는 비난도 나온다. 사실 1달러는 커피 한 잔 값도 안 되는 돈이다.

원래 플랫폼기업은 노동자의 물리적 노동뿐 아니라 디지털 노동까지 추출한다. 운전기사는 승객을 실어 나르며 수수료를 내고, 동시에 운전경로·속도·고객 선호 같은 데이터를 무상으로 제공한다. 우버는 이제 이들의 유휴 시간마저 데이터 생산 시간으로 바꾸려 한다. 오후 4시에 출근해 10시간 넘게 운전한 기사가 집에 가는 대신 주차장에서 사진을 찍어 올리는 모습을 상상해보라.

우버는 운전기사들이 데이터 라벨링 작업으로 제공하는 데이터가 자율주행차 개발을 위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우버의 주요 고객에는 자율주행 업체와 주요 AI 기업들이 포함된다. 결국 우버 운전기사들이 라벨링하는 도로 이미지, 교통 패턴, 보행자 인식 데이터는 어떤 식으로든 자율주행 기술의 정확도를 높이는 데 사용될 가능성이 높다. 노동자가 자신의 일자리를 대체할 기술을 스스로 훈련시키는 역설적인 상황이다.

세계경제포럼은 2030년까지 9천200만 개의 일자리가 자동화로 사라지고 1억7천만 개의 새로운 일자리가 생겨날 것으로 전망하지만, 이는 단순한 숫자 게임이 아니다. 사라지는 일자리와 새로 생기는 일자리는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 일치하지 않는다. 더 중요한 것은 새로운 일자리의 질이다. AI 데이터 라벨링 시장의 성장은 수많은 노동자의 저임금 노동 위에서 이뤄진다.

한국에서 우버는 아직 택시 서비스만 하고 있다. 하지만 카카오나 쿠팡 같은 거대 플랫폼은 우리의 데이터를 무상으로 가져가고 있으며, 우리 주변에도 건당 1천원대 디지털 작업을 하는 노동자들이 있다. 앞으로 대졸 청년에게 적합한 전일제 일자리가 감소하고 마이크로 작업 위주의 저임금 일자리가 더 늘어날 수도 있다. 우리가 원하는 미래는 어떤 것인지, 지금부터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the삶 대표 (livewithall@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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