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민석 <우리는 왜 대통령만 바라보았는가> 작가

퇴임을 앞둔 이시바 시게루 총리가 패전 80주년을 맞아 “개인 소견”을 발표하였다. 역대 총리들이 ‘각의(국무회의에 해당)’를 거쳐 ‘담화문’을 발표했던 것과 달리 이시바 총리의 메시지는 담화가 아닌 ‘개인 소견’ 형식으로 나왔다. 그만큼 당내 강경파들이 강력하게 반발했다는 걸 의미한다. 발표 전부터 일본이 왜 ‘그 전쟁’이라는 잘못된 선택을 하게 됐는지를 다루리라는 건 분명했다. 문제는 그 메시지의 ‘강도’였다.

도대체 얼마나 전향적인 태도를 보였길래 당내 반발이 그리도 강력했을까. 기대를 품고 읽어봤지만 담화문은 평이하다 못해 진부하기까지 했다. 이런 진부한 글이 화제가 된 건 내용 때문이라기보다는 아무래도 발표 ‘시기’ 때문일 것이다.

내용만 놓고 보면 소위 ‘전후’의 논리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못했다. 많은 이들이 지적하는 것처럼 식민지배에 관한 문제의식 부재는 둘째치더라도, 여전히 천황과 인민들이 무책임한 정치인과 언론인, 그리고 폭주하는 군부에 ‘끌려갔다’는 인식이 지배적이었다. 다시 말해서 ‘천황제’와 ‘주체’의 문제를 정면에서 다루고 있지 않았다. 마루야마 마사오를 인용하면서도 정작 마루야마의 기념비적인 논문인 “초국가주의의 논리와 심리”의 핵심은 외면했다.

마루야마에 따르면 전전의 일본에는 “그 정도의 큰 전쟁을 일으키면서도 나야말로 전쟁을 일으켰노라는 의식이 (중략) 그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 것이다. 왠지 모르게 무엇인가에 짓눌리면서, 국가 전체를 온통 전쟁의 와중으로 몰아넣었다.” 어째서 그러한가. 전전의 일본에서는 정신적 권위와 정치적 권력의 ‘분리’가 일어나지 않아 정치적 ‘주체’가 확립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천황이라는 주권자가 권위와 권력 모두를 점유하는 상황에서 이에 대항해 스스로 결단해 정치적 권위를 세우고 행위의 책임을 지는 주체란 존재할 수 없었다. 전전의 일본에서의 국가적·사회적 지위란 “천황으로부터의 거리”에 의해 결정됐다.

식민지인에 대한 차별도, 점령지에서의 학살과 학대도 모두 자신들이 천황으로부터의 거리가 이들보다 보다 ‘우월한’ 지위에 있다는 인식에서 비롯됐다는 게 마루야마의 통찰이다. 천황을 정점으로 하는 가치의 위계질서에 짓눌린 개인들이 자유로이 결단하는 주체로서 스스로 행위에 대한 책임을 질 수 있을 리가 만무하다. 일본을 전쟁으로 몰고 간 ‘무책임의 체계’란 바로 이런 것이다. 누구도 결단하지도 않았지만, 모든 행위가 천황의 이름 아래 정당화되며 끌려갔던 게 전전의 일본이었다.

이시바 총리의 담화에는 천황제를 매개로 한 주체의 부재라는 정신사적 분석이 부재한다. 그 자신이 인정하듯 ‘정치’가 핵심 문제라면 천황제와 주체, 그리고 책임의 문제를 외면할 수 없는데도 그는 애써 천황제를 도외시한 채 문민통제의 제도적 조건의 부재만을 논하고 있다. 원로들이 있을 때 문제가 되지 않았던 것이, 이후에 문제가 된 건 원로들의 ‘권위’를 천황의 ‘권위’가 대체해 버렸기 때문인데도 말이다. 이시바 총리의 발언은 일본이 여전히 천황제의 주박에 사로잡혀 있다는 걸 보여주는 듯하다.

일본이 ‘무책임의 체계’ 속에서 살고 있다면 한국은 어떤가. 반대로 모든 책임을 대통령에게 지우고 그를 탄핵하거나 구속하는 방식으로 책임의 문제를 해소하고 있지는 않은가. 달리 표현하자면 대통령이 ‘과잉주체’로서 존재하는 건 아닐까. 변화무쌍한 대통령제와 만세불변의 천황제의 대비가 한일 양국의 정치적 특질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듯하다.

우리가 고민해야 할 지점은 두 나라의 이러한 정치적 특질을 어떻게 해소할 수 있을지, 더 나아가서 그 해소과정에서 두 나라의 연대가 어떻게 가능할지이다. 일본인을 천황제의 주박으로부터 해방시키는 데 피식민자의 후예인 한국인이 무엇을 할 것인가. 그 과정에서 우리는 어떠한 자기변혁을 이뤄내야 할까. 이대로는 이시바 총리의 우려처럼 일본이 ‘무책임의 체계’ 속에서 다시금 전쟁에 나설지도 모른다. 우리 자신과 동아시아 평화를 위해서라도 이 절실한 질문에 답해야 한다.

<우리는 왜 대통령만 바라보았는가> 작가 (fpdlakstp@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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