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병권 녹색전환연구소 소장

정부조직법 개편까지 일차 완료한 이재명 정부가 첫 국정감사를 앞두고 있다. 내란사태로 발생한 긴급한 국정 공백 복원을 넘어 이제부터 새 정부의 국정과제를 제대로 밀고 나갈 시작점에 섰다는 의미다. 문제는 이재명 정부가 국정과제로 제시한 세 가지 핵심 키워드, 인공지능(AI) 정책과 기후에너지 정책 그리고 균형발전 정책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하나의 장애물이 있다는 것이다. 바로 윤석열 정부가 추진을 결정한 ‘용인 반도체 국가산업단지’ 계획이다.

용인 국가산단은 2023년 3월15일 발표됐다, 향후 10년 동안 기업 주도로 550조원을 투자하는 15개 국가산단 계획의 일환이었다. 15개 가운데 가장 규모가 컸던 용인 반도체 국가산단 계획은 대규모 반도체 파운드리 공장 6기와 이를 뒷받침할 발전소, 그리고 60여개 협력기업 입주가 목표다. 대략 텍사스 삼성 반도체의 6배가 넘는 사상 최대 규모였는데 이를 수도권 용인에 짓겠다는 것이다.

용인은 평택 상수원보호구역 등 입지규제로 인해 애초에 공장 설립이 불가능한 지역이었지만 무시됐다. 그리고 환경영향평가 조기 완료 등 정부 표현대로 '속도전에 총력을 기울여' 통상보다 2년 앞서 2024년 12·3 내란사태 직후에 최종 승인됐다. 심지어 일반적으로는 2030년에 부지조성에 착공해야 하지만, 이를 대폭 앞당겨 2026년 말 이전에 착공하겠다는 계획까지 세워놓았다.

문제는 용인 단지를 지원하기 위해 막대한 양의 물과 전력을 끌어와야 한다는 것이다. 산단을 위해 하루에 무려 170만톤의 통합 용수가 필요한데 팔당댐은 물론 화천댐 물을 끌어와야 할 정도다. 또한 서울시 전체가 사용하는 용량의 두 배에 해당하는 10~13GW의 전력 용량이 필요하다. 정부는 1단계로 단지 안에 가스 발전소 6기를 새로 지어 3GW를 해결하고, 2단계로는 강원과 경북 석탄발전소와 원전에서, 그리고 3단계로 호남의 재생에너지와 원전에서 전력을 공급받을 생각이다.

하지만 이 계획은 모든 면에서 이재명 정부의 국정 기조와도 충돌한다. 무엇보다도 기후 대응과 탄소중립에 정면으로 위반된다. 당장 여기에 입주할 삼성전자가 SK하이닉스는 이미 2050 RE100을 선언했는데도 불구하고, 가스 발전을 신규로 지어서 전력을 공급받는다면 스스로 약속을 어기는 셈이다. 그러면 대만의 TSMC나 글로벌 선두 반도체 기술기업들이 모두 RE100 달성에 접근하고 있는 가운데 한국 기업들만 추세에 역행하게 될 것이다.

정부 역시 당장 용인에 3GW급 가스 발전을 건설하면 용인 주민들의 반발은 물론 경기의 탄소중립계획 약속을 지키기 어렵다. 더욱이 이재명 정부는 국정과제에서 "재생에너지가 풍부한 지역에 ‘지산지소’형 RE100산단을 조성" 하겠다고 분명히 밝혔는데, 용인 반도체 산단은 이 정책과도 충돌된다.

또한 용인 반도체 산단 계획은 이재명 정부의 균형발전 목표와 정면으로 충돌한다. 더는 물러설 수 없을 만큼 이미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격차가 커지고 지방소멸 위기가 심각한 상황이다. 그런데 용인 반도체 산단으로 유발되는 400조원 생산 효과와 160만명 고용효과가 또다시 수도권에 집중된다면 균형발전은 완전히 물 건너간다. ‘수도권 일극 체제’를 뛰어넘어 “산업·인프라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5극3특 다핵형 국토 구조”를 만들겠다던 국정과제 약속도 동시에 물거품이 될 것이다.

용인 반도체 산단의 문제점 지적은 연구기관과 시민사회에서 벌써 지적됐고 산단 승인 취소 운동 역시 시작됐다. 예를 들어 최근 국회입법조사처는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국가산단 조성사업의 전력공급 계획에 대해 ‘탄소중립 정책과 충돌’한다는 진단을 내놓았다. 그린피스와 경기환경운동연합 등도 용인 반도체 국가산단 LNG 발전소 건설 저지 캠페인에 들어가기도 했다.

'속도전'으로 서둘렀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부지조성 시작 이전인 지금이 이 계획을 전면 재검토할 마지막 기회다. 이 계획은 에너지 집약적인 반도체 산업을 또다시 수도권에 집중시켜 에너지 전환을 지연시키고 주민들의 저항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수도권 일극주의를 오히려 가속화시킬 것이며 미래 반도체 산업 경쟁력도 보장해주지도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더 늦기 전에 전면 재검토하고 비수도권 이전을 적극 고려해야 한다.

녹색전환연구소 소장 (bkkim21k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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